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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시에 나타난 ‘소[牛]’ 형상의 통시적 접근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한국 한시에 나타난 ‘소[牛]’ 형상의 통시적 접근 | 201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창호(원광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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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번호 2015S1A5A2A01014283
선정년도 201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7년 10월 31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한국 한시에 나타난 ‘소’ 형상에 대한 통시적 접근을 통해, 시기별 소의 형상이 중세적 세계관의 변화와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를 규명하고자 한 것이다. 1년차 '고려 ~ 조선 전기 한시에 나타나는 소[牛] 형상의 변화 과정과 그 의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본격적인 한시 창작이 이루어지기 전인 삼국시대 관련 기록에는 ‘소’가 다양한 분야에서 등장한다. 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내용을 통해 확인 가능한데, 백성들의 삶, 국가 정책, 군사 및 운송, 종교 및 언어생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걸쳐있다. 이는 소가 농사에 이용되고 생활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서, 노동의 원천이자 재산으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것과 관련이 있다. 한편 불교의 전래와 함께 불교 설화에서 소가 불법의 수행, 윤회 등의 설명 맥락에서 등장하며, 생태와 관련한 신이한 현상이 국가적 흥망성쇠의 조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소가 생활의 영역에서 정신, 관념, 문화의 영역으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조에는 농본적인 정치 체제가 갖추어져 간다. 봉사와 교서에서 농사 시기를 알리는 ‘土牛’가 언급되며, 칠석날 견우·직녀에게 제를 올렸다는 기록도 보인다. 소는 고려 전기의 자유로운 사상적 분위기 속에서 개성적인 이미지로 등장한다. 尹彦頤에 관한 기록이나 郭輿의 작품에서 불교적 인생관, 도가적 정신지향의 표현에 소가 한 요소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자연스러움’, ‘達觀’, ‘無拘束’, ‘不羈’ 등의 의미 계열 속에 소의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다. 중기를 지나면서 소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포착된다. 대표적인 예가 무신집권기에 활동했던 李奎報의 작품이다. 그는 소의 입장에서 소의 고통과 아픔을 대변하고 인간의 과욕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이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소’는 다시 목가적 정경의 구도 안으로 편입되고, 성리학 수용 이후 환로와 상대적 의미를 가지는 전원적 삶을 대변하게 된다. 한편 여말 새 왕조에의 협조를 거부하거나 은거를 택한 이들에게, 소는 自足이나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와 관련을 가지며 등장한다. 조선 왕조에 들어서면 출처 관념이 자리잡으면서 공간의 분화가 뚜렷해진다. 환로에 있는 이들에게 전원은 ‘멀고’, ‘그립고’, ‘돌아가야 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환로/전원의 구도나 전원에의 동경으로 귀결되는 시상 전개는 관습화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부 작품에서는 시인의 문제의식이나 처지의 문제가 개입되면서 그러한 경향을 극복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成侃의 시에 등장하는 牧牛는 ‘태고적 순수성’을 의미하며, 金時習의 시에서는 ‘일상의 권역에서 누리는 평온한 삶’을 상징한다. 한편 환로와 대척적인 지점으로서의 전원의 성격이 모호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성종 조 문사들에게 두드러졌던 낙관적 세계관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 모순이 누적되고 政爭이 격화되면서, 소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도구로 등장한다. 이것은 陶弘景의 二牛 故事와 관련을 가진다. 李滉은 도로 위의 분망한 소와 초야에서 한가함을 누리는 소의 대비를 통해, 자신이 지향했던 退隱의 삶을 넌지시 내보이고 있다. 林悌의 글에 제시된 鄭碏의 소 그림도 은거의 가치를 지지하는 내용이다. 이들에게 ‘소’의 제시는 세상에 대한 완곡한 거리두기이자 거절의 의사였다. 이우 고사의 전통선상에서 沈義의 <畫二牛賦>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긍정 일변도로 수용되던 이우 고사의 소가 산중재상으로 탐심을 감추고 있던 도홍경에게 이용되었음을 증명한다. ‘소’의 형상이 정치 현실과의 연관 속에서 부단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년차 '조선 후기 한시에 나타난 ‘소’의 형상과 그 의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소를 둘러싼 환경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소는 여전히 노동력의 원천으로서 ‘돌아가야 할’ 곳인 전원의 중심에 있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사건은 소를 더 이상 안온한 전원 풍경 속의 일부로 머물러 있지 않게 했다. 특히, 임진왜란 등의 전란, 상업경제의 발달, 사대부 계급의 분화, 17세기에 극성했던 우역, 농우의 도살 등은 ‘소’에 관한 관념을 변화시켜 갔다. 조선 후기 한시에 나타난 ‘소’의 형상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 騎牛의 흥취와 시대의 陰影이다. 기우는 후기에 들어와 전란 등 체험과 결부되면서, 평온함을 바탕으로 전원적 일상의 소중함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쟁의 격화와 함께 선택한 은거의 삶에서 志趣의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명청 교체기 崇明排淸의 명분을 표방하는 맥락에서 ‘소’라는 상징을 활용하기도 한다. 둘째, 소의 소유의 문제와 사대부 분화의 한 형상이다. 임란 시기 사대부의 시에서 소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정서 반응을 드러낸 시가 보이나, 이것은 전란기의 피난이나 移居 등 불안정한 삶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기로 접어들면서, 여러 작품에서 실제로 農牛를 소유하지 못해 농사에 어려움을 겪는 영락한 양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셋째, ‘착취·우역·도살과 소를 바라보는 다층의 시선’이다. 많은 작품은 농사나 관청의 노역, 상업적 이욕에 동원되는 소의 처참함과 함께 인간의 비정함·이기심을 부각한다. 또한 소의 도살을 바라보면서 도살로 인한 농우의 부족이 농경의 근간의 와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깊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한편 牛疫을 다룬 시에서는 우역의 확산이 곧 농사의 폐기라는 농촌 전체의 위기로 작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 전기의 소가 전원적 이상향을 대변하고 퇴은의 상징으로 쓰이는 등 관념적 의미를 가진다면, 후기의 소는 그러한 특성을 일부 유지하면서 변화하는 사회의 다단한 맥락과 관련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즉 농사의 범위를 넘어 도구적 역할이 가중되고 욕망의 대상이 되어 가는 한편, 그것에 비례하여 우려와 반성의 태도를 환기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는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 영문
