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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반 미국의 운하 건설: 강물의 통제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19세기 초반 미국의 운하 건설: 강물의 통제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 | 2008 년 | 양재열(영남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111
선정년도 2008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0년 02월 22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0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미국의 운하 건설 특히 19세기 초반-1840년대-의 강과 물을 통제하려는 미국인들의 노력과 정부의 입장을 역사적으로 추적하고, 연방의회의 의원들의 노력과 이해관계를 검토하며, 이러한 연구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함의를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사에서 19세기 초반은 교통혁명이 일어나던 시기로 산업혁명으로 인한 확대된 물동량과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운하가 건설된다. 운하를 건설하려는 이유는 기술적으로 다른 어떤 교통망개량에 대한 방법보다 경험이 많았다는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인류는 운하를 건설하려고 노력했고, 강물을 다스리려고 했다. 미국에서도 18세기부터 부분적인 운하건설노력이 있어서 건설하는데 그다지 저항감이 덜했다.
    필자가 19세기 초반의 미국의 운하를 연구하는 목적은 2010년 한국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재작년 출범한 실용정부의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인 4대강 치수사업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제 4대강 사업으로 대운하 사업은 수그러진 감이 없지 않지만 언젠가는 다시 논의될 것이다. 현재 국가 각계각층의 반대로 정부는 운하 건설의 의지를 포기하였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과거의 논의를 보면서, 미국사에서 운하의 역사가 정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의는 대체로 두 가지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첫 번째는 찬반 양측에서 인용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라는 것이 시간성을 배제하고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운하가 성공적이었고 실패작이었는지에 대한 단순한 비교보다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온 운하들인지 우선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학계나 정계의 논의는 그렇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
    두 번째 문제는 선진국 특히 미국의 특성을 무시하고 운하를 비교하는 일반화의 경향이다. 대운하 반대나 찬성 양쪽 모두가 같은 국가의 운하 건설 사례를 언급하고 있지만,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같은 운하의 예가 한쪽에서는 성공사례로 다른 편에서는 실패사례로 이용되는 실정이다. 이는 이제까지 외국의 선례들이 제대로 역사화 되지 않았던 탓에 목적에 따라 아무렇게나 이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미 수세기 전부터 건설되고 이용되어 온 미국의 사례들을 장기적 역사적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비교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 기반 위에서야 한반도 대운하의 기술적 경제적 환경적 영향에 대한 논의가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운하는 흥미있는 주제인데, 그것은 미국사에서 산업혁명 특히 교통혁명에 운하가 미친 영향이라든가 운하의 전성시대라고 알려진 19세기 초반 교통로의 발달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다루어진다는 점에서이다. 하지만 그 이외의 경우에는 운하가 별로 언급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19세기 중반 이후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주요 운송 및 교통로로 이용되지 않게 된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21세기를 여는 오늘날 운하의 건설이라는 주제는 조금 엉뚱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역사적 함의를 생각한다면 연구자들이 논의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 마땅하다. 각 지역의 특수한 배경이 어떠한 상호 역학관계를 형성하면서 운하를 건설했는지 그 역사를 분석할 것이다. 운하가 건설되는 곳에서는 산업혁명과 도시의 발전이 이루어지나 배제된 곳에는 낙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북서부의 여러 운하가 어떤 정치적 논의와 지역관계, 당론, 그리고 지방주의에 따라 만들어지는 가를 알아본다. 이를 통해 이 연구는 미국의 운하 건설의 배경과 이념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유효성 논의에도 기여할 거시적 안목을 제시하고자 한다.

  • 영문
  •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West and Nothern canals in United states in 1840 .
    Especially It may focused on American Government's position to construction of Canals. This Study is compare and prepare of Korean Great Canal. In American History, 19th Century was constructed canals-it may call Canal Era- transportation increased and overpassed trades. Over thousand Years, Human Beings tried to constructed canals and controled rivers and harbors. A Goal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4 rivers improvements now being carry out by Republic of Korean Central Government. Most of all to grasp a dimension of canals, one must consider waterways that constructed and operated 100 years ago.
    They used their governments and organised companies to build a canal network. These canals depended upon the will of the electorate and the political powers. political leaders often tied their fortunes to canals. In United States Congress, Congress men and Senate voted canal bills. The Voting Behavior in 29th Congress were not only parties opinion but sectionalism and regionalism. Regionlism is most important factor in voting Behavior and Congressional min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1840년대 미국의 운하 건설을 둘러싼 문제는 크게 경제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로 나누어 질 수 있다. 정치 문제는 주로 헌법 해석과 주와 연방의 역학관계 그리고 파벌의 이해관계였다. 통상적인 해석은 휘그당은 운하 개발을 지지하고 민주당은 반대한다는 것이다. 한편 수정주의 학자들은 북부와 서부는 찬성하고 남부는 반대라는 주장을 하였다. 경제적 문제는 19세기 초·중반의 산업혁명에서 나타나는 교통혁명의 한 과정이었다. 교통혁명이 유로도로와 운하, 철도건설을 둘러싼 투기의 과정이자, 운하 건설과정의 토목건축 기술발전과 기업가의 토대가 된다는 점이다.
