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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 작가들의 중국 현대문학 바라보기와 수용양상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일제강점기 한국 작가들의 중국 현대문학 바라보기와 수용양상 | 2007 년 | 이시활(경북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561
선정년도 2007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9년 05월 19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9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9세기 말 청일전쟁, 대한제국의 성립이전까지 한국인들의 인식 속에 중국은 더 이상의 설명과 해석이 필요없는 절대적인 타자로 상정되었다. 그 결과, 한국은 근대의 담론으로부터 배제된 채 일본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는 위치로 전락했으며, 한국에게 절대적인 타자였던 중국도 또한 근대의 주역에서 뒤떨어진채 서구 제국들의 식민쟁탈의 자유로운 각축장이 되는 슬픈 현실과 마주해야 되는 한국과 같은 동병상련의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전통문명의 질서에 안주했던 한국과 중국은 제국의 침탈 아래에서 탈식민과 근대를 동시에 지향하면서 근대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힘겨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런 과제의 수행과정 속에서 한중 양국에서는 현대문학이 태동되어 나왔다. 20세기 이후 한국의 현대문학의 태동과정 속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줄어들어 중국은 더 이상 절대적인 타자가 아닐뿐더러 근대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참조할 근대적 타자로도 존재하지도 않았다. 한일합방 이후에 전통시대의 중국이라는 자리에 일본이라는 매개자를 통해 수용된 서구의 문화와 문학담론이 주류를 이루면서, 우리가 배우고 따라야 할 근대적인 타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따라서 이광수, 최남선 등 한국 현대문학 형성기 작가들은 중국을 근대의 낙오자로, 일본은 근대 제국의 이미지로서 바라보았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세계문학의 지형도 속에서 중국문학은 완전히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중국은 한국에서 더 이상 세계문학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식민지라는 특수한 주변적 특징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로서 한국 현대문학의 뒤편에 감추어진 식민성의 또 다른 그늘이었다.
    일반적 한국에서 최초로 중국 현대문학을 수용한 사람으로 梁白華를 첫 번째로 들지만, 그의 대부분의 중국관계의 글과 번역들은 일본으로부터 발신된 것으로, 일본어를 번역하여 한국에 소개한 실정이다. 이는 제국 일본의 시각이지 일제강점기를 살고 있는 양백화의 주체적인 시각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그의 중국문학번역의 업적은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중국현대문학의 정신사적인 궤적을 이해하며 중국현대문학을 한국적으로 수용한 최초의 작가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초로 중국현대문학을 한국적으로 주체적으로 수용한 이로는 李東谷(北旅東谷)과 梁明을 들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새롭게 발굴한 일제강점기 한국의 지식인 이동곡과 양명의 많은 자료를 발굴하여 소개하고 분석했다는 점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 그들은 중국-일본-한국의 경로가 아니라 중국을 근대적인 타자로 설정하여 일본이라는 제국의 창에 의해 훼손되지 않고 중국-한국의 직경로로 중국현대문학을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한국현실에 적응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동곡은 이돈화와 김기전 등의 1920년대 초의 문화주의담론을 계승하여 중국신문학 운동을 주체적으로 일제강점기 한국현실에 수용시킨 인물이다. 따라서 이동곡은 중국의 신문화운동의 근대적인 가치와 정신에 시종일관 관심을 기울였던, 한국에서 실질적으로 중국의 현대문학의 정신과 가치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또한 양명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지향해야할 길이 무엇인가를 부단히 문제 삼으면서 중국의 현대적 이론을 한국적 현실에 완전히 주체적으로 융합시키고 변용하였던 최초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서구문화의 보편성에 경도되어 제국의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식민논리로 나아가지도 않았다. 그는 침략과 수탈과 전쟁 등으로 점철되고 있던 서구 근대의 모든 모순을 정확하게 인식하였고, 그 인식의 결과로 과학적인 태도로 일시에 모순을 초월하려는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진리와 근대를 지향하면서 반제반봉건 투쟁을 몸소 실천했고, 중국현대문학을 창조적으로 변용했던 인물이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한국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이중문제를 극복하려는 고민의 깊이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탈식민과 근대지향이라는 세계사적 지평의 관점에서 중국의 문학과 문화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에게 중국의 신문화 운동은 단순히 문화적인 차원의 운동이 아니라 모든 낡은 것을 변화시키는 근대적 정치사회운동, 사상변혁운동의 핵심으로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수많은 지식인들처럼 서구→일본→한국이라는 근대수용의 길을 걸었던 것이 아니라, 서구→중국→한국이라는 색다른 근대수용의 길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과거 목록 중심의 연구사에서는 이동곡과 양명이라는 가치 있는 인물과 그들의 자료는 전혀 발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중국현대문학과 관련 있는 이육사나 노자영 등의 가치 있는 글을 발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 영문
  • This article attempts to excavate Korean literary works influenced by modern Chinese literatur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based on which it also analyzes the ways in which Korean writers and intellectuals received, perceived and transformed modern Chinese literature. Research findings in this article are to be summarized as follow.
