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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근대기 혼성문화 공간으로서의 금강산과 금강산 그림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0-327-G00019
선정년도 2010 년
연구기간 1 년 (2010년 05월 01일 ~ 2011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김현숙
연구수행기관 덕성여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금강산 전철, 유람버스, 자동차, 삼선암 하늘 위로 비행기가 다니는 금강산. 호텔, 여관, 온천, 스키장, 찻집과 휴게소 등이 곳곳에 개장된 금강산. 그러나 짐꾼을 겸한 조선인 안내자가 필요하고, 암벽이 험한 곳을 등반하기 위해서 구두를 짚신으로 갈아 신어야 했으며, 선인 묵객들의 금강산 기행시를 한 수 읊지 않으면 그 절경의 맛을 다 알았다 하기 어려운 정서가 잔존하는 곳 이었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속속 들어서면서도 재래의 전통적 관례가 병행하거나 양자가 충돌하는 공간이야말로 보다 정확한 근대 금강산의 진경이라 할 수 있다.
    근대기 수묵화가들이 거의 모두 금강산 그림을 그렸음을 환기할 때 근대 금강산 그림이 근대기 심미관의 변화와 관련하여 매우 중대한 키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겠다. 사진이라는 기계적 복제 이미지가 금강산 그림에 미친 영향, 민족의 영산으로 민족주의적 각색이 진행된 금강산의 이념이 그림에 어떤 방식으로 현현되었는가를 살피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자본의 이동과 혼성문화 창출의 대표적 예이자 근대 미술문화의 변화상을 드러내주는 핵심 공간이라는 점은 금강산 그림의 요체를 근대 미술 전반으로 확대하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19세기 말 서양인에 의해 재발견되어 세계적 명소로 부각된 이래 일본인에 의하여 조선 제일의 관광지로 개발되기에 이른 일제시대 금강산 그림을 연구 대상으로 하되, 특히 전통/근대, 조선/일본/서양, 자연/문명 등이 혼거하는 격동의 공간이었음에 주목할 것이다. 근대 금강산의 이러한 혼성적 특성이 금강산 그림의 회화 양식과 심미관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하였는가를 살피는 것은 기존의 연구가 근대 금강산 화풍의 변화를 전통화법과 근대 일본화풍의 영향으로 이분화 하여 파악하는 선에서 머물렀던 것에서 나아가 새로운 관점과 성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기대효과
  • - 근대 금강산 공간이 이질의 문화가 혼거하며 경합하는 장이었다는 새로운 인식을 제시한다.
    - 자본의 이동과 혼성문화 창출의 대표적 사례로서 근대 금강산과 금강산 그림을 제시할 수 있다.
    - 풍경의 발견의 대표적 사례로 근대 금강산 그림을 제시할 수 있다.
    - 사진의 복제 이미지가 근대회화에 미친 영향을 살필 수 있는 사례가 된다.
    - 민족의 영산으로 민족주의적 각색이 진행된 금강산의 이념이 그림에 어떤 방식으로 현현되었는가를 살필 수 있다.
    - 금강산 그림의 변모와 근대 수묵화의 변화를 연결시켜 검토함으로써 근대 수묵화의 요체를 파악할 수 있다.
    - 잊혀진 근대를 새롭게 복원하여 남북한 통일의 징검다리로 부각되고 있는 금강산에 대한 심도 깊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준다.
  • 연구요약
  • 금강산은 고려시대에는 담무갈 보살이 1만2천 보살을 거느리는 불국토였고, 조선시대에는 신선이 사는 선경이자 인격도야의 풍류처로서 수많은 시인 묵객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비경이었다. 개화기에 서양인이 금강산을 탐승하고 그 빼어난 경관에 감탄하여 그 세계적인 경승을 칭송하면서 금강산은 다시 세인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1914년 경원선 개통과 더불어 금강산 개발에 관심을 갖은 일본은 단계적으로 교통망을 확충하고 호텔, 온천, 스키장 등 호화스러운 레져 시설을 갖추면서 관광객의 수는 급증하였으며 그에 따라 금강산을 대상으로 그린 그림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근대의 금강산은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 관광과 순례, 조선과 일본, 주체와 타자가 혼거하는 공간으로 다양한 인종과 계급이 혼거하고 성별이 혼재하였다. 본 연구는 종교적 성지이자 수많은 문인묵객들이 탐승했던 금강산의 역사와 관례가 잔존하면서 그 위에 관광지로 변모한 근대기 금강산의 새로운 환경과 풍속이 겹치는 혼성적 상황, 그리고 그러한 근대적 환경과 풍속이 그림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하였는가에 대해 주목하였다.
