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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승단분열과 결집사의 쟁점에 대한 일고찰 - 제3결집의 실체와 까타밧투 -
A study on the Sanghabheda and Buddhist councils - focused on the third Buddhist council and the Kathavatthu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12S1A5B5A07037196
선정년도 2012 년
연구기간 1 년 (2012년 09월 01일 ~ 2013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최경아
연구수행기관 동국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스리랑카 사서인 『마하밤사(Mahavaṃsa)』와 『디빠밤사(Dīpavaṃsa))』와 『사만따빠싸디까(Samantapāsādikā)』등의 불교문헌 자료를 신뢰한다면, 스리랑카 상좌부가 전개되어진 계기는 초기 상가에서 벌어진 부파불교의 분열과 소요와 관계가 깊다. 이로 인해 목갈리뿟따띳사(Moggaliputta-Tissa)라는 장로가 아쇼카왕의 지시로 승단을 정리하며 아쇼카왕의 친자녀인 승려를 포교를 위해 스리랑카로 보내면서 전파되었던 것이다. 이때 발생한 승단의 분열은 아쇼카왕의 친불교 정책의 경제적 수혜를 얻고자 이교도들이 승단에 은밀히 난입하여 상가를 분열시키고 불법을 훼손하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에 정법을 세우기 위해 목갈리뿟따띳사 장로가 저술한 논서가 바로 『까타밧투(Kathavatthu)』이다. 그러나 논서의 주된 논적은 이교도들이 아닌 불교 내부의 다른 부파들이다. 『까타밧투』는 남방상좌부의 시각에서 다른 부파불교를 논파하고 있는데, 주적이 바로 설일체유부와 독자부, 대중부 등이다.
    지원자는 부파불교에서 분별설부의 정체에 관해 연구한 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남전과 북전이 전하는 부파불교 제학파들이 때로는 상위하거나 정체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러한 부파들의 학설과 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문헌으로서 『까타밧투』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 문헌은 또한 불교가 부파화 되어 가는 과정에서 도출된 상가의 분열상을 반영하고 있다. 기존의 부파불교 연구는 주로 『이부종륜론』이나 『대비바사론』과 같은 북전 문헌 중심으로 수행되어진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유부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되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까타밧투』의 경우 오히려 유부가 주논적인 만큼 이들 북전의 문헌에서 보는 제학파에 대한 관점과 『까타밧투』의 관점이 동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불교사상사적인 측면에서 본 연구를 통해 우리는 부파불교의 여러 학설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상가의 소요와 분열을 결집이라는 형태로 승화시킨 목갈리뿟따띳사 장로의 지도력은 불교사에 있어 최초의 개혁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본 연구가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인 측면은 3차결집을 야기한 승단의 분열과 그 수습과정을 정리하여 한국불교승단운영에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까타밧투』의 성립시기와 제3결집과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으면 이 문헌에서 논해지는 학파들의 학설과 논쟁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 난해해진다. 역으로 문헌 안에 언급된 학파들의 학설을 통해 이 문헌의 성립배경을 추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해 제3결집과의 관련 상에 나타나는 문헌성립에 관한 난점을 정리해 보도록 한다. 이는 부파불교의 전개와 부파간의 논쟁의 쟁점, 더 나아가 대승불교의 발생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주요 문헌인 『까타밧투』 연구의 초석이 될 것이다. 구체적인 목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지원자는 3차결집의 전설과 연계하여『까타밧투』의 성립의 역사적 배경과 그 진위를 밝힐 것이다. 카따밧투가 말하는 이교도가 왜 불교 밖에 있지 않고 불교 테두리 안의 다른 학파인지, 그들이 왜 불교의 분열을 초래한 당사자로 비판되었는지, 또한 그러한 비판이 합당한 것인지를 분석해 보도록 한다. 둘째, 이 논서에서 다루는 여러 학파들의 정체와 그 학설 등을 정리할 것이다. 셋째, 이것이 과연 북전에서 전하는 자료들에 나타난 주요 학설과 합치되는지를 분석한다.
