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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의 탈규범적 정체성과 정치적 환유로서의 전복성: 벤 존슨의 『변신하는 집시』를 중심으로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집시의 탈규범적 정체성과 정치적 환유로서의 전복성: 벤 존슨의 『변신하는 집시』를 중심으로 | 2016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도인환(계명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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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2016S1A5A8018339
Year(selected) 2016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17년 10월 26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1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근대초기 유럽에 퍼지기 시작한 집시는 배척의 대상이자 동시에 환상적인 매력의 대상이었다. 『변신하는 집시』의 주관자였던 버킹검도 집시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처럼 제임스의 총애를 받는 당대 최고의 궁정인인 동시에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정치인이었다. 이 작품은 그와 집시 간의 차이가 분장의 유무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사를 한다. 그와 집시 간의 모호한 차이는 이 작품의 제목인 “The Gypsies Metamorphosed”가 ‘궁정인으로 변신한 집시’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집시로 변신한 궁정인’을 의미하는지 모호하게 한다. 즉 이 작품은 집시와 버킹검 간의 가변성을 통하여 버킹검의 이중적인 이미지를 드러낸다. 또한 집시의 가변성은 제임스 1세가 수립하려고 한 단일국가의 허구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제임스는 1603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하나의 민족국가로 통일하려는 칙령을 발표하였으나, 그의 통일령은 집시의 허구적인 정체성처럼 단일 민족국가가 씨족과 부족을 몰아낸 빈자리에 언어적 상징을 인위적으로 채워 넣은 가공적 공동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노정하였다. 이처럼 집시의 정체성은 이 작품에서 당대의 정치 상황을 인유하는 환유어의 구실을 한다.
    한편 『변신하는 집시』는 근대초기 집시의 문학적 수용의 역사에서 분수령을 이룬 작품으로서, 집시이즘이 구축되는 양상을 밝히는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15세기 말경 영국에 나타나기 시작한 집시들은 16세기 중엽부터 부랑자 팜플렛에 소개되기 시작하다가, 1621년 『변신하는 집시』의 선풍적인 인기를 계기로 삼아, 집시를 주인공으로 삼고 그들의 선정적인 매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극작품들이 양산되었다. 부랑자 팜플렛에서 극작품에 이르는 집시 문학은 상업적인 이윤을 챙기기 위하여 그들의 이색적인 모습을 과장하거나 왜곡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독자나 관객들에게 단순히 심미적 즐거움을 주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서구인들에게 집시에 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집시이즘은 타자에 관한 편견의 결정체이다. 집시는 검은 피부색 때문에 서구 백인들의 타자로 간주되고, 유목적인 주거문화 때문에 정주민들의 타자로 간주되고, 춤, 노래, 마술, 곡예 등의 공연을 위하여 모습을 자주 바꾸기 때문에 정체성이 일정하지 않는 무리들로 간주된다. 그러나 집시이즘의 성립과정은 집시들이 재현의 주체가 아니라 그 대상으로서 기성문화가 일방적으로 부과한 이미지의 피동적인 수신자였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그들에게 부과된 이미지는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성문화의 기준에 따라 형성되었고, 그들에 대한 지식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프레임의 역할을 하였다. 이는 기성문화가 타자의 문화를 지배하기 위하여 구축한 억압의 체계가 곧 집시이즘이라는 함의를 가진다. 즉 존슨의 『변신하는 집시』는 집시이즘이 생긴 연원(淵源)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우리들이 집시에 관하여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허구적 이미지에 근거를 둔 가공적 담론의 결과임을 시사한다.
