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지금까지 서양미학에서 논의된 무관심성에 대한 연구 성과와 알아차림과 순수한 주의집중을 통한 명상 경험에 대한 논의를 비교함으로써 미적 경험과 명상적 경험의 유사성과 차이를 밝히고, 현대미술, 특히 디지털미술 등이 제공하는 새로운 미적 경험을 이해 ...
본 연구는 지금까지 서양미학에서 논의된 무관심성에 대한 연구 성과와 알아차림과 순수한 주의집중을 통한 명상 경험에 대한 논의를 비교함으로써 미적 경험과 명상적 경험의 유사성과 차이를 밝히고, 현대미술, 특히 디지털미술 등이 제공하는 새로운 미적 경험을 이해하는 기초개념으로서 ‘무관심성’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또한 무관심성의 교육적, 심리치료적 의미를 해명하여 교육학과 예술치료 분야에서 새로운 이론과 치료법 개발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근대미학의 핵심적인 개념인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 개념은 18세기 중반 영국 취미론에서 처음 제기된 이래 오늘날까지 일상적-실용적 경험, 학문적 경험, 도덕적 경험 등과 구별되는 미적 경험의 고유한 특징을 표시하고, 미적 경험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20세기 이후 현대미학 논의에서 무관심성을 미적 경험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강조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근대미학과 달리, 무관심성의 의미는 한정되고 평가절하 되거나, 심지어 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주관주의 미학의 영향 아래서 미적 경험과 예술경험이 오직 주관성에 근거하는 것으로 간주됨에 따라 무관심성 개념은 미적 경험을 일상적 삶의 관심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주관과 대상, 인간과 자연, 감상자와 미적 대상 사이의 상호관계를 간과하여 미적 경험의 총체성을 왜곡시킨 주범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또한 다다와 아방가르드 운동 등 현대예술의 새로운 경향들은 감상자에게 예술작품에 대한 무관심적 관조 이상의 새로운 태도를 요청했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하선규가 지적하듯이 “미적인 것의 수용적 측면만을 강조해 온 미적 경험의 개념의 재해석 혹은 미적 경험의 성격의 재규정을 요청”했으며, 특히 근대미학의 핵심적인 개념인 ‘무관심성’은 새로운 비판과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적 경험의 고유성을 설명하기 위해 여전히 ‘무관심성’ 개념을 견지하려는 학자들이 있는데, 메를로-퐁티, 뒤프렌느 등의 유럽학자들과 벌로우(E. Bullough), 스톨리츠(J. Stolnitz), 비바스(E. Vivas), 올드리치(V. Aldrich) 등 “미적 태도론(aesthetic attitude)”을 주장한 학자들이 그들이다.
하지만 미적 태도론은 ‘무관심성’ 개념에 함축된 개념의 불명료성이나 논리적 부적합성이 영미권의 분석미학 연구자들에 의해 지적되었고, ‘무관심성’ 개념이 기초하고 있는 역사적 지평과 사회문화적 조건들의 문제점들이 좌파적 관점을 갖는 사상가들에 의해 비판받았다.
그런데 최근, 철학과 심리학, 그리고 명상학 연구에서 무관심성 및 그와 유사한 심리상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취미판단이 감각적 쾌의 만족과도, 인식론적인 관심(개념), 도덕적인 관심(선)과도 무관한 성질을 가지는 “순수한 미감적 판단”이지만, 취미판단의 ‘무관심적’ 성질이 모든 종류의 관심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지고한 관심성을 내포한다고 한다. 칸트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은 관심의 결여나 결핍이 아니라 미적 대상에게 관심을 갖는 방법이며, 심지어 대상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상태라는 것이다.
안원현 역시 무관심성에 대한 칸트의 논의를 이어받아 이해 타산적 관심을 떠난 미감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 자율성이 이성적 존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본질이기 때문에 인간성의 본질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명상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무관심성과 몰입, 주의집중 사이에 상관성이 뚜렷하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는 몰입경험의 특징을 ‘자아의 몰입’, ‘자아망실’, ‘자의식의 상실’, ‘개별성의 초월’이라고 보았다. 어떤 행위가 완전히 몰입을 요구하면 ‘자기중심적인’ 고려는 상관이 없게 된다는 그의 주장은 몰입의 관조상태에서 의지와 고통이 사라지고 시간 개념이 사라져서 자신을 잊게 되며 전적으로 무관심적인 상태가 된다고 본 쇼펜하우어의 미학이론과 유사한 지점이 많다.
특히 최근 서구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마인드풀니스 명상은 변화하는 경험의 대상에 대하여 주의를 집중하되 어떤 선입견도 개입시키지 않고, 분별심 없는 순수한 주의를 기울임을 통해 사물과 자기 자신에 대한 알아차림을 증진시키고 있다. 불교의 정념수행을 기초로 하는 마인드풀니스 명상에서의 순수한 주의집중의 상태는 미적 경험의 상태와 유사하며, 특히 ‘무관심적인’ 상태와 일치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교육학 분야에서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몰입과 무관심성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무관심성은 미적 경험 뿐 아니라 명상적 경험, 나아가 몰입과 집중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는 특별한 심적 상태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