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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洛論系 學脈의 변모양상 연구
이 논문은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18세기 낙론계 학맥의 전개와 변모양상 연구 | 2006 년 학문후속세대양성& #40;박사후국내연수& #41;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조성산(성균관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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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명 역사교육 - 등재 (ISSN : 1225-0570) 외부링크
발행정보 2007년 06월 01일 / Vol.102 No.0 / pp. 63 ~ 95
발행처/학회 역사교육연구회
주저자 조성산
저자수 1
초록
  • 국문
  • 초기 농연 학맥에서 형성된 낙론 학맥은 辛壬獄事, 庚申處分, 辛酉大訓, 乙亥獄事, 壬午禍變, 華陽書院廟庭碑 사건 등 많은 정치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호락논쟁과 함께 그 학맥․학풍의 성격을 달리해 갔다. 호락논쟁이 학술 논쟁에서 정치적인 영역으로 이동해 가면서 낙론 학맥도 중요한 변화를 겪어야 했다. 그 변화의 과정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김창협 학맥은 문학․성리학 분야에서 특장을 보였으며, 훗날 소론계에 가담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아직 학맥이 정형화되기 이전이라 상대적으로 다양한 면모들이 보였다. 김창흡 학맥도 문학․성리학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많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신임옥사를 겪으면서 학풍이 보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는 사실이다. 신임옥사가 노론 학계에 끼친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보수화 경향으로 인해 어유봉․박필주와 같이 소론과 관련되거나, 적극적인 반탕평론을 전개하지 않았던 인물들은 낙론 학맥을 계승하는 데 어려움을 가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연 문하에 직접 있지 않았던 이재가 학맥을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이재는 심성론에 있어서는 호론과 명확한 차이를 보였지만, 현실관에 있어서는 송시열의 그것을 계승하였으므로 호론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이는 신임옥사 이후 의리론 일변도의 노론 학풍과 관련이 깊다. 하지만 점차 노론 의리가 정계에 관철되면서 의리론 일변도의 학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학문 경향들이 서서히 낙론계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이재의 제자들은 대부분 의리론에 충실하였지만 그 안에서 제한적으로나마 경세론에 관심 갖는 이들도 등장하였다. 경세론에 대한 관심은 󰡔磻溪隨錄󰡕을 통해서 주로 표출되었다. 이것은 낙론계 학풍에 있어 작지만 중요한 변화였다.
    18세기 후반 낙론계 학맥은 攻洪-扶洪의 갈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며 전개되었다. 1755년 乙亥獄事 이후 노론의 의리는 대부분 관철되면서 낙론 학계는 신임의리에서 일정 부분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학문 경향들이 등장하였다. 이는 당시 학맥의 분화를 설명하는 데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낙론 학맥은 크게 김원행과 민우수 학맥으로 분화되었다. 김원행 학맥은 낙론 심성론을 고수하였고 부홍-시파적 입장에 가까웠다. 문하에는 홍대용이 이용후생학을 중시하는 학문경향을 가지고 있었고, 박윤원은 ?맑痔岵? 낙론 학맥을 대표하였다. 또한 황윤석 같은 지방의 인재들도 상당수 있었다. 한편, 민우수 학맥은 노론 의리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공홍-벽파적 성향을 띠었고 호론계와도 긴밀하게 연대하였다. 그들에게서 특징적인 것은 심성론에 있어서도 호론에 접근하는 모습을 띠었다는 점이다.
    이상에서 보건대, 낙론 학맥은 일률적이지 않았으며 개개 인물들도 각기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낙론계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졌던 학문적, 정치적 맥락은 세밀히 살펴 볼 때 중요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호락논쟁 또한 각 시대마다 사회적 맥락이 달랐으며, 후대로 갈수록 정치적인 색채를 짙게 띠어갔다. 학맥의 변모양상을 살펴봄으로써 낙론계 인물들의 사상사적 위치도 좀더 선명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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