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이 개작과정에서 고심을 한 흔적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첫째, 연재본에서의 막연한 인물 묘사가 단행본에서는 인물에 대한 구체적 서술을 덧붙이거나, 외모에 대한 묘사와 행동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매우 구체적이고도 개성적인 인물 ...
박태원이 개작과정에서 고심을 한 흔적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첫째, 연재본에서의 막연한 인물 묘사가 단행본에서는 인물에 대한 구체적 서술을 덧붙이거나, 외모에 대한 묘사와 행동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매우 구체적이고도 개성적인 인물로 그려내기 위해 애쓴 것을 볼 수 있다. 대낮에 아이를 업고 나타나 빨래터 여인들의 수다 대상이 되었던 인물의 경우 연재본에서는 동저고리 차림의 사나이로만 등장하지만, 단행본에서는 매부의 도움으로 장난감 장사도 해 봤지만 벌어먹기는커녕 장사 밑천까지 다 까먹어버렸다는 여인들의 빈정거림을 통해 이 사나이에 대한 구체적 서술을 해 줌으로써 그가 얼마나 무능력한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둘째, 시간이나 돈 등 숫자로 표현되는 부분에 대한 수정과 고유명사의 활용을 통해 매우 작품의 ‘사실성’을 고취시키기 위한 노력이 상당하게 기울어졌음을 알 수 있다. 민주사가 부회의원 선거비용으로 융통하려고 생각하는 돈의 액수를 연재본의 ‘이삼천 원’에서 단행본의 ‘이천 원’으로,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경대의 가격표에 붙어 있는 25원을 35원으로 바꾸는 등 소설 속의 이야기를 보다 현실성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볼 수 있다. 셋째, 장과 절의 구분을 연재본과 단행본에서 많이 고쳐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한설야의 『청춘기』의 경우 연재본과 북한에서의 개작 판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어휘의 변화는 무려 1,800여 곳 이상 이루어지고 있으며, 문장 표현의 경우에도 200 여 곳 정도에서 구와 절 및 문장을 수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3)수정, 보충, 부가, 삭제 등을 통한 내용에서의 변화가 이루어진 곳도 약 500여 군데 이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작품 전체의 성격이나 주제가 완전히 변화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작품의 성격과 주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실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연재본에서의 단순한 표현이나 상황 설정을 북한에서의 개작에서는 사회주의적 사상의 기원을 확립하려는 쪽으로 설정하고자 한 것을 볼 수 있다. ‘은희’의 가계를 의병과 민족주의적 지식인의 후손으로 새롭게 설정하고 있는 점이나 ‘태호’의 학생운동 경력을 추가한 점 등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둘째, 연재본에서 일본식 지명이나 일본어로 표현된 부분을 완전히 없애고 모두 한글 식으로 바꾸어 놓은 점 및 3인칭 대명사 ‘그’를 구체적 이름으로 모두 바꾸어 놓은 점도 북한 식의 우리식 사회주의와 관계 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 장과 절의 구분 새로운 장의 추가와 제목 변경을 통해서도 사회주의적 성격의 강화라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청춘기』의 경우 단순한 어휘의 변화는 물론이고 문장의 수정, 장·절의 구성 변화 등 내용적 측면에서도 상당한 개작을 통해 ‘사상성의 강화’라는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판본 대조를 통한 이러한 연구는 궁극적으로 작가의 사상적 변화 혹은 사상성의 강조가 작품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직접적 증거라 할 수 있다.
판본대조를 통한 이러한 연구 방법은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이루어져 왔던 한국문학의 연구 현황을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시장의 논리에 휘말려 텍스트를 배제하거나 텍스트를 왜곡한 결과 변질된 판본을 텍스트로 삼아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왜곡된 이데올로기 비평으로 흐르기 쉽다. 그런데도 연구 대상의 판본에 대한 명확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며, 심지어는 개작 여부에 관한 검토조차 행하지 않기 다반사다. 일차 자료의 신뢰성이야말로 모든 연구의 근본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런 상태에서 심도 있고 풍부한 연구가 이루어질 리 없다. 한설야, 박태원의 경우 상당히 많은 연구 논문이 나와 있지만, 본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이유는 이들 작가들의 작품을 근본적인 지점에서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또 본 연구는 한국문학 연구라는 분과를 넘어서서 한국어학, 문헌정보학 등 근대 한국사회를 대상으로 삼는 인문사회 과학의 제 분야와 긴밀한 연계를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텍스트에 나타난 어휘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은 현대 한국어를 보존하고 갱신하는 데 보탬이 된다. 어휘 연구는 문화적 층위에서 당시의 문화적 형성과 담론 양상, 문화적 영향 관계 등을 들여다보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 틀림없다. 특히 사어(死語), 유행어, 외래어, 방언, 전문용어와 같은 특수 어휘에 관한 연구는 문화연구 전반에 걸쳐 중요한 기초 자료 및 참고 자료를 제공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