  • 기대효과
  • 3차결집은 남방불교에서만 전승되는 전설로서 역사적 사실로서의 근거가 미약했다. 또한 3차결집은 스리랑카상좌부의 논서『까타밧투』의 성립과 맞물려 있다. 이 논서가 스리랑카의 사서가 전하는 대로 아쇼카왕 당시에 성립되었다면, 당시 실존했던 초기부파불교의 학설을 확인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로 활용 가치가 높다. 인도대륙에서 전개된 부파의 분열이 주로 북전 자료를 통해서만 연구되었던 것을 고려해 볼 때, 3차결집과『까타밧투』의 성립 배경을 전하는 스리랑카 문헌을 검증하고, 『까타밧투』에서 전하는 여러 부파의 학설들이 분석 된다면, 주로 북전의 시각으로만 연구되었던 부파불교史나 각 부파의 학설을 중립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상가 내의 분쟁으로 인해 결집이 행해지고 그 산물로서 논서가 편찬되었다는 전승은 불교 내부의 분쟁을 해소하는 한 해법으로서의 모델을 제시하기도 한다. 문헌 자체의 분석과 연구에 앞서 그 성립에 대한 역사적 사실적 사실들을 자료들을 통해 분석 정리하면 『까타밧투』를 단순히 아비달마논서로서 뿐 아니라, 당대 여러 부파의 정체와 학설을 확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사료로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상좌부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까타밧투』의 저자 목갈리뿟다띳싸장로는 당시 확산일로의 대승불교에 대한 우려와 대응을 이 논서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이는 『까타밧투』의 내용과 3결집의 전설을 다룬 자료들에서 확인될 것이다. 아울러 승단의 무질서와 새롭게 부상하는 불교계의 신흥세력에 기존의 보수적 전통주의자들이 어떠한 이념으로 대응했는지를 조망 분석함으로써 작금의 한국불교계의 무질서와 혼돈에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논리적 해법을 이 연구를 통해 제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칼루파나와 같은 학자는 목갈리팃사를 인도불교사에 있어 최초의 개혁자로 간주한다. 밖으로는 상가를 분열시키는 이교도와 분열주의자들을 승단에서 추방하는 정화작업을 단행했고, 안으로는 『까타밧투』라는 논서를 저술하여 설일체부와 독자부와 같이 붓다의 본래 가르침인 무상과 무아에 역행하는 부파와, 붓다를 초월적 존재로 신격화하려는 대중부 또한 신랄히 비판했다. 또한 성립 당시 실존했던 여러 부파의 학설이 소개된 이 문헌은 상좌부의 아비달마논서로서 뿐 아니라, 당대 여러 부파의 정체와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로 다양한 활용이 기대된다.

  • 연구요약
  • 붓다고사의 『까타밧투註』 서문에는 붓다가 남방7론을 설한 최후에 이 논서의 論母(mātikā)만을 설하시고, 제3결집에 이르러 목갈리뿟따띳사(Moggaliputta Tissa)가 당시 존재했던 부파와 장차 나타날 부파를 파하기 위해 자파의 500經과 타파의 500經으로써 부처가 설한 論母를 분별하려고 이 경을 설했다고 전한다.
    『디파밤사』 등에 따르면 다수의 왕족과 바라문들이 불교교단을 지원해주자 상가의 안이한 생활로 인해 계율이나 수행이 어지러워졌다. 게다가 외도들까지 불교도로 위장하여 그 이익을 챙기려 하였다. 이로 인해 상가가 분열되고 타락하였다. 이때 아쇼카왕의 지지를 받고 목갈리뿟따띳사가 상가를 숙정했다. 즉, 불교를 분별설(Vibhajjavāda)이라고 규정하여 이에 반하는 비구는 추방했다고 한다. 그후, 그는 1000명의 아라한을 선별하여 ‘법의 결집’을 행하는데 이것이 제3결집이라고 한다. 스리랑카 상좌부를 분별설부(Vibhajjavādin)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하여 상좌의 설을 명백히 하기 위해 만든 것이 『까타밧투』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곧, 『디파밤사』의 다른 부분과 『사만따빠사디까』 등에서는 『까타밧투』가 성립된 이후 제3결집이 행해졌다고 기록되어 있고, 『마하밤사』의 경우는 결집중에 『까타밧투』를 편집하고 결집을 마무리했다고 전한다. 법의 결집과 『까타밧투』 성립의 전후관계가 각기 다르게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까타밧투』의 성립시기와 제3결집과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으면 이 문헌에서 논해지는 학파들의 학설과 논쟁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 난해해진다. 역으로 문헌 안에 언급된 학파들의 학설을 통해 이 문헌의 성립배경을 추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리해 보면, 제3결집 전설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쇼카왕 당시에 승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고, 이로 인해 이교도들이 그 이익을 얻고자 승단에 유입하여, 교단이 분열되고 布薩도 충분히 행해지지 않았으며, 정법이 오염되었다. 둘째, 목갈리뿟따띳사가 1000명의 비구와 함께 빠딸리뿟따(Pāṭaliputta)에서 법의 결집을 행했다. 세째, 목갈리뿟따띳사는 異說을 파하고 정법을 확립하기 위해 『까타밧투』를 저술했다. 이 항목들을 검토해 보면 또 다른 문제점이 발견된다. 첫째, 과연 제3결집과 관련된 이 일련의 사건들이 과연 아쇼카왕 당시에 일어났는가? 둘째, 『까타밧투』의 내용을 살펴보면, 불교내부의 타부파의 설을 부정하고 있지, 외도의 설을 타파하거나 외도가 승가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부를 비롯한 제부파의 교리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남전 사서에서 제3결집의 원인이라고 지목된 외도의 상가 난입과 이로 인한 계율의 붕괴, 布薩의 불이행 등의 이유에 합치되지 않는다. 