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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사상이 조선후기 사의화에 끼친 심미경지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장자사상이 조선후기 사의화에 끼친 심미경지 연구” | 2016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도영(예원예술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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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번호 2016S1A5A8018998
선정년도 2016 년
과제진행현황 진행중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7년 10월 16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조선후기(약 1700~1850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대였다. 또한, 새로운 예술관과 다양한 화풍·화법의 전개로 한국회화사상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남겼다. 특히 신분제의 동요와 변화는 문인들의 행동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유가가 지향하는 삼강오륜에 바탕한 교화와 인격도야에 치우친 예술만으로는 변화된 조선 후기 사회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이런 시점에서 장자의 비판정신과 변화와 부정의 논리는 진보적 사상가들에 의해 포착되어서 체제를 비판하고 도덕의 진정성을 반성하는 기제로 사용되었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청초하기 위한 문예적 모색의 방편으로 『莊子』의 사유는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寫意畵는 묘사 대상의 생긴 모습을 작가의 의도에 느낌을 강조하여 그린 그림으로써 작가의 정신세계, 즉 “神似”를 중시하는 문인사대부의 회화이다. 조선후기 사의화는 玄化無言하며 神의 공교함을 운용하며, 虛靜之心의 자유분방한 해방정신을 遊로 형상화한 장자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특히 姜世晃, 沈師正, 李麟祥, 金弘道, 崔北, 趙熙龍 등은 장자의 인식론을 수용하여 새로운 사상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작품 속에 구현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사의화의 새로운 방안으로 『莊子』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의 경지를 구가하거나 세속적 가치에 대한 회의를 표출하였고, 성리학적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세계와 그에 따른 미의식을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이처럼 장자사상이 조선후기 사의화에 끼친 심미경지이자 심미풍격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되어진다. 첫째, 技進乎道의 大巧美이다. 장자가 부정하는 것은 세속적인 미와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는데 뜻을 둔 ‘작은 기교(小巧)’이다. 그렇지만 만일 세속적인 미를 부정하면 ‘大美’를 파악할 수 있고, 세속적인 감관의 쾌락을 초월하면 ‘大樂’을 깨달을 수 있으며, 천지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大巧’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 趙熙龍의 <紅梅圖 對聯>과 金弘道의 <老梅圖>는 자연본성인 道와 수예의 技를 합쳐 최고의 예술경지를 이루어 새로운 매화의 화경을 이루어내었으니, 이는 大巧가 道와 서로 합치하여 일종의 정신 경계에 도달한 技進乎道의 大巧美이다.
    둘째, 以虛用實의 簡逸美이다. 筆簡形具를 이룬 획기적인 표현방법으로 虛(여백의 無畵부분)로써 實(묵색의 有畵부분)의 形迹을 드러낸 “以虛用實”의 작법인 여백경영을 들 수 있다. 우주의 근원을 무에 있다고 보고, 미의 근원 역시 무에 있다고 본다면 인위적으로 수식하지 않은 상태의 무위와 연관해서 도를 표현하는 방법이 여백(虛)으로 설명되어진다. 그리고 實은 시각적으로 드러난 먹빛의 선과 면이다. 金弘道의 <舟上觀梅圖>와 李麟祥의 <長白山圖> 등의 그림에는 여백(虛)만큼 기가 배어있다. 이러한 여백과 필선의 파격적인 簡逸함 속에 물상의 ‘眞’을 온전히 발현했다. 특히 田琦의 <溪山苞茂圖>는 색채가 배제된 수묵에 의한 簡遠한 표현형상과 渴筆의 솔직한 필묵 효과에 의해 전달된 자연생명의 충만함이 강조되었다.
