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연구수행 과정에 대해 간단히 보고하겠다. 본 연구는 2016년 7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연구는 이미 작성해 놓은 추진계획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상황에 따라 조금씩 선후가 바뀌기도 하였지만, 대체적으로 계획대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가 개신된 뒤 ...
그동안의 연구수행 과정에 대해 간단히 보고하겠다. 본 연구는 2016년 7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연구는 이미 작성해 놓은 추진계획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상황에 따라 조금씩 선후가 바뀌기도 하였지만, 대체적으로 계획대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가 개신된 뒤 첫 한 달은 테크네와 포이에시스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했다. 플라톤의 『향연』이 주된 텍스트였다. 8월부터 9월까지는 하이데거의 동물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의 논의가 선명하지 않아서 일관된 논지를 구성하는데 애를 먹었다. 10월에서 12월까지는 데리다와 아감벤의 논의를 정리했다. 이들 역시 논의를 상당히 복잡하게 전개하고 있기에, 논점을 정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대신 이따금씩 생물학자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복잡했던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생물학적 정보의 철학적 의미 해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2017년 1월에서 3월까지는 멘케와 칸트의 미학을 동물론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관계적 존재론’(relational ontology)을 정치하게 다듬는 것은 본 연구의 최대 난관이었다. 지난 1년 동안의 연구 과정에서 그것을 절절하게 확인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이 속출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점이 본 연구의 최대 업적이 될 것이다.
본 연구는 ‘동물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연구이기에, 아직 논문 형태의 결실을 맺지는 못하였다. 대신 본 연구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작은 규모의 글(「실감의 미학」, 『시인수첩』, 52호, 2017)을 썼다. 구체적으로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동물시학을 시험해 본 셈이다. 이 글은 정현종 시인의 최근작에 대한 (인터뷰 겸)비평이다. 이 글에 본 연구와 관련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대목을 삽입했다.
"이런 시간은 무언가 일어나려는 순간이다. 세계가 처음 열리고 시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럴 때 모든 것들은 사물사물한 보석이 된다. ‘사물사물하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하나는 살갗에서 전해오는 간질간질한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묘한 것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잊히지 않는 모양새를 뜻한다. 두 의미를 조합해 보면, 우리와는 ‘동떨어진’ 신비한 존재가 아주 ‘가까이’에서 직접 감지되는 살가운 느낌, 곧 벤야민이 말했던 아우라와 유사한 분위기다. 산책하는 동안 사물들에게서 묘한 아우라가 빛난다. 시간의 템포가 완만하게 느려지면서, 주위 사물들은 감추어둔 자신의 보석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런 산책의 시간이 삶을 견뎌내는 버팀목이라고 생각한다. 환상이고 허구라도 좋다. 허나 이런 시간 없이 삶을 버티기는 어렵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육식동물들의 배는 홀쭉한 반면, 그나마 배가 빵빵하게 부른 것은 초식동물이다. 셀룰로오스를 분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냥 실패 확률이 높기 때문에, 육식동물은 배고픈 시간을 오래 견뎌야한다. 요즘 사람들이 비만을 걱정하는 것은 자연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문명인은 비만을 얻는 대신 시장기를 잃었다. 「그리운 시장끼」에서 시인은 시장끼와 함께 살맛과 신선한 기운을 잃었다고 말한다. 배부른 포만감이 더해 갈수록 신선한 기운이 사라지는 역설에 주목한다. 어쩌면 시인은 시장끼를 느끼려고 산책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도심 한복판에도 자연은 숨어 있다. “이쁜 여자 다리”를 회상하는 시인의 모습을 사람들이 시상(詩想)에 잠긴 모습이라 말할 때, 시인은 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하, 족집게로구나!/우리의 고향 저 원시(原始)가 보이는/걸어다니는 창(窓)인 저 살들의 번쩍임이/풀무질해 키우는 한 기운의/소용돌이가 결국 피워내는 생살/한 꽃송이(시)를 예감하노니…”(「한 꽃송이」) 시란 원시의 신선한 기운이 피워내는 풋-시간의 꽃이다. 몇몇 생물학자들은 ‘네오테니(Neoteny, 幼態保存)’라는 말로 인간의 특징을 설명한다. 다 자란 침팬지가 아니라 어린 침팬지의 얼굴이 인간 얼굴과 유사하다고 한다. 인간은 유인원의 어릴 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새로울 수 있는 미성숙’을 간직할 수 있기에, 인간은 유연하게 세계와 자신을 변형시킬 수 있다. 이 관점을 확장시켜 보면, 시심이야말로 인간의 특이성이다. “시는 우리의 영원한 어린 시절이다”(『날아라 버스야』)라는 시인의 말처럼, 시심은 곧 동심이다. 여기서 동심이란 성인(成人) 이전의 어린아이, 인간 이전의 동물, 문명 이전의 자연에 가까이 있는 초심(初心)을 뜻한다. 달리 말한다면, 그것은 문명과 자연 <사이>의 마음, 수심(獸心/天心)과 인심(人心)이 미분화․미결정된 마음, 그래서 줄기세포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