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론주의를 부활시켰던 아이네시데모스는 고대 회의주의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카데미 학파의 일원이었으나, 독단주의로 경도된 아카데미학파를 떠나 회의주의자인 피론에게서 새로운 철학의 가능성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가 부활시킨 피론주 ...
피론주의를 부활시켰던 아이네시데모스는 고대 회의주의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카데미 학파의 일원이었으나, 독단주의로 경도된 아카데미학파를 떠나 회의주의자인 피론에게서 새로운 철학의 가능성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가 부활시킨 피론주의는 크게 다음 3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아이네시데모스의 주저는 『피론의 담화』이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철학자 열전』, 섹스투스의 『피론주의 개요』, 에우세비오스의 『복음의 준비』에 등장하는 아리스토클레스의 언급 그리고 포티우스의 『도서관』 등에 이 책의 단편적인 내용들이 존재한다. 섹스투스와 라에르티오스의 보고는 정당하나, 아리스토클레스와 포티우스의 보고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후자들은 그의 회의주의를 소개하면서 그의 철학적 목적을 인식론적 토대의 부재성에 찾고 있으나, 그의 철학을 인식론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그의 회의주의적 태도를 자기모순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그러기에, 아이네시데모스의 회의주의에 대한 논의는 라에르티오스와 섹스투스의 기록에 힘입어 재구성되어야 한다.
둘째, 아이네시데모스의 회의주의에는 “이소스테네이아(isostheneia)”에 근거한 양립화의 기술이 있다. 이 기술을 통하여, 그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긍정적인 논증과 부정적인 논증이 동시적으로 성립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나의 이슈에 동일한 힘을 가지고 있는 대립항을 성립시키고 인식론적 판단유보를 이끌어냄으로써, 그는 사물의 한쪽 면만을 절대시하는 인식론적 독단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음의 평안(ataraxia)을 획득할 것을 강조하였다.
셋째, 아이네시데모스 회의주의의 중심에는 10개의 논증방식들(tropen)이 있다. 10개의 논증방식들은 ‘주체에 기인한 논증방식’, ‘판단되는 대상에 기인한 논증방식’ 그리고 ‘주체와 객체 양자에 기인한 논증방식’이 있으며, 3개의 상위 논증방식들은 다시 1개의 최상위 논증방식인 ‘상대성에 기인한 논증방식’으로 수렴된다. 그의 논증방식들은 딜레마적인 형태를 갖춘 10가지 파괴적인 논증방식으로, 판단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논증의 형태이자 체계적인 이해의 산물이다. 아이네시데모스는 이 파괴적인 논증방식들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인식론적 독단주의를 제거하고, 마음의 혼란을 잠재우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아이네시데모스는 새롭게 부활한 피론주의에 최고의 논증방식을 제공한 최초의 피론주의자였다. 물론, 그의 철학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기 피론주의를 확립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후, 섹스투스는 이러한 아이네시데모스의 성과에 힙 입어 성숙한 피론주의를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