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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사열전」의 인물 형상화 양상과 기우만의 의병인식에 대한 고찰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호남의사열전」의 인물 형상화 양상과 기우만의 의병인식에 대한 고찰 | 2016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기림(조선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6S1A5A8019284
선정년도 2016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7년 10월 25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호남의사열전」은 기우만이 저술한 의병열전이다. 그는 1846년 장성에서 태어나 1916년에 죽었다. 노사 기정진 손자였고 기정진 사후 호남 유림의 종장으로 추대되었으며 처음으로 호남 의병 운동을 주도했고 부정척사 기치를 내걸로 항일적 행동을 견지했다. 1896년부터 1909년경까지 호남에서 의병으로 활약했던 12명의 전기를 서술하여 그들의 행적을 후대에 전하는 것을 자신의 책무로 여겼다. 열전은 3부로 구성되었다. 제1부분은 8명의 행적, 제2부분은 논찬, 제3부분은 4명의 행적이 실렸다. 1부에는 기삼연, 김용구, 김봉규, 박경래, 김준, 전수용(, 김영엽, 김익중의 행적이, 2부에는 논찬, 3부에는 김치곤, 박영건,정원숙, 성경수의 행적이 있다. 그는 의병을 민중의 삶을 안정시키고 민중과 결속하는 자, 조선에 대한 절의 및 항일 의지 실천하는 자, 의병간의 신의를 지키는 자, 의기와 울분을 담고 있는 자 등으로 형상화했다. 이를 통해 볼 때 기우만은 의병이란 민중과 함께하고 그들을 보호해야하며 시익(時益)이나 시세에 따라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올바르고 불의에 분노하는 정신을 내면화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병 인식은 무력 투쟁, 전투 성과와 연계하여 의병을 인식하거나 그것을 위주로 의병 전기를 쓰는 일, 의병 역사를 연구하는 경향에 대해 재인식을 하게 만드는 의의가 있다.
  • 영문
  • 「Honam Ouisa Yeol Jeon」 is a collection of biographies on patriotic soldiers by Ki, Woo-Man(1846-1916). Ki, Woo-Man was born in Jangsung in 1846, and is a grandson of Nosa Ki Jeong-Jin. After grandfather Ki Jeong-Jin died, Ki, Woo-Man inherited his spirit of Wijung Chuksa(defending orthodoxy and rejecting heterodoxy) and published an anthology. In 1896, he raised an army in the cause of national defense in Jangsung, but it was dismissed. In 1905 when Eulsaneukyak was concluded, he sent up an appeal to the throne to ask an order to punish Eulsaojeok(5 enemies in Eulsa Year).
    He wrote 「Honam Ouisa Yeol Jeon」 where achievements of patriotic soldiers in Honam were recorded for descendants. It recorded a total of twelve soldiers: Ki, Sam-Yeon, Kim, Yong-Ku, Kim, Bong-Gyu, Park, Gyong-Rae, Kim, Jun, Jeon, Soo-Yong, Kim, Young-Yeop, Kim, Ik-Jung, Kim, Chi-Gon, Park, Young-Geon, Jeong, Won-Sook and Sung, Gyong-Soo.
    In the 「Honam Ouisa Yeol Jeon」, he characterized the patriotic soldiers as follows: protecting civilians, resisting against Japan based on fidelity to their country, being faithful to other soldiers and protecting each other, and getting into rage against injustice with righteous spirit.
    The characterization is related to his thoughts on patriotic soldiers. That is, he thought that patriotic soldiers should be sympathetic with civilians, and stick together with them, and practice justice.
