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관우(關羽) 동묘(東廟)는 역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연의≫에 나오는 대표적 영웅의 하나인 관우(關羽)를 모시는 묘우(廟宇)로, 보물 제142호이다. 이 동묘의 정전(正殿) 안에는 2017년 3월 현재 16위의 신상(神像)이 있다. 그동안 동묘에 관해서는 주로 건축적 특징이나 정 ...
서울의 관우(關羽) 동묘(東廟)는 역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연의≫에 나오는 대표적 영웅의 하나인 관우(關羽)를 모시는 묘우(廟宇)로, 보물 제142호이다. 이 동묘의 정전(正殿) 안에는 2017년 3월 현재 16위의 신상(神像)이 있다. 그동안 동묘에 관해서는 주로 건축적 특징이나 정비 및 활용계획 및 소장유물에 관한 기초적인 조사보고만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동묘의 가치와 성격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신상들이 누구를 나타내는지, 그 신상 이미지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신상의 문화적 메시지는 무엇인지, 나아가 신상의 한국적 특징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정확한 증거 제시도 없이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였을 뿐이다. 본고의 연구목적은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 이들 신상을 누가, 언제, 어떻게 제작하였는지를 밝힌다. 둘째, 이들 신상이 누구를 나타내는지를 역사적 근거와 증거를 제시하여 밝힌다. 셋째, 이들 신상의 이미지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밝힌다. 넷째, 신상들이 전달하려는 문화적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밝힌다. 다섯째, 중국과 일본의 신상과는 다른 서울 동묘 신상이 갖는 한국적 특징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동안 관우묘의 관우 신상과 배위(配位) 신상에 대하여는, 직관과 인상에 따른 해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관우 신상과 그 앞에 늘어선 배위 신상에 대한 부정확한 해설이 전해졌다. 2004년 김탁의 ≪한국의 관제 신앙≫은 관우묘 및 관우 신앙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주었으나, 일부의 해설은 오류가 많았다. 2012년 장경희의 ≪동관왕묘 소장유물 기초학술 조사보고서≫가 이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하고 4위의 배위 신상이 주창(周倉)⋅관평(關平)⋅왕보(王甫)⋅조루(趙累)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장경희의 의견은 추리만 있을 뿐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가 있다. 그리고 본래 동묘의 신상들에 대한 추리는 우연하게 맞았지만, 본래 북묘에서 옮겨 온 4위의 신상에 대한 추리는 틀렸다. 본고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여 이들 신상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히고자 한다. 나아가 특히 동묘의 배위 신상은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1536-1598)에 대한 저주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기대효과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한다. 본고의 연구를 통하여, 동묘 관우상과 배위 신상들의 제작자, 제작시기와 제작방법 및 신상이 누구를 가리키는 지에 대한 고증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 신상들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한다. 본고의 연구를 통하여, 동묘 관우상과 배위 신상들의 제작자, 제작시기와 제작방법 및 신상이 누구를 가리키는 지에 대한 고증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 신상들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명나라 사람들의 관우에 대한 의식세계가 어떻게 조선인에게 전파되고 수용되었으며, 양자 사이의 의식세계의 차이는 어떤 것인지가 드러날 것이다. 나아가 동묘와 관우가 정치적⋅외교적⋅문화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본 연구는 현재 우리나라 전국 각 지방에 산재⋅분포하고 있는 30곳 가까운 관우묘들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의 국어국문학⋅민속학⋅무속학⋅역사학⋅문화인류학⋅고미술학 등 다양한 방면의 연구에 기초자료로 쓰일 수 있으며, 다양한 방면의 연구 아이디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동묘를 어떠한 철학적 관점 아래에서, 어떠한 전략적 수단을 가지고, 어떠한 방향으로 개발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좋은 지침을 마련해 줄 것이다.
연구요약
현재 동묘에는 과거 북묘와 서묘로부터 온 신상들이 합쳐져 모두 16위의 신상이 안치되어있다. 1) 연구내용 (1) 의궤의 기록에 근거한 4위 배위 신상에 관한 인물 비정 관우묘와 관련해서는 ≪관왕묘의궤≫와 ≪숭의묘의궤≫가 있다. ≪관왕묘의궤≫에 기록된 동묘 배위의 “ ...
