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근대적인 경제제도가 도입되고 조선총독부의 산업정책과 일본자본의 유입을 주요한 계기로 경제구조가 서서히 변모해가기 시작하는 식민지기의 한국경제에서 형성·발전해 온 조선상업은행을 사례로 이 시기 일반은행이 어떻게 변화·성장해 왔는가를 검토하는 것 ...
본 연구는 근대적인 경제제도가 도입되고 조선총독부의 산업정책과 일본자본의 유입을 주요한 계기로 경제구조가 서서히 변모해가기 시작하는 식민지기의 한국경제에서 형성·발전해 온 조선상업은행을 사례로 이 시기 일반은행이 어떻게 변화·성장해 왔는가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선 조선총독부가 일반은행 육성정책을 시행하는 1910년대에 조선상업은행은 어떠한 성장경로를 밟아 왔는가를 검토할 것이다. 사실 이 시기 이전부터 영업활동을 계속해 온 조선상업은행에게도 1910년대는 성장의 주요 기회였다. 1912년의 은행령 개정에 따라 다른 금융회사의 은행업 겸업이 금지되면서 조선상업은행은 한성공동창고회사를 합병하고 영업망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경제규모의 증대에 따라 중요 상업중심지에 지점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상업은행이 더욱 빠르게 성장한 시기는 1920년대였다. 1920년대는 일본경제에 불어닥친 금융공황이 한국경제에 전파되면서 일반은행이 경영위기에 직면한 시기로 조선총독부가 금융정책을 전환하는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일반은행간 합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그 중심에 조선상업은행이 있었다. 조선상업은행은 이러한 합병과정을 통해 주주 수는 물론 민족별 주주구성이 크게 변화하고, 이러한 변화를 배경으로 종전의 지배인제가 폐지되고 은행의 결의·집행기구로서 중역회가 은행 의사결정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조선상업은행의 자금원천은 식민지 전기간에 걸쳐 평균 92% 정도를 차지했던 예금, 차입금, 자본금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금이었는데, 1910년대에 40%대, 1920년대와 1930년대 중반기 사이에는 70%대, 전시기가 되면서 그 비율은 급격히 증가하여 90%대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예금이 이와 같이 빠르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상업은행에게 있어 차입금은 매우 중요하였다. 이 시기의 차입금은 주로 영업자금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은행으로부터 공급된 것이었다. 이렇게 조달된 자금은 전시기 이전까지는 대부분 대출로 운용되었고, 전시기가 되면서 유가증권에 대한 투자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전시기에 유가증권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이유는 전쟁관련 국채 구입, 생산력확충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맡고 있는 특수은행의 회사채와 주식 구입 등에 기인한다. 조선상업은행의 금융활동이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괏?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조선상업은행에서 작성한『중역회결의록』자료를 활용할 것이다. 여기에는 일정 대출한도를 초과하는 대출자의 거래내역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자료를 정리함으로써 시기별 대출규모, 민족별 대출, 주요 대출자의 산업활동 등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등록초록
본 논문은 해방 이후 금융제도의 전사(前史)로서 식민지기 금융제도의 변화, 발전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였다. 특히 일반은행의 식민지적 특질을 조선상업은행을 사례로 하여 분석하였다. 분석된 내용을 요약하면 네 가지이다. 첫째, 조선식산은행의 설립을 전후한 시기에 ...
본 논문은 해방 이후 금융제도의 전사(前史)로서 식민지기 금융제도의 변화, 발전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였다. 특히 일반은행의 식민지적 특질을 조선상업은행을 사례로 하여 분석하였다. 분석된 내용을 요약하면 네 가지이다. 첫째, 조선식산은행의 설립을 전후한 시기에 일반은행의 제도적 기반이 크게 변화되어 이전의 지방은행적 특징은 일반은행간 합병을 통해 점차 전국은행으로 재편되었다. 둘째, 이와 같이 일반은행간 합병을 통해 점차 소수 은행체제로 전환되었지만, 일반은행의 영업권이 지역적으로 분단되어 은행간 경쟁이 제한되었다. 셋째, 조선상업은행의 경영기반은 1930년대 후반의 전시기를 전후하여 크게 변화되었다. 즉, 자금조달에서는 예금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자금운용에서는 전비조달을 위한 국채나 생산력확충계획에 참여한 기업의 회사채 등 유가증권의 구입비중이 빠르게 증가하였다. 넷째, 1920년대까지 조선상업은행은 주로 일본인에게 대출해주었지만, 대출자들의 대출액에서는 민족적 차별이 없었다. 또한 조선상업은행의 대출선은 미곡, 면직물 교역 등 주로 상업활동에 종사한 상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