    His thought had an effect on the awareness of the next generations on them and his 「Honam Ouisa Yeol Jeon」 has meaning of literary history in that it shows diverse ways to write biographies on them. That is, this study suggests that his consciousness on patriotic soldiers and narrative style present problems to description of biographies on patriotic soldiers focusing on fighting power and result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기우만은 1846년 장성에서 태어났다. 한말 성리학자였던 기정진의 손자로서 그의 위정척사 정신을 계승하여 ‘부정척사(扶正斥邪)’를 강조했다. 1985년 민비 시해 사건, 단발령 포고,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한 일 등이 발생하자 1896년 2월 장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 명분은 국모 시해에 대한 복수와 왕을 보호였다. 고종의 선유에 의해 의병을 해산했고 삼성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다. 1905년 을사 늑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 때 정주에 있던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킬 일을 논의해왔지만 병으로 인하여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였다. 대신 을사 늑약의 부당함을 중국에 알리고자 압록강 근처까지 갔었다. 1906년에 을사 5적 암살 사주 용의자로 지목되어 일본 경찰서에 잡혀갔고 1907년 의병장 고광순 등과 논의한 일로 다시 잡혀 서울까지 압송되었다가 출옥했다.
    그는 의병으로서 실제적인 항일 전투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호남의 대표적 의병장이었던 기삼연이나 고광순 등과 의병 활동에 대해 논의하면서 호남 의병의 지도자로서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부정척사의 현실적 실천으로서 항일적 태도를 견지했고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1896년 의병 활동이 좌절된 후 그 과정을 기록하고 부록으로 임진난 때 의병으로 활약했던 이들의 행적을 기록하고자 했다. 기우만은 구한말 당시 상황을 임진왜란과 곧잘 비교했다. 그는 임란과 을미사변에 대해 항거한 사적들은 항일 의식 및 항일 투쟁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첫째, 민간인과의 공감 및 결속을 중시하는 의병관을 보인다는 점이다.
    는 민간인 삶을 보호하고 안정시키는 의병을 의병으로서 인정했다. 그에게 의병의 전투나 전과(戰果) 등은 민간인 삶을 안정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이었다. 전투는 일본이나 일본편에 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들에 대한 투쟁은 적을 제거하여 조선의 국권 및 당시 조선인들의 삶을 안정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둘째, 정의(貞義)-곧고 올바름- 정신의 고유함과 그 실천을 강조하는 의병관을 드러내고 있다.
    정의는 곧고 올바른 것을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곧고 올바른 것은 상대적이다. 조선시대 정의는 유교적 윤리 강령이라고 할 수 있다. 기우만에게 있어서도 정의는 국가 및 임금에 대한 절조, 충심, 동료간의 신의 지키기, 불의에 대해 분노하기 등이었다. 그리하여 이런 의식을 본래부터 갖고 있음을 중요하게 여겼다. 의병 조력자로 활약했던 김치곤, 성경수, 박영건 등에 관한 서술에서도 그들의 ‘의로운 기상’이 본래부터 있었음을 빠뜨리지 않았다. 의병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정신이 불의에 대한 분노임을 보여준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거나 당시 나이 어린 생존자까지도 의병으로 규정하는 의병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즉 그들은 ‘곧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내면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 불의-곧고 올바르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를 드러내 불의를 제거하는 실천을 몸소 보여주었다. 이에 기우만은 그들이 불의를 제거하고자 하고 신의를 지키려는 마음을 드러내는 행적을 위주로 서술함으로써 의병들의 정신적 무장을 강조하는 의병관을 보여주었다.