현재 동묘에는 과거 북묘와 서묘로부터 온 신상들이 합쳐져 모두 16위의 신상이 안치되어있다. 1) 연구내용 (1) 의궤의 기록에 근거한 4위 배위 신상에 관한 인물 비정 관우묘와 관련해서는 ≪관왕묘의궤≫와 ≪숭의묘의궤≫가 있다. ≪관왕묘의궤≫에 기록된 동묘 배위의 “동서배위”에 따르면, 관평⋅조루⋅주창⋅왕보를 배위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와 달리 남묘 배위의 동서배위 형식은 왕보⋅조루⋅주창⋅관평의 순서로 되어 있다. 남묘의 이러한 신상의 배치는 매우 파격적이다. 왼쪽이 오른쪽 보다 윗자리를 뜻하는 고대에서, 남묘는 왕보와 조루를 주창과 관평보다 높게 평가하였음을 뜻하는 것이고, 맥성(麥城)을 지켰던 왕보와 주창을, 관우와 함께 죽었던 조루와 관평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한편, <북묘묘정비(北廟廟庭碑)>의 비문에 따르면, 북묘의 신상과 시설과 의장은 모두 남묘의 형식을 따랐다고 하였다. 따라서 현재 동묘 안에 안치된 북묘로부터 온 배위 신상의 인물들을, 동묘 신상의 인물들의 기준에 맞춰서 추정한 기존 학설이 틀렸음을 뜻한다. 왕보와 관평의 자리를 바꾸어 신상 인물을 판정하여 바로잡는 것이 옳다. 나아가 ≪숭의묘의궤≫의 기록에 따라서, 숭의묘(서묘)에 안치되었던 8위의 신위의 순서를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갈마들면서 순서로 차례대로 배치하여 보더라도, 남묘의 신상 배치 위치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들 두 의궤의 기록은 동묘에 안치된 신상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밝히는 결정적 증거로서, 이는 학계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것이다. (2) 조루상(趙累像) 그리고 ≪삼국연의≫와 ≪서유기≫ 동묘의 조루상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삼첨양인도와 왼손에 들고 있는 금강탁은 모두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을 제압하는 병기이다. 이는 동묘가 소설 ≪삼국연의≫의 이야기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서유기≫의 이야기조차 빌려 쓰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동묘에는 왜 손오공을 제압하는 이랑신의 형상이 뒤섞여 들어오게 된 것일까? 동묘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였던 정유재란 때,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고 조선을 지원하였던 명나라 군대의 요청으로 세워진 묘당이다. 그런데 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인 일본의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별명이 바로 “원숭이”였다. 소란을 피우며 천계의 질서를 어지럽혔던 손오공이 바로 원숭이다. 이것은 원숭이를 제압한 이랑신의 형상을, 토요토미히데요시를 제압하는 조루의 형상에 투영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는 주술적 행위의 일종으로 저주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묘가 세워지기 시작한 때(1599-1601)와 토요토미히데요시가 사망한 때(1598)가 시기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점이다. (3) 왕보상(王甫像) 그리고 ≪삼국연의≫와 ≪서유기≫ 동묘의 왕보상의 이미지 또한 ≪서유기≫의 최판관(崔判官)의 이미지로부터 나왔다. ≪서유기≫에서 묘사하고 있는 최판관은 저승세계에서 생사부(生死簿)를 관리하는 판관으로서, 붓을 휘둘러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 또한 바로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져야하며, 다시는 이승세계로 되돌아오게 해서는 안 된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의 이미지 또한 저주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2) 연구방법 본고의 연구 추진 전략은 5단계에 걸쳐 진행할 예정이다. 제1단계: 동묘 신상들의 기본적 사실 상황을 파악한다. 제2단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과 동묘 신상 및 관왕묘 등과 관련된 조선의 역사 기록을 ≪승정원일기≫⋅≪조선왕조실록≫⋅≪열성어제≫⋅의궤와 ≪연행록≫ 및 개인 문집 등에서 수집⋅판독하고 주석하며 번역⋅정리한다. 제3단계: 중국과 일본의 관련 문헌 기록을 역사 ≪삼국지≫와 ≪명사≫와 ≪대명실록≫ 및 ≪임진왜란관련일본문헌해제ー근세편≫등에서 수집⋅판독하고 주석하며 번역⋅정리한다. 제4단계: 정리된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와 제작시기와 제작 방법 등을 고증한다. 제5단계: 소설 ≪삼국연의≫와 ≪서유기≫를 비롯한 소설가류 내용을 바탕으로 관우 동묘 신상들의 문화적 의미를 밝힌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서울 관우 동묘 신상 이미지의 원류와 저주
본 연구의 목적은 서울 관우 동묘 신상 이미지의 원류와 저주를 밝히는 데에 있다.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 목표는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 이들 신상을 누가, 언제, 어떻게 제작하였는지를 밝힌다. 둘째, 이 ...