셋째, 빠딸리뿟따의 결집에 두 종류가 있다는 설이다. 이는 Andre Bareau의 주장으로서, 하나는 빠딸리뿟따 제1결집으로서 大天의 五事를 기록한 『大毘婆沙論』 권99 등의 자료에 기인하며, 또 하나는 빠딸리뿟따 제2결집으로 여기서 말하는 제3결집에 해당한다. 이점에 대해 金倉圓照는 『대비바사론』에 나타난 대천의 기록은 결집과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지적했으나, 이 사건이 그 후 분파의 기원이 되었음은 인정한다. 이 전설에 나타난 제3결집의 사실성에 대해서는, 그 외에도 전설의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설, 파탈리풋다에서 있었던 한 부파의 회합에 지나지 않다는 설, 완전히 허구라고 판정하는 설 등, 학자들간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결집이 행해지고, 그에따라 異說을 논파하고 자설을 세우기 위해 편찬되었다는 『까타밧투』는 당시 이미 여러 학설들이 난립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까타밧투』의 본문에 등장하는 학파들 가운데는 아쇼카왕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 보여지는 것들이 다수 나타난다. 이는 이미 불교가 인도 전역에 전파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데, 이 시기에 다시 전도사를 파견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인도불교 전체의 상가행사로서 제3결집을 인정하는 것은 무리이며, 따라서 『까타밧투』의 편집은 상좌부 내부의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인도불교 전체의 상가행사로서 제3결집을 인정하는 것은 무리이며, 따라서 『까타밧투』의 편집은 상좌부 내부의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 한글키워드
  • 상가분열, 목갈리뿟따띳사, 제3결집, 까타밧투, 아쇼카왕, 남방상좌부, 설일체유부, 독자부, 대중부.
  • 영문키워드
  • Samgha schism, the third council, Kathavatthu, Moggaliputta Tissa, Ashoka, Theravadin, Sarvastivadin, Pudgalavadin, Mahasamghika.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3차결집을 중심으로, 이를 전하는 여러 문헌들을 검토하여 결집이 행해지게 된 배경으로 설정된 당시의 승단 내 소요를 재조명 분석하고, 이와 연계된 『까타밧투』 성립의 역사적 배경을 확인한다. 서구에서는 Lamotte와 같은 학자가 해박한 고대 언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인도불교문헌의 역사적, 지리적, 사상적 배경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까타밧투』의 경우는 이상 언급된 다른 문헌과는 달리 아비달마 논서로서 철학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정체가 불분명한 학파와의 논쟁도 담고 있기 때문에 강독 자체에 많은 어려움이 수반된다. 『까타밧투』의 성립시기와 제3결집과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으면 이 문헌에서 논해지는 학파들의 학설과 논쟁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 난해해진다. 역으로 문헌 안에 언급된 학파들의 학설과 입장의 분석을 통해 이 문헌의 성립배경을 추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해 미로처럼 얽힌 부파불교 학파들 간의 교리상의 근접성과 상위성, 또는 입장의 차이 등으로 계열화된 학파들의 분파 구도 등의 난점을 정리한다. 이는 부파불교의 전개와 부파간의 논쟁의 쟁점, 더 나아가 대승불교의 발생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주요 문헌인 『까타밧투』 연구의 초석이 될 것이다. 먼저 3차결집의 전설과 연계하여 『까타밧투』 성립의 역사적 배경과 그 진위가 검토된다. 『까타밧투』가 말하는 이교도가 왜 불교 밖에 있지 않고 불교 테두리 안의 다른 학파인지, 그들이 왜 불교의 분열을 초래한 당사자로 비판되었는지를 문헌자료를 통해 분석 고찰한다. 둘째, 이 논서에서 다루는 여러 학파들의 정체와 그 학설 등을 정리된다. 셋째, 이것이 과연 북전에서 전하는 자료들에 나타난 주요 학설과 합치되는지가 분석된다. 『카타밧투』는 그 내용이나 그것을 둘러싼 전설을 통해 볼때, 적어도 그 최초의 원형이 아쇼카시대 파탈리풋타에서 제작된 것으로 볼만한 근거는 있다. 붓다고사가 『카타밧투註』에서 주를 달은 학파는 총 16이다. 이 가운데 『디파밤사』와 『마하밤사』에 아쇼카왕 이전의 부파라고 되어 있는 18부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8부이다. 또 그 이후에 분열되었다고 하는 6부 중 여기에 열거되어진 것은 8부이다. 그 이후에 분열되었다고 하는 6부중 여기서 열거되어진 것은 4부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카타밧투』에 있어 상좌부의 경쟁자로서 주목되었던 부파는 새롭게 성립된 부파로 보인다. 