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군수(military logistics)’에 대응하는 민간의 기능을 ‘물류(logistics)’라고 부른다. 초기에는 군의 군수지원이란 대체로 칼, 창 등의 무기를 병사 개인이 직접 휴대하고, 식량이나 마초 등은 상당 부분을 현지에서 조달하였기 때문에 보급(supply)이나 군수( ...
‘군대의 군수(military logistics)’에 대응하는 민간의 기능을 ‘물류(logistics)’라고 부른다. 초기에는 군의 군수지원이란 대체로 칼, 창 등의 무기를 병사 개인이 직접 휴대하고, 식량이나 마초 등은 상당 부분을 현지에서 조달하였기 때문에 보급(supply)이나 군수(logistics)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전장이 멀고 들고 가야 할 장비의 무게가 병사의 몸무게를 훨씬 능가하면서 생산과 공급을 총망라하는 ‘병참’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여기에서 ‘병참술’, ‘병참선’, ‘병참기지’와 같은 단어들이 파생했다.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미래의 전쟁은 군수전, 즉 병참술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병참술은 세계적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분야, 세계적인 흐름이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과거의 구도 속에 머물러 있는 분야이다. 한국군은 지금까지의 전쟁에서 군수 관리 및 지원을 미국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독자적인 관리경험이 부족하다. 전장 환경과 전쟁 양상이 변화되고 있지만 군수 분야는 과거 전쟁들을 지원해 왔던 방식 그대로 작전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물량중심의 군수 관리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사정책의 방향이나 예산이 첨단 무기 개발에만 초점을 맞춘 한국군의 현실에서 병참술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전투 준비와 지속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병참술을 도외시하는 한 승리의 가능성이 요원하다는데 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식량을 풍부하게 확보하는 것”(Vegetius, 2.6)이라는 4세기 로마의 군사 전문가인 베게티우스, “군수품이 부족한 군대는 적과 무기를 맞대기 전에 이미 지고 있다”고 마키아벨리가 지적했듯이, 병참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요소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그 중요성이 강화되고 있지만 우리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었던 병참술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병참술의 중요성과 한국군의 병참술에 대한 경시를 인지, 각인시켜 강력한 한국군으로 거듭나는데 유익한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연구목표는 첫째, 수많은 군수품 중 철제 무구라는 하나의 품목을 중심으로 병참술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군대는 전투보다 굶주림으로 인해 파괴된다. 검보다 더 병사를 야만적으로 만드는 것은 배고픔이다”(Vegetius, 3.3)는 베게티우스의 말처럼 식량이 군수품에서 필수적인 품목이다. 하지만 전쟁의 기본 목표가 전투에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철제 무구 역시 중요한 군수품이다. 철은 군사력의 핵심이기 때문에 인류 문화에서 철의 사용은 문명의 발달과 제국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철기문화의 유입은 고대국가 형성에서 하나의 동인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농경발달, 잉여생산물 증대와 약탈, 인구증가와 압력, 권력독점과 전쟁 또한 철기문화의 유입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수품이라는 포괄적인 주제가 아니라 철제 무구라는 한 항목을 선택하여 병참술을 연구하는 것은 새로우면서도 시도해볼 만한 주제이다.
둘째, 병참술이라는 군사학의 주제를 지리학, 광산학, 환경학, 고고학, 역사학 등을 융합하여 풀어내려는 것이다. 철광석을 무구로 만들어 병사들의 수중에 전달하기까지의 전 과정에 관한 연구는 군사학이나 역사학과 같은 한 가지 학문의 영역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먼저 철광석 산지를 밝히고 이것을 채굴하는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리학, 광산학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다. 원래는 노천굴이었다가 철제 수요가 증가하면서 지하 광석을 채굴해야 하므로 기술적 수준이 있어야 했다. 가령 브리타니아의 딘 숲(Forest of Dean)에 있는 로마 시대 철광석 산지의 위치는 지하 15.2m, 깊이는 4.6m에 이르렀다. 또 가야의 김해 상동면 철산도 고대부터 개발된 곳이 많고, 자철광과 적철광의 광석은 잘 부서져서 원시적 제련로에서도 잘 용해되기 때문에 많이 이용되었다. 양산 물금철산, 마산 해동·양리·삼우리 등지의 철산도 알려져 있다.
철 소재는 철광석을 환원시켜 얻어진다. 환원반응이 가능하려면 이에 적절한 환원제와 높은 온도가 필요하므로 고대에는 제련로를 축조하여 그 내부에 목탄과 철광석을 함께 장입한 후 가열함으로써 제련작업이 수행되었다. 환원제인 목탄은 숲의 필요성을 제기하므로 영토 팽창과 숲의 황폐화를 연관 짓는다. 철기 유적에서 보이는 슬래그와 숯은 고고학적 연구에서 생산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재료이다. 철제 무구의 생산 과정이 지리학, 광산학, 환경학, 고고학 등과 관련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고학적인 유적지의 존재를 통해 철제 무구의 생산을 추정할 수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문헌사료는 부족하므로 타학문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