    한편 에드워드 사이드는 동양에 대한 서구인들의 담론이 발생한 문화적 조건과 그것이 수행한 정치적 목적을 밝힘으로써 오리엔탈리즘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 서구인들이 동양을 지배하기 위한 인위적인 담론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그의 오리엔탈리즘은 타자에 대한 주체의 환상이 투사되는 부정적인 방식을 부각한 것이어서, 집시의 탈규범적 정체성을 모두 해명하기에는 논리적 한계를 지닌다. 위에서 논한 바처럼 『변신하는 집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이 작품이 집시에게 투사한 정주민들의 낭만적 환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시의 낭만화는 왜 발생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주디스 버틀러의 성정체성 이론은 해명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라캉(Jacques Lacan)의 정신분석학에서 어린아이가 근친상간을 거세의 공포로 위협하는 아버지의 법에 의하여 어머니의 몸에 대한 욕망을 무의식으로 저장하면서 상징계의 질서로 편입되듯이, 버틀러의 성정체성 이론에서 어린아이는 동성애를 금지하는 가부장적 문화의 억압에 의하여 동성애적 욕망을 무의식으로 저장하면서 이성애적 주체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성애적 주체는 동성애적 욕망을 결코 완전하게 지배하지 못한다. 억압된 욕망은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원리에 따라 동성애적 욕망은 이성애적 의식의 표면에 떠올라 균열을 가하고 우울증적 증상을 남긴다. 우리의 영토적 정체성이 생기는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즉 정주민의 정체성은 유목민적 욕망을 억압함으로써 형성된다. 그러나 정주민의 정체성은 유목민적 욕망을 결코 완전하게 지배할 할 수 없다. 정주민들은 도덕과 관습에서 얽매이지 않는 집시들의 삶을 보면서, 축제적 해방감, 이국적 낭만성, 탈세속적 신비감 등 억압된 유목민적 욕망이 의식의 표면으로 분출하는 것을 경험한다.
    정체성은 불연속적인 욕망의 덩어리인 육체에 인위적인 통일성을 부여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금지, 배제, 범죄화, 처벌 등의 담론적 전략을 통하여 허구적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의식적 코드는 육체의 표면에 각인될 뿐, 욕망을 완전하게 지배할 만큼 심리 깊숙이 침투하지 못한다. 삶을 정태적인 ‘-임’에 가두지 않고 역동적인 ‘-되기’로 열어놓기 위해서는 기성질서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 대신에 새로운 시대를 위한 분열증적 개방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계는 계몽주의적 주체의 죽음 이후 찾아오는 생명력의 무한 증식이자 세계의 풍요로움이며 일의성 그 자체이다. 들뢰즈는 존재의 자기 동일성이 해체될 때 개체는 구속에서 풀려나와 일의성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들에게 노마드적 사유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노마드적 사유란 의식적 통일성에 묶인 사유가 아니라 무의식적 변용능력에 기반을 둔 사유로서 기존의 자기 동일적인 자아관, 합목적적인 정합성, 이항대립적인 위계질서를 넘어서서 생각하는 것이다. 삶의 본모습은 도구적 이성과 관습적인 질서에 묶인 옹색한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대의 차원으로 열린 가능성에 있다. 집시는 언어, 복장, 화장, 춤, 노래, 색상, 소리, 빛 등의 특이성(singularities)을 발산한다. 이러한 특이성은 정주민적 질서로 수렴할 수 없는 기호들이다. 이러한 유목민적 기호는 무의식 속에 억제되어 있던 욕망을 흔들어 깨우고 삶을 규제하는 기성질서의 부당성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인습적인 삶을 탈영토화시켜서 창조적 삶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요컨대 집시의 노마디즘은 우리가 무엇인가에 근거하여 행위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따라 행위할 것을 요구한다.
  • English
  • Ben Jonson’s masque, <The Gypsies Metamorphosed>, derived wildly successful responses from the courtly audience in 1621 by presenting various medleys of transgressive exoticism of gypsies: their tawny faces striped with colourful streaks, their offbeat dances accompanying their gibberish canting songs, their mysterious chiromancy combined with their dazzling legerdemain, and their protean capability to shift into kaleidoscopic identities. These exoticisms were largely constructed by the author's fantasies projected into alien gypsies to give his audience transgressive pleasure, not to give truthful accounts of gypsies. Yet the repeated projection of these fantasies played a crucial role in bringing forth the so-called gypsyism in early modern Europe. In this respect, gypsyism is an accumulated discursive investment to fill the vacancy left by alien gypsies' distinctive otherness. In the history of Orientalism, gypsies’ nomadic alterity has served as a psychological agency to cause ordinary settlers to make paradoxical investments: glamourization versus stigmatization. This essay argues that the stigmatizing aspect of gypsyism functions as a subversive political metonym which mirrors ontological voidness of James I's proclamation to unite England with Scotland and tricky political maneuverings of Buckingham in the Jacobean court. Contrary to the negative implications of the gypsian subtext of Jonson’s masque, however, the glamourizing aspect of gypsies' nomadism can be positively deployed as revolutionary potentials to decentralize our fixed conception of established beings and to activate our repressed desire for transformative becomings.