    근대 금강산 그림은 전통의 화풍을 따르면서 근대 금강산 공간의 변화를 반영하며 변화하였다. 인간의 시선으로 포착되고 제어되는 자연이자 민족의 순수와 숭고를 상징하는 국토로서의 근대 금강산은 관광화 혼성화된 금강산 공간의 변화와 사진 복제이미지의 유포의 영향으로 전통화법, 일본화법, 서양화법이 혼재하는 새로운 표현법이 출현하였다. 일제시대 사진과 사진엽서가 만들어낸 금강산의 이미지는 하나의 시각과 장소를 거듭하여 재생산하고 유포함으로써 금강산의 다양한 이미지를 오히려 정형화시켰다. 관광객들은 이미지 정보를 따라 금강산을 추체험하게 되었으며, 그림 속에 재현된 이미지 또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따라 시점을 선택하여 대상을 화폭에 담았다. 사진 이미지는 질감 표현과 일점 시각법, 구도에 큰 영향을 행사하였으며, 일본인 화가들이 그린 채색지도 또한 일본화의 채색, 기법, 구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금강산 그림의 혼성적인 예로 변관식의 금강산 그림은 바위와 토파의 질감표현에서는 사진의 영향이 간취되며, 속도감 있는 필치와 구도에서는 조선시대 정선의 영향이 잔존한다. 도포를 펄럭이는 탐승객은 근대 금강산을 탐승하는 조선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 한글키워드
  • 금강산 그림,풍경의 발견,변관식,정선,레져,관광,김홍도,혼성문화,사진 복제이미지,민족의 영산,금강산
  • 영문키워드
  • discovery of scenery,Kumkang Mountain,hybridism,paintings of Kumkang Mountain,national holy mountain,tourism,leisure ,Photocopy Image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종교적 성지이자 수많은 문인묵객들이 탐승했던 금강산은 19세기 말 서양인에 의해 재발견되고 20세기 초에 일본인에 의하여 조선 제일의 관광지로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개항 이후 개신교나 천주교 선교사, 언론인, 무역업자, 외교관, 학자 등이 금강산을 탐승하고 그 절경을 ‘동양의 기적에서 세계의 기적으로’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금강산을 개발한 일본인들은 대체로 근대에 이르러 금강산이 지난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활기를 얻게 되었다고 자찬하면서 국제적 명소로서의 금강산을 부각시켜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명성과 달리 금강산의 경관이 그렇게 빼어난 것은 아니라는 내용의 기행문도 있다. 대표적으로 금강산이‘자연의 기형아’라고 한 기쿠치 유호(菊池幽芳)의 글(「金剛山探勝記」,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1917. 7)에서 알 수 있듯이 금강산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는 다중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된 수많은 일본인 화가와 아마츄어 화가들은 앞을 다투어 금강산을 사생하고 작품전을 개최하였다.
    근대기 수묵화가들 대다수가 금강산을 그렸음을 환기할 때 금강산이 근대기 심미관의 변화를 살피는 데 매우 중대한 키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는 오랜 전통 문화의 역사와 관례 위에 새로운 환경과 풍속이 겹치는 금강산의 혼성적 상황, 다시 말해서 전통/근대, 조선/일본/서양, 자연/문명 등이 혼거하는 혼성적 특성이 금강산 그림의 주제, 양식, 기법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하였는가를 살피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자본의 이동과 혼성문화 창출의 대표적 예이자 근대 미술문화의 변화상을 드러내주는 핵심 공간이라는 점은 금강산 그림의 요체를 근대 미술 전반으로 확대하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금강산 안내서나 팜플렛에는 다른 여타의 지역 보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담은 사진들이 많이 게시되었다. 일반 관광객 또한 명승 절경을 휴대 사진기 렌즈에 담아냈으며, 금강산에 상주하는 사진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돈을 받았다. 금강산 기념 촬영의 대중화, 일점 시각의 상용 등은 공포와 경외의 대상에서 감상과 정복의 대상으로 전환된 근대적 자연관을 일반화시켰다. 사진이라는 기계적 복제 이미지가 금강산 그림에 미친 영향, 민족의 영산으로 민족주의적 각색이 진행된 금강산의 이념이 그림에 어떤 방식으로 현현되었는가를 살피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속속 들어서면서도 재래의 전통적 관례가 병행하거나 양자가 충돌하는 공간이야말로 보다 정확한 근대 금강산의 진경이라 할 수 있다. 근대기 수묵화가들이 거의 모두 금강산 그림을 그렸음을 환기할 때 근대 금강산 그림이 근대기 심미관의 변화와 관련하여 매우 중대한 키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겠다.
