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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그리스 고전에 보이는 폭력의 사회적 기능과 정당성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성경과 그리스 고전에 보이는 폭력의 사회적 기능과 정당성 | 2016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최자영(부산외국어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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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6S1A5A2A01027087
선정년도 2016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7년 09월 12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푼트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왔다고 하는 주장이 제국의 폭력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처럼,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평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성경에 보이는 평화는 폭력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고, 또 신약에서는 ‘신의 평화’를 통해 적의 파멸을 촉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평화’는 기독교의 ‘신의 평화’와 다르다. 신약에 구현된 폭력은 이른바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명분으로 한 한계 없는 정복전과 비교해볼 때 그 지향하는 이념은 물론 사회조직의 기반 자체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복전을 추구했으나, 성경의 평화는 힘의 사회적 조직이 아니라 오직 ‘말씀’과 민간인의 모임 ‘교회’에 의지했던 점이 그러하다.
    그런데 사랑과 용서를 지향하는 신약성경에서조차도 폭력은 수용되고, 신은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필자는 성경에 나오는 폭력의 의미를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폭력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흔히 폭력의 대안은 비폭력, 평화, 혹은 사랑과 용서로 이해되고 있으나 폭력과 비폭력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사고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이 때 필자가 담론의 대상으로 하는 폭력은 생물적, 개인적 폭력이 아니라 사회적 조직에 의해 이루어지는 폭력이다.
    한편, 폭력의 정당성은 그 정도의 강약에 따른 것이 아니라 목적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고 지켜나가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동시에 무력의 사용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정립하고 반성의식을 가짐으로써 무기력에 빠지지 않는 가운데서도 타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공생의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되겠다. 그런 점에서 로마제국의 폭력은 신약 혹은 그리스의 고전에 보이는 폭력의 옹호와는 다른 맥락에 있음을 보게 된다. 로마의 평화는 폭력을 담보로 하는 것이며 그 폭력은 침략적 제국주의에 입각해있으나, 신약성경의 평화는 자위 혹은 자아의 정체성 보호를 위해 극단적인 폭력을 구사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신의 뜻을 그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타인을 타자화하거나 배타,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고전에서도 일찍부터 폭력의 사회적 확산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문제는 자위를 위한 정당한 폭력의 행사와 적정한 범위를 넘어선 침략적 행위의 구분은 실제상황에서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서 엘렌스가 제시한 개인의 반성적 역할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반추할 필요가 있겠다. 엘렌스는 종교가 갖는 파괴적 힘을 강조하고, 폭력은 구약과 신약 성경의 뚜렷한 주제라고 한다. 두 성경에 보이는 종교는 건설적인 힘과 파괴적인 힘을 동시에 지닌다는 것이다. 심리학은 폭력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제거할 수는 없으므로, 오직 (성경) 독자들의 노력을 통해 폭력의 은유를 제거하고 건설적인 은유로 대치할 수 있음을 그는 강조한다. 폭력 자체는 제거할 수 없으므로 엘렌스가 말하는 건설적인 은유는 폭력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겠다. 다만 그것이 건설적인 것이 되도록 하고, 이른바 ‘긍정적’인 폭력의 범위에 대해서는 각자의 끊임없는 반추가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유의할 점은 로마제국의 세계정복도 방어의 개념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로마제국이 말하는 평화 혹은 동맹국을 위한 방어를 위한 살육은 성경에서 말하는 바, 신의 말씀을 그르친 자에 대해 신이나 그 대리자가 내리는 가공할 벌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 차이점은 바로 사회적인 무력의 조직 정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기독교에서의 기본적 사회조직은 교인들의 모임인 교회이며 이는 군사조직이 아니다. 그러나 로마의 제국주의와 그에 기초한 평화는 군사조직에 입각하여 이루어졌고, 타키투스가 그의 <역사>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이 군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돈, 그리고 그 돈은 세금을 통해 조달된다. 후자의 기초가 되는 군대는 그 태생부터 착취와 탐욕을 담보로 하고 있고, 또 현실적으로 그것을 더욱 조장할 수 있는 계기를 내포하고 있으며 동시에 반성이나 제어의 기제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의 평화와 로마의 평화의 차이는 전자가 신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면 후자는 무기와 군사조직에 기초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하겠다.
  • 영문
  • J. Punt argued that religions are notoriously implicated in violence. He says, Christianity is often seen as a particularly good example of the close links between (organized) religion and violence. Furthermore, Punt explained the problem of violence in the New Testament under the influence of the Roman Empire. That is, the scope and nature of the Messianic peace may have been different from the Roman Pax (Peace) in certain ways, but linking peace and violence, making them twin sides of the same coin, put the Roman and New Testament authors' versions of peace on par. Rather than the antithesis of violence, peace is the basis of violence, using violence to create peace. The two are inseparable.
    However, the peace of the Roman Empire differs from Christian ‘God’ Peace'. The Roman Empire sought after a war of conquest on the basis of military power on the pretence of so called ‘Pax Romana (Peace for Rome)’, whereas the peace in the Bible was not so much grounded on a social organization of power, as the ‘God’s Word’ and the civic group of ‘church’. Thus, violence in the New Testament is differentiated from the limitless conquest in a aiming ideology as well as the foundation of social organization. Then, even in the New Testament for love and forgiveness, violence is embraced and God exerts extreme violence. Thus, it is recommended to discuss the the social function of violence.
    Often, alternatives to violence are understood as nonviolence, peace, or love and forgiveness. However, the dichotomy between violence and nonviolence is not a sufficient condition to solve the problem of reality. In my opinion, the concept of violence has to be classified into physical, biological violence and social violence, and the discourse has to be concerned with the latter rather than the former.
