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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 개념을 통한 문화인류학적 상호텍스트성의 해석학적 차원에서 복음서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중용& #40;中庸& #41; 개념을 통한 문화인류학적 상호텍스트성의 해석학적 차원에서 복음서 연구 | 201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박노식(강남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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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번호 2015S1A5A2A01011764
선정년도 201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7년 10월 26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동양과 서양은 다양한 환경적,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개념의 형성과정과 범위 등에서 차이를 갖고 있다. 특히 신론을 고려할 때, 복음서의 신(하나님) 개념과 『중용』의 신(천天) 개념은 발생학적인 측면과 어원적인 측면에서 다르다. 전혀 다른 문화적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두 개념을 동일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다. 탁사 최병헌은 유가성현들이 하늘과 상제를 분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하늘은 천天이며 상제上帝로서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하다. 유교에서 하늘은 인격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하늘은 “그 본 이름은 상제요, 시공적 제한성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지니며, 우주의 운행 법칙이요, 진실성을 내포한다는 의미에서 태극(太極), 이(理), 도(道, 天道)로서 이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간의 상호텍스트성을 논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안에 공통적인 요소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복음서의 하나님과 『중용』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의 천이 “각 인간들의 본성(性)과 존재론적으로 연결된다고 보는 점, 둘째 … 각 인간 존재의 존엄성과 존재론적, 본질적 가능성을 강조”하는 점이다. 셋째, 이 두 세계관은 인간 본질에 관련된 문제를 하나님 혹은 하늘과의 상응관계 안에서 이해한다. 복음서에서 인간은 임마누엘(마 1:23)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하늘의 명을 비춰주는 유일한 존재다. 하늘이치를 따라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천명天命의 진정한 수행자가 인간이다. 이로 보건대 복음서와 『중용』은 인간을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 혹은 하늘과의 상응관계에 있는 존재로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중용中庸인가? 중용은 신/천과 인간의 관계를 언술하는 대표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중용中庸은 유교의 핵심 개념이며, 실천에 관련한 근본원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중용에 관련된 핵심 개념인 성誠은 실천의지의 진실함을 제공한다. 중용과 성誠은 『중용』에 집중적으로 제시되었다. 중용의 핵심은 천天과 인人에 관한 것인데, 『중용』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천명이며, 천명의 중심은 인간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본 연구는 『중용』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복음서 해석에 사용하고자 한다. 요컨대 『중용』은 완결된 체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유교적 기독교인인 이벽은 이 문헌을 “해석 체계가 필요없는 ‘도의 본말(中庸爲道之本末也)’ 그 자체”로 평가한다. 이벽은 천명을 통하여 『중용』의 체계를 하늘과 땅의 수직 관계 안에서 이해하면서 지천知天과 상천지재上天之載를 중요한 틀로 소개한다. 전자는 하늘을 알아야 하는 인간의 인식과 실천이며, 후자는 천의 존재와 주재를 뜻한다. 그에게 『중용』은 서학의 하나님에 대하여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문헌이며, “수양과 반성을 통한 자기 변화의 철학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전”이다. 이벽에게 있어서, 『중용』은 신의 존재를 기원성에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일어난 인식과 실천에서 사유한 것이다. 왜 『중용』인가는 정약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약용도 『중용자잠』과 『중용강의보』를 통하여 세계를 규제하는 궁극적 존재를 인정하며, 신유학의 전통적인 리와 태극의 개념을 부정하며, 창조하고 주재하고 화육하는 인격적 상제의 존재를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상제를 존재의 근본원리와 원인으로 간주한다.
    복음서와 『중용』 간의 상호텍스트성을 시도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동안 신의 계시성과 절대성은 기독교의 독특성과 우월성의 근거로 여겨졌지만, 이 초월성은 다원적 사회 안에 있는 기독교를 당대의 문화와 사회로부터 격리를 촉진시키거나 고착시켜 왔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기독교의 [종교적]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사고의 전환이 필연적으로 요청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신 이해에 대한 사고의 전환은 절대적 초월성에서 초월적 내재성으로의 전이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상호텍스트성 안에서 신론에 대한 재고再考는 신의 존재적 시원성보다 기능적 시원성에 집중하게 한다.
