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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9435&local_id=10022659
에도시대 말기 일본 대중문화 속의 호랑이 사냥 연구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에도시대 말기 일본 대중문화 속의 호랑이 사냥 연구 | 2009 Year | 최경국(명지대학교(서울캠퍼스))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590
Year(selected) 2009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11년 04월 27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11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일본은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았다. 그러나 임진왜란(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을 통해서 직접으로 한반도에서 호랑이를 접한 무장들이 많이 생겨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Toyotomi Hideyoshi)는 일본무장들에게 호랑이 고기를 보내도록 명령한다.

    그런데 일본 무장의 호랑이 사냥 이야기는 임진왜란 후 백여년 동안 일본 문예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던 호랑이 사냥 기사가 18세기부터 갑자기 기록되기 시작하여 막부 말기에 이르면 여러 기록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39년의『常山紀談(Josankidan)』에는 가토 기요마사(Kato Kiyomasa)의 호랑이 퇴치담이 수록되어 있다.

    가토 기요마사의 호랑이 퇴치담은 이 기록이 처음이다. 그런데 도쿠가와시대(The Era of Tokukawa) 말기로 가면 이 이야기가 크게 유행한다. 많은 우키요에에서도 그려졌다. 예를 들면 우타가와 구니요시(Utagawa Kuniyoshi)의「和藤内虎狩之図(Tiger Hunting of Watonai)」는『国性爺合戦(The War of Kokusebya)』의 주인공 와토나이의 이름을 빌었지만 그림을 보면 여러 가지 요소로서 기요마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쿠가와시대에는 막부의 검열 때문에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무사를 직접 그릴 수 없었기 때문에 이름은 다른 이름을 썼지만 그림으로 알아볼 수 있게 그렸다. 구니요시의 그림책『和漢英雄画伝(The Heros Illustration of China and Japan)』에는 가토 기요마사의 실명을 써서 호랑이 퇴치 공적을 기리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위와 같은 일본인에게 있어서 호랑이 사냥의 의미를 살펴보고 특히 도쿠가와시대 말기부터 다수 생산되는 호랑이 사냥 이야기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가토 기요마사의 경우는 도쿠가와시대 말기에서 명치시대 초기에 집중적으로 많은 우키요에(Ukiyoe)와 그림책(Ehon)에 그려졌다.

