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한국과 주변 국가의 근대 스포츠웨어에 관한 연구로 스포츠웨어의 확산 과정과 아이템, 형태 등을 분석하는 연구이다. 서양에서 시작된 스포츠웨어가 동양에 유입되어 정착, 변화하는 과정을 고찰하며, 이를 통해 유물 연대 감정의 토대를 만들고 이것이 콘텐츠 ...
본 연구는 한국과 주변 국가의 근대 스포츠웨어에 관한 연구로 스포츠웨어의 확산 과정과 아이템, 형태 등을 분석하는 연구이다. 서양에서 시작된 스포츠웨어가 동양에 유입되어 정착, 변화하는 과정을 고찰하며, 이를 통해 유물 연대 감정의 토대를 만들고 이것이 콘텐츠를 위한 고증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서양의 스포츠는 18세기 이후 대중들에게 확산되었다. 남녀 스포츠웨어 모두 학교 체육에서 시작되었으며, 남성은 캡이나 셔츠, 바지를 착용한 반면, 여성은 블루머를 착용하였다. 1907년부터는 블루머 위에 면으로 만든 미디블라우스가 많이 착용되기 시작했는데, 이 조합은 여자대학생의 상징이 되었다. 이 외에 점퍼스커트, 룸퍼(Rompers)등 다양한 여성스포츠웨어가 있었는데, 점차 활동성을 보장할 수 있는 형태로 발달하였다.
서양의 스포츠는 1873년, 일본에 소개되었다. 이는 문명화의 상징으로 학교에서 앞 다투어 도입하였으며, 메이지 정부는 서구화된 신체를 만들기 위해 체조와 운동회를 실시하였다. 초기에는 교복이었던 전통 화복(和服)이나 서양복이 스포츠웨어로 착용되다가, 1900년 전후로 허리에 둘러 입는 하의인 하카마[袴]가 보급되었다. 하카마를 착용하면서 신발이 조리에서 구두로 변했고, 일본식 머리 모양도 점차 사라졌다. 미국 유학생이 도입한 블루머는 보수적인 여성관에 의해 수용되는데 시간이 걸렸으나 널리 착용되었다. 1920년대 이후에는 블루머 위에 흰색 면직 블라우스가 착용되었으며, 블루머의 길이는 1930년대를 지나면서 점차 짧아져 갔다. 한편 영국 유학생이었던 니카이도 토쿠요(二階堂トクヨ, 1880-1941)는 서구 스포츠웨어인 튜닉을 가져와 일본에 보급하였다.
1800년대 말, 중국에 근대 스포츠가 학교를 중심으로 유입되었으며, 초창기에는 스포츠웨어로 전통 중국복식을 착용하였다. 1914년 이후 정식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배심(背心)과 고차(裤衩)를 착용하였으며, 1920년대에는 상ㆍ하의가 연결된 운동복도 등장하였다. 1920년대 들어 중국 정세가 안정되면서 중국 근대 체육은 급격히 성장하였고, 스포츠웨어를 대량 생산하는 공장도 출현했다. 여성은 초기 스포츠웨어로 장삼(长衫)에 긴 바지를 입었는데, 서양 선교사들이 본국에서 착용하던 것을 도입하여 여학생들이 서양식 스포츠웨어를 착용하게 되었다. 1920-30년대에 여성 체육이 성행하였고, 일부 학교에서 스포츠웨어를 교복으로 지정하는 등 일상복과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졌다. 경기에서 더욱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신체 활동 제약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 1930년대에는 매우 짧은 반바지를 착용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항과 함께 서양 외교관과 선교사들에 의해 스포츠가 도입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교육기관의 설립으로 스포츠가 빠르게 보급되었다. 초기에는 한복을 착용하다가, 1920년대 이후 전국 규모의 각종 경기대회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종목별 스포츠웨어가 생겨났고, 남성은 셔츠나 러닝에 반바지, 현재와 유사한 야구복 등을 착용하였다. 여성 스포츠는 1892년에 이화학당에서 체조 수업으로 도입되었는데, 당시 여성의 스포츠 활동은 큰 파문을 일으켰지만, 점차 종목이 늘고 각종 경기대회가 열렸다. 여성 스포츠웨어는 한복부터 시작하였으며, 남성과는 달리 종목별 스포츠웨어가 크게 발달하지 못하였다. 여성 스포츠웨어는 바지형과 치마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블루머가 대표적인 바지형이었다. 이는 서양 선교사가 전해준 것으로 블루머 위에는 블라우스나 세일러복, 또는 스웨터를 착용하였다. 또 점프슈트형 스포츠웨어가 있었는데 이는 블라우스와 블루머가 결합된 형태이다. 치마형은 테니스 경기에 착용된 흰색 블라우스에 흰색 치마를 입은 차림과 점퍼스커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