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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공성전』과 『워킹 데드』: 서구 피포위 심리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예루살렘 공성전』과 『워킹 데드』: 서구 피포위 심리 연구 | 201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이희구(중원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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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5S1A5A8018013
선정년도 201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6년 10월 26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예루살렘 공성전』의 반유대적 폭력은 노골적이다. 로마 기독교인 황제에게서 그 어떤 자비도 기대하기 힘들다. 13세기 말에 쓰인 이 두음시는 “구세주의 복수”라는 예언, 즉 신학적 정당성으로 가지고 영국의 존재하지 않는 유대인을 호출하여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의 대상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런 강자의 약(타)자에 대한 일방적이고 노골적인 폭력은 이제 기능할 수 없다. 신학적으로 주어진 법, 그리고 정당성은 이제 합의에 의한 형식적 민주주의로 인해 부정되었지만, 나를 둘러싼 종말론적 위기와 공포는 여전히 그 두려움을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 해소하려는 욕구를 부추긴다. 『워킹 데드』와 같은 좀비 서사에서 인간은 좀비들에 둘러싸인 약자로 등장하지만 이 서사의 쾌락은 소위 약자의 생존을 위한 무차별적 폭력에서 출발한다. 좀비 서사의 인기는 강자의 폭력이 금지된 “도래할” 민주주의 사회에서 약자의 위치를 선점하여 안전하게 이 폭력의 사디즘적 쾌감을 느끼고 그 공포를 해소하려는 우리의 욕망을 드러낸다. 민주주의는 합의라는 법의 형식으로 그 모양새만을 가지고 있다. 이 형식에서 모든 시민은 평등하고 타자, 특히 약자라고 정의된 타자에 대한 폭력은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피해자 혹은 희생자의 위치를 점유해야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지켜야한다는 폭력의 정당방위가 성립된다. 이 정당성은 이제 목소리를 잃어버린 타자인 좀비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 영문

  • Anti-semitic violence in Siege of Jerusalem is repellently gross. No humane mercy should not be expected from the Christian Roman Emperor who led the imperial army in laying the siege. When this alliterative poem in the late 13th century summons the helpless jewish absentees who historically had been expelled before the composition of the poem, it is theological justification of Vindica Salvatoris, that is the Vengeance of our Lord, that guaranteed the brutal violence. However, the broad cruelty of the violence from the strong against the weak cannot be allowed anymore in our age. Our formal democracy, however empty it is, is incompatible with laws and justice with theological vindication in Siege of Jerusalem. The siege mentality, fear of being surrounded by eschatological crisis and terror, goads us into ventilation of the fear unto the inferior other. In Zombie narratives like Walking Dead, human survivors stranded among zombies appear as the cringing weak, but the pleasure of the narratives comes from ruthless violence on the part of the human weaklings against the voiceless zombies. Zombie popularity reveals our desire to release our fear with sadistic pleasure from violence while securing the position of the weak in our democracy-to-come. Our democracy is at least based on a form of social contract. In this form, every citizen is equal, and violence against the other defined as the weak are never justified. It is only in the position of a victim or sufferer that “survivers” can justify violence as self-defence. This justification publically approves the violence against the voiceless other like zombie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예루살렘 공성전』의 반유대적 폭력은 노골적이다. 로마 기독교인 황제에게서 그 어떤 자비도 기대하기 힘들다. 13세기 말에 쓰인 이 두음시는 “구세주의 복수”라는 예언, 즉 신학적 정당성으로 가지고 영국의 존재하지 않는 유대인을 호출하여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의 대상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런 강자의 약(타)자에 대한 일방적이고 노골적인 폭력은 이제 기능할 수 없다. 신학적으로 주어진 법, 그리고 정당성은 이제 합의에 의한 형식적 민주주의로 인해 부정되었지만, 나를 둘러싼 종말론적 위기와 공포는 여전히 그 두려움을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 해소하려는 욕구를 부추긴다. 