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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後期 小品文과 養生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朝鮮後期 小品文과 養生 | 2007 Year | 김성진(부산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508
Year(selected) 2007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9년 06월 03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9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조선후기 소품문과 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만명소품이 道佛的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무병장수는 시대와 종교, 사상을 막론하고 인류의 보편적인 욕망이요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무병장수에 대한 바람을 집약한 것이 養生이고 이 養生에 대한 지혜와 관심이 집약되어 있는 것이 도교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소품가인 연암의 <<열하일기>>에 대해 <<莊子>>의 영향을 말한 이도 있거나와, <<莊子>>에 「養生主」라는 편장이 있다는 것 역시 고려해 볼 만하다.
    영정년간에 소품문이 시대적 풍기를 이루기 전, 일찍부터 袁宏道의 문학을 접한 허균은 그의 말년에 袁宏道 외에도 陳繼儒, 田藝衡, 凌迪知, 黃汝亨, 屠隆, 徐渭 등의 문학을 접한 바 있는데, 허균은 지금도 난치병에 속하는 소갈증으로 고생을 하였다. 허균이 󰡔閑情錄󰡕을 편찬하면서 굳이 ‘攝生’이라는 항목을 둔 것도 어쩌면 이러한 자신의 病歷 때문일지도 모른다.
    허균은 <<한정록>>을 엮은 후, 吳寧野의 <<書憲>> 袁宏道의 <<甁花史>>(원래의 書名은 <<甁史>>)와 <<觴政>>, 陳繼儒의 <<書畫金湯>> 등을 부록의 끝에 붙여두었다. 袁宏道의 <<甁史>>에는 陳繼儒가 題를 달기도 하였는데, 이 <<甁史>>는 何鏜이 지은 <<古今遊名山記>>와 함께 조선후기 소품가들이 즐겨 읽은 대표적인 晩明小品이었다.
    허균에 의해 袁宏道의 소품문이 소개된 이후 문체반정기 이전까지, 南九萬 金錫冑 任埅 趙亨期 金昌協 朴泰輔 金鎭圭 李宜顯 李夏坤 申靖夏 金履萬 南克寬 趙龜命 李麟祥 등이 袁宏道의 문학을 접했음이 이들의 시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들이 袁宏道의 문학을 접했다고는 하지만, 이들 모두가 袁宏道의 문학에 탐닉했던 것은 아니다. 임방이 ‘그 학문은 瞿曇을 宗으로 하고 그 문장은 莊周를 근원으로 하고 있으니 대저 우리 儒家에서 따르는 六藝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베개를 세우고 졸음을 막는 수단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처럼, 이들의 인식과 수용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金履萬은 어려서부터 袁宏道의 소품문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북경에 가는 사람에게 일부러 부탁해서 전집을 구입한 후 7,8년 동안 항상 옆에 두고 눈에서 袁宏道의 책을 뗀 일이 없다고 할 정도로 원굉도의 문학에 탐닉했다. 김이만은 어려서는 <<甁史>>를 통해, 그리고 중년에는 <<名山記>>에 실려 있는 袁宏道의 遊記를 통해 그의 문학세계를 접했다고 한다. 조선후기의 소품가를 대표하는 박지원과 이덕무와 마찬가지로 <<甁史>>와 <<名山記>>가 袁宏道의 문학에 심취하는 경로가 된 것이다.
    허균이 <<한정록>>을 편하면서 「攝生」이란 편장을 따로 두고 이와는 별도로 袁宏道의 <<甁史>>와 陳繼儒의 <<書畫金湯>>을 부록 뒤에 붙인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이들에게 있어서의 接花와 藝木, 그리고 명산의 탐방은 단순한 기호가 아닌 일종의 養生法이었다. 陳繼儒는 󰡔太平淸話󰡕에서 一人獨享之樂의 예로 焚香⋅試茶⋅洗硯⋅鼓琴⋅澆花⋅對花⋅潄泉⋅支杖⋅嘗酒⋅看山⋅臨帖⋅刻竹 등을 들었는데, 이처럼 澆花와 對花, 그리고 看山을 내용으로 하는 󰡔甁史󰡕와 󰡔名山記󰡕는 養生法의 하나인 治心을 위한 지침서였던 것이다.
    徐有榘(1764-1845)의 <<林園十六志>> 「葆養志」도 朝鮮後期 小品과 養生과의 관계를 살피는 데 있어 빠뜨릴 수 없는 문헌이다. <<임원십육지>>를 저술한 서유구의 <<楓石鼓篋集>>의 각편의 끝에 이덕무와 성대중 등의 評語가 부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서유구는 이덕무의 <<蜻蛉國志>>에 서문을 쓰기도 했던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 소품문과 양생의 관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인 저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체반정을 시행하면서까지 소품문을 제재해야 할 정도로 소품문이 시대의 풍기를 이루던 바로 그 시기에 <<임원십육지>>가 저술되었고, <<林園十六志>> 역시 <<甁史>>와 <<名山記>>처럼 澆花와 對花, 그리고 看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策問에 ‘古董書畵’라는 문구를 써서 문체반정의 빌미를 제공하고 소품문에 대한 전방위적 제재를 불러일으키게 한 당사자인 남공철은 梅⋅菊⋅松⋅竹 외에 벽오동과 파초, 작약 등 수십종의 화초와 수목으로 둘러싸인 정자에서 아취로운 삶을 즐겼는데, <<임원십육지>>는 이러한 삶에 필요한 소양은 물론 양생법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 English
  • need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조선후기 소품문과 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만명소품이 道佛的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무병장수는 시대와 종교, 사상을 막론하고 인류의 보편적인 욕망이요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무병장수에 대한 바람을 집약한 것이 養生이고 이 養生에 대한 지혜와 관심이 집약되어 있는 것이 도교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소품가인 연암의 <<열하일기>>에 대해 <<莊子>>의 영향을 말한 이도 있거나와, <<莊子>>에 「養生主」라는 편장이 있다는 것 역시 고려해 볼 만하다.