    셋째, 의병 조력자의 의미를 부각하였다는 점이다.기우만은 의병 후원활동까지 의병 활동으로 규정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의식상 전투 의병들과 다름 없음을 강조하며 그들의 후원활동을 적극 서술하였다. 그럼으로써 전투 의병이나 의병장을 ‘의병’으로 규정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후원자로서의 의병관을 보여주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첫째, 「호남의사열전」은 의병열전으로서 한국독립운동사의 한 영역이다. 독립기념관 설립을 계기로 한국독립운동사 관련 자료 수집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며 연구 성과도 빠르게 증가하였다. 그 동안 호남 의병에 관한 연구 결과도 많이 축적되었다. 이런 연구 현황 속에서 「호남의사열전」에 대한 본 연구는 기존의 의병활동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둘째, 지역 인물사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 본 연구는 호남의 의병 모습 또는 호남인의 의병 인식에 관한 연구이다. 이런 면에서 본 연구는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 하나는 호남 인물이며 그 가운데서 의병이라는 인물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호남의사열전」은 호남이라는 비교적 큰 범위 지역의 인물들을 모아 놓은 열전이지만 이 속에서도 나주(김영엽), 임실(전수용), 장성(기삼연) 등 더 작은 지역 인물로 나뉜다. 이들의 성향에 대한 세밀한 연구를 통해 지역 인물사 연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 연구는 기우만의 의병 관련 업적 및 의병에 대한 인식을 밝혀 줌으로써 호남 및 장성 지역 인물사 연구에 활기를 띠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지역 문화 콘텐츠 생산에 활용하기에 적합하다.본 연구는 이 방면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나는 본 연구가 각 인물 형상에 대한 내용을 제공하므로 각 지역 인물에 관한 콘텐츠 제작에 이용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의병 활동이 펼쳐졌던 공간-지역을 중심으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에 활용하는 것이다.고도막, 대치, 광주의 광산, 영광, 영산포, 무장, 고창, 담양 금성산, 장성 송치산과 월반 장터, 담양 추월산, 어등산 등은 「호남의사열전」에 올라있는 인물들이 일본군과 전투했던 장소이다. 현재 이들 장소에는 의병 관련 콘텐츠들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본 연구는 이 장소들에서 의병활동을 발굴하는 데에 활용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지역-장소들이 의병활동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의미화’하는 데에 필요할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공간 중심의 의병활동 문화 콘텐츠를 창작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넷째, 역사 교육 및 윤리 교육을 위한 스토리텔링화 및 매체 제작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호남의사열전」은 자료 자체가 역사적 사실 및 인물, 인물의 의로운 행적을 보여준다. 스토리는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실감나게 만들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어떤 추상적인 개념들을 구체화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를 테면, 항일정신, 동료와의 신의, 불의에 항거하는 의로운 기상, 항일 투쟁 등은 그 자체로 실제감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스토리는 이러한 개념이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현실감과 생동감을 전해주며 그 과정에서 추상적인 개념을 정립하게 하는 힘이 있다. 교육 또한 스토리 활용이 유효한 점이 많다. 따라서 역사 및 윤리 교육을 할 때 의병들이 실제 행했던 행적, 투쟁 사실들, 투쟁을 위한 고난, 동료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수행했던 것들을 스토리로 전환하여 ‘이야기 들려주기’ 방식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런 점에서 교육용 스토리를 구성하기 위한 토대 자료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 이야기를 통해 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인지할 수 있고,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한 교육자료 매체- 동영상, 문자 텍스트, 이미지-를 창작하는 데에 그 구체적인 콘텐츠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스토리가 가진 감화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의병 문학사 및 전기 문학사 영역을 확충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현재 한국 문학사에 있어서 의병 관련 문학 연구는 기타 문학 범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나름대로 의병에 대한 관심은 꾸준하였다. 의병들의 우국 및 울분을 토로한 한시, 의병 투쟁을 위한 가사, 의병관련 설화, 의병들의 격문, 의병 실기 등의 방면에서 연구되었다. 그러나 의병 관련 전기물, 열전물 등에 대한 연구 성과는 상대적으로 미비하다. 이는 자료 발굴이 저조한 데 기인한다. 발굴, 연구된 것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조희제의 󰡔염재야록󰡕 과 송상도의 󰡔기려수필󰡕, 뒤바보의 󰡔의병전󰡕 등이다. 현대에 들어와 의병들의 행적을 모아 놓은 자료들도 있으나 그것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도 미비한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호남의사열전」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면서 한편으로 ‘의병’을 문학적으로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가에 대해 주목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 연구는 의병을 다룬 문학사 및 전기문학를 확충하고 재구성하는 데에 충분한 자료로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호남의사열전」, 기우만,의병열전, 기삼연, 김용구, 김준, 전수용, 김영엽, 김치곤, 박영건, 정원숙, 성경수, 의병열전. 기려수필, 염재야록, 호남창의회맹소,박도경, 어등산 전투, 남한대토벌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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