    심광섭은 기독교와 유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구약성서는 복음의 이해를 열어주듯이 한국의 역사에서 복음은 유교의 경전의 의미를 밝혀주며, 유교의 경전은 복음의 이해를 열어준다. ... 구약 성서는 예수의 성서이듯이, 유교적 토착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유교경전은 그들의 성서다." 그리고 이 상호텍스트성은 초기 기독교 집단들이 그리스도 사건에 근거한 신론을 어떻게 상황화 했는지, 상황화의 과정도 드러내 줄 수 있다.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대처 과정을 통하여 수립된 신학적 이해를 구체화시킬 수 있다. 복음서의 신론을 상호텍스트성 안에서 이해(구체화)하는 것은 예수 사건의 체험과 역사적 의미가 일차적으로 복음서 집단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확인하게 한다. 본질적으로 복음서는 역사적 예수 사건에 근거하여 발생한 신 경험을 인자, 임마누엘, 보편적 실재성 그리고 성육신 등등으로 구조화 한 것이다. 인자, 임마누엘, 보편적 실재성 그리고 성육신으로 요약되는 복음서의 구조는 기독론적 근거와 함께 집단의 생존과 선교적 실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 영문
  • The focal point of the study is the pressing theological question of a Christian response to religious pluralism in the Korean Christianity. Contemporary hermeneutics has evolved as existential approach to a text which the interpreter enters into a holistic dialogue. Confucianism has something genuinely interesting and helpful to bring to contemporary theological discussions. These dialogues are not defined by professional theologians alone, but also by Korean christinty's needs for theological guidance. The study will present a formal hypothesis about the portable roots of Confucianism, theoretical implications for the notion of cross-cultural transition, and the programmatic point between Korean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 The study will explore that several practical applications of Confucian principles to the Korean Christianty situation will be laid out as projects for further development. It is necessary to present selected historical meterial about the Confucian tradition in order to display the importantce of the new bilateral interfaith dialogue.
    The hypothesis is that the primary scriptures are the Doctrine of the Mean and the Gospels. The Doctrine of the Mean is a primary scripture of Confucianism because it provides the classical expression of the Confucian model of the self as a polar structure stretching between the inner heart of cetered readiness to respond to all things according to their value and the ten thousand things of the world. The Doctrine of the Mean is reflected in the trinity of heaven, earth, and the human. The Doctrine of the Mean cites the development of the nature of the self, other people, and things as the content of the human contribution. The study will elaborate two essential principles, humanity(인) and properity(리). The concept of humanity(인) has seemed close to a range of Western theological notions, from Christian love to philosophical authenticity.
    If the gospel is to be preached with integrity in the religious pluralism, what does this mean for Christian gospel, Christology, and Christian ethics? Thus, the study is informed by the thought of gospel's authors.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 have have regarded divine transcendce and immanence in distinctive fashions. There was a general consensus that both traditions have doctrines of divine transcendence and immanence. Christianith and modern Confucianism are moving to a new understanding of transcendence and immanence closer in style and substance. The study will answer the question of convergence of the two traditions and then seek historical background. The study is exploring new ground, topics never before taken in tandem.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연구는 동서양사에서 중요한 실천적 사유의 한 형식으로 자리 잡은 중용中庸에 관련된 중요한 개념들을 복음서 해석에 적용하는 것이다. 동서양의 사유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해야 할 개념들 중에 하나가 중용에 관련된 것들이며 또한 동양철학의 범주에서 기독교에 가장 가까운 개념 중에 하나가 중용에서 성誠이라는 개념이다. 특히 성誠은 『중용』의 핵심적 개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스 철학에서도 존재의 목적을 위해 실천적 덕을 말하는데, 그리스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전부터 중용은 실천적 덕으로 인정되었다. 이것은 고대인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원리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양적 세계관에서도 중용은 삶의 방식과 태도에 관련된, 일종의 ‘살아가는’ 기술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동양의 사유체계를 대표하는 유학은 최근세 500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전통이기에, 유학의 대표적인 개념인 중용과 신약 간의 개념적 상호성을 다루는 것은 특히 한국적 성서 읽기를 위해 해석학적 신학적 중요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서양의 하늘이 동양의 하늘과 다르지 않다.’ 이 문장의 함의는 어쩌면 기독교와 유교 간의 연속성을 급진적으로 열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복음서의 신학적 개념들(신 이해, 제자도)과 유교의 중용의 개념들(천天, 성誠, 인仁)은 둘 간의 연속성을 토론하기에 충분하다. 본 연구는 천天, 하늘 혹은 하나님 개념을 세속 혹은 인간 세상 안에서 실행되는 삶의 거룩성이란 측면에서 확인하고자 한다(초월적 내재성).
