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특히 그 중에서도 한국, 중국, 일본 3국은 1945년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60년간에 가장 급속하게 발전한 지역에 해당한다. 식민지 피지배와 분단, 전쟁의 참화를 겪었던 한국이 경제성장과 민주화라고 하는 정치․경제적 압축성장을 단기간에 달성한 ...
동아시아, 특히 그 중에서도 한국, 중국, 일본 3국은 1945년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60년간에 가장 급속하게 발전한 지역에 해당한다. 식민지 피지배와 분단, 전쟁의 참화를 겪었던 한국이 경제성장과 민주화라고 하는 정치․경제적 압축성장을 단기간에 달성한 점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바이다. 한국은 이를 바탕으로 ‘한류’의 확산을 통해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으며,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동아시아 냉전의 중심에서 평화의 중심축으로 거듭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만이 아니다. 중국은 1980년대 이후 이념적 제약성에서 벗어나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안으로는 ‘애국주의’를 견고히 하여 내적 단결을 도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아시아의 맹주가 되려고 하는 ‘화평굴기’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패전 이후 평화헌법의 틀 안에서 경제발전에만 매진해온 일본은 점차 그 틀에서 벗어나 정치․군사적으로도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로 변신해가고 있다. 다시 말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의 전환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동아시아 각국의 성장, 발전이 상호 이해와 협력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불신과 대립․경쟁 속에서 추진되면서 심각한 국가간 갈등과 지역내 불안정성을 낳고 있는 점이다. 문화․경제교류의 급속한 증진에도 불구하고 각국 국민간 상호 불신이 심화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 불신은 1차적으로 역사인식의 충돌, 다시 말해 과거를 둘러싼 기억의 충돌에서 비롯한다. 패전 이후 철저한 과거 청산과 사죄, 상호 이해의 길을 걸어간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서 침략국가 일본의 과거 청산과 이웃 피해국가에 대한 사죄․배상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한 일본의 국제무대 복귀 자체가 이웃 피해 국가들의 불참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후 일본은 이웃 국가들에 대해서는 형식적인 반성과 경제협력의 자세만을 보여주었고, 20세기 후반, 21세기에 들어서는 더 나아가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며 과거의 침략행위 자체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 갈등은 식민지․전쟁의 가해와 피해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동북공정’문제에서 드러나듯이 빠른 속도로 경제․군사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은 사회주의 이념의 퇴조 속에서 내적 단결을 위해 ‘애국주의’를 강화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팽창적 내셔널리즘이 한국의 내셔널리즘과 충돌하게 되는 문제를 낳고 있다. 제국주의․전쟁의 어두운 역사를 반성하고 더 나아가 극단적인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의식을 창출해내지 못하는 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번영은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다.
다행히 동아시아 지역 내 역사 갈등의 한편에서는 그 갈등을 해소하고 역사의식을 공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비록 부진하였지만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1기 활동을 통해 한일간 공동역사연구의 경험이 축적되었으며, 제2기에는 교과서문제를 직접 논의하는 방향이 모색되고 있다. 교사, 학자, 일반 시민 등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상호 교류가 더욱 증가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구체적인 결과물들이 제시되고 있다. 한중일 3국의 학자, 교사, 시민들이 함께 출간한 동아시아 근현대사 공동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가 대표적인 성과물이며, 그 외에도 한일간 여러 공동교재가 출간되었다. 또한 동아시아 평화 포럼 등 학술․시민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3국 학생들의 직접적인 상호 교류도 진전되고 있다. 3국간 역사 갈등, 특히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시민들의 역사의식 공유, 교류의 네트워크 진전이라고 하는 긍정적인 결과가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동아시아 역사 갈등의 현황을 점검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전개된 다양한 경험들을 한편에서 정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진적인 경험을 축적한 유럽의 사례를 점검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번영을 위한 미래지향적 역사교육의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