    기요마사의 한반도 침략을 상징하는 호랑이 사냥이 이 시기에 확대 재생산되는 일은 일본의 내셔널리즘 고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 내셔널리즘의 표상으로서의 호랑이 사냥에 대한 연구는 당시 일본인의 대외인식(특히 조선)을 살펴볼 수 있다.
  • English
  • There were no tigers in Japan. However, through the Japanese Invasion of Chosun in 1592, a lot of Japanese samurai saw tigers in the Korean peninsula for the first time directly. Toyotomi Hideyoshi ordered his samurai to "Bring the tiger`s meat". However, the story of the samurai`s tiger hunting hasn’t appeared in Japanese art or literature. Afterwards, in the 18th century, tiger hunting articles were written suddenly. In 1793, the story of Kato Kiyomasa, who repelled a tiger, was written in Josankidan. This is the first case which was written about Kato Kiyomasa`s hunting in the end of the Tokukawa era. At the time, this story was vogue and many Ukiyoe were drawn in Edo. For example, the tiger hunting of Watonai was written by Utagawa Kuniyoshi. He borrowed the name from the main hero of the War of Kokusebya, whose name is "Watonai." This fact can be found if one were to see the picture made by Kiyomasa. This picture includes much information. Because of inspection by the officials at the end of the Tokukawa era, it was impossible to draw a historical samurai`s picture along with his name, so the Japanese painter drew a historical samurai`s picture with a virtual name. In The Hero`s Illustration of China and Japan, it uses Kato Kiyomasa`s real name and praises his achievements about tiger hunting. In this study, I`ll talk about the meaning of tiger hunting to the Japanese—especially at the end of the Tokukawa era, which produced many stories about tiger hunting. One of these stories is about Kato Kiyomasa, from the end of the Tokukawa era to the early years of the Meiji era and many Ukiyoe and Ehon were depicted in them. The tiger hunting, which symbolized the Japanese Invasion, were drawn a lot in this era. This was meant to enhance Japanese Nationalism. As the symbol of Japanese Nationalism, the study of tiger hunting could gain Japanese recognition from foreign countries at the time—especially Chosun.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도쿠가와시대로 접어들면 바로 전 시대에 임진왜란을 겪으므로 해서 직접적으로 한반도에서 호랑이를 접한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자신의 몸보신을 위해 호랑이 고기를 원했던 듯하다. 그런데 임진왜란 후 백여년 동안 일본 문예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던 호랑이 사냥 기사가 18세기부터 갑자기 기록되기 시작하여 막부 말기에 이르면 여러 기록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을 일본의 문학작품, 우키요에 등 대중문화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羅山文集』(1662)에서는 구로다 나가마사(黒田長政)가 조선에서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 1734년『窓の須佐美追加』에는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의 부하가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1739년의『常山紀談』에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의 호랑이 퇴치담이 수록되어 있다.
    가토 기요마사의 호랑이 퇴치담은 이 기록이 처음이다. 그런데 도쿠가와시대 말기로 가면 이 이야기가 크게 유행한다. 많은 우키요에에서도 그려졌다. 예를 들면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国芳, 1799~1861)의「和藤内虎狩之図」는『国性爺合戦』의 주인공 와토나이의 이름을 빌었지만 그림을 보면 여러 가지 요소로서 기요마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쿠가와시대에는 막부의 검열 때문에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무사를 직접 그릴 수 없었기 때문에 이름은 다른 이름을 썼지만 그림으로 알아볼 수 있게 그렸다. 구니요시의 그림책『和漢英雄画伝』에는 가토 기요마사의 실명을 써서 호랑이 퇴치 공적을 기리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위와 같은 일본인에게 있어서 호랑이 사냥의 의미를 살펴보고 특히 도쿠가와시대 말기부터 다수 생산되는 호랑이 사냥 이야기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의 경우는 도쿠가와시대 말기에서 명치시대 초기에 집중적으로 많은 우키요에와 그림책(絵本)에 그려졌다.
    기요마사의 한반도 침략을 상징하는 호랑이 사냥이 이 시기에 확대 재생산되는 일은 일본의 내셔널리즘 고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 내셔널리즘의 표상으로서의 호랑이 사냥에 대한 연구는 당시 일본인의 대외인식(특히 조선)을 살펴볼 수 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일본에서의 호랑이는 단순한 동물 호랑이가 아니라 한반도나 한국인을 상징한다. 임진왜란을 통해서 한반도에서 호랑이 사냥을 한 무사들이 많이 있었으나 그들이 전부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일부는 영지 안에서만 무용담으로서 전해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토 기요마사는 에도시대 말기에 호랑이를 퇴치한 인물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 후 오랫동안 영웅이 아니었다. 에도시대 내셔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 국학의 융성과 함께 가토 기요마사가 영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도쿠가와막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토 기요마사의 영웅화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족을 멸망시킨 도쿠가와씨로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토 기요마사를 영웅시하는 움직임은 에도시대 1739년의『常山紀談』에서 처음 시작된다. 그러나 1841년 덴포(天保) 개혁의 철퇴를 맞게 된다. 하지만 이에 의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실명을 쓰지 못하지만 다른 역사적 인물로 가장하면서 수면 하에서 가토 기요마사의 영웅화가 계속되게 된다.
    본 연구는 역사의 필요성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영웅의 허구를 가토 기요마사를 통해서 추적해 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내셔널리즘이 만들어내는 허상을 연구한다.
    본 연구에 의해 얻어진 성과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등재학술지인 한국외대 일본연구소의 [일본연구] (제48호 2011년 6월 30일 발간예정)에 게재할 예정이다.
  • Index terms
  • 호랑이 사냥, 가토 기요마사, 임진왜란, 도쿠가와시대, 대외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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