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전반기에 해당하는 일제말기 한국영화사 연구는 지금까지 주로 영화 제작 부문에 집중되어 이루어져 왔고, 그렇다 보니 당시 민간 제작회사 또는 사단법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및 조선군 보도부에서 제작된 친일영화들의 특징, 논란, 식민성(혹은 저항성) 등에 ...
1940년대 전반기에 해당하는 일제말기 한국영화사 연구는 지금까지 주로 영화 제작 부문에 집중되어 이루어져 왔고, 그렇다 보니 당시 민간 제작회사 또는 사단법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및 조선군 보도부에서 제작된 친일영화들의 특징, 논란, 식민성(혹은 저항성) 등에 다소 천착된 경향을 띠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공간적이고 역사적인 특수성이 존재하는 식민지 시기, 더구나 그것이 극대화되는 일제말기 한국영화사 연구에서 이러한 일반성에 대한 검증과 재고와 비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194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 분야의 변화는 동시기 일본의 전시체제 구축 심화 및 그에 따른 식민지 정책 변화에 연동되어 이루어졌다. 둘째, 이러한 구조 속에서 식민지 조선(에서의) 영화는 점차 일본영화(계)에 종속되어 갔다. 셋째, 이러한 일원화 및 종속화 과정을 겪으며 194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는 정책적 차원에서 제작 부문보다 오히려 배급 및 상영 부문이 중요시되었고, 그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화되었다.
이에, 본 연구는 194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어떠한 영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배급되고 상영되었으며 그 변화의 궤적이 어떠하였는지, 아울러 그것이 전황의 전개 양상 및 전시체제의 구축 과정과 어떠한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 실증에 토대하면서도 논리적인 해석 작업을 통해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특히, 1945년 8월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내내 지속적으로 발행된 유일한 조선어 및 일본어 정기간행물이라는 점에서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며, 전시체제 구축의 일환으로 조선의 민간 신문과 잡지가 거의 폐간되는 1940년대에 있어서는 그 중요성이 배가되는 조선총독부의 조선어 일간지 《매일신보》를 중심으로, 그리고 일본어 일간지 《경성일보》를 참고하여 실증적 연구 활동을 집중시켰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이 장기화되고 1940년대 들어 일본 ‘내지’뿐만 아니라 본토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식민지 조선에도 전시체제가 도입되었다. 이에 따라 동시기 일본에서와 같이 조선에서도 영화 정책적인 차원에서 상영 체제가 정비되었다. 우선, 상영 방식에 있어서는 영화관의 상시 상영과 이동영사 간헐적 상영 시스템이 유지되면서도 후자의 체계가 갈수록 통합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다음으로, 영화관의 상영 시간이 점점 단축되는 가운데 상영 영화의 종류가 ‘뉴스영화 +문화영화 +극영화’로 정착되어 갔다.
둘째, 1940년 조선영화령의 공포 및 시행, 그리고 이후의 조치들로 인해 조선의 영화 환경은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였다. 특히 영화 상영 부문에서의 변화가 다각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단, ‘뉴스영화 +문화영화 +극영화’라는 상영 포맷의 도입으로 영화의 오락적․예술적 측면은 억제된 반면 선전과 계몽의 기능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어, 뉴스영화와 문화영화는 물론 극영화에 있어서도 미국 및 영국 영화의 수입 금지 조치와 맞물리며 일본영화가 조선의 상영 공간을 잠식하며 그 영향력을 더하였다. 더욱이 일본영화는 당시 제도적으로 국책을 이끌던 관공 단체 주관의 추천영화와 우수영화를 선도하며 '제국영화'의 모범으로 군림하였다.
셋째, 1942년 사단법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의 출범, 1944년 사단법인 조선영화사의 발족으로 이후 조선영화는 이곳 또는 조선군 보도부 등 통합 회사나 국가 기관에서 제작되었다. 사단법인 조영의 경우 연간 6편의 극영화는 물론 6편의 문화영화와 12편의 뉴스영화를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조선군 보도부 역시 몇 편의 극영화와 문화영화를 제작 또는 후원하였다. 한편, 조선영화계의 통폐합 조치에 따라 193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 가속되어 오던 일본과의 영화 교류 또한 보다 활발해져, 일본인 감독, 시나리오 작가, 배우, 기타 스테프가 조선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횟수와 정도가 다대해졌다. 이러한 영향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조선 극영화에 다큐멘터리 요소가 삽입되거나 일본 극영화의 색채가 첨가되는 특징적 양상이 더욱 짙어지게 되었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내용들을 정리하며 1940년대 식민지 조선영화계를 더욱 면밀하게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일제말기 한국영화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내용들은 수정, 보완, 검증의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연구 결과물인 학술 논문의 각 단원에 반영, 배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