    유학은 중용의 개념을 인간의 행위에만 국한해서 사용하지 않고 전 우주적 차원에서 적용하고 있다: 하늘(天)의 명命을 일러 성性이라고 하고, 본성에 따르는 것을 일러 도道라고 하고, 도를 닦는 것을 일러 교敎라고 한다. 존재론적 차원에서 중용의 가르침은 하늘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준칙이다. 중용의 가르침 안에서 하늘과 인간과 만물은 상호성 안에 있다. 하늘의 본성을 실현할 수 있으면 인간의 본성을 실현할 수 있고 만물의 본성을 실현할 수 있으며 나아가 하늘과 땅은 화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늘과 땅, 인간과 사물은 상호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이 상호성 안에서 그 자체의 본성을 실현해야 모든 것이 존재성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유학의 신본神本 사상은 성誠이라는 개념에서 그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인仁은 사람의 도를 이루는 길이며, 성誠은 하늘의 도를 이루는 길로서 인仁과 성誠은 유학의 두 중심축이다. 기독교에서 성誠은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에서 완벽하게 성취되었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오심은 말씀(言)이 사람이 되시어(成) 우리 가운데 계시게 된 사건이다: 말씀이 육신됨.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행동도 ‘다 이루신’(成) 사건이다: ‘다 이루었다’(요 19:30). 예수의 시작과 끝이 성誠 그 자체다.
    경敬이란 일심一心의 주재主宰로서 마음을 다스리는 기본원리를 의미한다. 성서적으로 경은 하나님과 자기 자신 그리고 만물을 하나로 보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통하여 보여주었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행동은 인하고 자비하며 공감하는 모습, 곧 경을 드러낸 것이다. 예수의 고귀한 행동에서 드러난 것은 본래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평정심과 일체감이다. 퇴계 이황은 경을 만물과의 일체감에서 이해하였다. 그래서 퇴계는 중용을 인의예지仁義禮智로 기초로 한 감정의 미발상태를 유지하라고 한다.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움을 다스려야 함을 설파한다. 그리고 감정의 미발상태는 경을 통하여 유지할 수 있다. 경敬은 사람과 사물에게 동시에 작동하는 능력이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모든 것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태도에서 이런 경 개념은 확인할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복음서와 중용 간의 상호텍스트성 연구는 후속 연구를 위한 다양한 주제를 제공하고 있다: 공간과 시간에 관한 연구, 성서적 균형에 대한 연구, 인간론에 관한 연구, 종말론에 관한 연구.
    복음서와 중용 간의 상호텍스트성 연구는 공간과 시간이란 신학적 토론을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중용 개념을 통하여 기독교의 미래적 낙관주의를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서적 삶의 실천적 형태와 사유를 공간적 차원에서 미래적인 성향보다 현재적 성향의 당위성과 진정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성과 경의 제자도로 복음서를 읽어 나갈 때 해석자들에게 인지하는 것은 제자도의 현재성(여기 이 자리)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중용적 실천성과 합리성은 미래적이기보다는 현재적이다. 중용의 합리성 안에 있는 행동은 실천적이고 보편적 삶의 자리를 갖고 있다. 행동의 장은 바로 그 공간이다. 중용은 어디에도 편벽되지 않고 치우침이 없으며 지나침과 모자람도 없는 평상적인 도리로서 군자가 추구하는 길의 공간인 것이다. 평상의 도리를 이루는 공간은 생활과 일치하게 하고 현실적 참여를 독려하는 곳이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타개하는 곳은 말과 행동이 실현되는 바로 그 공간이어야 한다. 복음서와 중용의 공간과 시간은 인간과 만물의 실재를 형태 그대로 인정하여, 인간과 만물 간의 공존과 번영을 바로 삶의 자리에서 이루려는 곳이다. 복음서와 중용은 현실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현실생활의 지혜에 드러난 하늘의 뜻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중용은 유교적 측면에서 절충적 중간, 기회주의적 중립, 신학적 측면에서도 신학적-복음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용의 핵심은 존재에 관련된 사건을 향한 시기 적절성, 화합과 조화를 향한 최선성을 의미한다. 중용은 차별적인 이중성과 구분을 위한 판정이 아니라 모든, 악인과 선인을 다 상생시키려는 존재 방식이다. 이런 존재방식은 예수의 행적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요소다. 예수의 고귀한 행동도 피조물 간의 더불어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실 예수의 고귀한 행동의 근원은 사랑이다. 이 사랑으로 인하여 예수는 악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들고, 선한 것과 함께 공존하게 하였다. 이것을 통하여 하늘과 땅 모두가 함께 살아 갈 수 있게 하였다. 피조물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사랑(성)을 갖는 것이다. 피조물로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는 사랑(성)의 에너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랑을 따라서 왕을 섬길 때 그것은 충이 되고, 반면에 부모를 섬기면 그것은 효가되고 부부간에 이것을 두면 화가 되고 친구간에 이것을 두면 신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예수의 사랑이 악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고 선한 것으로 바꾸어 상생시키려 했듯이, 중용의 성性을 솔성하고 유지할 때, 대립의 상태를 허물어 모두를 같이 있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고 있다.
  • 색인어
  • 복음서, 중용, 초월적 내재성, 기독론, 임마누엘, 실천적 신론, 인자와 하나님의 아들, 성육신, 문화인류학적 읽기, 메소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주희, 해석학, 한국적 신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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