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의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한국사회에는 빈곤의 문제가 사회문제의 새로운 화두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는 외견상 97년 이전까지 눈에 잘 띄지 않던 노숙자나 결식아동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 뿐 아니라, 빈곤을 부채질하는 구조적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사실과 ...
1997년의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한국사회에는 빈곤의 문제가 사회문제의 새로운 화두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는 외견상 97년 이전까지 눈에 잘 띄지 않던 노숙자나 결식아동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 뿐 아니라, 빈곤을 부채질하는 구조적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빈곤 현상은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처럼 생물학적 욕구를 해결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각종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 공동의 문화적 과정에 통합될 수 있는 기회 등을 누리지 못하는 이른바 ‘사회적 배제’의 문제이며 상대적 박탈이 빚어내는 정신적 피폐화, 공동체적 관계의 붕괴 등을 포함한다.
이 연구는 노동의 유연화 추세가 중간계층 이하의 빈곤화를 부채질하고 있고 그러한 경향성이 저소득층의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위기와 불이익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양상의 빈곤이 나타나게 된 원인적 배경을 세계경제질서와 산업구조의 변화를 통해서 파악하고, 1960-70년대의 빈곤과 오늘날의 빈곤이 어떤 차이와 유사점을 갖는지를 비교함으로써 ‘신빈곤’의 개념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또한 생산영역에서는 오늘날 빈곤층의 노동의 성격과 특징을 규명하고자 했으며, 소비영역에서는 소득과 지출의 균형이 과도하게 역전된 결과로서 신용불량자의 문제와 빈곤 탈출의 수단으로서 교육의 문제를 다루었다.
절대빈곤층, 차상위 빈곤층, 차차상위 빈곤층, 상위 빈곤층 등으로 나누어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에서, 빈곤층과 비빈곤층의 경계선상에 놓여 있는 차상위 빈곤층과 차차상위 빈곤층은 탈빈곤의 의욕과 빈곤 탈출의 장애를 함께 지닌 채 상대적 빈곤을 체현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고, 비닐하우스촌과 지하셋방이 빈곤층의 공간적 격리감과 심리적 고립감을 강화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상위 빈곤층과 절대빈곤층의 노동을 비교했을 때 임금근로자의 경우, 차상위 빈곤층에서는 남성 비율이 높은 반면, 절대빈곤층에서는 여성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실업자의 경우 차상위 빈곤층에서는 여성 비율이 높았으나 빈곤층에서는 남성 비율이 높게 나타나, 차상위 빈곤층에서는 여성실업자 문제가, 절대빈곤층에서는 남성실업자 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근로빈곤층은 직업능력이 미약하여 취업이 힘든 사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여성 근로빈곤층은 직업능력이 있고, 학력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건강상태 또한 양호할지라도, 보육이나 간병과 같은 가사부담으로 인해 경제활동에 종사하지 못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빈곤층에 속하는 신용불량자는 대부분 고등학교 중퇴 이상의 학력을 가졌으며 근로능력이 있는 20~40대가 96%를 차지하고 있었다. 신용불량자 빈곤층은 일반빈곤층보다 식품비나 보건의료비와 같은 필수품의 지출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내구재에 속하는 전용 수세식 화장실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고 주거비 지출이 높으며, 신문구독율과 인터넷 이용율이 더 높다. 신용불량자 중에서 18세 이상 60세 이하의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있는 사람 중에서 23%만이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실업이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신용불량자 빈곤층은 일반빈곤층에 비해, 자살 및 범죄 충동을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 자살, 친인척 살해, 은행강도, 유괴 등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신용불량자들이 많이 늘어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교육체계의 확대와 평균 학력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학교교육은 빈곤 탈출의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중산층의 양육문화는 닫혀진 노동시장 안에서 제한된 수의 고급 일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가정, 학교, 사교육시장 등의 영역에서 차별화를 위한 다양한 전략들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재생산하는 반면, 저소득층의 일상생활에서는 학력자본의 중요성이나 이의 획득을 위한 구체적 정보들이 교환되지 않는다. 저소득층 부모가 자녀의 고학력화를 희망하면서도 이처럼 일상 속에서는 목표의식이 희석되고 실종된 형태의 양육문화가 자리잡는 것은, ‘학교화’ 사회에서 배제되어 주변부의 삶을 살아온 그들의 계급적 경험이 축적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