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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에서의 공간, 사회적 지위와 몸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일제강점기 조선에서의 공간, 사회적 지위와 몸 | 2014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신영전(한양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4S1A5A2A01013131
선정년도 201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7년 10월 30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936년 여름 도쿄제국대학교 의학부에 재학 중이던 최응석을 중심으로 12명의 학생들은 울산 달리에서 사회위생학적 조사(이하 ‘달리농촌조사’)를 시행하였다. 그 후 약 4년 후 1940년 4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학생 다나카 마사시(田中正四)가 그의 조선인 및 일본인 학생 20명과 함께 경성부 7개 지역 토막민에 대한 생활∙위생조사를 시행하였다(이하 ‘경성토막민조사’). 이들 조사결과는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에서 책으로 발간되었다. 이 두 조사가 공유하는 핵심적인 특징은 ‘사회 의학·위생학적’ 조사였다.
    두 조사 보고서는 로젠(Rosen)이 제시한 사회의학의 3가지 원칙 중 하나인, ‘다양한 사회, 경제학적 요인들과 건강·질병과의 연관성 강조’에 대해서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표방하였다. 그러나, ‘인구집단의 건강을 사회적 문제로 간주’하거나 ‘포괄적인 사회정책’의 적극적인 제안까지 담아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사회 의학·위생학의 전파 경로와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 사회 의학·위생학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고 기능하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두 보고서의 분석을 통하여 당시 식민지 조선의 사회 의학·위생학이 ‘식민지배와 대륙진출의 전진기지 구축과정의 도구적 성격’, ‘체질인류학, 우생학, 노동과학’과 ‘사회주의의 영향’, 그리고 그 ‘혼합 또는 공존’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일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두 연구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농민과 도시빈민의 열악한 생활 실태와 건강수준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 두 가지가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몸은 '열등한 존재'로서 착취되는 몸이었을 뿐만 아니라 강하고 건강한 노동자와 군인이 될 것을 요구 받는 몸이었다. 또한 당시 조선인의 몸은 일제식민지배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별 받는 몸이었다. 이에 더하여, 조선의 여성들은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서도 차별 받는 다중 부담을 져야 했던 고단한 몸이었다. 이 연구를 통해 이것은 단지 서사가 아니라 실증적인 근거를 가진 보다 견고한 사실이 되었다.
  • 영문
  • Place, social position and body in Korea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Based on the “Dalli Agricultural Social Hygiene Survey” and the “Kyongsong Tomakmin Social Hygiene Survey”*

    In the summer of 1936, Choe Ung-sok, a medical student at Tokyo Imperial University and 11 other students conducted a social hygiene survey at Dalli, Ulsan. Four years later in April, 1940, Tanaka Masashi, a medical student at the Kyongsong Imperial University, with 19 Japanese and Korean students conducted a social hygiene survey on “Tomakmin (the urban squatters)” residing in 7 districts of Kyongsong. The results of the two studies were published by Iwanami Shoten (岩波書店). The two study shared one crucial characteristic of both being a study of “social medicine and hygiene.”
    Both reports of the studies proactively adopted one of Rosen’s three principles of social medicine that “social and economic conditions profoundly impact health, disease, and the practice of medicine.” The two studies, however, failed to consider “the health of the population” as a “matter of social concern” or proposed suggestions for “comprehensive social policies.” The two studies, however, further stand as detailed examples of how social medicine and hygiene were introduced and functioned in Chosu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An analysis on the two reports shows that the “social medicine and hygienics” in Chosun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served as a “tool for using Chosun as a colony and a base for military advancement into the continent,” and was influenced by physical anthropology, eugenics, science of labor and socialism. The analysis also showed that the two surveys both showed a display of “mixture or coexistence” of characteristics.
    Despite the shortcomings, the two surveys provide not only a portrayal of the dismal life and health conditions of farmers and the urban poor in colonial Chosun but also an empirical correlation between the life conditions and the health conditions. In conclus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Korean body was not only a body exploited as an 'inferior being', but also a body required to be ‘a strong and healthy worker and soldier’. In addition, the body of the Korean people at that time was not only colonized by Japanese colonial rule but also discriminated by social status. Furthermore, the women of Joseon were hard-boiled, who had to face multiple burdens discriminated against by Confucian tradition.
    Through this study it became a more robust fact with empirical evidence, not just narrativ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의 목적은 1936년과 1940년 일제강점기에 농촌과 도시지역에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경제, 생활, 위생조사(『朝鮮の農村衛生: 慶尙南道蔚山邑達理の社會衛生學的調査』(1940)(이하 '달리농촌위생조사'), 『土幕民の生活∙衛生』(1942))에 나타난 몸을 다학제적 또는 융합적 접근을 통해 분석/해석함으로써 일제 강점기 ‘삶의 몸의 관계’, 보다 구체적으로는 물리적 공간(도시, 농촌)과 사회적 위치와 몸과의 관계를 재구성하는데 있다.
    1차년도에는 <달리농촌위생조사>의 분석, 2차년도(2015)에는 <경성토막민 생활위생조사>에 대한 분석을 3차년도에는 이 두가지를 비교하고, 식민지 조선에서 삶의 조건과 몸과의 관계를 보다 실증적인 방법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결과가 가지는 다양한 함의들을 도출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얻은 주요 내용과 결론은 다음과 같다.
