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송대(宋代)의 역학사에 대한 연구는, 주로 의리역(義理易)과 상수역(象數易)의 틀에 입각하여, 왕필의 의리역을 잇는 정이(程頤)의 역학을 한 편에 두고, 의리역의 관점을 수용하기는 하지만 기본으로는 상수역을 표방하는 주희(朱熹)의 역학을 다른 한 편에 두면서, 양자 ...
과거 송대(宋代)의 역학사에 대한 연구는, 주로 의리역(義理易)과 상수역(象數易)의 틀에 입각하여, 왕필의 의리역을 잇는 정이(程頤)의 역학을 한 편에 두고, 의리역의 관점을 수용하기는 하지만 기본으로는 상수역을 표방하는 주희(朱熹)의 역학을 다른 한 편에 두면서, 양자의 관점 및 태도를 비교하는 경향이 주를 이루어 왔다.
의리역과 상수역의 대립적 구도에 따라 송대 역학사를 파악하는 관점은, 『주역』 해석상의 전통적 양대 경향에 따라 송대 역학의 흐름을 분류해 낸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지니고 있으나,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 첫째, 송대의 상수역 혹은 의리역 내부의 관점 차이에 대해서는 주목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비교 연구할 호원과 구양수 모두 의리역의 계통을 잇는 학자들이지만, 이들은 당시 상호 대립적인 철학적 입장을 갖고 있었고, 그 차이는 주로 『주역』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둘째, 상수역/의리역의 구도라는 전통적 구도 혹은 통시적 구도에 따라서만 송대의 역학을 조망하고자 할 경우, 송대의 정치, 사회, 학문적 현실을 배경으로 형성되었던 특수한 논쟁 및 논점을 시야에서 놓칠 가능성이 있다. 호원과 구양수를 위시한 송대의 『주역』 연구자들은 그것에 내재된 보편적 진리의 발견을 위해 매진했던 동시에, 당대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역』을 동원했다. 특히 우리가 살펴볼 호원의 『주역구의』는 『주역』의 경문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정치적 문제의 해결에 시사점을 제공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본 연구자가 북송대 『주역』 해석의 두 가지 경향을 대변하는 학자로서 호원과 구양수에 주목하고, 이들의 주역에 대한 관점을 비교해 보려 하는 까닭은 당시 호원과 구양수가 학계에서 차지하고 있던 지위와 그 영향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의 철학적 경향이 상이하다는 데에 있다. 호원은 당말 고문운동의 주창자인 한유(韓愈)의 성삼품설을 받아들이면서도, 맹자의 성선설에 입각하여 그 한계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지녔다. 그는 인간의 보편적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주장함과 동시에 그 현실적 본성은 등급적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호원은 『주역』의 건괘(乾卦) 및 주요한 괘(卦)에 대한 해석에서, 전통적 원기설(元氣說)에 따라 인간 본성의 선함을 입증하려고 했다.
반면 구양수는 스스로 말하다시피 성악설의 경향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당시 한유와 이고(李翶)의 인성론을 어떻게 종합할지를 둘러싸고 활발하게 벌어지던 당시의 제반 논쟁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표명하면서, 급선무는 본성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아니라 당장의 현실적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성정(性情) 내에 선을 향한 본래적 지향성이 내재하지 않고, 그것은 외적 제도 여하에 따라 선하거나 악하게 될 수 있다는 견해를 표명하면서 특히 예제(禮制)의 정립을 중시했다.
이처럼 호원과 구양수는 동시기에 학계의 양대 지주로 부상했지만 철학적 경향은 상이했다. 본 연구자는 양자의 『주역』 해석에서 그들의 상이한 시각이 잘 나타난다고 판단했다. 호원의 철학, 특히 그의 인성론은 그의 『주역구의』(周易口義)에서 명료하게 제시된다. 그는 『주역』 내에 담긴 모든 글이 공자(孔子)의 저작이라고 확신하면서, 『주역』의 체에 토대를 두고서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고 전개하고자 했다.
이에 비해 구양수는 『역동자문』(易童子問)이라는 저서를 통해, 『주역』 내의 「문언전」(文言傳)과 「계사전」(繫辭傳)은 공자가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후대에 가탁된 것이라는 태도를 표명한다. 그 근거로써 그는 「문언전」, 「계사전」 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모순된 진술들 제시하여, 이들 저작은 공자 한 사람이 아니라 후대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호원 및 그 제자들은 『주역』 내에서도 특히 「문언전」과 「계사전」을 통해 자신들의 철학을 정립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구양수의 의고적(疑古的) 태도는 실은 호원 진영을 직접 겨냥한 것이라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하다.
본 연구자는 이러한 추정하에, 호원의『주역구의』와 구양수의 『역동자문』을 상호 비교하면서 그 이면에 배어 있는 상이한 철학적 관점을 분석해 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