ꊱ 초기 고전소설사의 구도는 ꡔ금오신화ꡔ에서 <홍길동전>으로 뛰어넘곤 했다. 16세기라는 한 세기를 공백으로 비워둔 셈이다. 하지만 <기재기이>·<주생전>과 같은 傳奇, <천군전>·<수성지>·<화사>와 같은 假傳, <장생전>·<남궁선 ...
ꊱ 초기 고전소설사의 구도는 ꡔ금오신화ꡔ에서 <홍길동전>으로 뛰어넘곤 했다. 16세기라는 한 세기를 공백으로 비워둔 셈이다. 하지만 <기재기이>·<주생전>과 같은 傳奇, <천군전>·<수성지>·<화사>와 같은 假傳, <장생전>·<남궁선생전>·<장산인전>과 같은 傳記, 그리고 <대관재기몽>·<원생몽유록>·<금생이문록>과 같은 夢遊錄을 편입·재조명함으로써 15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는 16세기라는 연대기의 서사문학적 지평을 최근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16세기의 서사문학적 지평을 해명하여, 소설의 싹을 틔운 15세기와 소설의 시대를 열어젖힌 17세기를 유기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물론 16세기를, 15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는 교량적·과도적인 시기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16세기는 어느 시기보다 ‘새로운 출발’과 ‘독자적 성격’이 뚜렷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또는 성리학적 질서가 본격적으로 실험되고 전사회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이념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 엄청난 기획에는 이전 시기의 낡은 전통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새로운 모험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이 당연하게 포함된다. 때문에 16세기는 ‘지속과 변주’의 관점만이 아니라 ‘단절과 출발’의 관점을 함께 견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ꊱ 16세기 서사문학사의 지평을 읽는 시각은 대략 세 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다양한 서사갈래 자체의 층위, 둘째는 사대부 문인의 복합적인 세계관 및 문예미학 층위, 셋째는 서사 유형의 역할 및 서사미학의 층위가 그것이다. 즉, 필기·패설과 지괴·전기가 맺고 있던 얽힘과 갈림의 실상, 사대부 문인에게 보이는 문예미학의 복합적 국면, 그리고 모순적 관계로 읽힐 법한 서사적 흥미와 이념적 교화의 결합 양상에 보다 유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존의 장르론적 시각에 긴박되지 않고, 16세기를 재조명 할 필요가 있다. 그때, 16세기 서사문학사의 유형으로 인물서사, 전기소설, 서사우언, 그리고 번안소설을 꼽을 수 있다. 좀더 폭넓은 고찰을 통해 확정해야겠지만, 서사문학사의 층위를 분별하고 그에 따른 문예미학의 특징을 고찰하려는 우리의 목표를 위해서는 대체적으로 원용할 만하다. 더욱이 초기 한문소설의 미학적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점도 이런 유형 분류와 부합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 현실계와 초현실계 사이에서 머뭇거리던 세계인식, 사실과 허구로부터 맛보게 되는 擬似事實的 체험, 작가의 현실 소외감과 잠재된 자부심의 이율배반적 길항 관계, 작품 창작에서 구현된 관습적 면모와 그로부터의 일탈이 빚어내는 변주, 서사와 서정이 어울린 한문산문의 문예적 전통 등이 그것이다.
ꊱ 16세기 서사문학의 미학은 유형에 따라 각기 다른 성취를 지닌다. 첫째, 人物敍事는 견문으로 갈무리한 사실과 허구가 혼합된 서사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설공찬전>을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데, 이는 15세기 훈구파 문인의 문예취향이던 見聞의 기록, 博學의 자료라 할 필기·패설의 맥락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사대부 문인이 견문한 사실에 기반해 핍진한 서사미학을 구가하고 있는바, 이는 ‘견문의 기록’에서 ‘허구의 서사’로 나아가는 과도기이기도 했다. 둘째, 전기소설은 오래 전에 구축된 전기적 서사문법의 계승과 변주라는 서사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하생기우전>이라든가 <주생전>은, 전 시기에 창작된 우리의 <만복사저포기>라든가 중국 당나라 때 지어진 <霍小玉傳>과 <鶯鶯傳> 등을 절묘하게 交織해 만든 작품이다. 그런 계승과 변주의 과정을 통해 전근대 동아시아 문학의 오랜 서사문법을 흥미롭게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敍事寓言은 지식인의 은밀한 욕망을 담은 우의하고 있는 서사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서사우언은 지배담론에 가탁해 주류담론 자체를 교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유형은 가전과 몽유록이다. <서재야회록>, <천군전>, <수성지>, <화사>와 같은 작품이 전자라면, <안빙몽유록>, <대관재기몽>, <금생이문록>, <원생몽유록>과 같은 작품은 후자이다. 이들 작품은 주류적 담론 또는 사회적 통념에 대해 품고 있던 지식인의 의문을, 사물과 마음의 의인화를 통해, 또는 꿈이라는 가상의 수법을 빌어 공공의 장에 올려놓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