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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과 근대공원의 정체성 회복 과정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탈식민과 근대공원의 정체성 회복 과정 연구 | 201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수자(이화여자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5S1A5A2A01015072
선정년도 201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7년 10월 30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식민유산 청산과정에서 회복하고자 하는 문화정체성은 이미 ‘제국’이 부여한 성격이 혼재, 착종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것은 정체성 회복 과정의 첫 출발이 제국주의가 규정해 놓은 그 정체성을 ‘회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제국이 부여한 정체성이 이미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그 실체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창경궁은 1907년 식물원, 동물원, 박물관을 가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놀이기구가 있고 벚꽃놀이를 하는 오락, 유흥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이후 궁으로의 복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불완전하였다. 창경원이 궁으로 이름을 되찾는 것은 1983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이후 창경궁은 역사문화 학습의 공간으로 재구성되었지만 ‘완전한’ 복원은 진행 중에 있고, 창경궁의 역할로 제시된 것 증 하나인 현장학습장은 일제가 부여한 역할과 ‘유사한’면이 있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정체성 회복에 대한 연구는 일제가 근대 문명화의 전략으로 자행한 한국 문화 정체성의 균열이 탈식민 이후에도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였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일제는 식민 통치기간 동안 한국인들의 정신적 열등감을 부추기고 일본 자신을 선진, 근대문명국의 모델로 삼도록 하였고, 자신들이 한국을 근대화시켜주고 있다고 인식하도록 하는 등 궁극적으로 식민통치를 정당화하였다.
    근대화, 문명화의 전략 중 하나로 추진한 것이 근대의 발명품이라 불리는 ‘공원’의 조성이었다. 그러므로 식민시기 한국인들은 불완전하지만 근대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향유’하기 위해 오락공간이자 놀이공간인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근대문화를 즐기는 제국의 신민이 되어갔다.
    그러나 일제가 조성한 대표적인 근대공원인 창경원은 조선 정치와 조선왕실의 효의 상징공간인 궁을 오락공간으로 전락시킨 것이며, 대한제국의 군인 및 순국열사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장충단은 식민지에 영향을 준 일본인, 이토우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를 조성하거나 야유회,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조선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던 신성한 공간인 사직단은 사람들의 소풍, 놀이터로 변형시켰다.
    일제의 패전과 한국의 식민으로부터의 해방은 일제 식민지배의 종식과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절과 종식은 물리적인 정치체제나 식민권력에 국한되는 경향이 강하였다. 즉 식민의식과 근대경험 등 의식적 식민성의 단절은 쉽지 않았다.
    일제의 근대 문명화의 이름으로 추진된 문화적 침투는 오늘날까지 각 분야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현재까지도 청산의 과정 및 정체성의 회복은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1차년도는 식민권력의 상징공간 조성과 탈식민 이후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연구를 창경궁, 장충단 공원을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이 연구 주제는 그 성격을 분명히 드러나게 하기 위해 창경궁과 장충단을 하나의 논문이 아니라 각각의 독자적인 주제로 분리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제 1차년도 연구는 일제시기 왜곡이 가장 심했던 창경궁과 장충단의 근대공원화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식민권력의 상징성의 파괴 및 변형 내용, 의도 등을 면밀히 분석하였다. 그리고 해방이후 이들 공간의 탈식민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확립시키고자 하는 정체성의 내용과 그 의미를 분석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2차년도는 식민공간의 상징성 훼손과 탈식민 이후 공간 정체성의 복원과정이라는 연구를 사직단 복원을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2차년도 연구는 일제가 한국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했던 사직단을 훼손, 방치하고, 공원화하는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것이 해방이후 어떤 복원 과정을 가졌는지를 중점적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사직단의 정체성의 재구성 과정은 조선시기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했던 상징성으로의 복원을 넘어 사직단 주변의 주민들의 근대공원, 편의시설을 갖춘 공간으로의 성격을 유지하려는 요구와 맞물려 그 정체성 회복과정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직단의 정체성의 재구성 과정은 다른 공원들과 달리 다양한 ‘목소리’들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정체성이 모색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착종되고 균열된 문화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지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 영문
  • This article aims to analyze how the Japanese empire’s civilization strategy to justify the colonial rule of Korea caused ruptures in the recovery of the Korean cultural identity through the restoration of Changgyong palace, Jangchungdan and Sajik-dan.
