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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광해 연간 文風의 변화와 그 의미-前後七子 수용 논의의 반성적 고찰을 겸하여-
이 논문은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조선중기 한문산문의 성격과 의의에 관한 연구 | 2005 년 박사후연수과정지원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우정(한양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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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명 한국한문학연구 - 등재 - A (ISSN : 1228-128x)
발행정보 2007년 06월 01일 / Vol.39 No.0 / pp. 187 ~ 222
발행처/학회 한국한문학회
주저자 김우정
저자수 1
초록
  • 국문
  • 조선중기는 진한 이전의 산문을 전범으로 삼는 복고적 문풍과 당송 제가의 산문을 법식으로 삼는 당송고문이 본격적으로 분기하는 시기이다. 윤근수와 최립, 유몽인과 허균 등은 산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註疏語錄體와 軟美한 館閣文으로 대표되던 조선전기의 문풍과 구별되는 복고적 문장론 또는 문풍을 구현한 작가이다. 이들의 문체는 張維‧李植 등이 지향한 당송문 위주의 平易하고 直實한 문장과 구별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유파적 성격을 띠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작가 단위로 들어가 그 이론과 실천 양상을 구?셈岵막? 살펴보면 하나의 유파로 묶기 곤란한 면모들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최립과 더불어 고문사를 창도했다고 평가받는 윤근수의 경우, 李夢陽의 詩選集을 간행하고 王世貞의 史記纂을 본뜬 史纂의 간행을 추진하는 등 전후칠자의 작품에 심취했지만 실제 창작의 영역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최립의 경우, 고문사를 가장 선명하게 실현한 작가로 평가받지만, 전후칠자의 존재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유몽인의 경우, 이 시기의 문인 가운데 가장 분명하고 활발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송대 고문가들의 문장이 지리하다고 비판하여 복고의 입장을 취했지만, 복고론의 주창자인 이몽양이나 왕세정 등에 대해서도 제가의 문장을 모의하고 표절한 데 불과하다고 혹평하였다. 허균의 경우, 유몽인과 달리 전후칠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들의 작품을 탐독했다. 하지만 명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의 전후칠자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지 전후칠자의 복고론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당시 문단이 언뜻 보기에는 전후칠자의 복고적 문장관에 전적으로 힘입어 선진양한의 산문을 표준으로 하는 새로운 문체를 창출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름의 주체적 판단에 입각해 진한과 당송을 넘나드는 창조적이고 복합적인 문체를 구현하였던 것이다. 이는 곧 조선전기 이래로 누적된 글쓰기의 양태가 이 시기에 이르러 필연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의 문인들은 각각 자신의 사유와 취향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하였다. 이런 점에서 문단 내부의 내재적 양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중국의 문학사나 제한적인 논평 자료만을 근거로 복고적 문풍의 출현이 전후칠자의 수용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으로 규정한 기왕의 논의는 재론을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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