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의 근대성이라는 주제어와 식민지시대의 사회문화적 변동의 양상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 그리고 대중적 학술 출판계에서 당연시 되는 분야이자 개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는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의 패러다임 전환에 해당하는 ...
오늘날 한국의 근대성이라는 주제어와 식민지시대의 사회문화적 변동의 양상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 그리고 대중적 학술 출판계에서 당연시 되는 분야이자 개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는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의 패러다임 전환에 해당하는 사건이자, 그 전환의 시점이 얼마 지나지 않은 최근의 사건이다. 전환의 계기와 계보 그리고 현황은 별로 점검되지 않았으며, 더욱이 근대성 개념의 재구성을 둘러싼 이론적 사유의 공유점과 차이점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 연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전반에서 중심적인 경향으로 자리 잡은 사회문화적 근대성 연구와 근대성 개념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대안적 근대성 개념의 이론화 시도를 목적으로 하였다. 나아가 한국의 사회 문화 연구 분야에서 일어난 근대성 패러다임의 전환과 그 이후의 연구 흐름을 계보학적으로 재인식하고, 그것이 글로벌한 근대성 담론 및 지식과 맺는 상호관계성을 포착하는 메타이론적 분석으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한국의 주요 문화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제기하고 그것을 실제 연구로 구체화한 일세대 학자들과 또다른 주요 행위자인 관련 출판사를 인터뷰하여 지적 biography와 계보를 그리고자 했다.
한국 사회 문화연구 분야에서 근대성 연구 패러다임 부상의 계기는 크게 세가지이다. ①1980년대 중반 인류학계와 영문학계에서 소개된 바 있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이 1990년대 들어 사회이론으로서 새롭게 주목되기 시작했다. 이 때 ‘탈식민지’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조한혜정 교수의 일련의 작업이 대학사회에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 ② 근대성 개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식민지성에 대한 관심의 대두이다. 1997년 경 경제사/역사학계에서 벌어진 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 논쟁이 잦아들 무렵, 근대, 현대 개념의 외생성과 식민지적 효과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고, 근대성을 좋고 나쁨을 미리 가정할 수 없는 가치중립적인 용어로 사용하자는 대안이 제시되었으며, 민족주의적 역사학을 비판하고 식민지에서의 코스모폴리탄적 근대성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colonial modernity론과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지의 규율권력에 의해 내면화된 근대적 주체에 주목하면서 식민지근대의 특이성을 비판적으로 인식한 식민지 근대성론도 제기되었다. 반면 식민성 개념을 회의적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하였지만, 이러한 비판은 상호교섭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③ 한국여성학계에서 축적해온 이론적 문제제기와 방법론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구체적인 연구로 이어지게 하는 데 있어 보이지 않는 선행연구의 역할을 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계기로 만들어진, 민족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한 해체적 인식, 구술생애사, 인터뷰면접, 주요연구 영영역으로서 소비와 일상생활의 문제 등 여성학이 제도권 학계의 주변에서 수행했던 연구방법과 연구대상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론적 변환의 흐름이 한번 형성되면서, 문화적 근대성의 구체상을 포착하는 연구들이 바야흐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국 근대성의 구체상을 다루게 된 이러한 연구들은 사료범위를 폭발적으로 확대시키고, 새로운 주제들을 발굴하였다. 문학/사상 정전에서 (대중적) ‘읽을거리’로(‘취미기사’, 광고, 독자란 등), 문자텍스트만 아니라 비문자텍스트로 (영화, 만문만화, 포스터, 사진엽서, 유성기 음반, ‘신민요’, 구술 등), 또한 텍스트만이 아니라 행위로(‘초기영화수용’, ‘독서’ 등) 사료가 확대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주체범주들이 등장하고 그것의 위치가 재배치되기 시작했다. 계급, 정당, 노조를 중심으로 한 역사서술에서 ‘신여성’, ‘청년’, ‘어린이’, ‘개인’(연애) 같은 범주들이 새롭게 떠올랐고, 국가, 민족 범주가 상대화되었다.
연구주제와 연구방법에 있어서 텍스트중심을 넘어서서 장과 제도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문화적인 것의 영역 또는 구획으로서 장(field)( ‘문학장’, ‘담론장’)이라든가, ‘검열체제’(기구, 과정, 행위자의 결합 또는 텍스트검사, 행정처분, 사법처분의 결합)와 같은 체제라는 키워드가 부상하였다. 또한 식민지공공성 처럼, 합리성과 폭압성, 지배와 정치의 공존을 개념화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그 외 담론과 재현, 미디어 경험과 미디어 수용의 행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 대신 협력, 내선일체의 복합적 정체성을 포착하고 있다. 또한 공식적 역사기술에서 배제/억압/무시된 경험들(서브알터니티)를 재구성하기 위해 기억과 구술에 대한 관심도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