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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71665&local_id=10086525
카이도의 최후 激戰地 연구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카이도의 최후 激戰地 연구 | 2016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류병재(단국대학교(천안캠퍼스))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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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2016S1A5A8019531
Year(selected) 2016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17년 10월 24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1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본 연구는 1301년 음력 8월 알타이 산맥에서 발생한 카이도(Qaidu, 海都)와 대원(大元) 올로스(Ulus) 군대간의 전투지점이 정확히 어디였는지를 고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13세기 후반부터 중앙아시아에 소위 “카이도 올로스”를 건설하고 강력한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카이도를 죽음으로 몰고 간 매우 치열했던 이 전투는 몽골제국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정확한 고증이 필요한 연구이다. 그 중요성에 걸맞게 몽골제국사 연구의 양대 사료라고 할 수 있는 한문사료 『元史』와 페르시아 사료인 『集史』에는 당시 양자 간에 발생한 전투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더불어 그 지명(地名)을 특기하고 있다. 그 지명들에 대한 구체적인 양측 기록은 “迭怯里古ㆍ鐵堅古ㆍ帖堅古”, “合剌合塔ㆍ哈剌答”와 “兀兒禿” 라는 한문사료 상의 지명과 “Tegelkū”와 “Qarāltū”라는 페르시아 사료상의 지명이다. 그러나 현재 동·서양의 대표적 카이도 관련 연구자들은 카이도의 최후 격전지가 잡항(Jabkhan) 강의 서쪽, 알타이 산맥의 남쪽 지역이라는 것을 대체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그 정확한 위치는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 연구자는 2013년 7월의 1차 답사와 2016년 7월의 2차 몽골 알타이 지역 현지답사를 통해 카이도의 최후 격전지가 실제 알타이 산맥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그 당시 역사적 상황을 문헌연구와 현지답사를 통해 종합적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문헌과 사료 연구를 통해 확인된 지명에 대한 현지답사를 직접 수행하고 그곳의 여러 지형지물과 위치를 정확하게 살펴 “지역(地域)ㆍ사료(史料)ㆍ역사적 사실(史實)”이 모두 일치하는 지역인지 정확히 고증하도록 노력하였다. 본 1, 2차 현지답사에는 ‘Temerzan Babakhan’이라는 카자흐족 토착촌로의 증언과 그가 알려준 현지지명과 지형지물에 대한 조사를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 역사적인 지역이 현재 몽골국의 바얀얼기 아이막(Bayan-ölgii Aimag)의 델룬 솜(Delüün Sum) 일대라고 비정한다. 즉, 델룬 솜 중심을 기점으로 ‘鐵堅古山 = Tegelkū’는 Delüün uul, ‘合剌合塔 = Qarāltū’는 Khar khad이며 ‘兀兒禿 = Urtu’는 Urt salaa라는 지역과 일치한다.
    이를 통해 당시의 역사상을 한문사료와 페르시아 사료를 통해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알타이 산맥을 넘어 남하해 온 카이도와 그의 군대는 1301년 음력8월 초, 대원 올로스의 군대와 (1)Delüün uul(鐵堅古山, Tegelkū라는 산)’에서 전투에 돌입해 대원 올로스측이 승리를 거두었다. 북쪽으로 퇴각했던 카이도는 그로부터 이틀 후 자신의 무리 모두를 이끌고 와 델룬솜 북서쪽 35km 떨어진 (2)Khar khad(合剌合塔, Qarāltū라는 산)라는 곳에서 다시 큰 전투가 벌어졌다. 대원 올로스의 군대가 불리해지자 카이산(Qaishan)이 직접 출전하여 카이도 군대를 물리치고 그 치중(輜重, supplies, 군수품(軍需品))을 모두 빼앗은 뒤 제왕(諸王)과 부마(駙馬)들을 구출해 나왔다. 다음 날 다시 전투가 벌어졌는데 대원 올로스의 군대가 약간 퇴각하고 카이도가 기회를 타 공격해 오니 카이산이 다시 군대를 직접 진두지휘하여 적진의 후방을 공격함으로써 전군이 귀환하게 되었다. 그후 카이도에게 차카타이(Chagatai) 올로스의 도아(Du-a)가 카이도 군과 합류하여 그 전력이 상승되어 다시 ‘Delüün Sum’ 일대로 진격해 나오니 그 동쪽 5km 떨어진 (3)Urt salaa(兀兒禿, Urtu)라는 언덕에서 전투가 발생하였다. 이 전투에서 阿失(Ashi)가 도아의 무릎에 화살을 적중시켜 도아는 중상을 입고 퇴각한다. 카이도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 얼마 후에 사망하였다.