    Firstly, writers such as Guangsoo Yi and Nanson Choi, who lived during the nascent period of modern Korean literature, approached China in the image of a looser and Japan in the image of an empire. Thus, they completely excluded Chinese literature from the world literature since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This was a dark side of modern Korean literature as a result of Korea’s marginality in the colonial age.
    Secondly, Baekhwa Yang is generally regarded a first writer that received modern Chinese literature; but most of his works and translations related to China were from Japan since he introduced them to Korea by translating Japanese. Consequently, the perspective that Yang applied in approaching Chinese literature was not his own but Japanese during the colonial age. Although Yang’s contribution to the translation of modern Chinese literature needs to be fairly appreciated, one may not arguably say that he was the first writer who received Chinese literature based on a proper understanding of the trajectory of China’s intellectual history.
    Thirdly, Dong-gog Yi and Myung Yang are the critics who for the first time accepted Chinese modern literature into Korea on their own perspective. This study has a considerable significance in excavating, introducing and analyzing the large amount of their works. Dong-gog Yi had deep interest in the value and spirit of the Chinese New Cultural Movement, and was the first critic in Korea who accepted the value and spirit of modern Chinese literature in its full measure. Myung Yang was pursued ceaselessly in what direction Korean should lead their lives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and for the first time accepted and blended Chinese modern theory with Korean reality. This was consequential of their struggles to overcome the dual problem of particularity and universality that Korea confronted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us they approached Chinese culture and literature in terms of the world historical conjuncture of decolonization and yearnings for modernity. They did not follow the trajectory of the reception of modernity via Japan as many Korean intellectuals did but groped for a way to receive it via China.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일제 강점기 시기를 바탕으로 중국 현대문학을 소개하고 연구 자료를 발굴조사하며, 그것을 기초로 삼아 한국 지식인과 작가들의 중국 현대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특징과 수용양상 및 정신사적 측면에서의 변용양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전체적으로 일제 강점기 시기에 탈식민과 근대 지향이라는 이중적 과제를 동시적으로 실현하려고 노력한 한국 지식인과 작가들로는 실제적으로 중국신문학운동을 최초로 소개하고 한국에 사상혁명을 추동하려고 힘쓴 李東谷(北旅東谷), 중국현대문학을 수용하여 한국적 현실에 맞춰 재창조하려고 노력한 梁明, 한국과 중국의 동아시아적인 정서적 연대의식으로 소설을 창작하고 중국현대문학을 소개했던 金光洲, 식민지 현실의 극복과 개성의 해방과 휴머니즘의 실현을 위해 魯迅과 徐志摩, 심지어는 중국의 친일문학가로 대표되는 古丁의 소설까지 망라하여 중국현대문학을 주체적으로 수용한 李陸史 등이 있다. 