    On the other hand, it is essential to understand that the legitimacy of violence is not in accordance with the degree of intensity, but according to its purpose, that is, to protect one's own rights. At the same time, by establishing the right standards for the use of force and having a sense of reflection, we will be able to respect the rights of others and seek ways of coexistence without falling into languidness. In this respect, we see that the violence of the Roman Empire is in a different context from the advocacy of violence in the New Testament or the Greek classics. The peace of the Roman Empire was based on violence, and its violence headed for boundless imperialism, but the peace of the New Testament, even if exploiting extreme violence for self-defence or self-identity, basically does not alienate. exclude, or shows hostility against others. Or, I do not think that it is tyranny, exclusion, or hostility. In the Greek classics, there was also a warning against the social proliferation of violence.
    However, it is not easy to distinguish between the exercise of legitimate violence for self-defence and the aggressive behavior beyond reasonable scope. Here we need to refer to individual reflection suggested by J. Harold Ellens. Ellens emphasizes that two Bibles include both tendencies, constructive and destructive. He emphasizes that psychology can explain how violence occurs, but can not eliminate it, so that through the efforts of readers alone, the metaphor of violence can be eliminated and replaced with a constructive metaphor. In my opinion, however, her concept of constructive tendency does not exclude the role of violence and it should be replaced with ‘positive’ violence.
    It is noteworthy that the Roman Empire itself took advantage of the concept of defence-war for its allies. In my opinion, however, Roman Peace (Pax Romana) or slaughter resulting from defense war has to be discriminated from the God’s peace or terrible punishment inflicted by the God, which refers to the extent of organized military power. Fundamental organization of the Christianity is the assembly of Christians, which is not necessarily military. God’s peace is based on the words of the God, wheras the peace of the Roman Empire on the weapons and the power of military system. As Tacitus reports in his <Historiae> military are raised by money, and the money provided with taxation. Organized military as the base of the latter is guaranteed by exploiting and avarice. Moreover, it actually could mor degenerate future situation as being eficient of device for reflection or restraining.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푼트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왔다고 하는 주장이 제국의 폭력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처럼,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평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성경에 보이는 평화는 폭력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고, 또 신약에서는 ‘신의 평화’를 통해 적의 파멸을 촉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평화’는 기독교의 ‘신의 평화’와 다르다. 신약에 구현된 폭력은 이른바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명분으로 한 한계 없는 정복전과 비교해볼 때 그 지향하는 이념은 물론 사회조직의 기반 자체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복전을 추구했으나, 성경의 평화는 힘의 사회적 조직이 아니라 오직 ‘말씀’과 민간인의 모임 ‘교회’에 의지했던 점이 그러하다.
    그런데 사랑과 용서를 지향하는 신약성경에서조차도 폭력은 수용되고, 신은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필자는 성경에 나오는 폭력의 의미를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폭력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흔히 폭력의 대안은 비폭력, 평화, 혹은 사랑과 용서로 이해되고 있으나 폭력과 비폭력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사고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이 때 필자가 담론의 대상으로 하는 폭력은 생물적, 개인적 폭력이 아니라 사회적 조직에 의해 이루어지는 폭력이다.
    폭력의 정당성은 그 정도의 강약에 따른 것이 아니라 목적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고 지켜나가는 데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신약성경의 평화는 자위 혹은 자아의 정체성 보호를 위해 극단적인 폭력을 구사할 수도 있는 것으로 연결되며, 이것은 침략적 제국주의에 입각한 로마의 폭력과 다른 점이다.
    문제는 자위를 위한 정당한 폭력의 행사와 적정한 범위를 넘어선 침략적 행위의 구분은 실제상황에서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엘렌스에 따르면, 심리학은 폭력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제거할 수는 없으므로, 오직 (성경) 독자들의 노력을 통해 폭력의 은유를 제거하고 건설적인 은유로 대치할 수 있다. 다만, 필자는 폭력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폭력의 정도에 대해 경우에 따라 시가각각 각자의 끊임없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연구는 사회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에 대해 반성함으로써 폭력의 행사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가지려는 것이 본 연구의 현실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폭력의 대안은 비폭력, 평화, 혹은 사랑과 용서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폭력과 비폭력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사고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사랑과 용서를 지향하는 신약성경에서조차도 폭력은 수용되고, 신은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폭력의 정당성은 그 정도의 강약에 따른 것이 아니라 목적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고 지켜나가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동시에 무력의 사용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정립하고 반성의식을 가짐으로써 무기력에 빠지지 않는 가운데서도 타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공생의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되겠다.
    다만 폭력의 정당한 사용의 여부는 어떤 관성의 규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반성을 요구한다. 심리학은 폭력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제거할 수는 없으므로, Ellens가 제시한 것처럼, 오직 (성경) 독자들의 노력을 통해 폭력의 은유를 제거하고 건설적인 은유로 대치할 필요가 있겠다. 이 때 건설적인 은유란, 연구자가 보기에, 폭력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위와 정체성 보호를 위한 정당한 폭력의 행사를 인정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른바 ‘정당한’ 폭력의 범위에 대해서는 각자의 끊임없는 반추가 필요한 것이다.
    종교와 폭력에 대한 올바른 개념의 정립은 침해받지 않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고 동시에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폭을 넓히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 나아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컴퓨터 게임이나 경쟁적이고 유아독존식의 재테크 열풍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하고 저항력 있는 자기 보호와 정체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현안에 관심을 기울이고 동참하는 인간상을 양산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 색인어
  • 성경, 그리스 고전, 폭력, 로마제국, 군대조직, 시민사회, 키케로, 타키투스, 에픽테투스, 스투디우스, 아우구스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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