    카이도를 사망에 이르게 한 1301년 알타이 지역 델룬 솜 일대에서 양자 간의 마지막 전투는 14세기 초 몽골제국의 역사상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중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이른바 ‘카이도 올로스’를 붕괴시켜 대원 올로스는 대칸 올로스(Qa’an Ulus)로서의 위상을 회복하여 다시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패권을 장악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동안 혼란스럽던 몽골세계제국이 하나로 통합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Pax Mongolica’ 체제를 지속시켜 주었다.
  • English
  • A Study on Qaidu's Last Ferocious Battlefield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historically research into where the combat branch was exactly between Qaidu(海都) and Da Yuan(大元) Ulus military, which took place at the Altai Mountains in the eighth lunar month in 1301.
    This very fierce combat, which drove Qaidu to be dead who had built the co-called “Qaidu Ulus” in the central Asia from the late 13th century and had dominated powerful hegemony, is a research that needs the correct historical investigation for the right understanding about the imperial history of Mongolia. The Chinese-character historical record 『Yüan Shi(元史)』 and the Persian historical record 『Jāmi’ at-tavārīkh』, which can be said to be two historical records of a research on the imperial history of Mongolia in line with its importance, are especially recording its place name along with the detailed depiction on the fight that happened between both sides in those days. The specific records of both sides on its place names include the place names in light of the Chinese-character historical record called “鐵堅古ㆍ迭怯里古ㆍ帖堅古”, “合剌合塔ㆍ哈剌答” and “兀兒禿”, and the place names in light of the Persian historical record dubbed “Tegelkū” and “Qarāltū.” However, the currently typical researchers related to Qaidu in the East and the West are mostly recognizing that the last ferocious battlefield of Qaidu is the western region to the Jabkhan river and the southern region to the Altai Mountains, but are in a situation of failing to clarify its accurate location.
    This researcher tried to generally reconstruct a historical situation in those days through a documentary research and an on-site survey in addition to where the last ferocious battlefield of Qaidu is located at Altai Mountains through the primary exploration in July 2013 and the secondary local field survey of Altai in Mongolia in July 2016. It directly performed a field survey on place names, which were confirmed through a documentary historical-source research, exactly examined many terrain features and locations in those places, and then strived to historically investigate correctly into whether all of “region(地域)ㆍhistorical source(史料)ㆍhistorical fact(史實)” are consistent. These primary and secondary field surveys were performed an investigation into the locally place names and terrain features of which he informed, in addition to the evidence of a native old villager of Kazakh named ‘Temerzan Babakhan’.
    Synthetically analyzing through this, its historical region is comparatively determined as the whole area of Delüün Sum in Bayan-ölgii Aimag of the current Mongolian country. In other words, based on the center of Delüün Sum, it is consistent in “鐵堅古ㆍ迭怯里古ㆍ帖堅古 = Tegelkū” with Delüün uul(Дэлүүн уул; in Mongolian), “合剌合塔ㆍ哈剌答 = Qarāltū” with Khar khad(Хар хад; in Mongolian), and “兀兒禿 = Urtu” with Urt salaa(Урт салаа; in Mongolian) region.
    Reconstructing the histories in those days based on this through the Chinese-character historical record and the Persian historical record, those are as follows.
