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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조선전기 儀禮儀仗에 나타난 王權의 구성과 내용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인문사회)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0-332-A00008
선정년도 2010 년
연구기간 2 년 (2010년 05월 01일 ~ 2012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강제훈
연구수행기관 고려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조선시대 국왕 의장 규정을 종합하여 역주하고, 의장물 구성과 상징의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당시대 사람들이 의도하고 있었던 조선시대 왕권의 내용과 성격을 검토하고자 한다.
    조선은 국가례로서 길례·가례·군례·빈례·흉례로 구성된 五禮를 갖추고 있었다. 국가 의례는 조선 중심의 국가 체제를 구현하는 것으로 의례의 현장은 조선 국왕이 중심이 된 질서 체계를 실천하고 확인하는 자리였다. 의례는 정해진 의도를 가지고 구성되었고, 각 구성요소는 신중하게 고려된 상징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국왕의 의장은 국왕을 드러내고 왕권을 상징하는 장치였다.
    유럽의 지배자는 단일한 紋章을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유교적 국가 의례 체제에서는 신분이 높을수록 상징하는 의장의 종류가 규모가 크고 복잡하였다. 따라서 하나의 단일 문장이라는 개념은 적용될 수 없다. 개개의 의장물은 각각 고유한 상징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의장물이 상징하는 대상의 신분과 고유성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 의장물의 구성과 내용을 분석하는 작업은 피상징자의 신분과 권리의 내용을 검토하는 작업이 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의 결과는 의장의 상징 체계를 통해서 조선시대 왕권에 대한 당시대인의 인식을 분석 검토한 것이다. 조선시대 왕권의 내용을 분석하기 위한 이러한 연구는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다. 왕조 국가 조선의 왕권에 대한 새로운 분석 방법 및 당시대의 실질적인 왕권 규정 내용이 검토됨으로써 이 분야의 관심과 연구 영역의 확대가 기대된다.
    조선시대 왕실 문화와 관련된 사항은 사회적으로 다양하게 수요가 발생한다. 왕실 문화에 대한 규명과 그 성과는 일련의 재현 행사를 비롯하여 사극 및 기타 문화사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재료로서 기능한다. 특히 국왕과 왕실 구성원의 의장이 갖는 함의를 분석한 본 연구의 결과는 학문적 근거를 갖춘 콘텐츠로 구축되어 향후의 관심과 문화 사업에 적용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1) 연구대상자료
    본 연구가 검토대상으로 하는 내용은 "국조오례의"를 비롯한 조선시대 禮典에서 규정하고 있는 殿庭 儀仗이다. 전정 의장은 조회나 회연의 儀禮圖에 표현되어 있고, 序例의 鹵簿 항목에 기술되어 있다. 노부의 기술에는 旗幟를 포함한 상징 의장물이 당연히 포함되지만, 이외에도 시위 병력과 수행 관원의 구성 및 이들의 次序가 매우 중요한 규정 요소가 된다. 반면에 전정 의장은 의장물의 구성과 전정 내에서의 위치가 중요한 핵심 사항이 된다.
    본 연구가 검토대상으로 하는 국왕의 의장 체제는 大仗, 半仗, 小仗으로 구성된다. 大仗, 半仗, 小仗의 구성에 대해서는 "세종실록" 오례, "국조오례의", "속오례의", "춘관통고"에 규정된 사항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분석하기 위한 보조 자료로 조선 측 자료인 "조선왕조실록"과 "증보문헌비고", 반차도가 포함된 각종의 "의궤"를 검토하게 된다. 중국측 자료는 "통전" "문헌통고"를 비롯하여 "주례", "의례", "예기"를 검토 대상으로 하며, 주요자료로 "삼재도회"를 활용하고자 한다.

    2) 자료 역주 작업
    자료의 역주는 "국조오례의", "속오례의", "춘관통고"의 대장, 반장, 소장에 해당하는 국왕의장 규정을 종합하여 역주한다. 역주에는 각 의장물을 설명할 수 있는 중국 고전 자료의 근거를 추적하고, 조선시대 연대기 기록에서 관련 사항을 추출하여 제시한다. 역주 작업의 결과는 학술지에 게재하여 학계에 공개함으로써, 연구결과를 공유할 수 있게 한다. 역주는 2년 동안의 연구 과정에서 수행된 분석과 작업의 결과를 반영하여 작성한다.

    3) 연차별 연구 주제

    (1) 제1차년도 : 조선전기 儀仗체제의 정비와 왕권
    두 가지 문제를 중점 검토한다.
