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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 한국 근대지식의 대중화 과정에 대한 고찰: 중등수학 학습서의 번역을 사례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해방 전후 한국 근대지식의 대중화 과정에 대한 고찰: 중등수학 학습서의 번역을 사례로 | 2016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노상호(이화여자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6S1A5A8019508
선정년도 2016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7년 10월 23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근대수학의 전파와 재정립은 다양한 지적 움직임과 요인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루어졌다. 일본인 수학자 타카키 테에지는 독일 괴팅겐 수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동경제대 수학과의 권위자로 자리매김하였다. 타카키가 배워온 괴팅겐의 수학은 기존 베를린대학의 순수주의에 반기를 들고 수학을 보다 융합적인 학문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 대표적인 학자들은 힐베르트와 클라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등수학의 시도는 식민지 조선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조선인 학생들은 보통학교, 고등보통학교에서 산술, 대수, 기하로 나누어진 형태로 공부하였고 해석학 등 고등수준을 배울 수 있는 학교는 연희전문 등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최윤식과 같은 수학도들은 일본에 가서 유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귀국한 조선인 학자들은 한글로 교육을 하거나, 교재를 편찬하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수학은 식민지 조선과 큰 간극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였다. 전시체제 교육은 이공계 인재 양성과 전시 공업화의 필요라는 상황에서 기존과 다른 이공계 중시, 이과교육을 시도하였다. 경성제국대학 내에 이공학부가 신설, 1941년부터 입학생을 받은 것도 이와 같은 전시체제의 수요와 관련되었다. 이 때 소위 새로운 이과교육은 ‘수학교육개량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대수, 기하의 분과주의적 교육을 없애고 통합적 교육을 지향하였다. 특히 방정식과 함수의 교육은 수학교육의 핵심적인 위치로 자리매김 되었고 수학은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 정신”의 함양을 위한 수단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전시체제 수학교육은 1941년부터 식민지 조선에도 적용되었고 해방 이후 대학에 진학했거나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이미 이런 형태의 수학교육을 받았던 집단이었다.
    해방 이후 수학교육은 상당한 기간 모호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 미군정은 수학교육의 방향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여력이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점령지 교육은 민주주의 교육과 반공교육에 초점이 두어졌고 수학과 과학교육은 대체로 한국인 학자들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미 오랜 기간 일본어와 일본교재로만 공부를 해왔던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라는 논의는 거의 없었고 학생들도 일본교재를 그대로 사용해서 공부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런 무질서한 상황에서 점차 지적인 권위를 세워간 인물들은 식민지 교육을 받은 최윤식과 이임학 같은 지식인들이었다. 특히 이 두 수학자는 미국 수학교재를 번역, 소개하면서 대중적인 수학서를 발간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특히 최윤식은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이끌면서 식민지 수학교육을 ‘탈식민지’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는 1941년 전시체제의 ‘수학교육개량운동’과 유사한 논리에서 함수교육과 통합적 수학교육을 지지하였다. 그는 괴팅겐대학의 수학자 클라인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분과주의적, 순수주의적 수학과의 단절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다. 그는 새롭게 대중적인 교육과정으로 재편될 수학교육이 대수와 기하, 공간과 운동을 통합할 수 있는 함수교육 위주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구상은 1948년부터 출판된 다양한 학습서, 대중적 참고서를 통해서 학생독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전파되었다. 물론 그는 전시체제 수학교육을 반성하고 식민지 수학교육이 갖고 있었던 오래된 간극을 어떻게 해소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많은 용어들은 그대로 차용되었고 당연시 되었다. 따라서 수학의 경우, 탈식민지화(decolonization)는 식민지 시기 지식의 권위를 오히려 더욱 공고히 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말았다. 따라서 이임학과 최윤식을 논할 때 이러한 과제들을 후대에 남겨두었다는 과(過)와 해방 후 혼란한 상황 속에서 수학교육의 체계화와 대중화에 공헌했다는 공(功)은 함께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 영문
  • Math education of South Korea went through remarkable changes after its independence in 1945. Japan learned modern math from Germany, but it did not share the most advanced mathematical research and pedagogy with its colony, Korea. Japanese mathematician Takaki Teiji studied at University of Göttingen where he met David Hilbert and Felix Klein. Mathematics at Göttingen was opposed to purism of Berlin and instead tested a possibility of integrated and applied mathematics under the leaderships of Hilbert and Felix. Returning to the Tokyo Imperial University, Takaki educated many young students including a Korean student named Ch’oe Yun-sik. However, the colonial math education remained static in old divisions of arithmetic, algebra, and