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코 기호학에서 다루는 주체의 개념
주체의 문제는 이념ideology의 문제와 긴밀하게 관련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에코는 이념을 기호학적 범주로서 대한다. 에코는 이념을 "사실적 기술에서 출발하여, 약호화 과정을 통하여 사회에 이론적으로, 점진적으로 받아 ...
1. 에코 기호학에서 다루는 주체의 개념
주체의 문제는 이념ideology의 문제와 긴밀하게 관련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에코는 이념을 기호학적 범주로서 대한다. 에코는 이념을 "사실적 기술에서 출발하여, 약호화 과정을 통하여 사회에 이론적으로, 점진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정당화되는 메시지"라고 정의내린다. 그런데, 에코의 기호학은 "메시지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현존하는 과정"에는 관련되어있지 않고, 대신 "새로운 약호화가 어떤 의미에서 이념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에 관련된다 (A Theory of Semiotics, 290). 결국, 에코가 말하는 이념은 사회역사적인 이념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의미론적이며 기호학적인 이념이다. 나아가 에코는 이념적 담론을 수행하는 화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느냐 하는 문제는 기호학에서 벗어난 문제라고 말한다. "기호학은 다양한 이념적 선택들을 분석하도록 도울 뿐, 우리가 선택하도록 돕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TS, 312).
따라서 에코의 기호학은 단지 이념이 문화적, 의미론적 단위로서 다른 단위들과 서로 연관되는 과정을 코드화의 이론에 따라 그려낼 뿐이다. 이 이론은 "실제 세계와는 독립적인 것" (TS, 297)이다. 이런 식의 접근은 단지 기호들의 관념적 유희만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념의 문제는 그러한 체계 내적 접근보다는 그 이념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주체와 관련하여 논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에코의 기호학은 주체를 "기호과정의 기호학적 주체"로서 다루고 있다. 주체가 기호과정에 갇히는 이상, 그 주체는 비역사적인 존재가 되는 위험이 있다. 에코는 자기가 개인적, 물질적인 주체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의 기호학은 이 주체를 단지 "기호를 만드는 주체"로서만 설정한다. 이는 퍼스에 기대는 것인데, 퍼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기호는 인간 자체다. 모든 사고가 하나의 기호이고, 삶은 사고의 궤적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하나의 기호라는 것을 말해준다." (TS, 316). 이런 믿음에는 윤리적 가치 평가와 실천이 결여되어있다.
이런 식으로 이념과 주체를 기호학의 체계를 구성하는 단위들로서만 고려하면서도, 에코는 자신의 기호학이 사회적 실천의 한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실천은 그저 기호학 체계 내에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아무도 그 실천이 현실을 표현하는지, 현실과 관계하는지 모르고, 윤리적, 정치적 중요성을 함축하는지 모른다. 에코는 기호학의 목표는 "어떤 것이 어떤 것에 동조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어떤 것을 가리킨다는 것"을 분석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벌써 여기서 에코의 관심은 현실이나 실천보다는, 그들이 하나의 체계적 단위로서 치환되어 분석되는, 그러한 체계의 건설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2. 윤리적, 실천적 주체의 구상 - 의식적, 개인적 주체
에코가 사회적 실천을 말한다면 기호학의 제국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주체의 개념과 역할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체계의 정합성만을 추구하는 기호학적 접근, 또는 텍스트 중심적 접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는 사실상 기호학의 존재 방식을 뿌리채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기호학의 문턱을 넘어서는 일로 에코는 처리해버리고 있다. 다시 말해, 이념과 주체, 그리고 실천의 문제는 기호학으로서는 도저히 다룰 수 없는 영역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기호과정으로 존재하는 주체 대신에 피와 살을 지닌 주체를 생각한다. 방법이 아닌 물질로서의 주체만이 이론을 사회적 실천의 형식으로 만들 수 있다. 이는 물론 실천을 통해서이다. 에코는 기호학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호학적 차원에서 우리는 "말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의미작용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의사소통에 대해서 의사소통한다. 이는 말하고 의미를 만들고 의사를 교환하는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발화와 의미작용, 의사소통은 사회적 조직과 발전을 결정하는 사회적 기능이다. 그러므로 기호학적 접근은 사회적 실천의 한 형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기호학이 이런 식으로 세계에 접근할 때, 세계를 향해서가 아니라 기호학 내부를 향해, 또는 기호학적으로 건설된 세계의 깊숙한 곳을 향해 무한한 내적 후퇴를 거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즉, 기호학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어떻게 말하는가, 의미작용에 대해 의미부여하는 작업에 대해 어떻게 의미부여를 하는가, 의사소통에 대해서 의사소통하는 것을 어떻게 의사소통하는가 하는 데 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이는 깊디깊은 곳에 자리하는 법칙을 찾아서 계속해서 "초언어"의 굴레로 빠져드는 결과만을 낳는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말과 의미를 만들어내