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빈민 구제에 대한 근대 레짐(regime) 형성을 계보학적으로 탐색하는 것이다. 빈곤개념과 구빈 담론은 빈민생활조사, 방빈(防貧) 시설과 공공부조의 제도화 등 근대 국가의 관리시스템의 내용을 결정하는 사회적 의사결정의 주요한 기제였다. 따라서 근대 ...
본 연구의 목적은 빈민 구제에 대한 근대 레짐(regime) 형성을 계보학적으로 탐색하는 것이다. 빈곤개념과 구빈 담론은 빈민생활조사, 방빈(防貧) 시설과 공공부조의 제도화 등 근대 국가의 관리시스템의 내용을 결정하는 사회적 의사결정의 주요한 기제였다. 따라서 근대 빈민구제담론에 대한 분석은 ‘복지’에 대한 관념의 역사적 변화를 고찰하여 현재 제기되는 사회적 논의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유의미한 연구이다. 발전은 과학적 합리성에 기초하여 가시적으로 축적되지만, 위험은 개인의 개별 경험으로 분배되고 비가시적으로 축적되기 때문에 ‘발전’의 이면에서 양산된 ‘위험’은 어쩔 수 없는 산업화의 부산물로 간주되어 왔고, 기술지식과 행정적 조치에 의해 관리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이 고도화될수록 노동과 자산의 교환가치 격차가 심화되면서 생존권적 위험인 ‘빈곤’에 대한 국가적 ‘관리’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져왔다.
빈민에 대한 구휼 문제가 왕의 통치권 영역에서 공중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갑오개혁(1894년) 이후 빈민문제가 공론화되고 정치세력이 이 문제에 개입하면서 부터였다. 1945년 이전 의회민주주의가 성립되지는 않았지만, 빈곤과 빈민 구제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통치의 실행이 작동되는 방식과 범위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지식인과 엘리트가 주도하는 빈민조사와 구제담론은 ‘문명화’, ‘근대화’, ‘민족’, ‘계급’, ‘독립’, ‘동포애’, ‘인류애’, ‘동정’ 등 사회적 개념들과 ‘사적소유’, ‘경제발전’, ‘투자’, ‘분배’ 등의 경제적 행위와 관계하면서 통치의 유효성을 제고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이 관계는 복합적이며 분절적인 연속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빈민구제 담론에 대한 분석은 시장, 사회, 통치권의 복합적 상호작용의 관계- 사회적 태도로서 레짐의 형성 과정을 고찰하는 것이다.
‣ 본 연구는 대상 시기를 크게 두시기로 구분하여 2년간 진행되었다.
① 1894년 ~ 1919년 : 근대 사회적 생산성제고와 빈민문제: 1894년 이후 등장했던 독립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의 신문과 계몽운동 잡지를 대상으로 ‘생산성’와 ‘빈민’개념을 중심으로 한 내러티브를 발굴하고, ‘자강’, ‘독립’, ‘문명’, 등의 담론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고찰했다. 인구관리의 필요성, 납세자의 공공적 이해에 대한 관념 등 근대 국가의 통치관념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빈곤과 빈민구제가 제도적으로 포섭되는 과정을 고찰했다. 매일신보, 학지광 등을 분석하여 생산성제고의 효율성과 ‘동정’,‘자선’,‘연대’의 관념이 점차 수용되는 과정을 고찰했다.
② 1919년 ~ 1937년 : 조선인 경제와 빈민구제담론 : 곤과 빈민구제의 문제에 각 정치세력의 담론이 어떻게 결합되고 있는지를 고찰하고 당시 공론장의 권력관계에 의해 구빈정책이 결정되는 방향을 고찰했다. 경성부의 구빈시설의 설치와 공공부조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도시민의 공공적 이해가 빈민구제문제와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었는지를 함께 고찰했다. 빈민의 상시적 관리시스템의 사회적 효과를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