  • 영문
  • A Study on the hybridity of the Diamond Mountains and the Diamond Mountain paintings in the modern period

    The Diamond Mountains of Korea have been widely popular for its remarkable natural scenery and as a place of Buddhist pilgrimage up until the Choson period (1392-1910). As foreigners discovered this East Asian summit towards the last part of the 19th century, it quickly became a holiday "hot - spot" for many, and inparticular, for many Japanese. Japanese modern capital branched out into making a holiday center in ther. As a result, the Diamond Mountains emerged as a highly sought-out tourist attraction in East Asia by the early 20th century.
    Individual travel experiences, documentation, and memoirs transformed the symbolic meanings for the mountains, which have, in turn, translated artistically into conventional aesthetic styles, producing new and different painting styles. Many sightseeing and landscape photoes of the Mt. Diamond brought out also modern perspective, composition and expression methods. The invention of photography allowed the images of the Diamond Mountains to further take on a modern perspective, introducing even newer modes of composition and expression.
    Despite these latest developments, the deeply - seeded associations embedded within the iconography of the Diamond Mountains from the 19th century retained its traditional character, allowing subsequent modern interpretations to keep this quality even after liberation during its revival. In its re-interpretation in the modern era, the Diamond Mountains have become an amalgamation of the often - conflicting aspects of the traditional / modern, Choson Korea / Japan / West, and nature / man / nation, constituting a site of hybridity. This hybridity has allowed Korean painters of the modern period, such as Pyon Kwansik (卞寬植, 1899~1976), to simultaneously draw upon the traditional to produce something modern. This study lay on turning out how the modern hybrid environment impacts on personal life styles, the way of seeing and cultural manners in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focuses on the complex role that the Diamond Mountains have served as a subject of Korean art.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현재 근대 금강산 연구의 수준은 관광지로 변한 근대 금강산의 변화상을 제시하는 초보적 단계로서 근대적 관광지이자 여전히 전통의 역사성과 감상안이 잔존하는 금강산의 두께를 연구 내부로 끌어들이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다. 근대적 자본이 집중된 금강산의 변화, 전통과 근대의 충돌 양상이 그림에 어떻게 반영되었는가, 회화의 주제, 양식, 기법과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였는가 등 보다 심층적인 분석과 해석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측면에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금강산 관광에서 시각 체험이 강조되었다는 점은 금강산과 미술의 밀접한 관계를 암시한다. 금강산 안내서나 팜플렛에는 다른 여타의 지역 보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담은 사진들이 많이 게시되었다. 일반 관광객 또한 명승 절경을 휴대 사진기 렌즈에 담아냈으며, 금강산에 상주하는 사진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돈을 받았다. 전문화가와 아마추어들이 명승절경 앞에서 화구를 펼치고 그림을 그리는 광경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었으며 현지에서 전시회가 개최되고 그림 판매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서화가들이 묵화와 스케치만이 아니라 스텐드를 세우고 수채화와 유화로 제작하는 광경도 목도되었다. 금강산 기념 촬영의 대중화, 일점 시각의 상용 등은 공포와 경외의 대상에서 감상과 정복의 대상으로 전환된 근대적 자연관을 일반화시켰다. 이러한 근대 금강산의 시각성은 금강산 공간의 변화가 곧 금강산 그림의 변화로 연계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금강산 전철, 유람버스, 자동차, 삼선암 하늘 위로 비행기가 다니는 금강산. 호텔, 여관, 온천, 스키장, 찻집과 휴게소 등이 곳곳에 개장된 금강산. 그러나 짐꾼을 겸한 조선인 안내자가 필요하고, 암벽이 험한 곳을 등반하기 위해서 구두를 짚신으로 갈아 신어야 했으며, 선인 묵객들의 금강산 기행시를 한 수 읊지 않으면 그 절경의 맛을 다 알았다 하기 어려운 정서가 잔존하는 곳 이었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속속 들어서면서도 재래의 전통적 관례가 병행하거나 양자가 충돌하는 공간이야말로 보다 정확한 근대 금강산의 진경이라 할 수 있다.