이 지점에서 이육사가 친일문학가인 꾸띵의 소설을 번역하고 있었다는 데 고려해볼 만한 중요한 점이 있다. 친일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문학의 관점에서 이육사가 꾸띵의 소설을 보았던 것으로 사료된다. 또 개성과 자유의 발견이라는 근대적인 기획하에서 개인적인 섬세한 감수성으로 무장하여 근대적인 감각으로 중국현대문학을 수용하고 한국적으로 변용했던 盧子泳이 손꼽힐 수 있다. 특히 노자영이 발행한 <<신인문학>>에서는 중국현대문학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고, 또 그의 시집에는 중국현대시를 그대로 번역하여 자신의 시로 탈바꿈 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한편 일반적 한국에서 최초로 중국 현대문학을 수용한 사람으로 1910년대 <슬픈 모순>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여 비판적 리얼리즘 문학의 출발을 알린 梁白華를 첫 번째로 든다. 하지만 양백화의 대부분의 중국관계의 글과 번역들은 일본으로부터 발신된 것으로, 일본어를 번역하여 한국에 소개한 실정이다. 이는 제국 일본의 시각이지 일제강점기를 살고 있는 양백화의 주체적인 시각이 아닌 것이다. 양백화가 1920년대 1930년대 중국문학을 현대적으로 번역한 최초의 문학자라고 평가받고 있지만, 그에게는 번역의 원칙마저도 모호하다. 그의 중국문학번역의 업적은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중국현대문학의 정신사적인 궤적을 이해하며 중국문학을 한국적으로 수용한 작가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초로 중국현대문학을 한국적으로 주체적으로 수용한 이로는 李東谷(北旅東谷)과 梁明을 들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새롭게 발굴한 일제강점기 한국의 지식인 이동곡과 양명의 많은 자료를 발굴하여 소개하고 분석했다는 점에 커다란 의의가 있겠다. 그들은 중국에 대해 한국의 전통적인 사대주의적 관점도 배격해야 할 것이며, ‘동아시아의 병자’라고 인식하는 근대 제국들이 경모적(輕侮的)인 중국관에 부화뇌동치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일제강점기 한국 지식인들이 견지하였던 제국의 시선마저도 배격하면서, 한국인들의 대중국관에 대해서 주체적이고 세계사적인 관점으로의 인식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아무런 관점도 없이 중국에 무의식한 일제강점기의 한국 지식인의 현실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탈식민과 근대지향이라는 세계사적 지평의 관점에서 중국의 문학과 문화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에게 중국의 신문화 운동은 단순히 문화적인 차원의 운동이 아니라 모든 낡은 것을 변화시키는 근대적 정치사회운동, 사상변혁운동의 핵심으로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수많은 지식인들처럼 서구→일본→한국이라는 근대수용의 길을 걸었던 것이 아니라, 서구→중국→한국이라는 색다른 근대수용의 길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과거 목록 중심의 연구사에서는 이동곡과 양명이라는 가치 있는 인물과 그들의 자료는 전혀 발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육사나 노자영의 중국현대문학과 관련 있는 가치 있는 글을 발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그들의 의식과 내면의 욕망을 탐구하면서 잊혀지고 사라져 간 인물을 다시 발굴하여 가치평가를 하였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의의가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의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을 중요한 몇 가지 점에서 요약해서 제시하고자 한다. 1)이광수나 최남선 등 한국의 현대문학의 초창기 작가들은 중국을 근대의 낙오자로, 일본은 근대 제국의 이미지로서 바라보았다. 이는 식민지라는 특수한 주변적 특징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로서 한국 현대문학의 뒤편에 감추어진 식민성의 또 다른 그늘이었다. 2)일반적 한국에서 최초로 중국 현대문학을 수용한 사람으로 梁白華를 첫 번째로 들지만, 그의 대부분의 중국관계의 글과 번역들은 일본으로부터 발신된 것으로, 일본어를 번역하여 한국에 소개한 실정이다. 이는 제국 일본의 시각이지 일제강점기를 살고 있는 양백화의 주체적인 시각이 아닌 것이 판명되었다. 3)중국-일본-한국의 경로가 아니라 중국을 근대적인 타자로 설정하여 일본이라는 제국의 창에 의해 훼손되지 않고 중국-한국의 직경로로 중국현대문학을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한국현실에 적응시키려고 노력한 북려동곡(이동곡)과 양명을 본 연구에서는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동곡은 천도교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이돈화와 김기전 등의 1920년대 초의 문화주의담론을 수용하여 중국신문학 운동을 주체적으로 일제강점기 한국현실에 수용시킨 인물이다. 