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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56639&local_id=10086601
한국 근대 문인-기자의 존재 양태와 글쓰기 방식 연구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한국 근대 문인-기자의 존재 양태와 글쓰기 방식 연구 | 2014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박현수(성균관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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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2014S1A5A2A01010813
Year(selected) 201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17년 10월 23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1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이 연구는 한국 근대 문인-기자의 특징을 실증적으로 검토하고 그 의미를 구명하고자 했다. 시기적 범위는 1917~1941년이다. 시기의 처음은 이광수의 문인-기자 활동에서 비롯되었으며, 시기의 끝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장> 등의 종간과 맞물려 있다. <문인회>가 처음 결성된 것은 1922년 12월 24일이었다. 회합에는 10여 명의 문인이 모였으며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한편 합작집을 출판하기로 했다. 당시 문인-기자였던 염상섭의 글 등에서 <문인회>의 취지를 살펴볼 수 있다. <문인회>는 1923년 4월 1일 기관지 <뢰내쌍쓰>를 발행했다. <뢰내쌍쓰>의 가격은 10전이었으며, 분량과 체제에 문제를 지니고 발행되었다. 1924년 12월9일 다시 모임을 갖고 이사, 편집위원 등을 선출하려 했지만 <문인회>는 와해되고 말았다. <문인회>의 결성이 추진되었던 때는 <동아일보>, <동명> 등에서 처음으로 원고료가 지급되었던 때와 맞물린다. 1923년 1월 신년호의 ‘문예특집’ 이후 <동아일보>, <동명>의 문학에 대한 태도는 다시 예전의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현진건이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20년 <개벽>을 통해서였다. 현진건은 1920년 11월 전후 <조선일보사> 문인-기자가 되어 정간이 해제된 1920년 12월 2일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당당했다. <조선일보사>에 입사한 현진건은 자신의 의도에 따라 1면에 투르게네프 원작의 <초련>, <부운> 등을 연재했다. <초련>, <부운> 등은 원작자, 번역자 등을 밝혔으며 국한문혼용체를 택했다. <조선일보>의 입장에서 연재의 주된 기준은 <초련>, <부운> 등이 1면에 걸맞은 글인지였다. <초련>, <부운> 등에 이어 자신의 창작 <효무>를 연재했지만 한 달도 못 돼 중단되었다. 2차 정간 해제 이후 <조선일보> 1면에 실린 논설은 일본 신문의 ‘기리누키’를 거쳤다. 연재물은 구투의 문장을 꾸미기에 열중해 생명 없는 논조에 머물렀다. <초련>, <부운> 등의 연재가 문학에 대한 인식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 문제에 온전히 접근하기 위해서는 현진건이 입사해 소설 연재를 담당했을 때 <조선일보사>의 체제, 운영 등 상황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1921년 7월 4일부터 같은 해 8월 27일까지 <조선일보> 1면에 개설된 <조선일보>의 <문예란>을 발굴, 소개하기도 했다. <문예란>이 개설되었던 때는 <조선일보>가 23회에 이르는 발매반포금지와 2차례의 정간을 겪고 점차 운영에서 정상을 찾아가던 즈음이었다. <문예란>은 총 38회 개설되었는데, 시가 21편, 평론이 3편, 기행문이 1편, 수필이 1편 등 모두 26편의 작품이 실렸다. <문예란>에 글을 수록한 작가는 변영로, 남궁벽, 김억, 박종화, 오상순, 오천석, 김찬영, 현진건 등이다. <문예란>의 필자들은 이미 문단의 승인을 받은 존재들이었다는 점에서 작품들 역시 문학청년 시기의 습작이나 투고작과는 다르다. 