    첫째는 "국조오례의" 서례에 규정된 의례 의장의 정비 과정이다. 중국 고전으로부터 의장제도에 대한 정의와 개념을 수용하고, 唐宋을 거쳐 明에 이르기까지 실제했던 의장제도를 참작하여 조선적 의장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을 검토하게 된다. 아울러 고려시대 의장제도와의 계승과 차별의 양상을 검토하여 조선 의장 제도의 특성을 분석한다.
    둘째는 의장을 구성하는 개개 의물에 대한 상징과 의미에 대한 검토하는 작업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사 중에 나타나는 의장의 구성과 "세종실록" 「오례」, "국조오례의" 서례의 의장 구성을 비교하며, 국왕 의장과 왕비, 왕세자 의장의 공통요소와 차이점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도한 개개 의장이 유교 경전에서 언급된 상징 의미가 무엇인지 추적하는 작업을 병행한다.
    본 연구의 결론은 정비된 의장 제도에 담겨진 국왕권의 요소와 그러한 요소가 어떠한 상징체제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지 규명하는 것이다.

    (2) 제2차년도 : 조선시대 국왕 儀仗 체제의 변화와 시행
    "국조오례의"에 규정된 의장제도가 시간의 추이에 따라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 추적하는 것이 본 연구의 핵심주제이다. 조선의 왕권은 15세기에 상대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시간의 추이에 따라 왕권은 관료 세력과의 역학관계에서 위축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왕권의 위상 변화가 의장 제도에 영향을 주는가를 규명하는 것이 첫째 초점이다.
    조선후기에는 大妃 혹은 王大妃의 정치적 비중이 점증하면서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의례가 빈번하게 시행되었다. 이러한 의례의 내용은 각종 "의궤"로 기록되고 있으며, 반차도를 통해 의장 제도를 나타내고 있다. 국왕에 대해 의전상 우위에 있던 대비 혹은 왕대비의 의장을 구성하는 요소를 분석하는 것이 둘째 초점이다.
    본 연구의 결론은 국왕의 위상과 상관없이 왕권이 상징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와 왕권의 위상 변화에 따라 변동되는 요소에 대한 규명이다. 국왕 의장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국조오례의"와 달리 대비 혹은 왕대비의 의장 구성이 복잡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면, 국왕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한글키워드
  • 소장,전정의장,노부,대장,왕세자의장,왕비의장,국왕의장,조선전기,춘관통고,국조오례의,반장,왕세자,왕비,국왕
  • 영문키워드
  • Joseon,kingship,State Rituals,Royal Protocols,Symbol Element for Rituals,Five Rites,king's parades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조선시대 국왕의 儀禮儀仗 자료를 수집 역주하고, 이를 분석함으로써 조선시대 왕권의 내용과 상징체계를 검토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대상 자료로 국왕의 행차 의장을 규정하는 鹵簿 자료를 주로 검토하였고, 이의 사실 관계를 추적하기 위해 실록 기사를 참조하였다. 또한 ⟪國朝五禮儀⟫ 서례 노부 규정에서 殿庭 大仗∙半仗∙小仗 등급의 儀仗이 노부 大駕∙法駕∙小駕에 대응할 뿐 아니라 의장물도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국조오례의⟫ 가례 서례의 排班圖는 전정의 대장∙반장∙소장에 해당하는 의장을 정확히 표현하는 기록임에 주목하였다.
    조선의 의장제도는 당이나 송, 명과도 다른 구성과 내용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교적 의장제도에 사용되는 의장물을 채택하고 있고, 유교적 국가 제도에서 상징화되는 군주상을 채택하여 의장제도를 구성한 점에서 조선의 의장제도는 유교적 의장제도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다. 조선은 행차에 적용되는 鹵簿의 의장물과 그 구성을 殿庭儀仗에도 동일하게 규정하였다. 그러나 대가・법가・소가로 구분되는 노부의 등급은 처음부터 확정된 것은 아니었고, 세종 15년에서 25년 사이에 법가제도를 분화 정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부에 준하여 의장을 구성한다는 원칙은 이미 세종 때 자리 잡았지만, 실제의 전정 의장이 대장・반장・소장으로 확립된 것은 세조 때의 작업 결과로 판단하였다.
    大駕 의장물의 구성은 국초 이래 ⟪국조오례의⟫ 단계까지 큰 변화가 없었지만, 배치와 그에 따른 의미 부여는 적지 않은 변화가 확인되었다. 의장은 세종 3년까지는 근정전 月臺 상하에 배치되는 정도였는데, 어느 시점에서 마당에 의장을 진열하는 방식으로 배치 범위가 확대되었다. 세종 15년 의장을 삼행으로 진열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의장을 유형에 따라 분류하여 노부와는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의장을 동서로만 진열하는 이런 방식은 세조 때 다시 행사장의 동서와 남쪽에 위치시키는 방식으로 전환되어 ⟪국조오례의⟫에 반영되었다.
