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윤한솔의 공연은 희곡은 물론이고 백석이나 나혜석처럼 실존했던 예술가, 국가보안법과 전통 판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들을 텍스트로 삼는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원본의 틀을 과감히 해체하고 동시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풀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희 ...
1) 윤한솔의 공연은 희곡은 물론이고 백석이나 나혜석처럼 실존했던 예술가, 국가보안법과 전통 판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들을 텍스트로 삼는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원본의 틀을 과감히 해체하고 동시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풀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희곡과 소설과 같은 문학 텍스트의 경우에는, ‘그때, 거기’에 존재하는 작가의 언어에 ‘지금, 여기’라는 연출의 언어를 정면으로 대치시켜 그때 발생하는 균열을 연극적으로 공간화한다(<두뇌수술>, <174517>, <1984>, <치정> 등). 그런가하면 한 예술가로 부터는 그가 예술가로 그 존재를 규정받기 이전, 정치사회적인, 그리고 감정의 격랑 속에서 심하게 부대낀 평범한 인간의 일면을 끌어내 부각시켜, 그때 발생하는 간극을 통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된 수많은 비평과 학문의 실체에 대해 되묻기도 한다(<원치 않는, 나혜석>, <아무튼 백석>). 우리에게는 이미 부정적 대명사가 되어 버린 ‘빨갱이’라는 사회적 타자에 작동하는 법의 편견을 찾아내는가 하면(<빨갱이 갱생에 관한 연구>),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박제되기 이전의 살아있는 민중의 숨소리를 찾아낸다(<노래의 방식, 이야기의 방식 – 데모버전>). 그런 점에서 윤한솔의 작업은 전체적으로 원전, 원본에 대한 전복, 그리고 뒤집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이런 뒤집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던 원본에 대해 팽팽한 긴장을 조성하면서, 무대 위에 원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지각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공간은 극장 밖에서 공유되고 있는 보편적 가치를 세련된 방식으로 재확인하고 관객에게 그에 대한 연대적 감정을 고양시키는 장소가 아니라, 보편과 상식이라는 틀에 가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발견의 장소다.
본 논문은 윤한솔의 연출미학이 보여주는 이러한 흩뜨리기 방식, 원전이 갖고 있는 원본성을 배반하는 그의 연출방식이 창출하는 미학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텍스트에 접근해 무대 위에 구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적 연출방식과 다른 방법론과 미학을 구사하는 이런 연출기법을 연출연극(Regietheater)이라는 용어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그가 원전에 가하는 균열이 결코 미학적으로 완성되지 않거나, 부정적인 행위가 아니라 또다른 의미에서의 생산적 행위임을 현대연극 전체의 미학적 담론 속에서 입증하고자 한다. 이것은 그의 연출방식이 연극은 현실이라는 원본 속에 분명 존재하면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을 보고 듣게 해서 새로운 지각과 경험이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포스트 유토피아 시대 현대연극의 요구 안에 위치하고 있음을 이론적 차원에서 입증하려는 일종의 단초가 될 것이다. 둘째, 이러한 현대연극의 안팎의 요구가 실제로 그의 연출작업 속에서 어떻게 실천, 실현되고 있는가를 구체적 작품들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하나의 인물에서 사건에 이르기까지 윤한솔이 ‘세계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연극을 통해 그에 대해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지점에서 특히 다큐멘타리적 방법론을 그의 주요 방법론으로서 주목하고자 한다. 대상이 되는 ‘텍스트’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해 병렬적으로 배치하여 서사를 파편화하고 해체하는 그의 연출기법은 지극히 불편하고 도발적이다. 이때 연출은 물론이고 그린피그의 배우들은 단순한 텍스트의 해석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보여주는 강한 현존감 또한 짚어보고자 한다. 그 점은 관객도 못지않다. 관객은 연극의 사건을 구경하고 전달받는 수용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다양한 자료들로 구성된 일종의 ‘발제문’과 같은 연극의 이 사건들을 비판적 관점에서 응시하며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역시 비판적으로 구성해야 할 위치에 서게 된다. 셋째, 앞서 이야기된 의도된 ‘불편함’과 연관지어 그의 연출미학이 1990년대 이후 진지하게 요구되는 새로운 정치성, 정치적인 연극의 지평 위에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즉 전복과 해체의 시선으로 테스트에 역행하는 그의 시선이 주는 불편함은 바로 무대와 관객을 이어주는 생산적인 접점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랑시에르가 강조한 ‘감각의 재분할’이 그의 연극미학과 연결될 수 있는데, 정치적 이슈를 재현하는 연극이 아니라 연극 자체를 정치적으로 만드는 그의 작업을 통해 윤한솔의 연극이 기존 정치극이 아닌 ‘정치적 연극’으로서 갖는 동시대적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方式 노래의 方式 – 데모버전>(2014)을 연극미학적 차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는 윤한솔이 텍스트에 접근하고 구성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통해 관객과 연극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것 등 본 논문이 제기한 일련의 차별적 연출미학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작품 중 하나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을 하면서 한국연극에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실현하는 연출가, 극단의 작업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이들의 연출미학이 갖는 현대성을 리뷰와는 다른 학술적 차원에서 보다 체계적이고도 심도있게 논의함으로써, 동시대적 맥락 속에서 한국연극의 새로운 지평과 미래적 가능성을 확인하고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들이 해외의 사례가 아닌 국내의 구체적 공연사례 안에서 계속해서 확인되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의 연극현장이 동시대 사회현실과 미학적 요구에 상응하는 실천의 방안을 모색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자극이 될 것이다
2) 연출가 이경성은 해석을 통한 보편성의 확장이 되었건 전복과 해체를 통한 비틀기의 방식이 되었건, 작가가 글로 써서 내민 서사를 무대로 가져와 재현하지 않는다. 그는 희곡이, 작가의 언어가 세상의 일면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지금, 여기의 한국연극이 현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연출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서사를 재현하는 대신 일찌감치 ‘공간’이라는 화두를 선택했다. ‘공간’은 동시대 한국연극의 장(場)에서 그의 연출미학을 차별화시키는 중요한 바탕이다. 많은 장소특정적 연극이 그렇듯 그의 연극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경험의 공간으로서의 장소에 주목한다. 실제로 극장이라는 제도적 공간이 아닌 일상의 장소에서 공연되었던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2010)에서부터 <틈>(2013), <25시-나으 시대에 고함>(2014)까지 이경성은 극단 바키와 함께 광화문 광장, 청계천, 문화역 서울과 같은 일상 안의 장소들, 특히 자본주의의 문화제도적 시스템 안에서 증발되어 버린 장소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관객과 함께 탐색해왔다.