    운하 건설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다른 점은 별로 없다. 다만 영국이 50여년 앞서 수 십 여개의 운하를 건설하였고, 이에 영향을 받은 미국이 운하를 건설하였던 것이다. 철도와 마찬가지이지만 운하도 수익률이 저하(투자자들이 수익률 저하와 수송비의 경제성)되면, 점차 그 가치를 잃게 된다. 1840년대 미국에서 운하 건설을 두고 벌어진 쟁점과 법안을 둘러싼 투표행태는 당론도 아니고 지역도 아닌 지방주의 성향이다. 모든 법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운하건설 법안은 이런 성향이 강하다. 즉 당론도 지역주의도 아닌 지방주의인 것이다.
    지방주의 혹은 지역이기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19세기 중반의 미국 정치풍토를 알아야 된다. 당시는 소위 ‘정치국가’ 시대로서 정치가 모든 것을 지배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때이다. 또한 에이브래험 링컨이 대통령이 되어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를 만들 때까지 대통령은 그다지 강한 권력을 갖지 못했다. 연방의회의 정치권의 주도력은 각 지역 출신의 거물들이 지배했는데. 이들은 주로 상원의원이었다. 그러나 연방의회 상원의원들도 주의회 의원들이 선거를 통해서 뽑았다. 당연히 연방의회 의원들은 주의회 의원들의 눈치를 보고 그 지침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주의회의 힘이 강력했고, 결국 연방의회에서의 투표는 주의회의 지침을 따르고 주의회는 주의 선거구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졌다. 결국 1840년대의 미국의 정치는 주의회가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으며, 주권(州權)이 강력했던 것이다.
    이렇다면 운하건설을 둘러싼 연방의회의 투표는 각주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했고, 주의 이해관계와 주의회 의원들의 선거구와의 관계가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사실 연방의회에서 벌어진 투표는 의원들의 찬반과 다른 정치적 역학관계를 고려해야만 한다. 북부나 서부에서 건설될 운한법안은 대부분 이런 이해관계에 놓여있었다. 주의 정치가들이 선거구민에게 잘 보이려고 여러 운하를 나누어 건설하게 되고, 별고 중요하지 않은 곳도 건설이 되기도 한다. 몇 개를 제외하고는 현재 미국의 운하는 거의 용도폐기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공원으로 조성되거나 수로로 쓰여지면서 제대로 사용하는 몇 개 없다. 수 백 개의 운하가 만들어졌지만, 경제적인 용도가 없어서 사용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당시 운하 건설은 기업인들의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만든 회사와 보조금을 준 정부가 만든 합작회사에서 주도하였다. 합작회사에 보조금을 주기위해 연방의회 의원들이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켰다. 또한 운하로 인한 직간접의 경제적 이익을 기대한 선거구민의 바람이기도 하였다. 투표결과를 보면, 연방의회 의원들 중에 보다 북부에 위치하고 노예제를 반대한 서부 출신은 운하법안에 찬성했지만, 남부에 가까운 소위 ‘접경주’ 출신은 거의 반대하였다. 한편 북부 출신 의원들도 투표에 모두 찬성한 것도 아니고, 운하가 놓이는 선거구 의원들은 찬성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반대했다. 결국 연방의회 의원들의 의사당 안팎의 발언이나 연설에서도 그렇지만 운하개발법안에 나타난 의원들의 정치적인 입장은 당론도 아니고 지역주의도 아닌 지방주의 속성이 강한 것이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연구는 한국에서 진행된 운하 연구 가운데 미국에 대한 최초의 인문학적 탐구로서, 관련 연구가 척박한 현재의 학계에 이용 가능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운하 관련 교육 컨텐츠로서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활용가능 할 것이다. 나아가, 미국 운하의 연구는 우리나라 운하 건설의 논의에도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는 인문학으로서 현실 사회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공공성에 바탕을 둔 학문의 성과로 기억될 것이다. 미국 학계에서의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운하 관련 논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운하에 대한 역사학적 연구는 현재 논의가 잠정적으로 중단된 운하 건설 계획에 대한 선행 자료로서 보다 나은 경험법칙을 우리에게 제공하게 될 것 이다.
  • 색인어
  • 운하, 이리운하, 연방의회, 주의회, 에이브래헌 링컨, 교통망개량, 호명투표, 휘그당, 민주당, 남부, 북주, 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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