    1936년 여름 도쿄제국대학교 의학부에 재학 중이던 최응석을 중심으로 12명의 학생들은 울산 달리에서 사회위생학적 조사를 시행하였다. 그 후 약 4년이 지난 1940년 4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학생 다나카 마사시(田中正四)를 중심으로 20명의 학생들이 경성부 7개 지역 토막민에 대한 생활∙위생조사를 시행하였다. 이들 조사결과는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에서 책으로 발간되었다. 이 두 조사가 공유하는 핵심적인 특징은 ‘사회 의학·위생학적’ 조사였다.
    두 조사 보고서는 로젠(Rosen)이 제시한 사회의학의 3가지 원칙 중 하나인, ‘다양한 사회, 경제학적 요인들과 건강·질병과의 연관성 강조’에 대해서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표방하였다. 그러나 ‘인구집단의 건강을 사회적 문제로 간주’하거나 ‘포괄적인 사회정책’의 적극적인 제안까지는 담아내지 못하였다.
    일제강점, 만주사변,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식민지조선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조건 하에서 이루어진 이 두 조사의 보고서를 통하여 당시 식민지 조선의 사회 의학·위생학이 ‘식민지배와 대륙진출의 전진기지 구축과정의 도구적 성격’, ‘체질인류학, 우생학, 노동과학’과 ‘사회주의의 영향’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이러한 성격들은 단독적으로 존재하기보다 서로 혼합되거나 공존하고 있었다. 이는 이들 조사가 “식민지 노동력의 확보와 관리가 필요했던 일본의 식민지적 대의의 종사하는” 것이었다는 기존의 일면적 평가를 넘어서는 것이다.
    일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농민과 도시빈민의 열악한 생활 실태와 몸의 상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 두 가지가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몸은 일제식민지배에 의해 착취되는 몸이었을 뿐만 아니라 건강한 노동자와 군인이 될 것을 요구받는 이율배반 속에 있었다. 또한 당시 조선인의 몸은 일제식민지배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별받는 몸이었다. 또한 여성들은 이에 더해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서도 차별받는 다중 부담을 져야 했던 고단한 몸이었다. 이러한 중층성은 그간 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왔으나 이 연구는 다양한 몸 관련 지표들의 분석을 통해 이러한 주장에 대한 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한편 이렇게 ‘체화(embodiment)’된 몸은 범인이 사건현장에 증거물을 남기 듯 식민시기의 증거물이라는 예기치 않은 흔적을 남겼다. 구체적으로, 달리위생조사과 경성토막민 생활, 위생조사는 단순한 위생, 질병조사만을 수행하지 않고, 건강/질병과 관련이 있는 사회적 조건(경제조사, 주택, 식량, 인구 등)을 함께 조사하고,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양상을 양적, 질적으로 매우 섬세하게 조사하였고, 일부는 일본/일본인들과 비교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 농촌 주민의 ‘몸’은 식민지 피지배인이라는 국제정치의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지위/계급, 남녀차별의 봉건적(유교적) 전통 등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신체/몸 관련 지표’를 확보할 수 있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연구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농민과 도시빈민의 열악한 생활 실태와 몸의 상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 두 가지가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몸은 일제식민지배에 의해 착취되는 몸이었을 뿐만 아니라 건강한 노동자와 군인이 될 것을 요구받는 이율배반 속에 있었다. 또한 당시 조선인의 몸은 일제식민지배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별받는 몸이었다. 또한 여성들은 이에 더해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서도 차별받는 다중 부담을 져야 했던 고단한 몸이었다.
    두 조사의 보고서를 통하여 당시 식민지 조선의 사회 의학·위생학이 ‘식민지배와 대륙진출의 전진기지 구축과정의 도구적 성격’, ‘체질인류학, 우생학, 노동과학’과 ‘사회주의의 영향’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이러한 성격들은 단독적으로 존재하기보다 서로 혼합되거나 공존하고 있었다.
    한편 이렇게 ‘체화(embodiment)’된 몸은 범인이 사건현장에 증거물을 남기 듯 식민시기의 증거물이라는 예기치 않은 흔적을 남겼다. 이 연구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신체/몸 관련 지표’를 확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렇게 확보한 자료들을 통하여 일제강점기가 구체적으로 조선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보다 다양하고 융합적인 분석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실 예로, 1, 2, 3차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키 변화를 통해 본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삶: 의(醫)·통계(統計)·역사(歷史學)적 접근」이라는 주제의 후속연구계획서를 제출하였고, 최종 선정되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는 일제강점기 전후 조선인과 일본인의 신체변화를 베이지안 통계모형을 통해 산출하고 그 차이의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1) 일제 강점기 전후 보다 대표성과 신뢰도를 가지는 한국인의 신체관련 자료 확보하고, (2)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삶에 대한 실증적인 논쟁 자료 제공하며, (3) 다학제적, 융합적 연구의 성공사례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몸, 체화, 사회의학, 사회위생학, 일제강점기, 조선, 울산 달리, 경성, 농촌, 토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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