  • (1년차)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changes and meanings of the image of the cow in Hanshi written during the Koryo and Early Joseon Dynasties. The cow appears in various records about the period of the Three Korean Kingdoms before Sino‐Korean poems were created actively. Such records can be obtained mainly from Samguksagi and Samgukyusa, and they are related to a large variety of areas including people’s lives, national policies, military, transportation, religion, and language life. This is the consequence of the fact that the cow was used in agriculture and incorporated into people’s daily living and, as a result, it was treated as an important source of workforce and property. Particularly with the import of Buddhism, the cow appears in Buddhist stories in the context of explaining Buddhist doctrines and practices such as transmigration. This suggests that the cow was advancing gradually from the domain of daily living to the domains of spirit, idea, and culture. The cow emerges with a characteristic image in the liberal ideological atmosphere in the early Koryo Dynasty. In the record about Yoon Eon‐yi (尹彦頤) and in Gwak Yeo’s (郭輿) works, we can see that the cow melted naturally as an element into the expressions of the Buddhist view of life and Taoist spiritual orientation. The image of the cow is associated with meanings such as naturalness, far‐sighted view, non‐restraint, and mental freedom (達觀, 無拘束, 不羈). Through the mid period of the Koryo Dynasty, there were some changes in the view of the cow, but such changes did not bring forth a change in people’s perception of the cow. The cow was again incorporated into the frame of pastoral scene, and with the acceptance of Neo‐Confucianism, it represented a rural life in opposition to rising to a government position. To those who refused to cooperate with the emerging dynasty or chose retirement at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on the other hand, the cow emerges in association with their life attitude pursuing self‐sufficiency or mental freedom. With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there was a clear distinction between those who entered the government service and those retired from the service, and this was represented by spatial division. To those in the government service, the country is described as a place ‘far away,’ ‘yearned after,’ and ‘home to return in the future’ The development of poetic image to the plot of entering into/retiring from the government service or yearning for a rural life also shows the tendency of institutionalization. In some works, however, such a tendency is overcome as the poet’s awareness of problems or circumstances is involved. As social contradictions accumulate and political strives grew harsher, the cow appears as a means of political communication. This is related to Do Hong‐gyeong’s ancient story of two cows. To them, the presentation of the cow was an implicit expression of distancing from and rejecting the world. This suggests that the image of the cow continuously became an object of interest in connection to the political realities. (2년차) This article attempts to explain the shape and meaning of 'cattle' appearing in Hanshi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is a follow‐up to the examination of the changes in cattle shape and its meaning appearing in Hanshi from the previous Goryeo to Joseon period.