    Qaidu and his military, which moved south by passing the Altai Mountains, got into combat at (1)Delüün uul(鐵堅古山, mountain called Tegelkū)’ with the military of Da Yuan Ulus in early August of 1301. Thus, the side of Da Yuan Ulus achieved victory. Qaidu, who had retreated on the north, advanced with all of his groups two days after it. Thus, a big battle was fought again in a place called (2)Khar khad(合剌合塔, mountain called Qarāltū) where is 35km away from the northwest of Delüün Sum. When the armed forces of Da Yuan Ulus were caught short, Qaishan(海山) directly came out into the field and then defeated the Qaidu military, took up all of its military supplies(輜重), and came out with rescuing princes(諸王) and king's son-in-law(駙馬). A battle was fought again next day. The military of Da Yuan Ulus backed down slightly. Qaidu embraced an opportunity to attack. Thus, Qaishan directly spearheaded the military again and then attacked the rear of the enemy camp, resulting in the whole army's return. As for Qaidu following it, Du-a(都哇) of Chagatai Ulus joined the Qaidu military, thereby leading to a rise in its military strength and then advancing again to the whole area of ‘Delüün Sum.’ Thus, a combat took place on the hill dubbed (3)Urt salaa(兀兒禿, Urtu) that is 5km away from its eastern part. At this battle, Ashi(阿失) allowed the mark of arrow to hit Du-a's knee. Thus, Du-a was severely wounded to drop back. Qaidu also returned with failing to attain his aim and then was dead after some days.
    The last combat between both sides in the whole area of Delüün Sum in Altai region in 1301, which led to his death, played a decisive role in changing the histories of the Mongolian empire in the early 14th century. That is because of having made it available for dominating the hegemony again on the central Asia by allowing Da Yuan Ulus to recover status as Qa’an Ulus after bringing down the so-called ‘Qaidu Ulus,’ which had dominated hegemony for a long time in the central Asia. And this played a great role in being integrated into one in the Mongolian world empire, which had been confused for a fairly long time, and led to continuing a system of ‘Pax Mongolica’.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연구는 1301년 음력 8월 알타이 산맥에서 발생한 카이도(Qaidu, 海都)와 대원(大元) 올로스(Ulus) 군대간의 전투지점을 고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카이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아주 치열했던 이 전투는 그 중요성에 걸맞게 한문사료인 『元史』와 페르시아 사료인 『集史』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한문사료의 ‘迭怯里古·鐵堅古·帖堅古’, ‘合剌合塔·哈剌答’와 ‘兀兒禿’ 그리고 페르시아 사료의 ‘Tegelkū’와 ‘Qarāltū’라는 지명이 실제 알타이 산맥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그 당시 역사적 상황을 문헌연구와 실제답사를 통해 종합적으로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알타이 산맥을 넘어 남하해 온 카이도와 그의 군대는 1301년 음력8월 朔, 대원 올로스의 군대와 ‘델룬:山(鐵堅古山, Tegelkū라는 산)’에서 전투에 돌입해 대원 올로스측이 승리를 거두었다. 북쪽으로 퇴각했던 카이도는 그로부터 이틀 후 자신의 무리 모두를 이끌고 와 델룬솜 북서쪽 35km 떨어진 ‘하르 하드(合剌合塔, Qarāltū라는 산)’라는 곳에서 다시 큰 전투가 벌어졌다. 대원 올로스의 군대가 불리해지자 카이산이 직접 出陣하여 카이도 군대를 물리치고 그 輜重을 모두 빼앗은 뒤 諸王과 駙馬들을 구출해 나왔다. 다음 날 다시 전투가 벌어졌는데 대원 올로스의 군대가 약간 퇴각하고 카이도가 乘機하여 공격해 오니 카이산이 다시 군대를 직접 진두지휘하여 적진의 후방을 공격함으로써 全軍이 귀환하게 되었다. 그후 카이도에게 일정기간 반기를 들었던 도아가 카이도 군과 합류하게 되니 그 전력이 상승되어 다시 ‘델룬:솜’ 일대로 진격해 나오니 그 동쪽 5km떨어진 ‘오르트 살라:(兀兒禿, Urtu)’라는 언덕에서 전투가 발생하였다. 이 전투에서 阿失는 도아의 무릎에 화살을 적중시켜 도아는 중상을 입고 퇴각한다. 카이도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 얼마 후에 사망하였다.