    This study was carried out with the consideration of the fact that the identity of the cultural identity to be restored in the process of colonial heritage settlement is already mixed and confused with the characteristics given by the empire.
    This means that the first step of the process of identity restoration is to start from the ‘reconsider' of the identity defined by imperialism, and at the same time, we can access the substance properly about the identity already given by the empire in the process of restructuring its identity.
    Typically, Changgyeong-Palace was rebuilt in 1907 as a 'park' with a botanical garden, a zoo, and a museum. It is open to the public and has amusement facilities and amusement and entertainment venues for cherry blossom viewing. However, restoration to the palace after independence was not easy or incomplete. It was not until 1983 that Changgyeong-park regained his name as Palace. Although Changgyeong-Palace has been restructured as a space for learning of history and culture, the 'complete' restoration is under way, and the field workshops, which are presented as the role of Changgyeong-Palace, are similar to those given by the Japanese imperialists. Therefore, research on the restoration of identity has been a process of confirming how much power the Japanese imperialism played in the post - colonial period after the crack of Korean cultural identity that was imposed by the strategy of modern civilization.
    The Japanese imperialists ultimately justified colonial rule, encouraging the mental inferiority of Koreans during colonial rule, making Japan itself a model for advanced and modern civilized countries, and recognizing that they were modernizing Korea.
    One of the strategies of modernization and civilization was the creation of a 'park' called modern invention. Therefore, Koreans in the colonial period were incomplete, but in order to "enjoy" their identity as modern people, they became citizens of the empire enjoying modern culture, resting in the entertainment and playground parks.
    However, Changgyeogng-park, which is a typical modern park created by the Japanese imperialism, has transformed the palace as a symbol of Joseon politics and the royal palace of Joseon as an entertainment space. The Jangchungdan, which was established to honor the soldiers of the Korean Empire and the monarchy, has created as a space, Pakmun temple honoring Ito Hirobumi and also a space for picnics and sports events were held. In addition, the divine space, a sacred space for the welfare and well-being of Joseon, transformed into a picnic and a playground for people.
    The independence of Korea from of Japanese colonial rule meant the end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and the breakup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However, the disconnection and ending of colonial rule tended to be limited to the physical political system or colonial power. In other words, it was not easy to break conscious colonialism such as colonial consciousness and modern experience.
    It is not an exaggeration to say that cultural infiltration promoted in the name of the modern civiliz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s still present in various fields to this day, and the process of liquidation and restoration of identity are still in progress until now.
    Specifically, in the first year, research on the formation of the symbolic space of colonial power and the reconstruction of the post-colonial space was done simultaneously Changgyeong-Palace and Jangchungdang Park in a single paper. In order to clarify the character of this theme, this research was carried out by separating Changgyeong-Palace and Jangchungdang into individual themes rather than a single paper.
    In the first year study, the process of the modernization of Changgyeong-Palace and Jangchungdang, which had the greatest distortions in the Japanese imperialism period, and the destruction of the symbolism of the colonial power in the process and the contents and intentions of the changes were analyzed. And the analysis of the meaning and meaning of the identity that is to be formed and established through the post - colonization process of these spaces after independence.
    In the second year, research on the symbolic destruction of colonial space and restoration of spatial identity after post - colonization proceeded with the restoration of the resigned party. And also tried to analyze the processes of the Japanese colonialism that destroyed, neglected, and parked the Sajikdan, which was the role of the spiritual anchor in Korea, and examined the restoration process after liberati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해방이후 일제가 식민지 한국에서 ‘문명화’, ‘근대화’의 이름으로 조성한 ‘근대공원’, 대표적으로 창경궁, 장충단, 사직단의 정체성 회복 및 복원 과정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10년 이전부터 일본은 한국의 식민화 과정에서 ‘근대 문명화 전략’을 추진하였고, 그 내용의 핵심은 식민지민이 자국의 문화를 야만적인 것, 후진적인 것으로 인식하도록 하여 식민 지배를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실제로 식민주의의 힘은 단순히 복종하게 만드는 능력이라기보다 식민지민의 전근대적 문화와 제국주의 근대 문화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자신들의 문화가 얼마나 야만적, 후진적인가를 스스로 반추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일본은 이러한 식민주의 전략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 문명화의 전략 중 하나로 추진한 것이 근대의 발명품이라 불리는 ‘공원’의 조성이었다. 그러므로 식민시기 한국인들은 불완전하지만 근대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향유’하기 위해 오락공간이자 놀이공간인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근대문화를 즐기는 제국의 신민이 되어갔다.