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 environment surrounding the cattle shows a distinct difference. The cattle was still at the center of all the 'places to go back' as a source of labor power. However, some incidents prevented the cattle from staying as part of a stable‐mild rural landscape. Especially, the war of catastrophes such as the invasion of Imperial Japan, the development of the commercial economy, the differentiation of the Sadaebu rank and the cattle plague rampant in the 17th century, and the slaughter of the farming cattle came to change the notion of 'cattle'. The shape of 'cattle' appearing in Hanshi in the late Joseon can be approached from three major aspects. First is the attraction of the riding cattle and the shade of the age. The riding cattle in the late Joseon period were associated with the experience of warlords, and they played a role of evoking the preciousness of everyday life based on serenity. They also appeared as a symbol of will and taste (志趣) in the life of the Joseon hermits along with the intensification of the struggle. On the other hand, during the period of replacing Ming with Qing, the symbol 'cattle' was used in the context of serving the Ming Dynasty and denouncing the Qing Dynasty (崇明排淸). Second, it is a matter of possession of cattle and a form of Sadaebu diversion. During the Imjin Invasion period, poems showing the emotional response to the lack of cattle in the poems of Sadaebu were seen, but this seems to be related to the unstable life such as evacuation or migration in war. In the late Joseon period, it can be seen that there were the fallen Yangban in various works suffering from farming difficulties due to the inability to actually own farming cattle. The third is 'exploitation‐cattle plague‐slaughter' and a multi‐layered gaze looking at the cattle'. Many works emphasize the heartlessness and selfishness of human beings, along with the cattle drowning in farming, the labor of government offices, and commercial desires. Also, looking at the slaughter of cattle, they also expressed deep concern that the lack of farming cattle due to slaughter could lead to the disintegration of the root of agriculture. On the other hand, poems depicting the cattle plague emphasize that the proliferation of the cattle plague can act as a whole rural crisis, which is the abolition of farming. If the cattle in the early Joseon represent an idiosyncratic utopia and are used as a symbol of retirement, then the cattle in the late Joseon may be related to the multifaceted context of a changing society while maintaining some of those characteristics. In other words, beyond the scope of farming, the instrumental role is increased and becomes the object of desire, and it can be seen that it conveys the attitude of concern and reflection in proportion to it. In this process, the 'cattle' are becoming more realistic and concret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한국 한시에 나타난 ‘소’ 형상에 대한 통시적 접근을 통해, 시기별 소의 형상이 중세적 세계관의 변화와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특히 ‘소’ 형상과 관련된 목가적 이상향, 전원적 삶의 건강성이 어떻게 한 형상으로 집약되고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른 측면에서는 농업생산에 기반을 두었던 사대부 사회의 경제적 안정, 여유와 일락, 귀의처․이상향의 설정과 그 해체 과정에 관한 핵심 제재로부터의 접근이기도 하다. 총 2년의 연구 결과를 년차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년차 고려~조선 전기: 소는 고려 전기의 자유로운 사상적 분위기 속에서 개성적인 이미지로 등장한다. 尹彦頤에 관한 기록이나 郭輿의 작품에서 불교적 인생관, 도가적 정신지향의 표현에 소가 한 요소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자연스러움’, ‘達觀’, ‘無拘束’, ‘不羈’ 등의 의미 계열 속에 소의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다. ‘소’는 성리학 수용 이후 환로와 상대적 의미를 가지는 전원적 삶을 대변하게 된다. 한편 여말 새 왕조에의 협조를 거부하거나 은거를 택한 이들에게, 소는 自足이나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와 관련을 가지며 등장한다. 조선 왕조에 들어서면 출처 관념이 자리잡으면서 공간의 분화가 뚜렷해진다. 환로에 있는 이들에게 전원은 ‘멀고’, ‘그립고’, ‘돌아가야 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사회 모순이 누적되고 政爭이 격화되면서, 소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도구로 등장한다. 2년차 조선후기: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소를 둘러싼 환경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소는 여전히 노동력의 원천으로서 ‘돌아가야 할’ 곳인 전원의 중심에 있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사건 - 임진왜란 등의 전란, 상업경제의 발달, 사대부 계급의 분화, 17세기에 극성했던 우역, 농우의 도살 등은 ‘소’에 관한 관념을 변화시켜 갔다. 조선 후기 한시에 나타난 ‘소’의 형상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 騎牛의 흥취와 시대의 陰影이다. 