서울 관우 동묘 신상 이미지의 원류와 저주
본 연구의 목적은 서울 관우 동묘 신상 이미지의 원류와 저주를 밝히는 데에 있다.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 목표는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 이들 신상을 누가, 언제, 어떻게 제작하였는지를 밝힌다. 둘째, 이들 신상이 누구를 나타내는지를 역사적 근거와 증거를 제시하여 밝힌다. 셋째, 이들 신상의 이미지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밝힌다. 넷째, 신상들이 전달하려는 문화적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밝힌다. 다섯째, 중국과 일본의 신상과는 다른 서울 동묘 신상이 갖는 한국적 특징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동안 관우묘의 관우 신상과 배위(配位) 신상에 대하여는, 직관과 인상에 따른 해설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연구자의 연구는 관우묘 및 관우 신앙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주었으나, 일부의 해설은 오류가 많았고, 추리만 있을 뿐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현재 동묘에는 과거 북묘(北廟)와 서묘(西廟: 崇義廟)로부터 온 신상들이 합쳐져 모두 16위의 신상이 안치되어 있다. 본고는 ≪관왕묘의궤(關王廟儀軌)≫와 ≪숭의묘의궤(崇義廟儀軌)≫를 통하여, 이들 신상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확하게 밝히고자 한다. 본 연구는 특히 이들 신상 가운데 왕보(王甫像)와 조루(趙累)의 신상 이미지는 토요토미히데요시(豐臣秀吉)를 저주하는 데 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나아가 중국의 관우 사당에는 없고 한국의 관우 사당에만 모셔져 있는 보정대사(普淨大師)의 신상에 주목하였다. 바로 보정대사의 신상은 임진왜란의 최대 피해자였던 한국의 관우 사당이 품고자 하였던 용서의 메세지를 담고 있음을 밝혀보도록 하겠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관우 사당은 대체로 기복(祈福)의 메시지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보정대사 신상의 용서의 메시지는 세계의 그 어느 관우 사당에도 없는 한국 고유의 위대성을 나타낸다.
영문
The origin and curse of the joss in Seoul Guan Yu Dongmyo Shrin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eal the origin and curse of the joss in Seoul Guan Yu Dongmyo Shrine. There are four specific research goals to realize this purpose. First, This pape ...
The origin and curse of the joss in Seoul Guan Yu Dongmyo Shrin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eal the origin and curse of the joss in Seoul Guan Yu Dongmyo Shrine. There are four specific research goals to realize this purpose. First, This paper reveals who, when, and how the joss were made. Second, It gives historical basis and evidence as to who the joss represent. Third, It reveals where the joss originated. Fourth, It explains what cultural messages they try to convey. Fifth, It sheds light on the Korean characteristics of Seoul Guan Yu Dongmyo Shrine which is different from China and Japan. Until now, most of the explanations for the joss and coordination have been based on intuition and impression. Some researchers have provided valuable information about Guan Yu Shrine and Guan Yu religious faith. However, some explanations were flawed. they provided a lot of important information about religion, but some of them still have troubles, especially they only have expectations without any kind of crucial evidences. Now, There were sixteen from Stone Stele of the Northern and Stone Stele of the Western in the past. This paper tried to identify exactly who the joss represented based on Kwanwangmyo-Eugye and Soongeuimyo-Eugye. And this study was especially intended to reveal that the joss images of Wang Fuxiang and Zhao Lei were to curse Toyotomi Hideyoshi. Furthermore, this paper focuses on the joss of Pujingdashi, which is not found in Guan Yu shrine of China but only in that of Korea. It has shown that the joss of Pujingdashi contains the message of forgiveness that Guan Yu shrine of Korea, the greatest victim of Imjin War, had intended. Lastly, Guan Yu shrine of China and other countries only contains messages of blessing. However, Pujingdashi’s message of forgiveness represents the greatness inherent of Korea, that is not found anywhere else in the world.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본 연구의 목적은 서울 관우 동묘 신상 이미지의 원류와 저주를 밝히는 데에 있다.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 목표는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 이들 신상을 누가, 언제, 어떻게 제작하였는지를 밝힌다. 둘째, 이들 신상이 누구를 나타내는지를 역사적 근거와 ...
