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서가 창립한 인문사는 창립 직후부터 서적 출판을 활발히 진행했다. 1938년에는 『소화14년판 조선작품연감』(편집부, 3월), 『소화14년판 조선문예연감』(편집부, 3월) 『역대조선문학정화 권상』(이희승 편, 6월), 『문학과 지성』(최재서, 8월), 『해외서정시집』(최재서 외 ...
최재서가 창립한 인문사는 창립 직후부터 서적 출판을 활발히 진행했다. 1938년에는 『소화14년판 조선작품연감』(편집부, 3월), 『소화14년판 조선문예연감』(편집부, 3월) 『역대조선문학정화 권상』(이희승 편, 6월), 『문학과 지성』(최재서, 8월), 『해외서정시집』(최재서 외 역, 8월), 『신정언 명야담집』(신정언, 10월), 『찔레꽃』(김말봉, 10월), 『팔도풍물시집』(임학수, 11월)을 발간했고, 1939년에는 『대하-전작장편소설총서1』(김남천, 1월). 『지나소설집』(박태원 역, 4월). 『표준지나어회화』(이상은, 7월), 『화분-전작장편소설총서2』(이효석, 9월), 『전선시집』(임학수, 9월), 『인문평론』 창간호(10월), 『촛불』(신석정, 12월), 『축제』(장만영, 12월) 등을 출간한다. 1940년에는 『대지-세계명작소설총서1』(김성칠 역), 『사랑의 수족관』(김남천)이 출간되었고, 총 4권으로 이루어진 『조선현대시집』(편집부), 『현대시론집』(김기림), 『민요-전작장편소설총서3』(유진오), 소화 16년도 『조선작품연감』 및 『조선문예연감』(편집부) 출간을 예고했다.
인문사의 ‘전작장편소설(全作長篇小說)’ 총서는 1차본 『대하』와 2차본 『화분』의 뒤를 이어 유진오의 『민요』, 채만식의 『심봉사』, 이기영의 『해녀』가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소설들의 출간은 1941년 조선 문단이 ‘국민문학’ 체제로 재편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이 소설들은 장편소설 ‘개조’를 향한 출판사와 작가, 비평가의 협력의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인문평론』은 전작장편소설은 현상모집을 통해 재생산 장치를 마련하였으며, 김남천, 이효석, 유진오의 전작장편소설, 그리고 학예사에서 발간된 이들의 단편집에 관한 비평을 모집함으로써 논의의 확장을 꾀했다. 심사자로는 최재서, 김남천, 이원조, 임화 등 당시 세대론 구도에서 ‘삼십대’이자 ‘기성세대’로 지칭되는 주역들이었다. 『인문평론』은 현상모집뿐만 아니라 장편소설에 관한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코너를 마련했다. 헉슬리, 토마스 만, 앙드레 말로, 앙드레 지드 등 서구 대작가의 장편소설에 관한 최재서의 「현대소설연구」 연재가 대표적이거니와, 김남천의 발자크 장편소설 연구와 장편소설 「낭비」 연재, 그 밖의 비평가들이 돌아가며 평필을 든 「장편소설 검토」 시리즈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인문사는 ‘세계명작소설총서’도 기획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조선에서는 ‘지나’의 해석과 전유를 둘러싼 문화정치가 의욕적으로 행해졌다. 당시 언론은 향후 ‘지나’와 일본, 그리고 조선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므로 인문사의 『대지』 번역은 단순히 화제성이나 대중성 때문에 착수된 것이 아니었다. 이 소설은 대중적 읽을거리에서 더 나아가 아시아적 정체성론, 농민문학론, 일본발 ‘흙의 문학’론 등과 연계되며 당대 비평 담론에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인문사는 연감을 발행했다. 연감은 한 해 동안 일어난 사실을 객관적으로 정리, 요약하여 보여주는 정기간행물로서, 보통 국가 주도로, 혹은 공인된 기관이나 협회의 이름으로 출간된다. 그런데 인문사는 일개 출판사로서 ‘연감’ 출판을 주된 기획물로 내세웠으며, 통계적 수치와 객관적 보고를 내세우는 문예연감과 분리하여 실제 텍스트 전문이 수록된 ‘작품’ 연감을 간행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행보를 보인다. 작품‘집’이 아닌 작품 ‘연감’이라는 명칭이 붙음으로써 수록된 텍스트에는 대표성과 권위가 부여되는데, 이 점에서 인문사의 작품 연감은 출판사 및 편집진, 집필진의 ‘입장’이 투영된 간행물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차적인 기록과 요약의 산물인 문예연감의 경우, 인문사가 조망한 ‘문예’의 편제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일본)문예가협회의 『文藝年鑑』은 식민지에서 발간된 연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비교 자료이다. 일본 문단의 규모를 반영한 일본문예가협회의 『文藝年鑑』은 풍부한 구성과 체제를 지니고 있었다. 이에 반해 1930년대 후반기까지 조선 문학자만의 단체나 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았던 식민지 조선 문단의 경우, 문예연감이라 할 만한 기록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1939년도에 조선문인협회가 조직되었으나 주지하듯이 이는 조선 문인의 자발적 의도에서 비록된 것이 아니라 제국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해 조직된 단체였다. 이와 같은 시기에 발간된 인문사의 『조선문예연감』은 여전히 조선(만)의 문단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조선(만)의 문학사 기술과 전승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