기우는 후기에 들어와 전란 등 체험과 결부되면서, 평온함을 바탕으로 전원적 일상의 소중함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쟁의 격화와 함께 선택한 은거의 삶에서 志趣의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명청 교체기 崇明排淸의 명분을 표방하는 맥락에서 ‘소’라는 상징을 활용하기도 한다. 둘째, 소의 소유의 문제와 관련한 사대부 분화의 한 형상이다. 후기로 접어들면서, 여러 작품에서 실제로 農牛를 소유하지 못해 농사에 어려움을 겪는 영락한 양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셋째, ‘착취·우역·도살과 소를 바라보는 다층의 시선’이다. 많은 작품은 농사나 관청의 노역, 상업적 이욕에 동원되는 소의 처참함과 함께 인간의 비정함·이기심을 부각한다. 또한 소의 도살을 바라보면서 도살로 인한 농우의 부족이 농경의 근간의 와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깊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한편 牛疫을 다룬 시에서는 우역의 확산이 곧 농사의 폐기라는 농촌 전체의 위기로 작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 전기의 소가 전원적 이상향을 대변하고 퇴은의 상징으로 쓰이는 등 관념적 의미를 가진다면, 후기의 소는 그러한 특성을 일부 유지하면서 변화하는 사회의 다단한 맥락과 관련을 가진다. 즉 농사의 범위를 넘어 도구적 역할이 가중되고 욕망의 대상이 되어 가는 한편, 그것에 비례하여 우려와 반성의 태도를 환기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는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를 기반으로 다음과 같은 활용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1) 농본 유가사회의 핵심제재에 대한 통시적 접근을 통한 한문학사 내용 확충: 본 연구는 농경을 근간으로 한 전통시대의 세계관을 ‘소’라는 핵심 제재를 통해 들여다 본 작업이다. 추출된 성과는 주제나 개념에 의해 정리된 기존의 성과에 현장성, 구체성을 가미할 수 있을 것이며, 한문학사의 실제적인 이해를 위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2) 한시 작품과 『실록』 등 관련 자료의 관계성에 비추어 각 시기 사회상의 재조명 역할 기대: ‘소’라는 제재는 한시사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제재이지만, 사학, 농업사 분야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제재이다. 동 시기 한시작품과 『실록』 등 자료의 관계성 규명을 통해 한 시대의 실상 규명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조 조의 우역에 관한 한시와 『인조실록』의 기록은 당시 우역과 관련한 사회상과 문사들의 시각 등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 상보적인 역할을 해줄 것이다. 3) ‘소’라는 가장 인간화된 동물을 통해 변화해 가는 시대 속에서의 인간 정서의 다층적 측면의 발견과 활용: ‘소’를 바라보는 시각, 소에 대해 가지는 정서는 사회 변화에 함께 다채롭게 변화한다. 특히 조선 후기에 소가 도구화되고 욕망의 대상으로 변해갈수록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정서도 다층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정 제재를 중심으로 한 인간 정서의 사적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삶과 사상, 정서의 변화에 관한 효과적인 관찰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소’라는 핵심 제재의 연구를 기반으로 다양한 관련 주제, 제재 연구로의 확산 기대: 농가의 자산이자 노동력의 원천으로서의 소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양한 관련 주제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소와 관련을 가지는 불교, 도교, 은거, 불출사, 노동력, 우역, 도살, 운반수단, 牛禁, 쟁송, 흑우, 몰락 양반, 借牛, 상업경제, 老牛, 義牛, 酪漿 등은 그 자체로서 탐구할 만한 제재들이다. 5) 한시사 및 한문학사 이해의 다양한 경로 개발 필요성의 환기: 근래에는 한시사 및 한문학사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그 성과가 풍부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방법적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도구나 시각에 의해 조명되고 해석될 필요가 있다. 핵심제재 형상화에 대한 고찰을 통해 한시사 및 한문학 자료의 의미와 가치를 풍부하게 이끌어냄으로서, 향후 다른 접근 방법 및 경로 개발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6) 학교 현장 및 사회 일반의 관심을 이끌어 낼 한문학 내용 개발의 중요성 환기: 근래 사회 일반의 인문학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볼 수 있다. 현재 번역되고 제출된 성과 중에는 학교 현장이나 사회 일반의 관심에 부응할 만한 것들이 매우 많다. 이러한 자산들은 원래의 의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독서 대상에 맞게 가공될 필요가 있으며, 정리 방식에 대한 다채로운 개발도 필요하다. 아울러 핵심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흥미있는 제재들을 발굴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일반 대중이 한문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소 형상에 관한 성과는 한문학 자산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는 한편, 친근하고 흥미로운 내용 개발의 중요성을 환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7) 현 시대의 병폐, 문제점에 기여할 한문학적 내용 요소의 발굴에 일조: 학문으로서의 한문학은 복고적 취미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이월할 만한 가치를 발굴하여 현재화 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연구의 결과 제시될 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및 감정, 목가적 이상향과 관련한 정신적 균형 기제, 전원적 삶의 건강성의 환기 등은 도시적 삶의 폐해, 파편화된 개인의 삶에서 오는 여러 병폐의 해결에 관해 숙고할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소를 중심으로 한 전원적 삶의 건강성은,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 관계적 사고의 긍정적 복원 등에 대해서도 일정한 시사점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 색인어
  • 노동의 원천·재산, 불교적 인생관, 도가적 정신지향, 목가적 정경, 정신적 자유, 출처 관념, 정치적 의사표현, 소, 형상, 騎牛, 志趣의 상징, 전란, 착취, 우역, 도살, 상업경제, 비정함, 이기심, 도구적 역할, 욕망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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