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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 ‘東夷’ 관련 기록과 先秦 문헌상의 ‘九黎’ 등을 통해 살핀 ‘高句麗’ 명칭의 문화적 내면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갑골문 ‘東夷’ 관련 기록과 先秦 문헌상의 ‘九黎’ 등을 통해 살핀 ‘高句麗’ 명칭의 문화적 내면 | 2007 년 | 김경일(상명대학교& #40;천안캠퍼스& #41;)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521
선정년도 2007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9년 01월 09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9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필자는 殷代 갑골문의 東尸 명칭이 후대 문헌 속에 등장하는 東夷 명칭의 기원임을 밝힌 선행 논문을 근거로 논지를 전개했다. 그 과정에서 먼저 東夷의 명칭은 단순한 하나의 종족의 명칭이 아니라 거대한 문화권을 지칭하는 統稱임을 먼저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 東夷의 명칭이 음운학적 맥락 속에서 槖離라는 가차 명칭으로도 존재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문화권 안에 아홉 개의 서로 다른 세력권이 존재했었고 이들 모두 나름의 各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들 아홉 개의 各稱들이 九夷라는 명칭으로 다시 통합해 불리고 있었으며 이들이 󰡔竹書紀年󰡕 등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 음운학적 맥락 속에서 九黎의 가차자도 사용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즉, 九夷 명칭 속의 九는 단순한 상징적 숫자가 아닌 東夷의 문화권 속에 존재했던 아홉 개의 세력권을 의미하는 문화적 숫자임을 밝혀냈다.
    논문은 또 高句麗 명칭의 핵심이 2 음절어임을 밝혀냈다. 그 첫 번째 음절은 舌根音 *k-의 성모를 지니고 있고 두 번째 음절은 *l-, 또는 *l-과 가차가 되는 성모를 지니고 있음을 분석해 냈다. 이 분석을 근거로 東夷 문화권의 다양성을 증명하는 九夷 명칭의 九가 음운학적 연관성 속에서 高夷의 高, 槀離의 槀, 句麗, 句驪의 句, 駒驪의 駒 등으로 가차되는 상황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또 東夷의 夷가 九夷의 夷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음은 물론, 九黎의 黎, 槀離의 離, 高句麗, 句麗의 麗, 高句驪, 下句驪, 駒驪, 句驪의 驪로 가차가 가능한 운모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분석 과정 속에서 논문은 高句麗의 핵심 명칭, 즉 句麗가 殷代 갑골문에 보이는 東尸, 즉 東夷에서 만들어진 九夷에 근거하고 있음을 분석했다. 바꾸어 말하면 高句麗 명칭의 기원이 殷代 갑골문의 東尸, 즉 東夷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高句麗의 기원전 37년 설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하는 셈이다. 즉, 高句麗의 문화적 출발이 漢代를 넘어 戰國 시대, 春秋, 西周를 거쳐 殷代까지 연결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제 정밀한 고증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이 논문을 작성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몇 몇 명칭들과 金文 자료들 사이에 보이는 연관 관계에 대해 좀더 조사를 해 볼 생각이다.
  • 영문
  • .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필자는 殷代 갑골문의 東尸 명칭이 후대 문헌 속에 등장하는 東夷 명칭의 기원임을 밝힌 선행 논문을 근거로 논지를 전개했다. 그 과정에서 먼저 東夷의 명칭은 단순한 하나의 종족의 명칭이 아니라 거대한 문화권을 지칭하는 統稱임을 먼저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 東夷의 명칭이 음운학적 맥락 속에서 槖離라는 가차 명칭으로도 존재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문화권 안에 아홉 개의 서로 다른 세력권이 존재했었고 이들 모두 나름의 各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들 아홉 개의 各稱들이 九夷라는 명칭으로 다시 통합해 불리고 있었으며 이들이 󰡔竹書紀年󰡕 등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 음운학적 맥락 속에서 九黎의 가차자도 사용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즉, 九夷 명칭 속의 九는 단순한 상징적 숫자가 아닌 東夷의 문화권 속에 존재했던 아홉 개의 세력권을 의미하는 문화적 숫자임을 밝혀냈다.
    논문은 또 高句麗 명칭의 핵심이 2 음절어임을 밝혀냈다. 그 첫 번째 음절은 舌根音 *k-의 성모를 지니고 있고 두 번째 음절은 *l-, 또는 *l-과 가차가 되는 성모를 지니고 있음을 분석해 냈다. 이 분석을 근거로 東夷 문화권의 다양성을 증명하는 九夷 명칭의 九가 음운학적 연관성 속에서 高夷의 高, 槀離의 槀, 句麗, 句驪의 句, 駒驪의 駒 등으로 가차되는 상황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또 東夷의 夷가 九夷의 夷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음은 물론, 九黎의 黎, 槀離의 離, 高句麗, 句麗의 麗, 高句驪, 下句驪, 駒驪, 句驪의 驪로 가차가 가능한 운모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분석 과정 속에서 논문은 高句麗의 핵심 명칭, 즉 句麗가 殷代 갑골문에 보이는 東尸, 즉 東夷에서 만들어진 九夷에 근거하고 있음을 분석했다. 바꾸어 말하면 高句麗 명칭의 기원이 殷代 갑골문의 東尸, 즉 東夷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高句麗의 기원전 37년 설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하는 셈이다. 즉, 高句麗의 문화적 출발이 漢代를 넘어 戰國 시대, 春秋, 西周를 거쳐 殷代까지 연결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셈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동북공정 논란에서의 주도권 확보
    高句麗를 둘러싼 논란은 향후 더욱 뜨겁게 한중간에 진행될 것이다. 이제까지의 高句麗 연구들의 그 문화적 상한선은 어떠한 경우에도 B.C. 5세기를 넘지 못했다. 그리고 高句麗 는 중국인들에 의해 중원의 변방에서 주변적으로 존재하던 대상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그러나 高句麗의 문화적 기원은 본 연구를 통해 B. C. 1250-1046년대까지로 끌어 올려지게 될 것이다. 또 東夷, 즉 高句麗의 기원 세력들이 중국 문화의 시원을 구축한 商 왕실과 대등한 입장에서 중원에서 영토적, 문화적 경쟁을 진행했던 사실도 확인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高句麗의 존재를 애써 축소하거나, 중원의 변방에서 뚜렷한 시작도 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진 작은 국가정도로 이름 지으려는 중국 동북공정의 의도는 심각한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연구 결과의 사회에의 환류
    사회적 의미에서 볼 때, 高句麗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단순한 역사의 한 토막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이라고 하는 거대한 존재가 내뿜는 두려움에 대한 일종의 역사적, 문화적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라고도 볼 수 있다. 때문에 동북공정의 논의에서 보듯이 그 논의는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었던 점이 있다. 하지만 高句麗를 둘러싼 토론의 내용이 보다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좀더 근원적이고 업데이트된 정보가 첨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高句麗와 관련한 거친 일반화의 오류가 수정되어야 한다. 본 연구가 제공하게 될 高句麗 명칭의 문화적 내면에 대한 학문적 분석은 학계의 토론 등을 거쳐 궁극적으로 일반 사회구성원들에게 풍부한 정보로 수렴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일반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들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게 함으로써 연구결과가 간접적으로 사회로 환원되는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 색인어
  • 甲骨文, '东尸','九夷' '九黎','高句麗',文化内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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