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성과물 유형별 검색 > 논문 상세정보

논문 상세정보

조선초 사원의 실태와 그 기능 -사원시책에 의한 공인사원을 중심으로-
이 논문은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조선초의 사원연구& #40;사원의 실태와 기능을 중심으로& #41; | 2004 년 박사후연수과정지원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윤기엽(동국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2년 이내에 최종연구결과물로 학술논문 또는 저역서를 해당 사업 신청요강에서 요구하는 수량 이상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최종연구결과물 제출 조건이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저널명 불교학보 - 등재후보 (ISSN : 1226-1386) 외부링크
발행정보 2007년 02월 01일 / Vol.46 No.0 / pp. 85 ~ 115
발행처/학회 불교문화연구원
주저자 윤기엽
저자수 1
초록
  • 국문
  • 朝鮮 開國初의 佛敎政策은 과도한 불교팽창으로 인해 시행된 麗末의 抑佛策을 답습한 경향이 짙다. 太祖代의 불교정책은 儒臣들이 주장한 강경한 억불책보다는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佛敎界의 폐단을 막으려는 입장이었다. 태조6년 7월의 전국사원에 대한 통제책은 사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의 폐해를 근절시키고자 한 조치로서 太宗代, 世宗初에 寺院施策의 토대가 되었다. 定宗代의 불교정책 또한 태조대와 유사하게 불교계가 끼치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근절하고자 했다.
    옜옜##?개국초에 부상한 사원으로는 興天寺, 藏義寺, 支天寺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조의 기반이 조성되어 간 太宗代의 사원시책은 전국사원에 대한 經濟的 탄압을 가하며 公認寺院을 일정수로 제한하여 불교세력을 최대한 억제하고자 한 것이었다. 태종초에는『密記』나『踏山記』에 실린 사원, 常住僧 100명 이상의 大寺刹, 太上王인 太祖와 친밀한 사원은 보호하되, 그 외의 사원은 革罷해 가는 시책이었다. 이것이 태종6년에 더욱 구체화 되어 11개 宗派 소속의 242寺를 公認寺院로 결정하였고, 다음 해에 7개 종파의 名刹 88寺가 資福寺로 지정되어 242사에 포함되었다. 태종대의 강경한 사원시책에 의해 많은 사원이 경제적 탄압을 받으며 혁파돼 갔지만, 고려조 이래의 전통적인 불교종파가 인정된 채 일부 사원은 국가의 보호대상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특히 資福 88寺의 지정은 당시 승려들의 불만을 무마하고 일정한 범위 내에서 古來의 전통사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옜옜##?정기적으로 여는 수륙사 사원, 王陵 인근에 위치한 재궁, 또는 山水가 빼어난 곳에 자리한 名刹이라는 점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 이 논문에 대한 디지털 콘텐츠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를 로딩 중입니다.
  • 본 자료는 원작자를 표시해야 하며 영리목적의 저작물 이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 또한 저작물의 변경 또는 2차 저작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