『워킹 데드』와 같은 좀비 서사에서 인간은 좀비들에 둘러싸인 약자로 등장하지만 이 서사의 쾌락은 소위 약자의 생존을 위한 무차별적 폭력에서 출발한다. 좀비 서사의 인기는 강자의 폭력이 금지된 “도래할” 민주주의 사회에서 약자의 위치를 선점하여 안전하게 이 폭력의 사디즘적 쾌감을 느끼고 그 공포를 해소하려는 우리의 욕망을 드러낸다.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는 합의라는 법의 형식으로 그 모양새만을 가지고 있다. 이 형식에서 모든 시민은 평등하고 타자, 특히 약자라고 정의된 타자에 대한 폭력은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피해자 혹은 희생자의 위치를 점유해야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지켜야한다는 폭력의 정당방위가 성립된다. 이 정당성은 이제 목소리를 잃어버린 타자인 좀비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예루살렘 공성전』이 쓰이고 가공할 인기를 누렸던 이 시기에 영국에서는 사실상 유대인이 살고 있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유대인이라는 타자는 다시 살육 대상으로 호출된다. 요크의 학살이 일어난 배경에는 종교적 의미의 반유대 정서보다는 경제적 의미의 반유대 정서이다. 이 학살에서 “구세주의 복수”라는 종교적 대의명분 아래 비열한 경제적 의도가 숨어있다. 『예루살렘 공성전』의 인기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다시 살펴봐야 한다. 전염병, 반란, 기나긴 전쟁, 왕권의 교체 등 종말적 상황을 목도한 사람들에게 이 공포를 투사할 타자는 간절히 필요했다. “예수의 복수”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그들을 둘러싼 공포를 전이하고 그 공포와 함께 처리해야 할 대상이 필요했다. 이 명분은 공성전의 잔인함이 쾌락으로 치환할 때 발생하는 윤리적 거부감을 제거한다. 종교와 법 사이의 교환이 가능했던 중세 영국에서 “구세주의 복수”는 법으로 기능하며 타자의 살해한다는 비윤리적 쾌감에 정당성을 보장한다. 이 정당성이 아니었다면 기독교의 박애와 병치하기 불가능한 극단의 폭력은 쾌락의 대상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처럼 법의 이름으로 호명된 부재의 유대인들은 기꺼이 폭력의 대상이 되어준다. 법과 부재의 타자의 관계, 그리고 관계가 가능케 한 폭력의 사디즘이 『예루살렘 공성전』의 인기를 설명할 수 있다.
    이 사디즘은 좀비 서사를 설명하는데도 유용하다. 좀비 서사의 경우 독자/시청자는 이야기의 전개보다 인간이 좀비를 처치하는 방식에서 쾌감을 느낀다. 좀비 서사의 배경이 되는 좀비로 인한 종말은 서사 자체를 단순하게 만든다. 문명이 기능하지 않는 세계에서 무수한 좀비와 그들에게 포위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생존을 확보해야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거의 유사하게 진행된다. 이 단조로움을 해소하는 것은 서사 마다 다른 좀비의 특성을 내세우고 그것을 이용해 인간이 그들을 처치하는 방식의 변화이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동원한 좀비 살육은 좀비 서사가 새로움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 할 수 있다. 『예루살렘 공성전』과 『워킹 데드』가 공통된 사디즘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법”의 이름으로 “기독” 로마인의 공격성이 정당성을 얻었던 『예루살렘 공성전』과 달리 『워킹 데드』에서 인간은 법이 아닌 희생자 코스프래(コスプレ, cosplay)를 통해 잔인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도래하는 민주주의는 합의라는 법의 형식으로 그 모양새만을 가지고 있다. 이 형식에서 모든 시민은 평등하고 타자, 특히 약자라고 정의된 타자에 대한 폭력은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피해자 혹은 희생자의 위치를 점유해야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지켜야한다는 폭력의 정당방위가 성립된다. 『워킹 데드』에서 법의 집행자인 경찰 릭은 법이 사라진 좀비 종말의 시대에도 여전히 그 정당성을 획득하려 한다. 이 정당성은 이제 목소리를 잃어버린 타자인 좀비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예루살렘 공성전』에서의 강자의 약(타)자에 대한 일방적이고 노골적인 폭력은 이제 기능할 수 없다. 신학적으로 주어진 법, 그리고 정당성은 이제 합의에 의한 형식적 민주주의로 인해 부정되었지만, 나를 둘러싼 종말론적 위기와 공포는 여전히 그 두려움을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 해소하려는 욕구를 부추긴다. 좀비 서사의 인기는 약자의 위치를 선점하여 안전하게 이 폭력의 사디즘적 쾌감을 느끼고 그 공포를 해소하려는 우리의 욕망을 드러낸다.
    피포위 공포, 중세의 공성전과 좀비 서사는 우리가 사는 이곳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용산 참사, 쌍용차 해고자, 그리고 세월호 광화문 광장의 시위 같은 현재의 문제는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이 진압하려는 노동자, 세입자, 시위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하는지 드러낸다. 공권력은 그것이 마치 폭력의 시위대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희생자인 것처럼 무자비하게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약자인 시민을 탄압했다. 이런 사회적 문제는 피포위 공포, 법, 국가, 그리고 그 안에서의 타자로 재구성된 시민에 대한 연구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우리가 처한 이 문제를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바탕을 통해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리라 기대한다.
  • 색인어
  • 좀비, 공성전, 피포위 공포, 법, 타자, 사디즘, 폭력, 구세주의 복수, 『예루살렘 공성전』, 『워킹 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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