또 <문예란>의 필자는 각각의 동인지에 얽매이지 않는 문인들의 네트워크와 문학 활동을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문예란>이 지닌 가장 두드러진 의미는 <조선일보>를 비롯해 당시 신문 미디어에 같은 성격의 지면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연구는 김기진을 중심으로 조선에서 프로문학을 정초하는 과정과 의미를 제도적 기반을 통해 가늠하려 했다. <Promeneade Sentimental>, <눈물의 순례> 등에서 김기진은 산책을 행하는데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일정한 준거를 따르고 있다. 김기진이 새로운 문학적 진로의 개척한 것은 나카니시 이노스케의 소설을 읽고 나서였는데, 둘 사이에는 일정한 낙차가 존재한다. 그는 당시 평론에서 자본주의 제도를 붕괴시키는 임무를 사회주의에 부여하고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프롤레타리아 컬트를 든다. 앞선 주장은 바르뷔스, 아소 히사시 등의 글을 연원으로 하지만, 미끄러짐에 대한 주목 역시 필요하다. 김기진은 <Promeneade Sentimental>을 발표하는 것을 계기로 연이어 <개벽>에 글을 실었다. 그것은 당시 이루어졌던 <개벽>의 사상적 지향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김기진은 <개벽>에 글을 발표하던 중 <매일신보사>에 입사를 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로직과 육체의 불균형’을 면하려다가 다시 ‘절름발이’가 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김기진이 <개벽>에 일련의 글들을 발표한 것은 문학관에 변화를 거친 후였으며, 그것은 1920년대 동인지 문학을 부정하는 작업과 연결이 되는 것이었다. 1920년대 동인지 문학은 ‘문학’의 반대편에 ‘현실’을 위치시켰을 뿐 그것의 인식에 있어서는 추상적이었는데, 그 음영은 김기진의 문학에 드리워져 있다. 당시 <개벽>의 변화가 당대 조선의 사회, 경제 영역에서 제기되는 문제의 원인이나 개선 방안을 다루었다는 데서 그 의의는 부정될 수 없다. 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개벽>이 김기진에게 ‘머릿속에서 뽑아낸 로직’이 ‘발바닥을 붙이고 있는 땅’과 교섭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는 점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현진건은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조선일보> <시대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을 거치면서 문인-기자 활동을 했다. 현진건은 1920년 11월을 전후로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다. 당시 <조선일보사>는 기자의 충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면을 메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어 현진건은 <동명>, <시대일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현진건이 <동명>, <시대일보>에 발표한 작품은 거의 없다. 여기에는 <동명>, <시대일보> 등의 근대문학에 대한 인식의 문제와 함께 언론사가 처한 경제적인 문제가 놓여 있었다. 선행 논의에는 현진건이 <시대일보사>를 그만둔 후 <동아일보>의 기자가 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사이 1년 정도 <조선일보사>에서 일했다. <조선일보사>, <동아일보사>에서 근무할 때는 거의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기자로 근무하는 미디어에 작품을 싣는다고 해서 따로 원고료가 책정되지 않았던 점, 당시에는 기자의 월급만으로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현진건이 1933년 12월 20일부터 6개월 가까이 이어간 <적도>의 연재는 현정건의 투옥, 사망 등과 관련되어 있었다. 현진건이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이 계기가 되어 <동아일보사>를 그만둔 것은 1936년 9월 25일이었다. <동아일보사> 퇴사와 함께 이루어진 활발한 작품 활동은 흔히 문인-작가라고 불리는 존재들의 작품 활동과 언론사 생활의 관계를 보여준다.