    의장과 노부의 등급 구분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행되었다. 의장은 점차 전계에서 마당으로 배치 범위를 확대하면서, 노부의 구성 儀物을 모두 수용하게 되었다. 노부의 경우도 의장의 배치 규모가 달라지면서 대가・법가・소가로의 세분화가 진행되었다. 세종 때 朝儀 정비 과정에서 의장을 3등급으로 구분하는 원칙이 구체화되었고, 이는 다시 노부의 3단계 구분을 유발하였다. 세조 때는 노부의 3등급 구분에 상응하여 의장에서의 소장이 정비되었다.
    의장은 상징 장치였다. 의장기는 직접적인 상징 표시로 의장 구성에서 매우 특별하게 간주되었다. 국왕의 훌륭한 통치와 장수의 기원 등은 의장을 통해 직접 상징되었고, 이런 의미를 유교적 상징물에 의해 표시하였다. 병장기를 형상화한 의장물은 실제 병장기로 사용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군사지휘권과 강력한 군사력을 상징하였다. 산과 선 등의 의장은 국왕을 陽의 기운으로부터 보호하여 가리는 장치였다. 국왕의 최측근에 위치하는 산선은 일정하게 기능을 수행했지만, 이 경우에도 주로는 군주의 顯現을 나타내는 장치로서 기능했다. 다른 의장과 위치하고 있는 산선은 형상화된 문양과 함께 군왕을 상징하는 장치일 뿐이었다.
    華蓋와 繖扇, 병장기와 의장기 등은 왕비나 왕세자에 의해 공유될 수 있는 영역도 있었지만 鉞斧과 水精杖, 통치지역을 상징하는 四神旗와 같은 요소는 국왕에 의해 전유되었다. 전체로서의 의장은 국왕의 특별한 공간을 상징하였다. 홍문대기와 후전대기로 표시되는 이 공간은 함부로 침범될 수 없는 고유의 공간을 표시하는 기능을 하였다.
    조선의 의장제도는 세종 대의 지속적인 정비 작업을 통해 ⟪세종실록⟫ 「오례」에 집약되었다. 다시 세조 대의 재정비 작업을 거치면서 일관된 상징체계를 갖추고 등급을 세분화한 형대로 ⟪국조오례의⟫에 규정되게 되었다. 이렇게 정비된 의장제도는 조선후기까지 골격이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국왕의 상징제도로서 당시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 영문
  • This project examines the ceremonial objects used in National ceremonies held at the courtyard of the palace. In accordance with the general rules in the Confucian countries, ceremonial objects used in the royal processions were distinguished from those used in the courtyard ceremonies in Joseon. The special feature in Joseon was that they made the items in the two sets of ceremonial objects identical.
    The biggest set of ceremonial objects remained constitutively unchanged in Joseon. But the size of the ceremonial objects was made to differ depending on the ceremonies. Ceremonial objects were placed on the upper and lower podium in front of Geunjeongjeon at first, but the placement was expanded to the courtyard in Sejong’s reign. And the number of items was adjusted into three tiers. At the same time, ceremonial obejcts at the processions were also divided into three tiers, and the number of items was adjusted accordingly. Sejo made the items of the 3-tiered ceremonial objects at the ceremonies identical with those at the processions.
    By having the same constitutive items and the same tier structure of the ceremonial objects at the ceremonies and at the processions, they secured the consistency of the symbols and enhanced the convenience of the officials who supervised the ceremonial object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조선시대 국왕의 儀禮儀仗 자료를 수집 역주하고, 이를 분석함으로써 조선시대 왕권의 내용과 상징체계를 검토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대상 자료로 국왕의 행차 의장을 규정하는 鹵簿 자료를 주로 검토하였고, 이의 사실 관계를 추적하기 위해 실록 기사를 참조하였다. 또한 ⟪國朝五禮儀⟫ 서례 노부 규정에서 殿庭 大仗∙半仗∙小仗 등급의 儀仗이 노부 大駕∙法駕∙小駕에 대응할 뿐 아니라 의장물도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국조오례의⟫ 가례 서례의 排班圖는 전정의 대장∙반장∙소장에 해당하는 의장을 정확히 표현하는 기록임에 주목하였다.