    셋째, 逍遙自適의 奇怪美이다. 진정한 예술은 자기의 의식세계로부터 해방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규약으로부터 소요유하며 자유자재하게 행동한다. 또한, 외형의 추악·기괴함은 도리어 더욱 진실하고 더욱 유력하게 인간 내재 정신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여기에서 장자의 본뜻은 결코 하나의 예술화된 형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이를 통해 自然無爲를 깨달은 사람은 외적 형체가 부자유스럽고 추악해 보이더라도 高古한 인격미를 지닌 인간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존경과 애정을 받음을 강조한 것이다. 醜를 통해 眞을 드러낸 沈師正의 <仙人渡海圖>, 속기를 배제한 듯한 기괴한 야성미가 느껴지는 姜世晃의 <怪石圖>에서는 超逸한 화풍이 느껴지고, 指頭畵法으로 그린 崔北의 <風雪夜歸人>은 기이하면서도 창신적 개성이 두드러지며, 불행했던 자신의 환경을 초탈하여 넉넉하고 편안한 자유로움을 추구한 自適 경지의 화풍을 전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는 이전의 고정된 틀을 부정하고 비판하면서 끊임없는 자기 변신을 꾀할 때 예술은 영원한 생명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현세와의 타협이나 규범을 배제하고 자연본성을 추구하는 莊子의 자유분방한 미의식은 당대의 화가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주제어 : 장자사상, 기진호도, 이허용실, 대교미, 간일미, 기괴미
  • 영문
  • A study aesthetic stage affect the picture painted think in the late period Chosun on the Chuangtzu’s thought.

    Kim, Doyoung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NRF-2016S1A5A8018998)



    In the late Joseon period (about 1700 ~ 1850), various changes were actively made in various fields such as politics and economy as well as society and culture. It was also the time of the most brilliant achievements in Korean painting history with the new paintings and the development of various styles. In particular, the fluctuations and changes of the class system have brought a tremendous change in the manner of the writers. It was not possible to actively cope with the changed order of the late Choson dynasty by the artistic work based on the three -At this point, Chuangtzu's criticism, the logic of change and injustice were captured by progressive thinkers and used as a mechanism to criticize the system and to reflect the authenticity of morality. As a means of searching literally for refreshing the direction of life,The idea of "Chuangtzu" has become an alternative.
    The painting of the artist is a painting of the nobleman which emphasizes the feeling of the artist's intention in the appearance of the object to be depicted, and draws attention to the spiritual world of the artist, the "Paint one's mind". The postwar history of the late Joseon Dynasty was greatly influenced by the artistic spirit of the Chuangtzu, who portrayed the liberation spirit of 'Draw a meaning' that freed the mind and purifies the mind cleanly. Kang Se-hwang, Sim sa-jung, Lee In-sang, Kim Hong-do, Choi Buk, and Cho Hee-ryong are the characters who embraced the epistemology of the Chuangtzu and sought the possibility of new thought and embodied it in the work. Oriental painting has an artistic orientation to reveal his spiritual world, that is, to the “Draw a meaning” rather than the reproduction of natural objects. As a new method of socialization, they positively accepted the idea of ​​"Chuangtzu", escaped from the constraints of reality and took a free life or displayed a meeting on secular value, and escaped from the Neo-Confucianism explored aesthetic sense.
    In this way, it is analyzed that there are three major characteristics of the aesthetic and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the Chuangtzu’s thought on the painting of the late Joseon Dynasty. First, it is the Daegyo beaty of Ki-jin-ho-do. What the Chuangtzu denies is the "little craft" which means secular beauty and revealing to others. However, if the worldly beauty is denied, it will be possible to grasp the 'A big beaty', and if it transcends the pleasures of earthly delight, it will be able to realize the 'Daelock' and pursue the 'Daegyo'. Cho Hee-ryong's <Hongmaedo Dalian> and Kim Hong-do's <Nomaedo> combine the natural nature and the technique of handicraft to create a new painting of plum with the best artistic status. It is the Daegyo beaty of Ki-jin-ho-do.
