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과제 검색 > 연구과제 상세정보

연구과제 상세정보

한국 고대의 도교
Daoism of ancient Korea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저술출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3S1A6A4018393
선정년도 2013 년
연구기간 3 년 (2013년 05월 01일 ~ 2016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장인성
연구수행기관 충남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흔히 한국 전통 종교를 유교, 불교, 도교라 한다. 이 세 종교에 대한 연구는 한국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국 고대의 유교와 불교에 관한 연구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많은 연구자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깊은 연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도교 연구의 진척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까지 한국 고대 도교에 관한 저술이 한권도 없는 것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자료부족 때문이기도 하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연구 성과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고대 도교의 연구를 진척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첫 번째, 신선사상과 신선사상을 추구했던 구체적인 방법인 의약과 방술 등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한다. 한국 고대 신선사상에 대한 글은 많은 편이다. 도를 닦아 신선이 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도교에서는 신선사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신선사상 연구는 신선사상의 기원설(중국 기원설 또는 한국 자생설)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연구업적이 꽤 있다. 대체적으로 한국 고대의 도교 기원에 관한 담론적 성격의 논의가 주류를 이루다 보니 한국 고대 신선사상의 구체적인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다. 본 저술신청자는 신선사상 연구의 진척을 위해 신선사상을 추구했던 구체적인 방법인 의약과 주금술의 내용과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최근에 신선을 추구할 때 복용했던 의약과 관련된 백제의 유물이 출토되어 신선사상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백제의 신선사상은 일본에 전파되었다. 일본에 이주한 백제 유민들 가운데는 신선을 추구할 때 복용하는 의약에 정통하여 일본 정부가 관직에 등용한 인물과 주금술에 능통하여 일본정부에 관리로 임용된 인물들이 있었다. 신선을 추구하는 데 구체적인 방법으로서의 의약과 방술 등의 연구와 일본에 전파된 백제 도교를 통해 신선사상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고자 한다.
    두 번째, 고구려의 도교 수용과 정치·외교의 관계를 연구하고자 한다. 고구려는 두 번에 걸쳐 당의 도교를 수용하였다. 고대 동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당에 도교의 전수를 요청한 나라는 고구려뿐이다. 고구려가 도교를 수용한 까닭은 정치·외교적인 목적이 있었다. 『삼국사기』 등 한국의 역사서에 따르면 고구려는 영류왕(624)과 보장왕 시절(642) 두 번에 걸쳐 도교를 수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고구려의 도교 수용과 관련된 중국의 사료에는 영류왕 때 당이 고구려에 도교를 전수한 사실만을 기록에 남기고 있다. 양국의 역사서의 차이를 면밀히 검토한다면 고구려 도교 수용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구려 도교 수용의 정치·외교적인 의미를 정치하게 연구할 것이다. 고구려 영류왕이 당의 도교를 받아드린 10년 후에 백제의 무왕은 도교의 신선사상이 반영된 궁남지를 조영하였다. 그리고 신라의 문무왕은 궁남지를 674년에 안압지를 축조했다. 이 모두가 정치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양국의 원지 조성도 아울러 검토할 것이다.
    세 번째, 도교와 승려의 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지금까지 도교의 담지자에 대한 연구는 불모지로 남아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백제 승려 관륵은 도교의 방술을 일본에 전수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승려 혜숙이 죽었는데 그의 무덤을 파보니 무덤 안에 시체는 없고 달랑 짚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도교의 시해선(尸解仙)의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승려 혜숙이 시해선의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는 바로 승려와 도교의 밀접한 관계를 반영하는 내용인 것이다. 불교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는 도교문화의 요소를 밝혀내면 도교와 불교의 관련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런 저술 성과는 한국 고대 도교의 구체적인 모습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또한 고대 동아시아 속의 한국 고대 도교의 특징을 드러내고 국제 도교 학계에서의 한국 도교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 기대효과
  • 『고대 한국의 도교』 연구가 진행된다면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첫째, 신선사상의 구체적 내용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신선사상에 관한 글은 많은 편이다. 문헌과 유물에 보이는 신선사상을 고구려, 백제, 신라 등 국가별로 나누어 연구하거나 종합적으로 연구한 성과도 있다. 그러나 신선을 추구할 때 사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인 의약과 주금 등을 자세히 연구한 성과는 드물었다. 자료의 부족때문이기도 하다. 자료부족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의 고대 사료에 착안하고자 한다. 백제 멸망 후 일본에 이주한 백제 유민들이 남긴 백제의 신선사상에 관한 자료는 매우 풍부한 편이기 때문이다. 백제 유민들의 의약과 주금 등에 관한 문헌 자료 이외에 최근에는 백제의 유민들이 일본에 남긴 목간자료에도 관련 자료가 발굴되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깊이 있게 연구하면 백제의 신선사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복원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신라의 신선사상에 관한 자료가 적극적으로 해명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삼국사기』 주석본을 보면, 신라 실성니사금이 경주 낭산에 상서로운 구름이 이는 것을 보고 “이는 반드시 하늘에서 선령이 내려와 노니니 반드시 福地일 것이다.”라는 기사를 주석하면서 복지를 복이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복지는 도교에서 신선이 머물고 있는 洞天福地이다. 신선사상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신선사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점을 크게 보완할 것이다.