이후 이경성의 작업은 이들 일상적 장소를 벗어나 극장이라는 제도적 공간으로 그 중심을 옮겨왔다. 물론 이 작품들에서도 공간은 여전히 그의 작업의 핵심화두다. 서울이라는 도시나(<서울연습-모델, 하우스>(2013)), 서울에서도 강북지역의 어느 특정 동네(<강남의 역사-우리들의 스팩-테클의 대서사시>(2011))의 장소성을 무대에서 연극화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공연은 극장에서 그 공간의 장소성에 대해 질문하고(<극장연습-남산도큐멘타>(2014)), 역사의 시간성을 드러낸다(<몇가지 방식의 대화들>(2014)). 최근에는 극장을 타자의 고통을 감각하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비포 애프터>(2015), <그녀를 말해요>(2016)). 그런 점에서 공간에 관한 이경성의 작업은 예의 ‘장소특정적 연극’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점점 그 미학적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경성의 작업을 공간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하되 방향을 전환해 이제 공간을 점유한 몸의 문제로부터 보다 새롭게 논의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실 전통적인 연극의 프레임 안에서 극적 서사의 역할을 재현하는 것과 거리가 먼 이경성의 작업은 애초 일상의 공간이 되었건, 극장이라는 공간이 되었건,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몸’을 배제하고는 논의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연극 안의 몸이라 함은 공연을 수행하는 배우, 또는 경우에 따라 평범한 일상 인물의 몸이며, 극장 밖이건 극장 안이건 그곳에서 행해지는 공연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관객의 몸이다. 이들 몸은 이경성 연극의 주요담론이 되는 공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이경성의 연극에서 몸은 단순히 역할과 상황을 재현하는 몸도 그것을 지켜보는 몸도 아니다. 몸은 그 자체로 사건을 만들고 지각과 경험의 틀을 구성하는 수행적 몸이다. 또한 공간 뿐 아니라 시간을, 더 나아가 세계를 지각하고 구성하는 주체이다. 배우의 몸이 연극 안에서 특정 공간을 점유하고 ‘지금(now)이 언제인지’, ‘여기(here)가 어디인지’를 질문하는 순간,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지각이 발생한다. 그 몸은 관객, 더 정확히 말해 관객의 몸으로 하여금 볼 수 없는 것들에 다가가 자신을 열고 상호작용하면서 그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하고 만지게 하고 결과적으로 대상과 자신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감각의 틀이다. 이러한 배우의 몸의 수행성은 이경성 연출 및 크리에이티브 바키(Creative VaQi)의 독특한 작업방식에서 비롯된다. 연출과 배우, 그리고 스텝들은 공연의 화두와 관련해 직접 현장을 찾아 직접 리서치를 하거나 관련 자료를 찾아 읽고, 지속적으로 발표와 토론을 하면서 공연의 틀을 완성해간다. 그들의 공연은 바로 이러한 자기 체험과 경험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이경성과 바키의 연극을 몸으로부터 새롭게 논의하고자 한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배우의 몸이 그들의 대상인 인물과 사건을 직접 어떻게 감각하고 체화하는지, 그리고 무대라는 공간을 점유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몸으로서, 무대를 그들 연극의 주요 화두인 공간과 시간, 더 나아가 타자에 대한 감각의 장소로 어떻게 발생시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근대 철학 깊숙이 파묻혀 있던 몸과 감각의 문제를 밖으로 끌어내 이를 세계를 구성하는 진정한 주체로 삼았던 현상학적 시각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이와 병행해 본론의 첫머리에 공간의 귀환, 공간의 재발견의 문제를 간단히 언급하였다. 그것은 오늘날 문화학이나 인류학, 미디어 이론에서 논의되는 공간의 문제가 결국 그 공간을 점유한 몸의 문제와 잇닿아있다는 것을 밝힘과 동시에, 이를 통해 본 논문이 전개하려는 논지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둘째, 공간과 시간과 관련된 이러한 현상학적 관점을 연극에 대한 논의로 연장시킬 경우, 그것이 연극미학적 담론과 실제 작업에 어떤 생산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을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셋째, 앞서 논의되었던 철학적, 미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공연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공연에서 배우의 몸이 어떻게 공간과 시간, 감각을 새롭게 발생시키는지, 그 수행적 운동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분석의 대상이 되는 공연은 <남산도큐멘타 : 연극의 연습-극장편>,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 그리고 <비포애프터>와 <그녀를 말해요> 등 주로 극장공간에서 행해진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