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에 대한 평가 중에서 자주 눈에 띄는 '일본의 양심'이라는 말은 평균적인 일본의 지식인들과 구별되는 '특수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위치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오에 겐자부로의 정치적 입장은 큰 틀에서 보면 일본에 대한 안티테제를 ...
오에에 대한 평가 중에서 자주 눈에 띄는 '일본의 양심'이라는 말은 평균적인 일본의 지식인들과 구별되는 '특수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위치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오에 겐자부로의 정치적 입장은 큰 틀에서 보면 일본에 대한 안티테제를 축으로 형성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노벨상 작가에게 수여해 온 일본 정부의 훈장을 거부한 예는 유명하다. 오에는 "예술원의 존재는 우리나라 문화에 바람직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 폐지해야만 한다. 문학자가 국가에 포섭되는 형태가 아니라, 그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형태에서 (작품을=인용자) 써야만 한다"면서 "나는 전후민주주의의 세대. 문화훈장 따위의 국가 관련의 상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근대 작가들 중에서 신화화된 인물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가 일본정부가 주는 박사학위 수여를 거부했다는 유명한 일화는 신화의 확대재생산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오에의 경우 나쓰메 소세키처럼 신화화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신화화된다면 오에 문학의 의의 자체가 진부해지겠지만) 그가 거부한 훈장은 거부의 변에서 밝힌 것처럼 작가로서의 오에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일본'이라는 국가와 거리를 두겠다는 발언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스·미디어는 오에를 '일본'을 뛰어넘은 세계적인 작가이면서 동시에 일본인 작가라는 관점에서 그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앞의 기념 우표를 예를 들어도, 노벨상 수상작가로서 오에는 '애매한 일본'을 비판해도 결국 '일본인' 노벨상 수상 작가로서 통합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일본'의 '나'를 주장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매개로 끌어내는 '아름다움'은 '애매한 일본'에 대한 비판 정신, 윤리성과 결합하여 훌륭한 '일본인'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 연장 선상에서 '노벨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탄생한다. 오에가 연설, 강연,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을 비판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재료가 되고, 노벨상이라는 이미지 속에 포용된다. 그 결과로 오에의 정치적 입장은 '안전한' 영역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오에가 일본을 비판하는 행위는 일본의 양심을 더욱 부각시키고, 비판받는 부분의 비양심을 은폐하는 아이러니를 초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노벨상 작가를 포섭하는 국가적 동인은 강력푀염痼甄? 오에가 훈장 서훈이나 에히메현에서 주는 상을 거절했지만, 정작 노벨상의 유혹에는 이길 수 없었던 것 같다. 노벨상 작가로서 중심화되는 오에.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정치적 입장이 일면 날카로운 반면에 '지나치게 담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는 지식인이지만, 그 양심에 따라 행동을 다함으로써 책임도 완결된다는 식으로 '사건'과 자신과의 일정한 거리를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동파의 이미지로 각인된 진보적인 작가 가이코 다케시(開高健, 1930-89)와 비교할 때, 오에가 추구한 사회적 실천은 '비판했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식의 '탈속'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노벨상의 이미지는 이렇게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의 발신과 동시대의 독자가 발하는 메시지 사이에서 충돌하고 서로 흡수하면서 아주 강력한 노벨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결과등록초록
이 글에서는 오에 겐자부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국가 의식과 연결되는 과정을 검토하여 노벨상 담론이 지니는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분석하기로 한다.
이 글에서는 오에 겐자부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국가 의식과 연결되는 과정을 검토하여 노벨상 담론이 지니는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분석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