따라서 인도불교 전체의 승가행사로서 제3결집을 인정하는 것은 무리이며, 『카타밧투』의 편집도 상좌부 내부의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내용적으로 보면 여러 부파의 교리를 전제로 하여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부파분열의 완성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형태의 『카타밧투』가 성립된 것은 아쇼카왕시대라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 100년 이상 후대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까타밧투』가 제3결집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스리랑카 전승을 수용한다고 해도, 그 성립 시기는 명백히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까타밧투』에서 논해지는 제부파의 학설은 이상의 제3결집과 관련된 역사적 · 사상적 배경을 숙지하고 이해해야 한다. 『까타밧투』 의 저자가 부파적인 도그마에 빠져 다소 주관적인 이해와 판단으로 논적들을 논박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아직 미완이며, 남전 문헌 가운데 아직도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 『까타밧투』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가야 하는 난점이 있다. 게다가 이 문헌에 나타난 학파들의 학설을 중립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부종륜론』이나 『대비바사론』 등의 북전 문헌이 함께 다루어 져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의 최종 산물은 이들 문헌들의 검토가 선행된 이후에나 완성될 것이다.
  • 영문
  • This study aims at analysing and therefore shedding a new light on the Third Council which is related to the commotion within the Sangha of the time. By examining various texts that report the Council, we will be able to ascertain the historical background with regards to the composition of Kathāvatthu. Western scholars, such as Lamotte, with profound knowledge of ancient languages, offer us informations regarding historical, geographical and ideological background of Indian Buddhist literature in chronological order. Kathāvatthu, however, being an Abhidharmic text, is somewhat different from the above literature. It deals with intricate philosophical issues of Buddhist doctrine, and contains argument with schools of obscure identity, which makes the text unintelligible. Unless the date of composition of Kathāvatthu and the relation between the text and the Third Council are made clear, it will be difficult to analyse not only the theories of different schools but also the meaning of the argument with them. On the contrary, through the analysis of theories of other schools and their stance introduced in the text, it will be possible for us to presume the background of the composition of the text.
    Through this study, the complication involving doctrinal differences between different schools of Buddhism will be reduced, and there will be an understanding of the structure of sectarian division caused by different stances. It can be a foundation of the studies of Kathāvatthu, a significant text that gives much information on the points of controversy between schools, and on the appearance of Mahayana Buddhism. First, in relation to the story of the Third Council, the historical background with regards to the composition of Kathāvatthu will be verified. Why the heresies mentioned in the text are Buddhist schools rather heretical schools, and why they are criticized as those who caused schism within Buddhism will be examined through textual analysis. Second, the identity of various schools depicted in the Kathāvatthu will be clarified. Third, whether theories of different schools introduced in the Kathāvatthu are in accordance with the same according to the materials of Northern tradition will be checke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인도아대륙은 명칭에서도 시사하듯이 한 나라라기보다는 대륙이며 거대한 문화권이다. 