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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선교사-문화사로 본 한국교회사
The Empire’s Missionaries-Rewriting Korean Catholic History from a Cultural Studies’ Perspective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인문저술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18-S1A6A4A01-2018S1A6A4A01039050
선정년도 2018 년
연구기간 3 년 6 개월 (2018년 05월 01일 ~ 2021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박보영
연구수행기관 경북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1909년부터 1949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한 독일 베네딕도회의 가톨릭 선교사 문헌 분석을 통해 제국주의와 선교사의 관계를 재해석하고, 근대이행기 ‘문화 번역자’로서 선교사의 역사적 위치를 새롭게 해명하고자 한다.
    기존의 협소한 범주의 교회사 연구는 그 특수성에 함몰된 채 일반 학계는 물론 대중으로부터도 폭넓은 지지를 획득하지 못했다. 선교사 문헌을 통해 19세기~20세기 근대화 및 서구화에 대한 한국인의 수용과 저항의 경합 양상을 들여다봄으로써 한국사의 중요한 통과점인 근대이행기를 보다 역동적으로 구체화하고 사람들 사이에 친근했던 선교사의 시선을 빌어 가독성(可讀性) 높은 전문 학술교양서로 완성하고자 한다.
    또한 일국사의 관점을 넘어 해석의 차원에서는 교회사〈한국사〈지구사(동아시아사)의 관점으로 시야를 확대하며, 구체적 연구전략에서는 역으로 지구사(동아시아사)〈한국사〈교회사로 좁혀들어가는 정치한 접근전략을 통해 지구사(Transnational History)로서 교회사, 제국주의 시대, 타국의 이방인이 경험하고 기록한 ‘동시성의 비동시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는 기존 교회사 연구의 호교론을 탈피함은 물론이고, 한 장르적 담론으로 정형화된 도식적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 탈식민 이론의 ‘상호교섭’에 근거하며, 동아시아사/지구사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는 측면에서 변별력을 지닌다.
  • 기대효과
  • 본 저서는 아래와 같은 학술증진 기대효과를 기대한다.
    ①교회사 연구의 지평 확대를 기대한다. 탈식민 담론에서 선교사 문헌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 교회사에 대한 문화사적인 접근방법, 그리고 동아시아사 및 지구사 관점에서 교회사에 접근함으로서 보다 넓은 시야의 교회사 연구에 기여한다.
    ② 한국의 근대 및 서구화 과정에 대한 한국인들의 수용과 저항의 경합 양상을 선교사문헌을 통해 재구성함으로서 한국 ‘근대’ 논쟁에 대한 또 하나의 해명 작업을 기대한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큰 맥락에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초기 한국 선교의 두 집단, 파리외방전교회와 독일 베네딕도회 비교한다.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과 함께 한국 선교를 위임받았던 파리외방전교회(Société des Missions Etrangères de Paris)와 뒤이어 약 80년 후인 1909년 한국에 진출한 독일 베네딕도회(Missionsbenediktiner von St. Ottilien)의 선교정책을 비교한다. 초기 한국 가톨릭교회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상호교섭 과정을 거친 두 집단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 차이와 상호교섭은 한국 가톨릭교회 상(像)의 형성에 지속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했고,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형성과정에도 무시할 수 없는 환경요인이 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는 당시 아시아 선교라는 시대적 요청을 ‘탈제국주의-재로마화’ 구도 안에서 순교를 무릅쓰고 열광적으로 실천해나갔던 교구 사제들의 사도단이었다. 베네딕도 선교회는 ‘문화투쟁’이라는 독일 내 종교 탄압을 ‘제국주의 팽창-탈 로마화’에 힘입어 돌파했고, 첫 선교지 동아프리카에서의 실패 후 성찰과 모색의 기회로서 한국진출을 선택한 수도회였다. 전자는 한국에 강력한 교계제도를 수립하고 사제 중심의 보수적인 한국천주교회를 건설했다. 후자는 문화선교를 중심으로 한국의 근대시기 저변을 확대하는데 공을 들였다. 전자는 수직 개념의 교계제도 설립이 목표였고 후자는 수평 차원의 문화전파가 목표였다.

    둘째, 동아프리카에서 동아시아로/ 선교정책의 대전환을 분석한다.
    독일 베네딕도회가 1887년 첫 선교사를 파견한 동아프리카 선교는 원주민의 폭동으로 인한 선교기지 파괴와, 동아프리카 내 선교기지와 인접해있던 독일-동부 아프리카 회사(Deutsch-Ostafri-kanische Gesellschaf)와의 갈등, 수도생활과 선교활동 사이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과 수도회 내부의 분열 등으로 좌절에 처했다. 자본가들의 움직임은 각종 식민지협회와 식민지 기업의 확산으로 나타났지만, 기톨릭교회는 ‘세계교회의 연대’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팽창 시대에 편승했다. 독일선교사들은 새로운 선교지로 동아시아-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새로운 선교지로의 전환은 새로운 실험을 의미했다. 현지인 중심의 교육활동, 바티칸 보다 훨씬 앞서 실행한 전례 토착화, 한국인 후진양성을 목표로 한 회헌과 규칙의 변경, ‘선교와 수도생활’의 긴장관계를 둘러싼 수도선교회 내부의 정체성 찾기 운동 등, ‘한국’을 선택한 것은 그들에게 곧 ‘혁신’의 선택이었다.

    셋째, 문화번역자로서 선교사의 위치를 새롭게 해명한다.
    선교는 먼저 일방적인 지배와 통제가 아니라 타자와의 대화적 관계를 요구한다. 대화는 이해를 필요로 하고, 이해는 먼저 ‘유사’와 ‘차이’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선교사들이 한국이라는 이질적 문화와 조우하고 대화를 시도하며 경험하게 되는 ‘유사와 차이’에 대한 인식의 형상화 과정은 번역의 그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그들은 한국 설화를 수집하고, 한국어 연구를 통해 문법책을 저술했으며, 종교와 의례를 관찰하고, 전통과 서구화 사이에서 수용과 저항을 불균질적으로 반복하는 한국인에 대해 기록했다. 후발공업국 독일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일본의 식민지 한국에서 식민지 공업화와 도시화를 목격하면서 소회를 남겼고, 일본의 식민지 동화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선교사들이 탐구하고 분석하며 기록한 한국문화의 ‘번역’을 통해 한국 근대사의 면모를 살펴보는 통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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