    영정년간에 소품문이 시대적 풍기를 이루기 전, 일찍부터 袁宏道의 문학을 접한 허균은 그의 말년에 袁宏道 외에도 陳繼儒, 田藝衡, 凌迪知, 黃汝亨, 屠隆, 徐渭 등의 문학을 접한 바 있는데, 허균은 지금도 난치병에 속하는 소갈증으로 고생을 하였다. 허균이 󰡔閑情錄󰡕을 편찬하면서 굳이 ‘攝生’이라는 항목을 둔 것도 어쩌면 이러한 자신의 病歷 때문일지도 모른다.
    허균은 <<한정록>>을 엮은 후, 吳寧野의 <<書憲>> 袁宏道의 <<甁花史>>(원래의 書名은 <<甁史>>)와 <<觴政>>, 陳繼儒의 <<書畫金湯>> 등을 부록의 끝에 붙여두었다. 袁宏道의 <<甁史>>에는 陳繼儒가 題를 달기도 하였는데, 이 <<甁史>>는 何鏜이 지은 <<古今遊名山記>>와 함께 조선후기 소품가들이 즐겨 읽은 대표적인 晩明小品이었다.
    허균에 의해 袁宏道의 소품문이 소개된 이후 문체반정기 이전까지, 南九萬 金錫冑 任埅 趙亨期 金昌協 朴泰輔 金鎭圭 李宜顯 李夏坤 申靖夏 金履萬 南克寬 趙龜命 李麟祥 등이 袁宏道의 문학을 접했음이 이들의 시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들이 袁宏道의 문학을 접했다고는 하지만, 이들 모두가 袁宏道의 문학에 탐닉했던 것은 아니다. 임방이 ‘그 학문은 瞿曇을 宗으로 하고 그 문장은 莊周를 근원으로 하고 있으니 대저 우리 儒家에서 따르는 六藝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베개를 세우고 졸음을 막는 수단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처럼, 이들의 인식과 수용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金履萬은 어려서부터 袁宏道의 소품문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북경에 가는 사람에게 일부러 부탁해서 전집을 구입한 후 7,8년 동안 항상 옆에 두고 눈에서 袁宏道의 책을 뗀 일이 없다고 할 정도로 원굉도의 문학에 탐닉했다. 김이만은 어려서는 <<甁史>>를 통해, 그리고 중년에는 <<名山記>>에 실려 있는 袁宏道의 遊記를 통해 그의 문학세계를 접했다고 한다. 조선후기의 소품가를 대표하는 박지원과 이덕무와 마찬가지로 <<甁史>>와 <<名山記>>가 袁宏道의 문학에 심취하는 경로가 된 것이다.
    허균이 <<한정록>>을 편하면서 「攝生」이란 편장을 따로 두고 이와는 별도로 袁宏道의 <<甁史>>와 陳繼儒의 <<書畫金湯>>을 부록 뒤에 붙인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이들에게 있어서의 接花와 藝木, 그리고 명산의 탐방은 단순한 기호가 아닌 일종의 養生法이었다. 陳繼儒는 󰡔太平淸話󰡕에서 一人獨享之樂의 예로 焚香⋅試茶⋅洗硯⋅鼓琴⋅澆花⋅對花⋅潄泉⋅支杖⋅嘗酒⋅看山⋅臨帖⋅刻竹 등을 들었는데, 이처럼 澆花와 對花, 그리고 看山을 내용으로 하는 󰡔甁史󰡕와 󰡔名山記󰡕는 養生法의 하나인 治心을 위한 지침서였던 것이다.