    조선의 의장제도는 당이나 송, 명과도 다른 구성과 내용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교적 의장제도에 사용되는 의장물을 채택하고 있고, 유교적 국가 제도에서 상징화되는 군주상을 채택하여 의장제도를 구성한 점에서 조선의 의장제도는 유교적 의장제도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다. 조선은 행차에 적용되는 鹵簿의 의장물과 그 구성을 殿庭儀仗에도 동일하게 규정하였다. 그러나 대가・법가・소가로 구분되는 노부의 등급은 처음부터 확정된 것은 아니었고, 세종 15년에서 25년 사이에 법가제도를 분화 정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부에 준하여 의장을 구성한다는 원칙은 이미 세종 때 자리 잡았지만, 실제의 전정 의장이 대장・반장・소장으로 확립된 것은 세조 때의 작업 결과로 판단하였다.
    大駕 의장물의 구성은 국초 이래 ⟪국조오례의⟫ 단계까지 큰 변화가 없었지만, 배치와 그에 따른 의미 부여는 적지 않은 변화가 확인되었다. 의장은 세종 3년까지는 근정전 月臺 상하에 배치되는 정도였는데, 어느 시점에서 마당에 의장을 진열하는 방식으로 배치 범위가 확대되었다. 세종 15년 의장을 삼행으로 진열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의장을 유형에 따라 분류하여 노부와는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의장을 동서로만 진열하는 이런 방식은 세조 때 다시 행사장의 동서와 남쪽에 위치시키는 방식으로 전환되어 ⟪국조오례의⟫에 반영되었다.
    의장과 노부의 등급 구분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행되었다. 의장은 점차 전계에서 마당으로 배치 범위를 확대하면서, 노부의 구성 儀物을 모두 수용하게 되었다. 노부의 경우도 의장의 배치 규모가 달라지면서 대가・법가・소가로의 세분화가 진행되었다. 세종 때 朝儀 정비 과정에서 의장을 3등급으로 구분하는 원칙이 구체화되었고, 이는 다시 노부의 3단계 구분을 유발하였다. 세조 때는 노부의 3등급 구분에 상응하여 의장에서의 소장이 정비되었다.
    의장은 상징 장치였다. 의장기는 직접적인 상징 표시로 의장 구성에서 매우 특별하게 간주되었다. 국왕의 훌륭한 통치와 장수의 기원 등은 의장을 통해 직접 상징되었고, 이런 의미를 유교적 상징물에 의해 표시하였다. 병장기를 형상화한 의장물은 실제 병장기로 사용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군사지휘권과 강력한 군사력을 상징하였다. 산과 선 등의 의장은 국왕을 陽의 기운으로부터 보호하여 가리는 장치였다. 국왕의 최측근에 위치하는 산선은 일정하게 기능을 수행했지만, 이 경우에도 주로는 군주의 顯現을 나타내는 장치로서 기능했다. 다른 의장과 위치하고 있는 산선은 형상화된 문양과 함께 군왕을 상징하는 장치일 뿐이었다.
    華蓋와 繖扇, 병장기와 의장기 등은 왕비나 왕세자에 의해 공유될 수 있는 영역도 있었지만 鉞斧과 水精杖, 통치지역을 상징하는 四神旗와 같은 요소는 국왕에 의해 전유되었다. 전체로서의 의장은 국왕의 특별한 공간을 상징하였다. 홍문대기와 후전대기로 표시되는 이 공간은 함부로 침범될 수 없는 고유의 공간을 표시하는 기능을 하였다.
    조선의 의장제도는 세종 대의 지속적인 정비 작업을 통해 ⟪세종실록⟫ 「오례」에 집약되었다. 다시 세조 대의 재정비 작업을 거치면서 일관된 상징체계를 갖추고 등급을 세분화한 형대로 ⟪국조오례의⟫에 규정되게 되었다. 이렇게 정비된 의장제도는 조선후기까지 골격이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국왕의 상징제도로서 당시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의 결과는 의장의 상징 체계를 통해서 조선시대 왕권에 대한 당시대인의 인식을 분석 검토한 것이다. 조선시대 왕권의 내용을 분석하기 위한 이러한 연구는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다. 왕조 국가 조선의 왕권에 대한 새로운 분석 방법 및 당시대의 실질적인 왕권 규정 내용이 검토됨으로써 이 분야의 관심과 연구 영역의 확대가 기대된다.
    조선시대 왕실 문화와 관련된 사항은 사회적으로 다양하게 수요가 발생한다. 왕실 문화에 대한 규명과 그 성과는 일련의 재현 행사를 비롯하여 사극 및 기타 문화사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재료로서 기능한다. 특히 국왕과 왕실 구성원의 의장이 갖는 함의를 분석한 본 연구의 결과는 학문적 근거를 갖춘 콘텐츠로 구축되어 향후의 관심과 문화 사업에 적용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국왕의장, 조선 국왕, 조선 왕실, 노부, 대장, 반장, 소장, 대가, 법가, 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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