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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56953&local_id=10086519
대중가요의 번역과 근대 한일 문화의 창조적 상호작용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대중가요의 번역과 근대 한일 문화의 창조적 상호작용 | 2014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박진수(가천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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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2014S1A5A2A01014642
Year(selected) 201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17년 10월 24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1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본 연구는 ‘최근 100년간 한일 양국 대중가요에 있어서의 번역’이라는 문제를 다각적으로 검토하려는 시도이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대중가요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가사의 번역이든 멜로디의 변형에 따른 것이든 ‘번역’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는 서양 음악이 일본에 도입된 이후 번역창가와 문부성창가의 성립 및 서양 음악적 감성이 일반에 보급 확대되는 과정에서부터 초기 유행가의 성립 그리고 조선에의 영향 등을 살펴보았다.
    일본 근대 대중가요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에 예기치 않게 레코드 발매 2만 장을 기록하여 일세를 풍미한 <카추샤의 노래>로부터 시작된다. 1914년 문학자 시마무라 호게쓰가 쓴 가사에 그의 제자인 청년 작곡가 나카야마 신페이가 서양 음악의 기법으로 일본 대중의 심정을 멜로디화한 획기적 사건이 있었다. 나카야마는 극단 예술좌의 제3회 공연 톨스토이 원작 『부활』에서 극중에 여배우 마쓰이 스마코가 부르는 <카추샤의 노래>를 작곡한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일본에서의 레코드 유행가 제1호이다. <카추샤의 노래>는 1916년 극단 예성좌의 『부활』 공연을 통해 한국어 가사로 번역되어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번역 유행가’이다.
    레코드 발매 수의 면에서 한국 최초의 유행가라 할 수 있는 것은 루마니아의 작곡가 요지프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i)의 왈츠곡 <다뉴브강의 물결> Valurile Dunării에 한국어로 가사를 붙인 윤심덕의 <사의 찬미>이다. 그 외에도 일본의 「철도창가」가 한국에서 「학도가」로 변신했고, 소설 「금색야차」가 「장한몽」으로 번안되었듯이 그 노래 역시 나오자마자 곧바로 번안되었던 사실 등 많은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했다.
    1931년 일본에서 고가 마사오가 작곡하고 후지야마 이치로가 부른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는 단숨에 28만 매를 기록했다. 이들 콤비는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탁월한 음악성과 전기 취입에 적합한 독특한 창법으로 대중들을 매료시켜 레코드가요 시대를 이끌어갔다. 이들의 애조를 띤 멜로디와 함께 눈물과 한숨 등의 소재는 이후에 펼쳐지는 일본 대중가요의 원형을 이루는 요소가 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이 곡을 가수 채규엽이 한국어로 번역해서 불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최초의 직업 가수이자 1930년대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그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많은 유행가를 취입했다.
    이렇게 볼 때 한국과 일본의 대중음악, 특히 ‘가요곡’ ‘유행가’는 그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다. 한일 대중의 마음 속에서 수십 년간 애창된 분위기가 비슷하거나 같은 멜로디의 노래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소위 ‘엔카’, ‘트로트’라고 부르는 한일 양국의 전통가요는 늘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 English
  • This research is a try that consider a problem as 'translation in the popular songs which are both countries, Japan and Korea, recently for 100 years' from various faces. After Western music was introduced into Japan at the early stage of the study, the Western music-like sensitivity as well as formation of a translation song and songs select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checked formation of an early stage popular song and influence to Korea from the process which generally spreads and expands.
    History of a Japanese modern popular song isn't expected about 100 years before now, and 20,000 of record sale is recorded, and it starts from the< song of> Katyusha which took the world by storm. Youth composer Nakayama Shinpei where I'm his pupil was a technique of Western music in the lyrics man of letters Shimamura Hogetsu wrote in 1914, and the remarkable event which melody-ized sentiment of Nihon University people was here. Nakayama was the 3rd time performance in theatre group Geijutsuza Theater and the "renaissance" of Tolstoy original work, and actress's Matsui Sumako wrote sung< song of> KACHUSHA. This is a 1st number of so-called record popular song in Japan. < song of KACHUSHA> was translated by Korean lyrics through a "recovery" performance in a theatre group performance constellation in 1916, and even colony Korea in those days won popularity big. This is 'translation popular song' at the beginning of Korea.
    They're a popular song at the beginning of Korea and the one by which the one you can say put Korean lyrics on the waltz song of Romanian composer.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연구는 ‘최근 100년간 한일 양국 대중가요에 있어서의 번역(飜譯)’이라는 문제를 다각적으로 검토하려는 시도이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대중가요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가사의 번역이든 멜로디의 변형에 따른 것이든 ‘번역’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는 서양 음악이 일본에 도입된 이후 번역창가와 문부성창가의 성립 및 서양 음악적 감성이 일반에 보급 확대되는 과정에서부터 초기 유행가의 성립 그리고 조선에의 영향 등을 살펴보았다.