  • English
  •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investigate the aspect and logic of Korean modern letters-journalist. Specially, I wish to investigate inclination of the goods and anti-goods of modern literature. The period of this thesis is from 1917 to 1941. The starting point of this thesis is due to Lee Gwang-Soo's activity of letters-journalist. The ending oint of this thesis is due to discontinuance of <Dongailbo>, <Joseonilbo>, <Moonjang> etc. <Literary Society> was founded in December 24, 1922. They resolved to meet on a regular basis and to publish the collections of writings. <Literary Society> published <The Renaissance> in April 1st, 1923. They held the meeting in December 9, 1924 but organization is disbanded at once. <Dong-A newspaper>, <Bright-East> paid manuscript fee primordially at that times. The issue of manuscript fee must be resolved in order to keep writers’ head above water. After 1923 <Dong-A newspaper>, <Bright-East> did not pay manuscript fee no longer. Hyun, Jin-geon started his literary activity at <The dawn of civilization>. And he entered <Jo-Seon newspaper> around November 1921. Hyun, Jin-geon published serially Turgenev’s <Pervaya lyubor>, <Rudin> of his own motive. These novels disclosed the original author and translator. The style of writing was Korean and Chinese mixed up style. After that he published serially his creating <Early morning fog> for about a month. At that time one side of <Jo-Seon newspaper> copied that of Japanese newspapers. The serials of one side were old type style and inactive. To fill up paper was difficult because of publishing company’s financial problems. The serialization of <Pervaya lyubor>, <Rudin> did not pass off by means of considering the awareness of literature. This thesis was to discover and introduce the pieces of literary work reported in Literary section in <Jo-Seon newspaper>, and to bring light on the status of its literary section. Literary section in <Jo-Seon newspaper> was first open on July 4, 1921 and lasted until on August 27 in the same year. The section was reported on the first page of <Jo-Seon newspaper>. The time when literary section was established was the moment <Jo-Seon newspaper> was returning to normal condition of running business after having twenty three times of prohibition of release and two times of suspension. The number of reported literary section was thirty eight, which included twenty one pieces of poem, three pieces of critique, one piece of travel essay, and one piece of essay. Thus, the total number of reported literary work was twenty six. Writers who participated in the section were as followed: Young-Roh Byun, Byuk Namgung, Uk Kim, Jong-Hwa Park, Sang-Soon Oh, Chun-Seok Oh, Chan-Young Kim and Jin-Gun Hyun. Writers of the literary section had already been approve by the literary circle. For this reason, the pieces reported in the literary section had a different character from their studies or submission before starting their liter며 career. In addition, the writers were the subject of the network and career activities among the writers who were not bound by literary coterie magazines. The most significant meaning of literary section was that the section with the same character did not exist in <Dong-A newspaper>, <Maeil newspaper> or <Jo-Seon newspaper> itself. To prove this point, relation between news media and literature in early 1920s was discussed. This thesis is tried to investigate the process and meaning of the establishment of the proletarian literature focus on Kim, Gi-Jin’s literary activity. Kim, Gi-Jin’s steps took a sorrowful walk and his gaze conformed to a certain standard at <Promenade Sentimental>, <The pilgrimage of tear> etc. Kim, Gi-Jin aroused change literary characteristic after he read Nakanishi Inoske's novel. Since then Kim, Gi-Jin insisted to bring down capitalism through means of socialism. The opinion of revolution sprang from the writing of Henri Barbusse and Aso Hisashi. Henceforward Kim, Gi-Jin insisted that the literature should be the weapon of revolution. After Kim, Gi-Jin published <Promenade Sentimental>, he released his writing each number at <GaeBeok>. And that was associated with the alteration of <GaeBeok>. In those days Kim, Gi-Jin joined the <Maeil newspaper> but he repented at heart that entrada. His insistence was associated with the denial of literary coterie magazine in 1920’. But Kim, Gi-Jin’s literature was also influenced by literary coterie magazine in 1920’. We must remember that <GaeBeok> also stemmed to negotiate with reality and theory to Kim, Gi-Jin.