    Secondly, this is a simple beauty of the Empty to reveal reality. This is a way of expressing the shape of the thread (the part drawn) as a ‘huh’ (a part that is not drawn), which is a breakthrough expression method that has taken shape of the brush briefly. If the origin of the universe is regarded as being in the "Empty to reveal reality" and the source of beauty as "Empty to reveal reality", the method of expressing the figure in relation to not doing anything in a state that is not artificially modified is explained by the margin (huh). And, in fact, it is a line and a side. The paintings of Kim Hong-do's "Sansangkwanmaedo" and Lee In-sang's "Changbaigsando" In the marvelous work of margins and book lines, In stark contrast to the pilseon of the margins, the ‘jin’ of the natural substance was expressed completely. Especially, Jeon ki’s the <Gyesanpomudo> is emphasized the fulness of the natural life conveyed by the Brief expressions with no color and By the dry effect of a dry brush.
    Third, it is a quaint beauty of so-yo-ja-jeog. True art is free from self-consciousness and free from social conventions. In addition, the external ugliness and bizarre expresses the sublime and beauty of the human intrinsic spirit even more truthfully and more potently. Here, Chuangtzu's original intention was not to create a single artistic form, and through it, the person who realized the nature of the absurdity, even though the external form looks incongruous and ugly, It is emphasized to receive love. Through the ugliness, the judges who showed 'Jin' the <Sunindohaedo> of Sim sa-jung, on the paintings of the <Goeseok do>, which is based on the paintings of the Gang se-hwang, painted with my fingertips on the <Pungseoryaguiin> of Choi buk. It can be seen that he deprived his unfortunate environment and painted a picture that seeks freedom and relaxed freedom.
    The late Joseon period was a period when the artist perceived that art could acquire eternal life-style when he constantly attempted self-transformation while denying and criticizing the previous fixed framework. At this time, the free spiritual aesthetics of the Chuangtzu who pursued the natural nature by eliminating compromise or norms with the world affects the painters of those days.

    Key words : Chuangtzu’s thought, Ki-jin-ho-do, Empty to reveal reality, Great skill beauty, A simple beauty, A Quaint beaut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조선후기(약 1700~1850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대였다. 또한, 새로운 예술관과 다양한 화풍·화법의 전개로 한국회화사상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남겼다. 특히 신분제의 동요와 변화는 문인들의 행동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유가가 지향하는 삼강오륜에 바탕한 교화와 인격도야에 치우친 예술만으로는 변화된 조선 후기 사회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이런 시점에서 장자의 비판정신과 변화와 부정의 논리는 진보적 사상가들에 의해 포착되어서 체제를 비판하고 도덕의 진정성을 반성하는 기제로 사용되었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청초하기 위한 문예적 모색의 방편으로 『莊子』의 사유는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寫意畵는 묘사 대상의 생긴 모습을 작가의 의도에 느낌을 강조하여 그린 그림으로써 작가의 정신세계, 즉 “神似”를 중시하는 문인사대부의 회화이다. 조선후기 사의화는 玄化無言하며 神의 공교함을 운용하며, 虛靜之心의 자유분방한 해방정신을 遊로 형상화한 장자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특히 姜世晃, 沈師正, 李麟祥, 金弘道, 崔北, 趙熙龍 등은 장자의 인식론을 수용하여 새로운 사상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작품 속에 구현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사의화의 새로운 방안으로 『莊子』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의 경지를 구가하거나 세속적 가치에 대한 회의를 표출하였고, 성리학적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세계와 그에 따른 미의식을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이처럼 장자사상이 조선후기 사의화에 끼친 심미경지이자 심미풍격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되어진다. 첫째, 技進乎道의 大巧美이다. 장자가 부정하는 것은 세속적인 미와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는데 뜻을 둔 ‘작은 기교(小巧)’이다. 그렇지만 만일 세속적인 미를 부정하면 ‘大美’를 파악할 수 있고, 세속적인 감관의 쾌락을 초월하면 ‘大樂’을 깨달을 수 있으며, 천지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大巧’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 趙熙龍의 <紅梅圖 對聯>과 金弘道의 <老梅圖>는 자연본성인 道와 수예의 技를 합쳐 최고의 예술경지를 이루어 새로운 매화의 화경을 이루어내었으니, 이는 大巧가 道와 서로 합치하여 일종의 정신 경계에 도달한 技進乎道의 大巧美이다.