본 연구의 목적은 서울 관우 동묘 신상 이미지의 원류와 저주를 밝히는 데에 있다.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 목표는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 이들 신상을 누가, 언제, 어떻게 제작하였는지를 밝힌다. 둘째, 이들 신상이 누구를 나타내는지를 역사적 근거와 증거를 제시하여 밝힌다. 셋째, 이들 신상의 이미지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밝힌다. 넷째, 신상들이 전달하려는 문화적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밝힌다. 다섯째, 중국과 일본의 신상과는 다른 서울 동묘 신상이 갖는 한국적 특징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동안 관우묘의 관우 신상과 배위(配位) 신상에 대하여는, 직관과 인상에 따른 해설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연구자의 연구는 관우묘 및 관우 신앙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주었으나, 일부의 해설은 오류가 많았고, 추리만 있을 뿐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본고는 ≪관왕묘의궤(關王廟儀軌)≫와 ≪숭의묘의궤(崇義廟儀軌)≫의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여 이들 신상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히고자 한다. 현재 동묘에는 과거 북묘(北廟)와 서묘(西廟: 崇義廟)로부터 온 신상들이 합쳐져 모두 16위의 신상이 안치되어있다. ① 동묘(東廟)에 원래부터 있던 신상들: 관우상(關羽像)⋅춘추좌씨전시자상(春秋左傳侍者像)⋅관인시자상(官印侍者像)⋅주창상(周倉像)⋅관평상(關平像)⋅왕보상(王甫像)⋅조루상(趙累像) 모두 7위. ② 서묘(西廟)로부터 옮겨온 신상들: 유비상(劉備像)⋅관우상⋅장비상 모두 3위. ③ 북묘(北廟)로부터 옮겨온 신상들: 관우상⋅주창상⋅관평상⋅왕보상⋅조루상 모두 5위. ④ 서묘 혹은 북묘로부터 옮겨온 것으로 추측되는 신상: 보정상(普淨像) 모두 1위. 본 연구는 이들 신상 가운데 조루와 왕보 신상 이미지는 토요토미히데요시를 저주하는 데 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나아가 중국의 관우 사당에는 없고 한국의 관우 사당에만 모셔져 있는 보정대사의 신상에 주목하였다. 바로 보정대사의 신상은 임진왜란의 최대 피해자였던 한국의 관우 사당이 품고자 하였던 용서의 메세지를 담고 있음을 밝혀보도록 하겠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본고의 연구를 통하여, 동묘 관우상과 배위 신상들의 제작자, 제작시기와 제작방법 및 신상이 누구를 가리키는 지에 대한 고증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 신상들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명나라 사람들의 관우에 대한 의 ...
본고의 연구를 통하여, 동묘 관우상과 배위 신상들의 제작자, 제작시기와 제작방법 및 신상이 누구를 가리키는 지에 대한 고증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 신상들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명나라 사람들의 관우에 대한 의식세계가 어떻게 조선인에게 전파되고 수용되었으며, 양자 사이의 의식세계의 차이는 어떤 것인지가 드러날 것이다. 나아가 동묘와 관우가 정치적⋅외교적⋅문화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본 연구는 현재 우리나라 전국 각 지방에 산재⋅분포하고 있는 30곳 가까운 관우묘들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의 국어국문학⋅민속학⋅무속학⋅역사학⋅문화인류학⋅고미술학 등 다양한 방면의 연구에 기초자료로 쓰일 수 있으며, 다양한 방면의 연구 아이디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동묘를 어떠한 철학적 관점 아래에서, 어떠한 전략적 수단을 가지고, 어떠한 방향으로 개발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좋은 지침을 마련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