    근대기 수묵화가들이 거의 모두 금강산 그림을 그렸음을 환기할 때 근대 금강산 그림이 근대기 심미관의 변화와 관련하여 매우 중대한 키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겠다. 사진이라는 기계적 복제 이미지가 금강산 그림에 미친 영향, 민족의 영산으로 민족주의적 각색이 진행된 금강산의 이념이 그림에 어떤 방식으로 현현되었는가를 살피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자본의 이동과 혼성문화 창출의 대표적 예이자 근대 미술문화의 변화상을 드러내주는 핵심 공간이라는 점은 금강산 그림의 요체를 근대 미술 전반으로 확대하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서양인의 금강산 답사 자료 수집. - 독일 오틸렌 수도원에 소장되어있는 마르틴 베버 수사가 그린 금강산 그림 이미지와 베버 수사가 금강산에서 직접 구입하여 소장하였다가 수도원에 기증한 일본인 금강산 그림의 이미지를 확보하였다. 베버 수사의 그림은 전문 화가가 아니라 아마츄어가 그린 그림이기는 하지만 그가 남긴 금강산 기행문과 병행하여 해석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고 일본인 작품 또한 베버 수사가 남긴 글을 참고하여 연구할 수 있다. 서양인이 그린 금강산 그림들은 기존에 알려진 그림들 외에도 발굴 여지가 많아 확보에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2. 일본인 화가들이 그린 금강산 그림과 자료 확보 –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난 그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일제시대에 발행된 인쇄물 등 수많은 자료를 확인하였다.
    3. 조선후기를 비롯해서 근대기 한국 화가들이 그린 금강산 그림 리스트 작성. 조선 후기와 근대기 화가들의 금강산 그림을 비교하여 변화의 줄기와 뿌리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4. 해외답사-금강산 관광을 계획했으나 금강산 관광의 길이 폐쇄되어 불가능하였다. 그 대안으로 안휘성의 황산을 답사하였다. 황산은 중국의 금강산이라 불리며, 운무와 돌산으로 유명하여 예부터 수많은 화가들이 그려온 산이라는 점에서 한국 금강산과 유사성이 많다. 황산 관광을 통하여 근대기 관광객들의 경험을 추체험하고 상상할 수 있었다. 특히 등반자들의 유흥 행태. 높은 산에 위치한 호텔이나 카페 등에 짐을 운반하는 짐꾼들의 수송 방식, 유흥 레저시설 등을 체험하고 일제 강점기 금강산의 관광 풍속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5. 금강산 작품목록 – 연구를 진행하면서 직접 실견하거나 도록을 통해서 확보된 작품목록은 결과보고서 파일에 기재하였다.
    6. 참고문헌 보강 - 참고문헌을 대폭 보강하여 결과보고서 Ⅳ장에 기재하였다.

    연구 결과 활용 방안
    1. 연구 논문은 『한국근현대미술사학』(2012년도 출간,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학술지)에 개제할 예정이다.
    2. 연구 진행 결과 확보된 금강산 작품 이미지, 사진 이미지, 그밖에 인쇄된 이미지와 금강산 관련 출푼물들의 리스트 등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판 가능.
    3. 본 연구 결과물로 제출된 자료 목록에 근거하여 출판 인쇄물 및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아카이브 자료로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 색인어
  • 혼성성, 금강산, 금강산 그림, 금강산 관광, 관광, 일본식민기, 불교 성지, 관광 명승지, 변관식, 근대성, 근대적 해석 / hybridity, the Diamond Mountains, the Diamond Mountain paintings, the Diamond Mountains tour, tourism, Japanese Colonial Period, Buddhist Pilgrimage, a holiday "hot - spot" , Pyon Kwansik, modernity, re-interpretation in the modern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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