    둘째, 以虛用實의 簡逸美이다. 筆簡形具를 이룬 획기적인 표현방법으로 虛(여백의 無畵부분)로써 實(묵색의 有畵부분)의 形迹을 드러낸 “以虛用實”의 작법인 여백경영을 들 수 있다. 우주의 근원을 무에 있다고 보고, 미의 근원 역시 무에 있다고 본다면 인위적으로 수식하지 않은 상태의 무위와 연관해서 도를 표현하는 방법이 여백(虛)으로 설명되어진다. 그리고 實은 시각적으로 드러난 먹빛의 선과 면이다. 金弘道의 <舟上觀梅圖>와 李麟祥의 <長白山圖> 등의 그림에는 여백(虛)만큼 기가 배어있다. 이러한 여백과 필선의 파격적인 簡逸함 속에 물상의 ‘眞’을 온전히 발현했다. 특히 田琦의 <溪山苞茂圖>는 색채가 배제된 수묵에 의한 簡遠한 표현형상과 渴筆의 솔직한 필묵 효과에 의해 전달된 자연생명의 충만함이 강조되었다.
    셋째, 逍遙自適의 奇怪美이다. 진정한 예술은 자기의 의식세계로부터 해방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규약으로부터 소요유하며 자유자재하게 행동한다. 또한, 외형의 추악·기괴함은 도리어 더욱 진실하고 더욱 유력하게 인간 내재 정신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여기에서 장자의 본뜻은 결코 하나의 예술화된 형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이를 통해 自然無爲를 깨달은 사람은 외적 형체가 부자유스럽고 추악해 보이더라도 高古한 인격미를 지닌 인간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존경과 애정을 받음을 강조한 것이다. 醜를 통해 眞을 드러낸 沈師正의 <仙人渡海圖>, 속기를 배제한 듯한 기괴한 야성미가 느껴지는 姜世晃의 <怪石圖>에서는 超逸한 화풍이 느껴지고, 指頭畵法으로 그린 崔北의 <風雪夜歸人>은 기이하면서도 창신적 개성이 두드러지며, 불행했던 자신의 환경을 초탈하여 넉넉하고 편안한 자유로움을 추구한 自適 경지의 화풍을 전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는 이전의 고정된 틀을 부정하고 비판하면서 끊임없는 자기 변신을 꾀할 때 예술은 영원한 생명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현세와의 타협이나 규범을 배제하고 자연본성을 추구하는 莊子의 자유분방한 미의식은 당대의 화가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결과
    본 연구에서 주연구대상으로 선정한 姜世晃, 沈師正, 李麟祥, 金弘道, 崔北, 趙熙龍 등은 莊子의 인식론을 수용하여 새로운 사상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작품 속에 구현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사의화의 새로운 방안으로 『莊子』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경지를 구가하거나 세속적 가치에 대한 회의를 표출하였고, 성리학적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세계와 그에 따른 미의식을 탐구하였다. 이들은 대체로 『莊子』의 수사법이나 인식의 표면만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있는 시대적 모순과 혼돈의 역사상황,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지식인의 절망과 고뇌까지 읽어내어 화면에 발현한 인물들이다. 따라서 조선후기 사의화에 이들의 장자사상 수용 태도는 당대에 대한 현실인식과 시대정신이 불가분의 관계처럼 얽혀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현실인식은 그들의 서화인식, 서화심미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자사상이 조선후기 사의화에 끼친 심미경지이자 심미풍격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되어진다.
