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傳奇小說 가운데는 애정을 주제나 제재로 삼은 작품이 많다. 羅末麗初의 <온달> <설씨녀> <김현감호> <조신> <최치원>, 15세기의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 16세기의 <하생기우전>, 17세기의 <주생전> <위경천전> <운영전> <상사동기> <최척전>, 18세기의 <절화 ...

우리나라 傳奇小說 가운데는 애정을 주제나 제재로 삼은 작품이 많다. 羅末麗初의 <온달> <설씨녀> <김현감호> <조신> <최치원>, 15세기의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 16세기의 <하생기우전>, 17세기의 <주생전> <위경천전> <운영전> <상사동기> <최척전>, 18세기의 <절화기담>과 <심생전> 등이 이에 해당하는 작품들이다. 그간 이들 작품에 대한 연구는 개별 작품론에서부터 소설사적 의의, 역사적 전개과정, 현실주의적 성취와 한계, 미적 특질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측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나말여초에 나온 작품들이 소설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부각되면서 이들 작품의 양식적 특징 및 역사적 전개과정에 대한 연구성과는 우리나라 고전소설 전반에 대한 연구를 한 단계 심화시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가 양식적 특성이나 그 변모과정 등 주로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는바, 이제는 미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개별 작품이나 양식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기존의 연구성과를 보완할 뿐만 아니라, 자칫 거시적인 측면에서 간과하기 쉬운 문제들을 통해 전기소설의 새로운 특성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여성형상에 주목하여 이들 작품을 통시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물론 기존의 연구 가운데 인물의 성격을 분석한 연구가 있었으나, 그 연구는 실제 '전기소설의 경우 대체로 여주인공의 신분이 남주인공의 신분보다 높다'는 거시적인 조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 연구가 '인물의 성격'보다는 '여성형상'에 주목한 것은 바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적 전제인 셈이다.
문학작품의 형상은 현실생활과 다르면서도 현실생활의 모든 진실성과 생동성을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형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추상적인 이론이나 법칙 등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생동적이며 미학적인 의의가 깊은 생활의 화면이다. 또 문학작품의 형상은 작가의 세계관이나 개인적인 정감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이는 작가가 자신의 세계관과 정감, 그리고 미학적 요구에 따라 현실생활을 평가한 이후 이를 다시 문학작품에 재현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애정전기소설을 여성형상에 주목하여 연구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연구에서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 정치현실에서 소외된 비판적 지식인들에 의해 지어졌으며, 그것도 가부장적 사회체제라는 역사적 조건 하에서 산출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이들 작품에 나타난 '여성형상'을 분석함으로써 작가의 세계관은 물론 당대 사회의 모순과 질곡, 그리고 이상적인 여성상의 변모양상까지 구체적이면서도 생생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 연구는 먼저 개별 작품에 나타난 여성형상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다시 이를 작가의 세계관 및 현실적 처지, 당대의 역사적 조건 등과 관련지어 그 특징을 구명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위에서 분석된 결과를 통시적인 차원에서 비교·고찰함으로써 여성형상의 변모양상을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한다. 이 연구의 결과 각 시대마다 지식인들이 생각했던 이상적 여성상과 여기에 투영된 작가의 내밀한 의식, 그리고 당대 사회의 현실인식이 어떠했는지를 더욱 정치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나아가 전기소설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이 연구에서 적용한 방법을 환몽소설이나 영웅소설 등 조선후기 여타의 소설양식에 확장·적용할 경우 고전소설 전반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