따라서 이동곡은 중국의 신문화운동의 근대적인 가치와 정신에 시종일관 관심을 기울였던, 한국에서 실질적으로 중국의 현대문학의 정신과 가치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또한 양명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지향해야할 길이 무엇인가를 부단히 문제 삼으면서 중국의 현대적 이론을 한국적 현실에 완전히 주체적으로 융합시키고 변용하였던 최초의 인물인 셈이다. 해외문학파 등과 같이 한국의 서구문학 수용자들이 전면적으로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서구문화의 보편성에 경도되어 제국의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식민논리로 나아갔던 것에 비해, 양명은 서구근대의 보편성에 함몰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에게 중국의 신문화 운동은 단순히 문화적인 차원의 운동이 아니라 모든 낡은 것을 변화시키는 근대적 정치사회운동, 사상변혁운동의 핵심으로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수많은 지식인들처럼 서구→일본→한국이라는 근대수용의 길을 걸었던 것이 아니라, 서구→중국→한국이라는 색다른 근대수용의 길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기대할 수 있는 활용방안을 몇가지 소개해보자. 첫째, 자료의 상세한 읽기를 통해 일제 강점기 국내 중국 근현대문학 연구자료를 발굴하여 소개하여 중국현대문학 연구사 뿐만 아니라 국문학계나 역사학계에 새로운 연구를 위한 하나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연구사에 대한 보충과 새로운 점검은 앞으로의 학문 발전에 이정표를 마련하는 일이며, 과거,현재,미래의 학문 조감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총체적인 학적 전망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제 강점기 지성사에서 폭압과 굴종을 극복하고 인간의 독립과 자존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던 학문 실천의 보편적이고 주체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므로 이 연구 과제는 궁극적으로 학문의 존재 의미를 다시 한 번 반추,성찰하게 하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 중국현대문학 연구의 현실적 의의를 높일 수 있다. 한국학자가 중국문학을 연구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한국문학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중국문학을 연구하는 일이 중국에서 진행되는 문학적 고민을 무비판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연구 과제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하여 당시 연구자 및 소개자들에 대한 개별 연구와 비교 연구도 활발하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며, 반대로 중국 근현대문학에 수용된 한국 근현대문학 작가 및 작품에 대한 연구도 자극하고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3) 한국 근현대문학의 발생이 현재 주로 일본 문학과 서구 문학과의 관련 하에서만 논의되는 기존의 연구 편향에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장차 탐색 경로의 다양성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한국 근대의 수용경로도 서구-일본-한국 뿐만아니라 서구-중국-한국의 근대의 수용경로도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다. 4) 북려동곡(北旅東谷)과 양명(梁明)을 필두로 한국 현대사에서 잊혀진 인물에 대한 발굴과 정확한 문학사적인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한국현대사의 철두철미한 복구와 재조명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살아있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역사적 책무의 하나인 것이다.
  • 색인어
  • 일제강점기, 중국신문학, 중국현대문학, 수용양상, 변용양상, 북려동곡(北旅東谷), 이동곡(李東谷), 동곡(東谷), 양명(梁明), 양백화(梁白華), 이육사(李陸史), 노자영(盧子泳), 이광수(李光洙), 최남선(崔南善), 이돈화(李敦化), 김기전(金起田), 김광주(金光洲), 신문화운동, 신인문학, 개조운동, 근대의 수용경로, 루쉰(魯迅), 후쓰(胡適), 천두슈(陳獨秀), 혁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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