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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에 나타난 신국사상과 「가미(神)」로서의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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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명 종교와 문화 (ISSN : isbn)
발행정보 2006년 06월 01일 / Vol.0 No.12 / pp. 41 ~ 71
발행처/학회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주저자 최유경
저자수 1
초록
  • 국문
  • 일본에서 천황의 정통성과 신성함이 신국론과 더불어 표면에 부상한 것은 1270년, 몽고침입이후였다. 일본에서의 천황의 존재의 의미가 부상한 것은 이 시기로 몽고침입과 더불어 섭관정치와 원정정치는 자신들의 권력의 근거인 천황의 힘을 저하시켰다. 천황의 권력상실은 귀족정치의 약화와 무사가 정치권력의 무대에 등장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무너져가는 왕정시대를 바라보며 1320년 기타바다케 지카후사는 『신황정통기』를 통해, 천황은 일본의 창조신의 혈통을 지닌 천손이며, 일본은 천손의 직계에 의해 통치되어야 하는 신국임을 신대로 거?옜슘#? 올라가 증명하려 함으로 천황에 의한 친정과 귀족정치의 정당성과 주장하였다. 지카후사는 천황의 정통성을 삼종의 신기의 전승에서 찾았는데, 이는 그가 받들고 있던 고다이고천황과 그의 아들, 고무라가미천황의 정통성을 사상적으로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천황의 힘을 믿고 싶었던 귀족집단이 「신」격화된 천황의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근거를 찾으려 『신황정통기』을 저술했다 할 수 있다.
    지카후사는 신본불적사상에 근거하여 부처를 신의 화신으로 보았으며, 일본은 부처가 아닌 신에 의해 통치되는 신국이라고 주장하였다. 기기신화에 근거한 그의 견해는 황통의 정당성은 아마테라스가 천손을 지상으로 내려 보낼 때, 하사한 거울, 검, 구슬이라는 삼종의 신기에 의하여 증명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삼종의 신기를 계승한 고다이천황의 정통성과 동시에 북조에 대한 남조의 우월성을 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카후사의 신국관은 이후 명치신정부가 만세일계의 천황을 주창하는 근거를 제공하였다.
    가마쿠라 혼란기를 거처 일본의 종교, 문학의 미감이 커다랗게 변화했다는 것이다. 귀족의 무상감과 고뇌는 『신고금화가집(新古今和歌集)』에 매우 짙게 반영되었다. 「가도(歌道)」가 성립한 것도 이 시기로 유미주의적 색체를 띈 와카는 환상적, 회화적, 사아징적, 기교적인 독자적인 미의 세계를 성립시켰다. 와카의 세계는 이전에 볼 수 없는 미야비(雅)를 기조로 세련되어갔지만, 내용적으로는 멸망과 애조성을 띤 자연관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가마쿠라시대의 종교와 예술은 무사가 가진 강인함이 더해져 리얼리즘에 근거한 새로운 종교, 예술과 더불어 무사의 세상에 등을 돌리고, 「신」을 중심으로 한 상징성이 강한 예술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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