    This thesis is also tried to investigate Hyun, Jin-geon’ activity of the letters-journalist. Hyun, Jin-geon entered <Jo-Seon newspaper> around November 1921. He published serially <Pervaya lyubor>, <Rudin>, <Early morning fog> and <White hair>. At that time <Jo-Seon newspaper> felt difficulty to fill up paper because of publishing company’s financial problems. After Hyun, Jin-geon quitted <Jo-Seon newspaper>, he also worked as a journalist at <Dongmyeong> and <Si-dae newspaper>. Hyun, Jin-geon published only three works at the moment. After he quitted <Si-dae newspaper>, he worked as a journalist for one year at <Jo-Seon newspaper>. After that Hyun, Jin-geon entered <Dong-A newspaper> again. But in those days he was rarely making artwork. Hyun, Jin-geon published serially <The equator> at <Dong-A newspaper>, and the novel was involved in Hyun, Jeong-geon's death. Hyun, Jin-geon quitted <Dong-A newspaper> on 25th September 1936 beacause of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Hyun, Jin-geon’ activity at these times shows the method of activity of the letters-journalist.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이 연구의 목적은 미디어의 논리와 작가적 지향이 교차하는 문인-기자를 대상으로 하여 미디어라는 제도적 기반이 문학적 글쓰기로 전화되는 과정과 원리를 구명하는 데 있었다. 근대에 들어서 문학 작품은 신문, 잡지 등 미디어에 발표될 때 자신의 모습을 현현할 수 있었다. 신문, 잡지 등 근대 미디어는 기사나 문예를 담당할 소양을 갖춘 존재로 문인을 필요로 했다. 미디어는 문학 작품이 발표, 유통, 소비되는 물질적 기반이자 문학사의 흐름을 조형한 근간이기도 했다. 문학이 미디어라는 장과 겹쳐지는 중심에 문인-기자라는 존재가 위치하고 있다. 한편 연구는 문인-기자가 미디어를 작품 활동의 공간으로 삼았다고 할 때 그들에게 작품의 경향, 성격 등을 규정했던 존재는 누구였을까? 또 문인-기자가 기자 활동을 통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할 때, 문인을 기자로 선발하는 존재는 누구였으며 그 기준은 어떤 것이었을까? 등의 문제를 제기하게 했다. 문인-기자에 대한 연구는 문인들의 문학-경제 활동의 실상을 해명할 수 논구이기도 했다. 기존 문학연구의 초점은 문인들의 문학 활동이나 작품 세계에 놓여 있다. 하지만 작품 속에는 작가들의 삶, 특히 시장 회로 속에서 이루어진 문학-경제 활동이 아로새겨져 있다. 문인은 발표의 지면을 확보하고 경제적 대가를 획득하기 위해 미디어의 기자가 되기를 희망했다. 오히려 그것은 작가들의 문학관이나 창작 의식보다 더욱 근저에서 작용하는 아비투스(habitus)였다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신문 기자의 월급은 󰡔동아일보󰡕 기자가 60~70원, 󰡔조선일보󰡕 기자가 70~80원 정도였다. 기자가 되는 것은 지면을 확보하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문인이 경제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드문 방법이기도 했다. 문인-기자에 초점을 맞추는 이 연구는 문학과 미디어의 관계에 정당하게 접근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근래 문학 연구는 문화 제도로서 미디어에 접근해 그 성격을 해명한 바 있지만 그것이 문학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 경우는 드물다. 실제 미디어와 문학은 직접 연결되지 않으며, 그렇게 할 경우 미디어가 표방한 이념이 문학에도 투영되었다는 일반적인 결론에 이를 뿐이었다. 작가 의식, 작품의 미적 특질, 독자의 취향 등을 제대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와 문학의 접점이라 할 수 있는 문인-기자에 대한 논구가 전제되어야 했다. 이 연구는 미디어의 이념, 논리 등과 문예면의 성격이 길항하는 지점에 문인-기자가 위치한다고 보았다. 작가 의식, 작품의 미적 특질, 독자의 취향 등을 제대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와 문학의 접점이라 할 수 있는 문인-기자에 대한 논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는 근대 문인-기자의 등장과 존립 및 그 성격을 실증적으로 재구하는 데 머무르지는 않았다. 