geometry until the outbreak of WWII. Koreans who wanted to learn advanced math should go abroad to Japan or the United States. When WWII started, the colonial math education was reformed to integrate algebra and geometry by emphasizing functional skills. Also, I would like to argue that post-1945 Korean mathematicians led by Ch’oe Yun-sik continued the wartime reform. When Koreans did not have any textbooks in Korean on math, and when many students already had studied math in Japanese, the post-liberation leaders in math chose to maintain the wartime curriculum and Japanese translation. Ch’oe Yun-sik in particular understood that the wartime reform was well fit into “Klein’s reform”. Based on the belief, he made efforts to make new textbooks in Korean for Koreans, placing the functional skills at the center of math education. Although he paid little attention to the meaning of ‘de-colonization’ and kept many colonial legacies in education, his contribution to the popularization of new math education should be assessed with his limit.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한국의 수학교육은 1945년 해방을 전후로 큰 변화를 겪었다. 일본은 독일로부터 근대수학을 배웠지만, 식민지 시기 조선은 오랫동안 근대수학의 변방으로 남아있었다. 일본수학자 타카키 테에지는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수학하면서 힐베르트, 클라인 등 괴팅겐의 수학자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괴팅겐의 수학은 베를린의 순수주의에 대항하면서 보다 융합적이고 응용적인 학문을 지향하였다. 동경제대로 복귀한 타카키는 오랜 동안 학생을 지도하였고 조선인 학생으로서는 최윤식이 처음으로 동경제대 수학과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식민지 수학교육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새로운 실험이나 변화 없이 산술, 대수, 기하의 체제를 유지하였고 고등수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일본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야만 했다. 1941년 소위 “수학교육개량운동”이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함수교육을 중심으로 대수와 기하를 통합한 이과교육이 제창되었고 최윤식 등 해방 후 수학교육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전시체제 수학교육을 계승하였다. 한국어로 만든 교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한국어로 공부를 한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많던 상황 속에서 해방 후 수학교육의 대중화는 전시체제의 커리큘럼과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최윤식은 신수학교육을 클라인의 수학철학으로 이해했고 함수교육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수학교재의 제작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다. 비록 최윤식은 ‘탈식민지’라는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많은 일본식 용어와 방식을 그대로 잔존시켰지만 수학교육의 대중화와 체계화를 이룩했다는 그의 공헌은 과와 함께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에서 연구자는 1945년을 전후로 한 시기 식민지 조선의 수학교육이 어떻게 해방 후 새로운 변화와 대중적 확산을 이루었는지를 고찰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서 연구자는 최윤식, 이임학 등 식민지 출신의 조선인 과학자들이 해방 전과 후를 연결시키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제창된 ‘수학개량교육’을 상당 부분 그대로 재활용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수학용어와 커리큘럼이 전시수학의 함수교육 중심, 이과통합교육을 계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당시 턱없이 부족하던 교재와 강하게 남아 있던 일본식 교육체계를 한국어 교재와 한국인을 위한 교육으로 변하는 첫 발걸음을 시작했다는 성과도 남기었다. 이처럼 1945년 전후의 과학자들은 ‘탈식민지’를 매우 독특한 형태로 경험하였고 새로운 지식체계를 식민지의 유산 위에 다층적으로 구축하였다.
    따라서 이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자는 해방 후 지식 대중화의 또 다른 층위로서 1950년대 한국의 이과교육에 대해서 분석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논란이 되기도 하는 문·이과교육의 구분은 이번 연구에서 살펴본 것처럼 제2차 대전시기 이과생을 대상으로 한 수학교육이 대수, 기하의 구분을 넘어서 보다 통합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 그렇다면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한국의 중고등, 대학교육기관들과 학생들은 이러한 수학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떤 형태로 내재화하였을까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도 한국의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알려진 『수학의 정석』은 1966년에 처음 발간되었다. 그 이전에도 다양한 종류와 내용의 수학서적들이 제작, 유통되었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책들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매우 적다. 1950년대와 60년대 이과생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했던 함수교육과 그 책들에 대한 분석은 한국의 현대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망하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수학언제부터 지식의 대중적 전파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괴팅겐 수학, 타카키 테에지(高木貞治), 최윤식, 이임학, 함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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