    徐有榘(1764-1845)의 <<林園十六志>> 「葆養志」도 朝鮮後期 小品과 養生과의 관계를 살피는 데 있어 빠뜨릴 수 없는 문헌이다. <<임원십육지>>를 저술한 서유구의 <<楓石鼓篋集>>의 각편의 끝에 이덕무와 성대중 등의 評語가 부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서유구는 이덕무의 <<蜻蛉國志>>에 서문을 쓰기도 했던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 소품문과 양생의 관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인 저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체반정을 시행하면서까지 소품문을 제재해야 할 정도로 소품문이 시대의 풍기를 이루던 바로 그 시기에 <<임원십육지>>가 저술되었고, <<林園十六志>> 역시 <<甁史>>와 <<名山記>>처럼 澆花와 對花, 그리고 看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策問에 ‘古董書畵’라는 문구를 써서 문체반정의 빌미를 제공하고 소품문에 대한 전방위적 제재를 불러일으키게 한 당사자인 남공철은 梅⋅菊⋅松⋅竹 외에 벽오동과 파초, 작약 등 수십종의 화초와 수목으로 둘러싸인 정자에서 아취로운 삶을 즐겼는데, <<임원십육지>>는 이러한 삶에 필요한 소양은 물론 양생법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영정년간에 소품문이 시대적 풍기를 이루기 전, 일찍부터 袁宏道의 문학을 접한 허균과 晩明小品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蘇東坡의 문학적 세례를 받고 소품적 풍기를 띤 작품들을 많이 지은 고려후기의 이규보 묘하게도 지금도 난치병에 속하는 소갈증으로 고생을 하였다. 허균이 󰡔閑情錄󰡕을 편찬하면서 굳이 ‘攝生’이라는 항목을 둔 것도 어쩌면 이러한 자신의 病歷 때문일지도 모른다. 허균 이후 袁宏道의 문학에 심취했던 김이문과 이덕무 역시 평생 병으로 고생을 하였다. 김이문의 문집에 藥을 소재로 한 시문이 많이 있는 것과 이덕무가 많은 의서를 섭렵하고 그의 <<이목구심서>>에 治病에 관한 글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허균에 의해 袁宏道의 소품문이 소개된 이후 문체반정기 이전까지, 南九萬 金錫冑 任埅 趙亨期 金昌協 朴泰輔 金鎭圭 李宜顯 李夏坤 申靖夏 金履萬 南克寬 趙龜命 李麟祥 등이 袁宏道의 문학을 접했음은 이미 밝혀진 바 있으나, 김이문이 袁宏道의 문학에 탐닉했던 것은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다. 김이만의 생몰연대(1683-1758)를 감안할 때 이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김창협 역시 원굉도의 문집을 소장하고 있었고 그 주변 문인들이 이를 빌려본 것은 확인할 수 있지만, 임방이 ‘그 학문은 瞿曇을 宗으로 하고 그 문장은 莊周를 근원으로 하고 있으니 대저 우리 儒家에서 따르는 六藝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베개를 세우고 졸음을 막는 수단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처럼, 이들의 인식과 수용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金履萬은 어려서부터 袁宏道의 소품문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북경에 가는 사람에게 일부러 부탁해서 전집을 구입한 후 7,8년 동안 항상 옆에 두고 눈에서 袁宏道의 책을 뗀 일이 없다고 할 정도로 원굉도의 문학에 탐닉했다. 김이만은 어려서는 <<甁史>>를 통해, 그리고 중년에는 <<名山記>>에 실려 있는 袁宏道의 遊記를 통해 그의 문학세계를 접했다고 한다. 조선후기의 소품가를 대표하는 박지원과 이덕무와 마찬가지로 <<甁史>>와 <<名山記>>가 袁宏道의 문학에 심취하는 경로가 된 것이다. 본 연구결과를 토대로 <<甁史>>와 <<名山記>>, 그리고 <<林園十六志>> 「葆養志」의 인용서목 등을 통해 조선후기 소품가들의 독서편력을 살펴본다면, 이들의 문학적 변화를 역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허균이 <<한정록>>을 편하면서 「攝生」이란 편장을 따로 두고 이와는 별도로 袁宏道의 <<甁史>>와 陳繼儒의 <<書畫金湯>>을 부록 뒤에 붙인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조선후기 소품가들에게 接花와 藝木, 그리고 명산의 탐방은 단순한 기호가 아닌 일종의 養生法이었다. 陳繼儒는 󰡔太平淸話󰡕에서 一人獨享之樂의 예로 焚香⋅試茶⋅洗硯⋅鼓琴⋅澆花⋅對花⋅潄泉⋅支杖⋅嘗酒⋅看山⋅臨帖⋅刻竹 등을 들었는데, 이처럼 澆花와 對花, 그리고 看山을 내용으로 하는 <<甁史>> <<名山記>>는 養生法의 하나인 治心을 위한 지침서였던 것이다.
    <<임원십육지>>를 저술한 서유구의 <<楓石鼓篋集>>의 각편의 끝에 이덕무와 성대중 등의 評語가 부기되어 있고, 서유구가 이덕무의 <<蜻蛉國志>>에 서문을 쓰기도 했던 것을 감안할 때, <임원십육지>>가 갖는 의미도 결코 작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원십육지>>가 저술된 시기나 <<임원십육지>>의 내용이 <<甁史>>와 <<名山記>>처럼 澆花와 對花, 그리고 看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 Index terms
  • 조선후기, 소품문, 만명소품, 양생, 섭생, 병화사, 명산기, 고동서화, 임원십육지, 임원경제지, 袁宏道, 공안파, 남공철, 보양지, 허균, 이덕무, 박지원, 김이문, 장자, 열하일기, 도불적 성향, 陳繼儒, 田藝衡, 凌迪知, 黃汝亨, 屠隆, 徐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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