불교의 근본분열이래, 상좌부 가운데 하나인 설일체유부는 주로 북서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지역에 기반을 두고 성장하였으며, 독자부 등은 빠딸리뿌뜨라, 지금의 인도 북동부의 빠뜨나에서 기원하여 마투라 등으로 전개 되었다. 머리카락을 쪼개내는 듯한 날카로운 분석과 첨예한 실재론적 철학으로 무장했던 설일체유부는 그 지역의 황량하고 거센 풍토와 유사하다. 기질이 강하고 타협을 잘 안 하는 비하르인들이 사는 인도 동북부 내륙 지역은 현재에도 인도인들이 여행을 겁내는 곳으로, 붓다 당시에도 치안이 안 좋았던 지역이다. 이곳은 또한 불교철학계의 이단으로서 모든 불교 학파들의 논적이었던 독자부의 초기 무대이기도 했다. 그 외에 아직도 행적이 묘연한 많은 부파불교들은 그 지역과 토양에 맞는 철학사상을 형성하면서 상호간의 경쟁과 절충을 통해 세력권을 확장해 갔다. 남방불교가 전개되어진 계기도 초기 상가에서 벌어진 부파불교의 분열과 소요로 인해 목갈리뿟따띳사(Moggaliputta-Tissa)라는 장로가 아쇼카왕의 지시로 승단을 정리하며 아쇼카왕의 친자녀인 승려를 포교를 위해 스리랑카로 보내면서 전파되었던 것이다. 이때 발생한 승단 분열의 원인은 아쇼카왕의 친불교 정책의 경제적 수혜를 얻고자 이교도들이 승단에 은밀히 난입하여 상가를 분열시키고 불법을 훼손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정법을 세우기 위해 목갈리뿟따띳사 장로가 저술한 논서가 바로 『까타밧투(Kathavatthu, 論事)』이다. 그러나 논서의 주된 논적은 이교도들이 아닌 불교 내부의 다른 부파들이다. 『까타밧투』는 남방상좌부의 시각에서 다른 부파불교를 논파하고 있는데, 주적이 바로 설일체유부와 독자부다. 연구자는 3차결집의 전설과 연계하여 『까타밧투』의 성립의 역사적 배경과 그 진위를 정리하고, 더 나아가 이 논서에서 다루는 여러 학파들의 정체와 그 학설 등이 과연 북전에서 전하는 자료들에 나타난 주요 학설과 합치되는 지를 북전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확인한다. 아울러 승가의 분열을 전하는 남방의 사서를 근거로 하여, 『카따밧투』에서 논적으로 나타나는 부파들이 왜 불교 밖에 있는 이교도가 아닌 불교 테두리 안의 다른 학파인지, 그들이 왜 불교의 분열을 초래한 당사자로 비판되었는지, 또한 그러한 비판이 합당한 것인지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부파불교의 전개와 부파간의 논쟁의 쟁점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인 『까타밧투』 연구의 초석이 될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기존의 인도 부파불교에서 부파의 분열과 결집에 대한 연구는 주로 북전 자료를 통해서만 연구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고려해 볼 때, 3차결집과 『까타밧투』의 성립 배경을 전하는 스리랑카 문헌을 검증하고, 『까타밧투』에서 전하는 여러 부파의 학설들이 분석 된다면, 주로 북전의 시각으로만 연구되었던 부파불교史나 각 부파의 학설을 중립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승가 내의 분쟁으로 인해 결집이 행해지고 분쟁 해소의 결과로서 논서가 편찬되어진 사례는 불교 내부의 분쟁이 생겼을 때 이를 풀어나가는 한 해법으로서의 모델을 제시하기도 한다. 본 연구자는 인도불교사를 강의하면서 범위 자체가 광대한 데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불교사의 여러 사건들이 피상적인 기술로 일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특히 제2, 제3 결집에 관한 내용은 기록된 문헌들이 모두 같은 내용을 전하지 않고 여러 사건이 혼재된 채 기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3결집의 산물로 『까타밧투』가 편찬되었다는 남방상좌부의 전승은 지목된 아비달마 논서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관련 사료들과 더불어 연구되면 이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일차적 활용방안은 적절한 강의교재의 확보라고 할 수 있겠다. 『까타밧투』의 경우는 남방상좌부논서이지만 이 논서가 다루는 학설들은 대부분 북전 논서에서 많이 알려진 불교의 스리랑카 도래 이전의 학파들의 학설이다. 『까타밧투』의 본론을 보면 아쇼카왕 이후에 성립된 안다까(Andhaka, 安達派)파의 4종과 웃따라빠타까(Uttarāpathaka, 北道派), 베뚤랴까(Vetulyaka, 方等部)의 학설이 나타난다. 제1품에서는 바사뿌뜨리야(Vāsaputriya, 犢子部), 삼미띠야(Sammitīya, 正量 部), 안다까 등 여러 학파의 학설이 논해지는데 북전 『대비바사론』에서 설해지는 대천의 오사의 문제도 다루어 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대비바사론』, 『이부종륜론』 등의 북전 논서들과 대비해서 연구함으로써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에 가려 관심 받지 못했던 부파불교의 여러 학파들의 학설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이 모든 것을 다루기는 벅차다. 차후 연구의 토대로서의 기초작업이 이 연구를 통해 다져질 것이다.
  • 색인어
  • 상가분열, 목갈리뿟따띳사, 제3결집, 까타밧투, 아쇼카왕, 남방상좌부, 설일체유부, 독자부, 대중부.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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