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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문학연구회와 <해외문학>
The Society of the Study of Foreign Litrerature and the FOREIGN LITERATURE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인문저술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16S1A6A4A01017143
선정년도 2016 년
연구기간 3 년 (2016년 05월 01일 ~ 2019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김욱동
연구수행기관 울산과학기술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연구는 1927년 10월 일본 도쿄(東京)에 소재한 대학에 유학하여 외국 문학을 전공하던 조선인 유학생들이 결성한 ‘외국문학연구회(外國文學硏究會)’와1927년 1월에 그 기관지로 발행한 잡지《해외문학(海外文學)》을 학술적으로 심도 있게 연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외국문학연구회는 민족 문학과 프로 문학이 대두하는 1920년대 말에 결성된 단체로 일제 강점기 ‘신흥 문학(新興文學)’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이 연구회는 한국 문학사나 번역사에서 중역(重譯)이 아닌 직역(直譯)의 새로운 장(章)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외국문학연구회의 결성보다 8년 앞서 1918년 문예주간지 <태서문예신보 (泰西文藝新報)>가 창간되면서 직역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중역에 의존하고 있었다. 더구나 외국문학연구회는 처음부터 단순히 외국 문학을 국내에 속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한국 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외국문학연구회에 대한 연구는 일제 강점기 한국에서 외국 문학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이 무렵 외국 문학 연구가 아직 발전 단계에 있던 한국 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등을 연구하는 데 무척 소중하다.
    젊은 유학생들이 외국문학연구회를 조직한 것은 문학 예술가들이 일제 식민주의의 문화적 예속에서 벗어나 번역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부르짖은 번역 문학의 독립선언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두 차례에 걸쳐 발간한 기관지 《해외문학》은 곧 이러한 번역 문학의 독립을 외친 일종의 독립선언서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그동안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부진하였고, 비록 연구가 이루어졌다 해도 불충분하게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역사적인 실제 사실과 다르게 잘못 알려진 내용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이 연구회의 명칭은 ‘해외문학연구회’나 ‘해외문학파’가 아니라 ‘외국문학연구회’로 불러야 한다. 전자의 명칭은 프로 문학 진영에서 그들을 폄하하기 위해 붙인 이름일 뿐이기 때문이다. 외국문학연구회를 ‘문단 동인지(文壇同人)’을 파악하는것도 옳지 않다. 이 무렵에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동인지나 문예지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가령 《해외문학》은 한국 문학사에서 최초의 문예지로 꼽히는 《창조(創造)》를 비롯한 《백조(白潮)》나 《폐허(廢墟)》, 《금성(金星)》과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또한 이 단체에 속한 구성원의 수나 그 구성원에 대해서도 잘못 알려진 사실이 없지 않다.
    이 연구에서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외국문학연구회의 활동을 총체적으로 기술하는 데 목표를 둔다. 외적 측면에서는 연구회의 발족과 활동을 연구하고, 내적 측면에서는 그 기관지인 <해외문학>(총 2권)에 수록된 내용을 중심으로 그들의 문학관과 번역에 대한 태도, 활동 등을 폭넓게 연구할 것이다. 또한 한국 문학사에서 외국문학연구회가 끼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주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국문학연구회가 처음에 내세운 목표를 과연 실행에 옮겼는지 그들의 이상과 현실에 대해서도 객관적 평가를 내릴 것이다.
  • 기대효과
  •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기대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1) 1920년대 외국 문학(영문학, 프랑스 문학, 독일 문학, 러시아 문학 등)이 한국에 어떻게 수용되고 이입되었는지 그 과정을 연구하는 데 초석이 된다. 특히 이 무렵 러시아 문학에 대한 관심이 오늘날 못지않게,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보다도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2) 이 무렵 외국 문학 전공자들이 어떤 외국 작품들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살펴봄으로써 외국 문학의 선호도와 취향을 측정할 수 있다. 이런 선호도와 취향은 앞으로 한국 문학이 발전하는 데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영향을 끼쳤다.
    3) 1920년대 말엽와 1930년대 초엽 조선인 일본 유학생들의 지적 활동을 연구하는 데 이바지한다. (가령 이 무렵 그들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연구는 상당 부분 이루어져 있지만, 지적 활동에 대한 연구는 부진한 상태다.)
    4) 한국에서 초기 번역학 연구과 번역 이론에 도움을 준다. 특히 번역 방법론을 두고 벌인 치열한 논쟁(양주동, 김 억, 김진섭, 이하윤, 정인섭 등의 논쟁)은 한국 번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번역사에서도 주목 받을 만하다.
    5) 근대 한국 문학의 발전을 연구하는 데 기여한다. 외국문학연구회는 발족할 때부터 한국 문학에 기여하겠다는 명백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 연구회가 한국 문학에 끼친 영향을 생각보다 훨씬 크고 광범위하다. 그러므로 만약 외국문학연구회가 발족되지 않았더라면 한국 문학은 지금과 적잖이 달라졌을 것이다.