    이전 연구자들이 사료에 기록된 지명들만 언급하였다면 본 연구는 세밀한 사료조사와 선행연구 검토를 통해 이전 연구자들의 지역고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2013년 선행 답사와 2016년도 본 답사에서 ‘테메르잔-바바한’이라는 카자흐족 토착촌로와 헙드대학의 간볼드 교수 등의 증언과 공동 현지조사를 통해 사료상의 그 전투 지명들이 델룬:솜 일대의 지역들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2016년도 현지 답사는 2016년 7월 20일부터 27일에 걸쳐 이루어졌다. 원래 계획은 올란바타르에서 홉드까지 차를 이용해 육로를 통해 이동하는 계획을 세웠었다. 몽골 수도 올란바타르에서 델룬 솜으로 가는 루트를 대원 올로스 군이 몽골 서북의 알타이 지역으로 출전했던 루트를 따라 가 보는 길을 구성해 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앞서 언급했던 “햐르가스 호수”와 “잡항 강” 주변을 지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으나 현지 사정 등이 원활하지 않아 국내선 항공을 이용하여 올란바타르-홉드 구간을 이동하였다. 7월 21일 홉드에 도착하여 홉드대학 간볼드 선생과 답사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목적지인 델룬 솜의 테메르잔-바바한 선생과 연락을 취하였다. 22일부터 24일까지 델룬 솜 일대에 머무르며 최후 격전지 예상지역인 “하르 하드”, “델룬 산”과 “오르트 살라” 지역에 대한 현장 답사를 진행하였다. 한문과 페르시아 문헌에 대한 내용을 답사자들과 공유하였고 현지 조언자들은 그러한 내용들을 토대로 원래의 지명을 하나씩 찾아 보여주었고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재구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7월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 이왕의 연구 내용에 답사 결과를 추가하여 2016년 8월 15일부터 18일 간에 진행되었던 제 11회 국제몽골학자대회에서 발표를 진행하였다. 8월 17일 몽굴국립대학 330호에서 오후 첫 번째 발표로 “A Study on Qaidu’s Last Ferocious Battlefield”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당시 발표장에 있었던 전세계의 몽골사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는 발표를 진행하였다.
    한문과 페르시아 문헌의 역사기록을 토대로 몽골 알타이 델룬 솜 일대에 대한 현지 답사를 통해 진행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연구성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알타이 산맥을 넘어 남하해 온 카이도와 그의 군대는 1301년 음력8월 朔, 대원 올로스의 군대와 ‘델룬:山(鐵堅古山, Tegelkū라는 산)’에서 전투에 돌입해 대원 올로스측이 승리를 거두었다. 북쪽으로 퇴각했던 카이도는 그로부터 이틀 후 자신의 무리 모두를 이끌고 와 델룬솜 북서쪽 35km 떨어진 ‘하르 하드(合剌合塔, Qarāltū라는 산)’라는 곳에서 다시 큰 전투가 벌어졌다. 대원 올로스의 군대가 불리해지자 카이산이 직접 出陣하여 카이도 군대를 물리치고 그 輜重을 모두 빼앗은 뒤 諸王과 駙馬들을 구출해 나왔다. 다음 날 다시 전투가 벌어졌는데 대원 올로스의 군대가 약간 퇴각하고 카이도가 乘機하여 공격해 오니 카이산이 다시 군대를 직접 진두지휘하여 적진의 후방을 공격함으로써 全軍이 귀환하게 되었다. 그후 카이도에게 일정기간 반기를 들었던 도아가 카이도 군과 합류하게 되니 그 전력이 상승되어 다시 ‘델룬:솜’ 일대로 진격해 나오니 그 동쪽 5km떨어진 ‘오르트 살라:(兀兒禿, Urtu)’라는 언덕에서 전투가 발생하였다. 이 전투에서 阿失는 도아의 무릎에 화살을 적중시켜 도아는 중상을 입고 퇴각한다. 카이도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 얼마 후에 사망하였다.
    1301년 카이도와 대원 올로스간의 최후 격전지역에 대한 문헌과 실증연구를 공동으로 실행한 본 연구결과는 카이도와 카이도 올로스가 실제로 몽골고원의 어느 정도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 그 경계선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또한 카이도 사후 급격하게 진행된 중앙아시아의 도아 진영과 카이도 진영과의 패권 다툼이 어떻게 진행되고 향후 “몽골에 의한 평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다음 과정의 연구진행에 일정부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본 연구는 기 연구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알타이 지역 지명에 대한 심도 깊은 자료와 후대의 연구 성과 및 지리 정보를 보충하여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할 것이다. 이를 통해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초반 ‘몽골제국의 原象’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이 되도록 하겠다.
  • Index terms
  • 카이도, 쿠빌라이, 테무르, 카이산, 도아, 카이도 올로스, 대원 올로스, 알타이 산맥, 몽골세계제국, 현지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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