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1936년과 1940년 일제강점기에 농촌과 도시지역에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경제, 생활, 위생조사(『朝鮮の農村衛生: 慶尙南道蔚山邑達理の社會衛生學的調査』(1940)(이하 '달리농촌위생조사'), 『土幕民の生活∙衛生』(1942))에 나타난 몸을 다학제적 또는 융합적 접근을 통해 분석/해석함으로써 ...
이 연구의 목적은 1936년과 1940년 일제강점기에 농촌과 도시지역에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경제, 생활, 위생조사(『朝鮮の農村衛生: 慶尙南道蔚山邑達理の社會衛生學的調査』(1940)(이하 '달리농촌위생조사'), 『土幕民の生活∙衛生』(1942))에 나타난 몸을 다학제적 또는 융합적 접근을 통해 분석/해석함으로써 일제 강점기 ‘삶의 몸의 관계’, 보다 구체적으로는 물리적 공간(도시, 농촌)과 사회적 위치와 몸과의 관계를 재구성하는데 있다.
1차년도에는 <달리농촌위생조사>의 분석, 2차년도(2015)에는 <경성토막민 생활위생조사>에 대한 분석을 3차년도에는 이 두가지를 비교하고, 식민지 조선에서 삶의 조건과 몸과의 관계를 보다 실증적인 방법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결과가 가지는 다양한 함의들을 도출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얻은 주요 내용과 결론은 다음과 같다.
1936년 여름 도쿄제국대학교 의학부에 재학 중이던 최응석을 중심으로 12명의 학생들은 울산 달리에서 사회위생학적 조사를 시행하였다. 그 후 약 4년이 지난 1940년 4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학생 다나카 마사시(田中正四)를 중심으로 20명의 학생들이 경성부 7개 지역 토막민에 대한 생활∙위생조사를 시행하였다. 이들 조사결과는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에서 책으로 발간되었다. 이 두 조사가 공유하는 핵심적인 특징은 ‘사회 의학·위생학적’ 조사였다.
두 조사 보고서는 로젠(Rosen)이 제시한 사회의학의 3가지 원칙 중 하나인, ‘다양한 사회, 경제학적 요인들과 건강·질병과의 연관성 강조’에 대해서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표방하였다. 그러나 ‘인구집단의 건강을 사회적 문제로 간주’하거나 ‘포괄적인 사회정책’의 적극적인 제안까지는 담아내지 못하였다.
일제강점, 만주사변,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식민지조선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조건 하에서 이루어진 이 두 조사의 보고서를 통하여 당시 식민지 조선의 사회 의학·위생학이 ‘식민지배와 대륙진출의 전진기지 구축과정의 도구적 성격’, ‘체질인류학, 우생학, 노동과학’과 ‘사회주의의 영향’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이러한 성격들은 단독적으로 존재하기보다 서로 혼합되거나 공존하고 있었다. 이는 이들 조사가 “식민지 노동력의 확보와 관리가 필요했던 일본의 식민지적 대의의 종사하는” 것이었다는 기존의 일면적 평가를 넘어서는 것이다.
일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농민과 도시빈민의 열악한 생활 실태와 몸의 상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 두 가지가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몸은 일제식민지배에 의해 착취되는 몸이었을 뿐만 아니라 건강한 노동자와 군인이 될 것을 요구받는 이율배반 속에 있었다. 또한 당시 조선인의 몸은 일제식민지배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별받는 몸이었다. 또한 여성들은 이에 더해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서도 차별받는 다중 부담을 져야 했던 고단한 몸이었다. 이러한 중층성은 그간 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왔으나 이 연구는 다양한 몸 관련 지표들의 분석을 통해 이러한 주장에 대한 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한편 이렇게 ‘체화(embodiment)’된 몸은 범인이 사건현장에 증거물을 남기 듯 식민시기의 증거물이라는 예기치 않은 흔적을 남겼다. 구체적으로, 달리위생조사과 경성토막민 생활, 위생조사는 단순한 위생, 질병조사만을 수행하지 않고, 건강/질병과 관련이 있는 사회적 조건(경제조사, 주택, 식량, 인구 등)을 함께 조사하고,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양상을 양적, 질적으로 매우 섬세하게 조사하였고, 일부는 일본/일본인들과 비교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 농촌 주민의 ‘몸’은 식민지 피지배인이라는 국제정치의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지위/계급, 남녀차별의 봉건적(유교적) 전통 등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신체/몸 관련 지표’를 확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