    그러나 일제가 조성한 대표적인 근대공원인 창경원은 조선 정치와 조선왕실의 효의 상징공간인 궁을 오락공간으로 전락시킨 것이며, 대한제국의 군인 및 순국열사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장충단은 식민지에 영향을 준 일본인, 이토우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를 조성하거나 야유회,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조선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던 신성한 공간인 사직단은 사람들의 소풍, 놀이터로 변형시켰다.
    본 연구는 식민유산 청산과정에서 회복하고자 하는 문화정체성은 이미 ‘제국’이 부여한 성격이 혼재, 착종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것은 정체성 회복 과정의 첫 출발이 제국주의가 규정해 놓은 그 정체성을 ‘회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제국이 부여한 정체성이 이미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그 실체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창경궁은 1907년 식물원, 동물원, 박물관을 가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놀이기구가 있고 벚꽃놀이를 하는 오락, 유흥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이후 궁으로의 복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불완전하였다. 창경원이 궁으로 이름을 되찾는 것은 1983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이후 창경궁은 역사문화 학습의 공간으로 재구성되었지만 ‘완전한’ 복원은 진행 중에 있고, 창경궁의 역할로 제시된 것 증 하나인 현장학습장은 일제가 부여한 역할과 ‘유사한’면이 있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정체성 회복에 대한 연구는 일제가 근대 문명화의 전략으로 자행한 한국 문화 정체성의 균열이 탈식민 이후에도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였는지를 밝혀냈다.
    그리고 일제의 패전과 한국의 식민으로부터의 해방은 일제 식민지배의 종식과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절과 종식은 물리적인 정치체제나 식민권력에 국한되는 경향이 강하였다. 즉 식민의식과 근대경험 등 의식적 식민성의 단절은 쉽지 않았다. 특히 문화적, 의식적 측면에서 식민주의의 청산은 식민성의 내용, 범위 규정 등 경계를 선명하게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다. 일제의 근대 문명화의 이름으로 추진된 문화적 침투는 오늘날까지 각 분야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현재까지도 청산의 과정 및 정체성의 회복은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일제 식민권력의 문화 침탈의 내용과 그 깊이가 얼마나 깊고 다양했는지, 그리고 왜곡된 공간의 재구성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학문적, 사회적 기여도
    본 연구의 결과는 근대공원의 문화정체성의 복원과정과 정체성 확립을 규명하는 연구로 사회, 문화 분야에서 추진되고 있는 식민 청산 작업을 촉진하고 보완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해방이후 친일파 청산을 중요한 국가사업의 하나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정부 사업의 정책 방향에도 기여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의식적 차원에서 진행된 식민화 작업의 실상을 밝히는데 있어서도 유효한 연구 주제라 할 수 있다.

    2) 연구자 및 인력양성 방안
    본 연구는 한국근대 문화 및 일제강점기 문화침탈에 대한 기초연구로서 문화정체성의 복원과정에 대한 심화된 연구는 해당시기 연구자들의 연구 주제의식, 시대의식 등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연구와 문화해설 등을 진행하고 있는 학문 후속세대 및 문화해설사들에게 정확한 역사적 사실 등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3) 교육과의 연계활용 방안
    본 연구의 결과는 중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특히 일제 강점기의 일제의 침탈의 내용 및 올바른 역사인식을 교육하는데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식민권력에 의해 왜곡된 한국의 불완전한 문화정체성의 내용과 식민 청산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하여 교육현장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가치와 자긍심을 키워주는 자료로 적극 활용될 것이 기대된다.
  •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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