    둘째, 고구려 도교 수용의 정치·외교적 의미를 명확히 밝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고대 동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당에 도교 전수를 요청한 나라는 고구려뿐이다. 도교를 전수한 당과 도교를 수용한 고구려는 각기 다른 입장에 있었다. 고구려에서 볼 때 도교의 수용은 대당 외교 수단이면서, 고구려 내부를 일신하는 방안이기도 하였다. 대한제국기의 고종은 중국의 도교를 받아드리려고 노력하였다. 고구려의 전례를 따르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 도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고구려 도교 수용의 정치·외교적 의미를 밝히는 작업은 한국 도교의 특징을 밝히는 데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 고대 도교와 불교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한국 고대의 도교와 불교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백제승 관륵이 도교의 둔갑과 방술을 일본에 전수해주었다는 사실을 통해 승려가 도교의 문화에 능통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승려 혜숙이 죽어 그의 무덤을 파보니 그의 무덤에는 달랑 짚신 한 켤레만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는 도교의 시해선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승려가 도교의 시해선이었다는 이야기는 불교와 도교의 밀접한 관계를 말하며, 이는 또한 불교 승려가 도교 문화의 담지자임을 증명하고 있다. 한국 고대 승려와 도교문화의 관계를 연구한다면 한국 고대 불교를 새로운 시각에서 새롭게 연구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넷째, 고대 동아시아 속의 한국 고대 도교의 특징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중국 위진남북조·수당시대에는 도교가 매우 성행하여 불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시기였다. 한국 고대 도교의 존재 양상을 중국, 일본의 그것과 비교 연구하면 한국 고대 도교의 특징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한국 도교 연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도 일조할 것으로 확신한다.
  • 연구요약
  • 『한국 고대의 도교』를 다음과 같이 저술하고자 한다.
    서론
    서론에서는 먼저 최근의 연구 성과로 본 도교와 도교문화의 뜻을 밝히고자 한다. 이어서 한국 고대 도교에 관한 기존의 연구 성과를 개괄하고자 한다. 기존의 연구 성과에서는 도교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도교의 한국 자생설과 중국 전래설을 검토할 것이다. 더불어 신선사상에 대한 연구 성과도 소개하고, 신선을 구체적으로 추구했던 방법의 중요성을 언급할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의 도교 관련 문헌 자료의 재검토와 새로운 발굴 자료의 확보가 중요함을 강조할 것이다. 본론은 고구려, 백제, 신라 도교 3편으로 나누어 집필하고자 한다.
    제1편 고구려의 도교 수용과 도교문화
    제1장 고구려의 도교 수용 관련 문헌검토- 고구려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당의 도교를 받아드렸다. 한국의 사료에서는 두 차례에 걸친 도교의 수용을 모두 기록하고 있으나, 중국의 사료에서는 첫 번째의 도교 전수만을 기록에 남기고 있다. 이와 같은 문헌기록의 차이에서 고구려와 중국의 도교 수용에 대한 입장 차이를 세밀히 검토한다.
    제2장 도교 수용의 정치·외교적 배경-고구려의 도교 수용의 정치와 외교적인 배경을 서술한다.
    제3장 도교의 수용와 불교- 도교의 수용과 불교계의 반발, 고구려에서 거행한 도교 의례를 면밀하게 검토한다.
    제4장 도교문화-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보이는 신선사상, 의약관련 자료를 세밀히 연구한다.
    제2편 백제의 도교문화
    제1장 신선사상- 원지(苑池), 백제금동대향로, 산경문전, 방격규구신수경 등의 내용을 검토하고 이들이 백제의 신선사상을 반영하고 있음을 밝힌다.
    제2장 도교의학- 최근에 발굴된 오석산 관련 목간을 검토하고 백제의 문헌에 기록된 도교의학을 연구한다.
    제3장 무령왕릉 매지권- 매지권이 도교의 사후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음을 밝힌다.
    제4장 백제 유민의 의약-일본에 이주한 백제 유민의 의약관련 활동이 신선사상을 반영하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제5장 백제 유민의 주금술(呪禁術)- 백제 유민이 펼친 주금술을 통해 백제 도교문화의 일면을 밝힌다.
    제3편 신라의 도교문화
    제1장 신선사상- 낭산, 안압지와 임해전, 시해선(尸解仙)을 서술하여 신라에도 신선사상이 매우 풍부했음을 서술한다.
    제2장 방술-방술이 갖고 있는 도교문화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그것이 당대의 가장 최신의 지식체계로서 다방면에 활용되었음을 밝힌다. 이 연구는 화랑을 이해하는 데도 크기 기여할 것이다.
    제3장 통일신라시대의 도교문화- 중국 열선전에 입전된 김가기와 최치원을 연구하여 통일신라시대의 도교문화를 서술한다.
    결론
    위의 내용을 요약하고 한국 고대 도교의 연구 과제와 전망을 제시한다.
  • 연구성과물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