문인-기자의 문학적 글쓰기는 미디어의 이념이나 논리 속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연구가 문인-기자의 성격과 위상에 주목하는 것은 미디어의 논리와 작가적 지향의 길항에 대한 논구를 통해 미디어와 문화자본이라는 제도적 기반이 문학적 글쓰기의 질서와 원리로 전화되는 과정을 구명하는 것과 연결이 되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연구자는 <한국 근대 문인-기자의 존재 양태와 글쓰기 방식 연구>라는 주제로 3년의 연구를 진행했다. 3년간의 연구를 통해 주제와 관련된 연구결과 논문을 여러 편 산출했다. 1차년도에는 <동아일보>, <개벽> 등의 미디어의 상황과 논리 속에서 나도향의 <환희>가 연재된 계기와 의미를 구명한 <1920년대 전반기 미디어에서 나도향 소설의 위치>, 1920년대 <조선일보>가 처한 상황 속에서 현진건의 기자 및 문학 활동이 지니는 의미를 구명한 <1920년대 전반기 <조선일보>와 현진건>, 염상섭을 중심으로 최초로 만들어진 문인 조직이었던 <문인회>의 결성과 와해의 과정을 검토하고 그 이유를 구명한 <1920년대 <문인회>의 결성과 그 와해> 등을 결과물로 산출했다. 2차년도에는 1921년 1921년 7월 4일부터 8월 24일까지 두 달 가까이 <조선일보>에 개설된 <문예란>을 처음 발굴하고 그 성격을 밝힌 <1920년대 초기 <조선일보> <문예란> 연구 -발굴과 위상의 구명->, 신문 연재본 <효무>, 신문 연재본 <지새는 안개>, 단행본 <지새는 안개> 등의 차이와 거기에 각인된 미디어의 논리를 구명한 <세 개의 텍스트에 각인된 미디어의 논리>, 프로문학의 개척자와 <매일신보>의 문인-기자라는 이율배반 속에 위치했던 김기진을 통해 프로문학의 연원을 논구한 <프로문학의 제도적 연원> 등을 결과물로 산출했다. 3차년도에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조선일보> <시대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을 거치면서 문인-기자 활동을 한 현진건의 행적과 그 의미를 구명한 <문인-기자로서의 현진건>, 미디어에서 문인-기자로서 활동한 경험과 글쓰기 방식의 관련과 가능성에 대해 논구한 <현진건 소설의 체험적 요소과 사소설론>등을 결과물로 산출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한국 근대 문인-기자의 등장 및 존립과 그 성격의 변화를 해명하려는 연구에서 얻어졌다. 이를 위해 1차적으로는 1917~1941년 문인-기자의 양태에 대한 실증적 측면에 주목했다. 문인-기자의 활동과 존재 양태에 대한 실증적 자료 작업에 기반을 둔 연구결과는 이어질 근대문학 연구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또 미디어가 문학사의 흐름을 조형한 근간이었다는 점에서 문인-기자의 실증적 양태를 논구하는 작업은 문학사의 실상을 재구하는 것과 연결이 된다. 이 연구의 결과는 문학사 연구의 시각을 재고하는 것을 통해 한국 근대문학의 온전한 모습을 밝히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 연구의 결과는 한국문학 연구의 전문 인력 양성에도 적극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근대 문인-기자에 주목해 문학이 미디어와의 길항 관계를 통해 산출된 존재임을 해명하려는 이 연구를 주체적으로 수행한 연구자는 연구 과정을 통해 연구 시각과 방법을 객관화하고 심화,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또 자료 작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면서 자료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자료의 분류와 해석의 방법을 습득하게 되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는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현재 강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문인-기자라는 문학과 미디어라는 영역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 연구의 결과는 학생들에게 문학이 교과서 속에서 화석화된 대상이 아니라 언론 활동과 관련된 실제의 삶이라는 점을 고민하게 만들 것이다.
  • Index terms
  • 문인-기자, 인쇄 미디어, 문학사, 식민지 시대, 글쓰기, 시계열적, 작가, 문학시장, 소양, 문인 집단, 문학-경제 활동, 아비투스, 경제생활, 자료, 실증, 검열, 경제 활동, 식민체제, 원고료, 저작권, 인세, 편집자, 유통, 텍스트, 제도, 등단, 재생산, 소비, 상품, 장편소설, 신문, 연재, 투고, 회고, 배제, 왜곡, 억압, 문학양식 등.
  • List of digital content of this re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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