    일본 근대 대중가요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에 예기치 않게 레코드 발매 2만 장을 기록하여 일세를 풍미한 <카추샤의 노래(カチューシャの唄)>로부터 시작된다. 1914년 문학자 시마무라 호게쓰(島村包月, 1871~1918)가 쓴 가사에 그의 제자인 청년 작곡가 나카야마 신페이(中山晋平, 1887~1952)가 서양 음악의 기법으로 일본 대중의 심정을 멜로디화한 획기적 사건이 있었다. 도쿄음악학교(東京音楽学校)를 막 졸업한 나카야마는 극단 예술좌(芸術座)의 제3회 공연 톨스토이 원작『부활』에서 극중에 여배우 마쓰이 스마코(松井須摩子, 1886~1919)가 부르는 <카추샤의 노래>를 작곡한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일본에서의 레코드 유행가 제1호이다. <카추샤의 노래>는 1916년 극단 예성좌(藝星座)의『부활』공연을 통해 한국어 가사로 번역되어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번역 유행가’이다. 그러나 레코드 발매 수의 면에서 한국 최초의 유행가라 할 수 있는 것은 루마니아의 작곡가 요지프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i, 1845~1902)의 왈츠곡 <다뉴브강의 물결> Valurile Dunării(1880)에 한국어로 가사를 붙인 윤심덕(尹心悳, 1897~1926)의 <사(死)의 찬미(讚美)>이다. 그 외에도 일본의 「철도창가」(鉄道唱歌, 1900년)가 한국에서 「학도가」로 변신했고, 소설「금색야차」(金色夜叉)가 「장한몽」으로 번안되었듯이 그 노래 역시 나오자마자 곧바로 번안되었던 사실, 일본의 레코드 유행가 제1호라 할 수 있는 「카츄샤의 노래」(カチューシャの唄, 1914년) 등이 거의 동시적으로 가사까지 그대로 번역되어 불리워진 것 등 많은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했다.
    1930년대 초 일본 콜롬비아사는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1904~1978)와 성악가 후지야마 이치로(藤山一郎, 1911~1993) 콤비를 기용해 빅터사에 뒤지고 있던 상황을 역전시켰다. 이른바 ‘고가 멜로디’의 출현이다. 1931년 센티멘탈리즘에 젖은 기타 반주를 베이스로 부른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酒は涙か溜息か)>는 단숨에 28만 매를 기록했다. 쇼와 공황, 취직난, 인신매매, 전쟁의 불안을 반영한 이 노래에는 모더니즘의 도시 뒷골목에 존재하는 일종의 짙은 슬픔이 묻어난다. 고가 마사오와 후지야마 이치로의 콤비는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탁월한 음악성과 전기 취입에 적합한 독특한 창법으로 대중들을 매료시켜 레코드가요 시대를 이끌어갔다. 이들의 애조를 띤 멜로디와 함께 눈물과 한숨 등의 소재는 이후에 펼쳐지는 일본 대중가요의 원형을 이루는 요소가 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1927년에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 호출부호는 JODK) 이 개국했고 일본과 거의 동시대적인 대중문화의 전개양상이 나타났다. 1931년 일본에서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가 유행하자 1933년 콜롬비아사 소속의 가수 채규엽(蔡奎燁, 1906~49)이 번역곡 <술은 눈물일가 한숨이랄가>를 불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최초의 직업 가수이자 1930년대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그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많은 유행가를 취입했다. 고가 마사오는 1911년부터 20년대 초까지 가족과 함께 조선에서 거주한 재조일본인이었다. 청소년기를 조선에서 보내면서 많은 음악적 영감을 얻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볼 때 한국과 일본의 대중음악, 특히 ‘가요곡’ ‘유행가’는 그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다. 한일 대중의 마음속에서 수십 년간 애창된 분위기가 비슷하거나 같은 멜로디의 노래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소위 ‘엔카’, ‘트로트’라고 부르는 한일 양국의 전통가요는 늘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온 것이라 할 수 있다.한일 양국의 전후 및 1950년대 및 60년대의 대중가요가 생산과 유통, 소비의 면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다르게 전개되었고 서로에 대한 쌍방향적 영향의 양상을 살펴보면서 한편으로는 미국 문화 등 세계적 동시성의 문제를 짚어보았다. 다만 대중가요 자체가 양적으로 증가한 만큼 시대적 상징성을 갖는 노래를 잘 선별하여 분석하고자 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첫째, 대중가요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본격적인 연구에 직접적인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 20세기 이후의 문화 현상은 대부분 대중문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문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신사의 일부이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의미화하는 직접적인 매개이다. 이에 관한 학술 연구는 시대가 진행될수록 더욱 절실히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오락과 흥미의 대상이기만 했던 대중문화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은 대중문화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정립함으로써 인간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한국과 일본의 자국 문화연구를 넘어서 광역의 문화연구 다시 말해 동아시아문화권의 대중문화 연구를 열어가는 기초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많은 분야의 연구처럼 대중문화의 연구에 있어서도 국적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중문화 현상 자체가 초국가적인 현상으로 바로 이해를 해야 할 때이다. 한류 문화를 즐기는 전세계의 젊은이들을 볼 때 이러한 현상은 향후 더욱 가속화 할 것이며 따라서 문화에 대한 좀 더 넓은 지평에서의 이해가 필요한 바, 본 연구는 그러한 방향의 지침을 조금이나마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번역학에 대한 새로운 기여가 기대된다. 지금까지 번역학은 주로 소설 등 문학 장르에 치중된 감이 있으나 대중가요의 가사와 같은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텍스트를 취함으로써 학문의 대상 영역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학문과 생활의 거리를 더욱 좁혀 실제의 언어생활에 의미 있는 연구가 되리라 생각한다.
  • Index terms
  • 대중문화, 대중음악, 한일대중가요, 창가, 가요곡, 트로트, 엔카, 식민지, 번역, 카츄샤의 노래, 사의 찬미,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 황성의 적, 나카야마 신페이, 고가 마사오, 후지야마 이치로, 채규엽, 전수린, 이애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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