    6) 이 연구는 궁극적으로 식민지 시대 조선 지식인의 정신적 역량과 포부가 얼마나 컸는지, 문학에 대하여 얼마나 깊은 관심과 의미를 두었는지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7) 마지막으로, 외국 문학의 수용 과정과 인문학 확산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 연구요약
  •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할 것이다. 단순히 '외국문학연구회와 그 기관지《해외문학》을 연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연구회와 기관지를 둘러싼 역사적, 문학적 환경에도 주목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연구는 1920년 말엽에서 1930년대 초엽에 이르는 한국 문학과 한국에서의 외국 문학 연구의 지형도를 보여주는 데 주력할 것이다.

    1. 외국문학연구회의 결성 과정
    1) 1926년 도쿄에서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외국 문학을 전공하는 동경 유학생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기 위한 동호인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 이렇게 동호인 모임으로 시작한 연구회는 점차 체계를 갖추게 되면서 기관지를 발행하면서 명실공히 본격적인 연구회로서의 체제를 갖추었다.
    2. 외국문학연구회 구성 멤버
    1) 제1차 창립 멤버:
    호세이대학(法政大學)과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재학 중인 유학생들이 그 주축이 되었다. 호세이대학 유학생으로는 독문과의 김진섭(金晉燮), 영문과의 이하윤(異河潤), 불문과의 손우성(孫宇聲), 철학과의 홍재범(洪再範) 등이 참여하였다. 와세다대학 유학생으로는 영문과의 정인섭(鄭寅燮), 러시아 문학과 및 사학과 이선근(李瑄根)이 참여하였다. 이밖에 동경고등사범학교 영문과의 김명엽(金明燁), 동경외국어대학의 김온(金鎾)도 창립 멤버였다.
    2) 제2차 참여 멤버:
    그 이듬해 외국문학연구회가 기관지를 발간하면서 이헌구(李軒求), 김한용(金翰容), 이병호(李炳虎), 정규창(丁奎昶), 함일돈(咸逸敦), 장기제(張起悌), 함대훈(咸大勳), 이홍종(李洪鍾), 김광섭(金珖燮), 김삼규(金三奎), 이동석(李東碩), 조희순(曺喜淳), 유석동(柳錫東) 등이 참여하였다. 여기에 박용철(朴龍喆), 김상용(金尙鎔), 서항석(徐恒錫), 유치진(柳致眞) 등을 포함시키면 외국문학연구회의 회원 수는 무려 25명에 가깝다.
    3) 귀국 후 활동:
    1929년부터 1930년대 초에 걸쳐 회원들이 유학을 마치고 속속 귀국하면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4) 왜 호세이대학과 와세다대학 유학생들이 외국문학연구회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는가?
    5)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을 비롯한 다른 대학에 재학중인 조선인 유학생들은 왜 외국문학연구회에 참여하지 않았는가?
    6) 그밖에 일본의 다른 지역의 유학생들의 문학 할동은 어떠했는가? (가령 도지샤(同志社)) 대학에서영문학 을 전공한 정지용(鄭芝溶)의 경우 등)
    3. ‘외국문학연구회’와 ‘해외문학파’의 개념 규정
    4. 《해외문학》창간의 과정과 창간 목표
    1) 창간호의 창간사 분석
    -한국 신문학 창설에 기여
    2) 외국 문학에 대한 이론 및 작품의 번역과 소개에 주력하였다.
    -중역을 피하고 직역 전통을 수립하였다.
    -이헌구, 「조선에 있어서 해외 문학인의 임무와 장래」<조선일보>
    -번역 문제와 관련하여 연구회 회원들의 이상과 현실을 함께 살필 것이다.
    3) 외국 문학계의 새로운 동향을 알리고 작품의 번역을 통해 해외 문학의 국내 이식에 주력하였다.
    4) 공시적 관점보다는 통시적 관점에서 문학을 연구하려 하였다.
    5) 외국 문학을 일본이나 중국의매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주체적으로 소개하려 하였다.
    6) 한국 문학의 발전에 기여하려 하였다.
    5. 《해외문학》의 문학적 입장
    1) ‘신흥문학’ 운동의 주창
    2) 순수 문학과 계급 문학 사이에서 제3의 노선 시도
    -순수 문학 계열: 구인회와 시문학파
    -계급 문학 계열: 염구사, 파스큘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3) 1931-1932년의 카프 문학과의 일련의 논쟁
    4) 정인섭이 임화(林和) 논쟁
    5) 이헌구와 임화 • 송영(宋影) • 백철(白鐵) 등과의 논쟁

    6. 무애 양주동을 비롯한 번역가들과의 번역 논쟁
    1) 《해외문학》과《금성》
    -양주동, <《해외문학》을 읽고>
    -<문단여시아관(文壇如是我觀)>
    -김진섭, <기괴한 비평 현상: 양주동 씨에게>
    -이하윤, <《해외문학》 독자 양주동 씨에게>
    -정인섭, <「포오를 論하야 외국 문학 필요에 及하고 《해외문학》 창간을
    祝함>
    2) 《해외문학》과 《태서문예신보》
    3) 안서 김억의 입장
    4) 번역 방법론에 대한 고민(축자역과 자유역, 외래어와 토착어 등)
    7. 《해외문학》 정간 이후의 활동
    1) 극예술연구회
    2) 민속학
    3) 아동문학: 색동회
    4) 한글 운동
    5) 론사, 방송국에서 활동
    6) 학 강단에서 외국 문학 교수로 활동
    7) 역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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