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케(Ranke)는 역사연구와 서술을 학문화시키는 데 기여했던, 근대 역사학의 창건자로 지칭되고 있다. 그의 가장 큰 공적은 니부르(Niebuhr)가 고대사 연구에 적용시켰던 “문헌학적․비판적(역사학적․비판적)” 사료연구방법을 근세사 연구에 전반적으로 활용하여 엄격한 사 ...
랑케(Ranke)는 역사연구와 서술을 학문화시키는 데 기여했던, 근대 역사학의 창건자로 지칭되고 있다. 그의 가장 큰 공적은 니부르(Niebuhr)가 고대사 연구에 적용시켰던 “문헌학적․비판적(역사학적․비판적)” 사료연구방법을 근세사 연구에 전반적으로 활용하여 엄격한 사실주의로써 문학적․소설적 역사서술과 철학적 역사구성을 극복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는 역사학에서 그를 상징하는 “객관적” 관찰과 서술의 모델을 세움으로써 오랫동안 “역사는 生(생)의 교사이다”라는 관념(Topos)에 따라 이루어져 오던 교훈적, 실용적, 도덕주의적 역사서술의 경향성을 극복했으며, 16․17세기 이래의 5대 강대세력들(Pentarchie)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의 개별민족 및 국가들의 역사들을 이른바 “유럽 국가들의 체제”라는 공동체적인 틀과 기독교 문화세계의 통일성을 통해 파악 및 서술함으로써 세계사적인 보편사 서술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점들에서 랑케는 근대 역사서술의 학문적, 고전적 모델을 세운 역사가로서 인정되고 있으며, 그러한 만큼 그에 관한 논의는 비판과 변호 속에 많은 논문들과 저술들을 통해 항상 계속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소수의 서양사학자들(길현모, 이광주, 이민호, 문기상)에 의해 그에 관한 몇 편의 선구적인 논문들만 나왔을 뿐, 그를 총체적으로 연구한 단행본의 학술저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불과 몇 편의 논문들로써는 그에 관해 충분한, 정확한 이해를 기대하기 어렵고, 또한 오해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에 근거하는 단행본 저술이 요청되고 있는 실정이다.
본인은 랑케의 작품들과 그에 관한 연구들을 근거로 하여 그의 경험론적이면서도 직관적인 연구방법, 사실주의적이면서도 문학적․예술적인 서술양식, 신학적․철학적 사고 전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역사 그 자체(Geschichte schlechthin)에 근거하는 역사사상, 보수적이면서도 “중용적인” 중도적 보수주의, 결코 민족주의적, 패권적, 제국주의적이지는 않았던 그의 국가주의 등을 가능한 한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그의 전체적인 모습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이것이 이 저술의 목적이다. 여기에서 랑케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한다”라는 의미는 우선은 그의 사료연구방법, 역사사상, 정치이념적 성향 그리고 이것들 간의 부합성 등을 연관관계적, 종합적으로 파악해본다는 것인가 하면, 나아가서는 랑케를 순전한 역사서술가로서만 분석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와 역사학에 대한, 역사학과 다른 학문들과의, 특히 역사서술과 예술과의 관계에 대한 그의 견해, 문학적 서술과 철학적 역사구성에 대한, 실증주의적 연구방법과 법칙론적 역사이해에 대한 그의 거부 등에 관해서도 함께 파악해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전체적인 모습은 이러한 파악을 통해 비로소 세워질 것이며, 이 때 비로소 그에 관한 일방적, 단편적인 이해와 오해가 지양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그의 전체적인 모습에 대한 적합한 이해는 결국 그에 의해, 그와 함께 성립된 근대 역사학의 출범 당시의 모습과 그 역사성, 그리고 그 지향성과 한계성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근대 역사학의 기반 위에서 발전해 온 현대 역사학이 기왕의 학문적 전통을 어떻게 계승 또는 이탈하고 있는 가에 대한 이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이 저술이 기대하는 제 2의 목적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