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Ben Jonson’s masque, <The Gypsies Metamorphosed>, derived wildly successful responses from the courtly audience in 1621 by presenting various medleys of transgressive exoticism of gypsies: their tawny faces striped with colourful streaks, their offbeat dances accompanying their gibberish canting songs, their mysterious chiromancy combined with their dazzling legerdemain, and their protean capability to shift into kaleidoscopic identities. These exoticisms were largely constructed by the author's fantasies projected into alien gypsies to give his audience transgressive pleasure, not to give truthful accounts of gypsies. Yet the repeated projection of these fantasies played a crucial role in bringing forth the so-called gypsyism in early modern Europe. In this respect, gypsyism is an accumulated discursive investment to fill the vacancy left by alien gypsies' distinctive otherness. In the history of Orientalism, gypsies’ nomadic alterity has served as a psychological agency to cause ordinary settlers to make paradoxical investments: glamourization versus stigmatization. This essay argues that the stigmatizing aspect of gypsyism functions as a subversive political metonym which mirrors ontological voidness of James I's proclamation to unite England with Scotland and tricky political maneuverings of Buckingham in the Jacobean court. Contrary to the negative implications of the gypsian subtext of Jonson’s masque, however, the glamourizing aspect of gypsies' nomadism can be positively deployed as revolutionary potentials to decentralize our fixed conception of established beings and to activate our repressed desire for transformative becomings.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1. 집시에 관한 연구는 타자에 대한 지배문화의 편견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집시이즘은 타자에 관한 편견의 결정체이다. 집시는 검은 피부색 때문에 서구 백인들의 타자로 간주되었고, 유목적인 주거문화 때문에 정주민들의 타자로 간주되었고, 춤, 노래, 마술, 곡예 등을 생존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노동의 일탈자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미지는 주체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재현의 대상으로서 지배 문화가 부과한 담론의 일방적인 수신자였다. 즉 집시이즘은 과학적인 증거와 객관적인 사실에 의거하여 성립된 것이 아니라 주체가 타자의 빈자리에 허구적인 이미지를 투사하여 구축한 가공의 담론이었다. 본 연구는 집시의 발생 초기인 근대초기의 역사로 되돌아가서 그들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구축되는 방식을 드러냄으로써 소위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은 지배문화가 타자의 문화를 배제하기 위하여 구축한 억압의 체계임을 밝힌다. 나아가 이러한 연구는 타자에 대한 기성문화의 편견을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문화를 가꾸는데 기여할 수 있다.

    2. 부랑자 팜플렛과 집시 극작품에 대한 관심을 제고(提高)함으로써 집시의 문학적 수용과정에 대한 후속 연구를 유발할 수 있다.
    집시들이 영국에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15세기 말경이었고, 문학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부랑자 팜플렛이 그들을 다루기 시작한 때인 16세기 중엽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극문학에 나타난 시기는 1590년경이었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극작품이 출시된 시기는 1621년 『변신하는 집시』의 획기적인 성공 이후였다. 집시의 문학적 재현은 독자나 관객들에게 단순히 심미적 즐거움을 주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서구인들에게 그들에 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본 연구는 부랑자 팜플렛과 집시 극작품에 대한 관심을 제고함으로써 근대초기 집시의 문학적 수용과정에 대한 후속 연구를 유발할 수 있다.

    3. 근대초기 귀족들의 지배적인 연희 장르였던 가면무도극에 대한 관심을 제고함으로써 이에 대한 후속 연구를 유발할 수 있다.
    가면무도극은 15세기경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에서 연희의 한 방식으로 시작된 이래 유럽 각국으로 퍼진 궁정 오락의 한 종류였다. 영국에서는 헨리 8세 시대에 도입되어 엘리자베스 시대와 스튜어트 시대에 성황을 누렸다가 왕정복고기 이후 ‘세미 오페라’(semi-opera)라고 불리는 일종의 뮤지컬이 그 인기를 대체하게 되면서 소실되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가면무도극은 주로 춤과 음악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문학적 요소가 약하였다. 그러나 제임스 시대에 이르러 가면무도극은 많은 대사를 가미하여 연극적인 플롯을 가지게 되었다. 존슨은 춤과 음악 위주의 가면무도극을 연극적인 차원으로 격상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작가였다(Orgel 2). 특히 『변신하는 집시』는 존슨이 집필한 총 28편의 가면무도극 중에서도 문학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이자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었다(Randall 3). 본 연구는 가면무도극에 대한 관심을 제고함으로써 이에 대한 후속 연구를 유발할 수 있다.
  • Index terms
  • 집시이즘, 탈규범적 이국성, 정치적 환유, 수행성, 유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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