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주제인 '세르비아니즘과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는 내용면에서 대략적으로 크게 2개의 장으로 나누고, 두 번째 장은 대략적으로 역사적 시기에 따라 4개의 절로 나누어 연구 될 것이다.
1. 우선 첫 번째 장에는 몬테네그로 독립을 둘러싼 세르 ...
본 연구주제인 '세르비아니즘과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는 내용면에서 대략적으로 크게 2개의 장으로 나누고, 두 번째 장은 대략적으로 역사적 시기에 따라 4개의 절로 나누어 연구 될 것이다.
1. 우선 첫 번째 장에는 몬테네그로 독립을 둘러싼 세르비아인들과 몬테네그로인들간의 분쟁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 이론 작업으로 세르비아니즘의 기원과 그 특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세르비아니즘은 중세 세르비아 왕국과 당시 최대 전성기였던 스테판 두샨 왕(Kralj i Car Stefan Uros 4 Dusan, 1331-1355)시절의 영토·문화적 확대에 기초한 역사적 당위성을 그 기원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기원을 기초로 세르비아니즘은 나폴레옹 혁명전쟁의 여파로 19세기 중엽 이후 발칸유럽에 유입된 민족주의가 세르비아 민족들 사이에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정착되고 이와 함께 세르비아 근대 민족국가가 수립되면서 세르비아 민족주의 표출의 한 형태로써 발전되기 시작했다. 이 부분에서는 특히 세르비아 현지 학자들의 견해를 중심으로 세르비아니즘의 형성 과정과 배경 그리고 이론에 대해 분석하게 될 것이다.
2. 두 번째 장에서는 앞서 연구된 세르비아니즘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바탕으로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를 둘러싼 세르비아인과 몬테네그로인들간의 갈등과 분쟁을 역사적 순서에 따라 정리하게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특히 근대 이후 문테네그로 독립문제에 대해 당시 세르비아니즘에 젖어 있던 세르비아인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몬테네그로에 세르비아니즘을 확대해 가려 했는지, 반면 몬테네그로인들은 이러한 세르비아니즘 확대에 어떻게 저항하였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해 현지 학자들의 주장들을 서로 비교해 설명하도록 할 것이다.
2.1) 우선, 첫 번째 절에서는 근대시대부터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때까지 제기되었던 몬테네그로 독립문제와 이를 저지하려는 세르비아인들의 갈등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 제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몬테네그로는 니콜라왕을 중심으로 독립왕국을 유지시켜왔다. 하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이후 몬테네그로 왕국은 세르비아 중심의 최초 남슬라브족 왕국이었던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Kraljevina SHS)'하로 강제 편입되게 된다. 이후 몬테네그로는 2차 세계대전이전까지 세르비아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티토를 중심으로 한 파르티쟌 세력이 승리한 이후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하에서 6개 구성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고 마케도니아 공화국)중 하나인 몬테네그로 공화국으로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2.2) 두 번째 절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붕괴 과정속에 세르비아와 함께 신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구성하게 되면서 겪게되는 여러 갈등과정을 소개하게 될 것이다.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이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 위기와 더불어 몬테네그로는 매우 불확실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특히 1990년에 있었던 다당제 선거가 실시된 이후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해체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고, 이에 따라 몬테네그로도 자신의 진로를 결정지어야만 했다. 당시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의 회유와 불확실한 국제적 상황으로 인해 세르비아와 함께 1992년 신유고슬라비아 연방 형성에 가담하게 된다. 하지만 신유고슬라비아 연방에 가담한 이후 몬테네그로는 연방 구성국이었던 세르비아가 자신의 주도로 일으킨 유고내전(슬로베니아 내전과 크로아티아 내전)과 보스니아 내전 그리고 이후 1999년 3월에 일어난 코소보 전쟁등으로 인해 세르비아와 함께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로부터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외교적 고립을 받아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서구로부터의 고립은 몬테네그로인들에게 세르비아와의 연방형성과 유지에 대한 회의를 다시 한번 증폭시키게 하였고, 이러한 국내 분위기 속에서 1999년 8월 몬테네그로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된 밀로 쥬카노비치(Milo Dukanovic )대통령과 그 수뇌부는 코소보 전쟁이 끝난 직후 몬테네그로 독립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에 들어가게 된다.
2.3) 세 번째 절에서는 1999년 독립문제 제기이후 2000년 10월 세르비아의 민주화 혁명때까지 몬테네그로의 독립문제가 어떻게 전개되었고, 세르비아의 반응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연구하게 될 것이다. :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는 당시 세르비아의 실질적 권력자였던 슬로보단 밀로쉐비치(Slobodan Milosevic )의 세르비아니즘의 확대에 반발하였던 몬테네그로 대통령 밀로 쥬카노비치를 중심으로 제기되게 된다. 우선 쥬카노비치 대통령은 세르비아 정부에게 국명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아닌 '몬테네그로-
결과등록초록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유고슬라비아 지역은 수차례의 민족간 갈등과 분쟁의 아픔을 겪어왔다. 그러한 갈등과 분쟁의 요인 중에는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영토 확대에 기초한 세르비아니즘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여 왔었다. 발칸유럽은 21세기 현재까지도 세르비아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유고슬라비아 지역은 수차례의 민족간 갈등과 분쟁의 아픔을 겪어왔다. 그러한 갈등과 분쟁의 요인 중에는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영토 확대에 기초한 세르비아니즘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여 왔었다. 발칸유럽은 21세기 현재까지도 세르비아니즘의 그늘과 어두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99년 이후로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라 말할 수 있다. 1992년 4월 유고슬라비아의 구성 공화국중 하나로 세르비아와 같이 연방을 구성하였던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전쟁을 겪은 이후 21세기 현재 세르비아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추진해 나가려는 움직임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는 잠시 수면에 가라앉아 있던 코소보와 마케도니아 그리고 보스니아내 민족문제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발칸 유럽내 민족간 분쟁의 재현 가능성을 확대시키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연구배경을 바탕으로 몬테네그로 독립문제와 세르비아니즘과의 관계를 분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