    첫째, 技進乎道의 大巧美이다. 장자가 부정하는 것은 세속적인 미와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는데 뜻을 둔 ‘작은 기교(小巧)’이다. 그렇지만 만일 세속적인 미를 부정하면 ‘大美’를 파악할 수 있고, 세속적인 감관의 쾌락을 초월하면 ‘大樂’을 깨달을 수 있으며, 천지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大巧’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 趙熙龍의 <紅梅圖 對聯>과 金弘道의 <老梅圖>는 자연본성인 도와 수예의 기를 합쳐 최고의 예술경지를 이루어 새로운 매화의 畫境을 이루어내었으니, 이는 大巧가 道와 서로 합치하여 일종의 정신 경계에 도달한 技進乎道의 大巧美이다. 이러한 경지는 주관적인 정감·정취와 객관적인 물상·형식이 하나로 융합한 주객합일의 경지이다.
    둘째, 以虛用實의 簡逸美이다. 가장 추상적이고 단순한 형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령을 함축하고, 생명의 율동을 가장 잘 상징화한다. 筆簡形具를 이룬 획기적인 표현방법으로 虛(여백의 無畵부분)로써 實(묵색의 有畵부분)의 形迹을 드러낸 “以虛用實”의 작법인 餘白經營을 들 수 있다. 實은 시각적으로 드러낸 먹빛의 선과 면이다. 金弘道의 <舟上觀梅圖>와 李麟祥의 <長白山圖> 등의 그림에는 여백(虛)만큼 기가 배어있다. 여백과 필선의 파격적인 簡逸함 속에 물상의 眞을 온전히 발현했다. 특히 田琦의 <溪山苞茂圖>는 색채가 배제된 수묵에 의한 간원한 표현형상과 갈필의 솔직한 필묵 효과에 의해 전달된 자연생명의 충만함이 강조되었다.
    셋째, 逍遙自適의 奇怪美이다. 진정한 예술은 자기의 의식세계로부터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규약으로부터도 자유자재하게 행동한다. 또한, 외형의 醜惡·奇怪함은 도리어 더욱 진실하고 더욱 유력하게 인간 내재 정신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여기에서 장자의 본뜻은 결코 하나의 예술화된 형상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고, 그것을 통하여 自然無爲를 깨달은 사람은 외적 형체가 부자유스럽고 추악해 보이더라도 고고한 인격미를 지닌 사람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존경과 애정을 받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장자사상의 영향은 조선 후기 화가들에게 하나의 심미가치로 여겨겼다. 醜를 통해 眞을 드러낸 沈師正의 <仙人渡海圖>, 속기를 배제한 듯한 기괴한 야성미가 느껴지는 姜世晃의 <怪石圖>에서는 超逸한 화풍이 느껴지고, 指頭畵法으로 그린 崔北의 <風雪夜歸人>은 기이하면서도 창신적 개성이 두드러지며, 불행했던 자신의 환경을 초탈한 自適 경지의 화풍을 전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심미경지는 『莊子』의 사유와 문투를 볼 때 상식적으로 예상되는 내용들이며, 장자 예술정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이 세 가지 항목들이 조선 후기 화가들에게서 완연히 구현되었다.
    2. 활용방안
    주연구대상 중 최북의 예술혼은 제대로 선양되지 않고 있다. 현재 무주문화원 앞길은 ‘최북로’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도로변에 최북로를 상징하는 어떠한 조형물이나 작품 조차도 전시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최북의 생가나 거주지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풍요속선』에 최북의 거주지가 백록성변에 있었다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하여 백록성 주변에 생가를 조성하여 최북의 예술혼을 선양하는데 활용하고, 주변을 최북 생가와 연계한 미술의 거리를 조성하도록 계획해 벤치 및 쉼터, 모정을 조성한다. 그리고 그 도로변에 최북의 작품을 특수제작하여 상시 설치한다. 또한, 사단법인 최북선양회를 조직하여 매년 정기학술대회 개최, 최북 사생대회 행사 및 최북미술상을 신설하여 창의성이 뛰어난 우수한 신진작가를 발굴한다. 이를 위해 현재 관계기관에 적극 건의 및 협력을 구하고 있는 중임.
  • 색인어
  • 장자사상, 기진호도, 이허용실, 대교미, 간일미, 기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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